[66화] 분할통치(Divide and Rule) (3)
부족장 가람은 연회가 끝난 다음 날 아침에 같은 편인 부족장들과 함께 반조선파 부족장들이 마을을 떠나는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천지신명께서 도와주신 덕에 큰 문제 없이 거사를 치렀군요. 이제 조선의 태자가 준 강철 무기로 저놈들의 마을을 공격하면 이 땅에 다시 평화가 깃들 겁니다.”
그러나 다른 들은 그의 말을 듣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부족장님. 정말 깃털로 볼을 쓰다듬는다고 사람이 죽겠습니까? 오늘 아침에 일어난 부족장들은 하나같이 혈색이 좋아 보였습니다.”
“본인도 처음에는 조선 태자의 말을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연회를 열기 전에 시험 삼아 숫염소 몇 마리를 그 부채로 쓰다듬어 봤는데, 겨우 며칠 만에 온몸의 털이 빠지면서 죽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는 완전히 의심을 거두었지요.”
“부족
회의를 열기 전에도 같은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부족장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나 저자들이 정말로 독에 중독됐는지 알아보려면 마을을 떠난 부족장들에게 미행을 붙이는 편이 낫겠습니다.”
“옳으신 말씀이군요. 그럼 즉시 조처를 하겠습니다.”
그 후 부족장 가람은 믿을만한 심복들을 불러 반조선파 부족장들을 몰래 따라가라고 지시했다.
부족장의 명을 받은 미행자들은 사냥꾼이나 심마니로 변장한 다음 귀향길에 오른 여러 부족장의 뒤를 쫓았고 며칠 후에 부족장 가람의 곁으로 돌아와서 임무 수행 중 보고 들은 것을 보고했다.
“부족장님. 반조선파 부족장들은 제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그자들이 죽는 모습을 너희 눈으로 직접 확인했겠지?”
“그렇습니다. 부채의 깃털이 맨살에 닿은 부족장 중 대부분은 마을을 떠난 지 이틀이 지나자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피부가 창백해지면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자들도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자들도 지금쯤이면 아마 불귀의 객이 되었겠지요.”
“드디어 때가 왔구나! 부족장을 잃은 반조선파 부족의 부족민들은 모두 머리 잃은 뱀처럼 허둥대고 있을 거다! 어서 우리 부족에게 우호적인 모든 부족에 사절을 보내 이 사실을 알리고 함께 혼란에 빠진 적을 공격하자고 전해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부족장님.”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친조선파 부족들은 최대한 많은 병사를 모아 가까운 반조선파 부족의 마을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때 반조선파의 유력 부족들은 갑자기 부족장이 죽는 바람에 구심점을 잃은 부족민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던 데다 초겨울에 전쟁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밀물에 모래성이 쓸려나가듯 속수무책으로 마을과 논밭을 빼앗기던 반조선파의 유력 부족들은 아직 남아있는 영토라도 지키기 위해 고조선의 태자에게 사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기원전 260년 12월 초 어느 날, 반조선파였던 여러 부족
출신의 귀족으로 구성된 사절단의 단장이 고조선군의 군영에 찾아가 태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간청했다.
“전하! 근래에 조선 연합에 소속된 여러 부족은 이웃 부족의 불행을 기회 삼아 남편을 잃은 처의 집을 빼앗고 아비를 잃은 자식들을 잡아다가 노비로 삼고 있나이다! 공격을 받은 스물다섯 부족
중 이미 여덟 개가 멸망했으며 남은 부족의 운명도 바람 앞의 등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부디 그 파렴치한 자들이 침략을 멈추도록 명해 주시옵소서!”
“제발 부탁드리옵니다! 태자 전하! 간절히 바라옵건대 저희 부족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러자 한부는 지휘관 막사 한가운데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서 반조선파 부족의 사절단을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그대들이 섬기던 부족장들은 하나같이 조선 연합에 가입하기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오히려 진국에 소속된 여러 부족의 병사를 모아 본인의 군영을 공격하려고 했다고 하더군. 왕검께 충성을 맹세한 충직한 부족들이 조선 왕실의 적을 물리치겠다는데 본인이 말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끌어내서 목을 치기 전에 썩 물러가라!”
“전하! 조선을 얕잡아 봤었던 어리석은 부족장들은 이미 천벌을 받아서 끔찍한 병마에 시달리다가 모두 죽었습니다! 이제 진국에 감히 조선 왕실에 대적하려 하는 어리석은 부족은 없을 겁니다!”
“일찌감치 조선 연합에 가입한 남부의 부족장들은 그대와는 다른 말을 하던데? 아직도 조선 왕실을 업신여기는 유력 부족이 여섯 개나 남아있다는 걸 본인이 모를 줄 알았느냐?”
“전하. 그 어리석은 여섯 부족은 워낙 폐쇄적이라 자기들끼리만 뭉치면서 진국의 다른 부족들과는 잘 교류하지 않습니다.”
“그 황새 부족의 부족장이 베푼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부족들 말인가? 반조선파 부족들 사이에도 파벌이 있었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그 여섯 부족은 오늘 저희와 함께 전하를 뵐 사절을 보내지 않은 것입니다. 게다가 그 부족들의 부족장은 아직 천벌을 받지 않아서 그런지 여전히 조선 왕실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흠······. 그럼 그 여섯 부족
주변에 있는 작은 부족들의 동향은 어떤가?”
“그 여섯 부족의 지배를 받는 작은 부족의 부족민들은 원래부터 자기 마을이 있는 지역에서 왕처럼 구는 큰 부족의 부족장들을 싫어했습니다. 특히 근래에는 고집 센 여섯 부족
때문에 자기 마을도 조선군의 침략을 받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지요.”
“그렇단 말이지. 그 여섯 부족의 영역이 어디쯤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전하.”
태자가 명하자 사절단장은 자기 부족의 운명을 손에 쥔 젊은이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여섯 부족의 영역이 있는 곳의 지형을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부는 그의 말을 듣고 한반도 안의 마지막 저항세력이 있는 곳을 알아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위치면 대충 현대의 경기도 여주쯤이겠네! 원역사에선 20세기 초반에 엄청나게 큰 금광이 개발된 곳이잖아!’
원역사의 일제는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 곳곳에 금광을 개발해 많은 금을 수탈해 갔는데, 그 양이 어찌나 엄청난지 1930년대 후반에는 한반도의 금 생산량이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여주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여주의 금광은 한때 남북한을 합쳐 금 생산량 3위의 금광이었다고 전해진다.
한부는 고조선군을 움직이지 않고 여주지역의 적대 부족을 물리치고 그곳의 지하에 잠들어 있는 엄청난 금까지 차지할 방법을 생각해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본인이 내린 명을 제대로 이행한다면 곤경에 빠진 열일곱 부족이 조선 연합에 가입하는 것을 허락하겠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전하! 저희가 뭘 하면 될지 어서 알려주시옵소서!”
“마차와 호위병을 빌려줄 테니 앞으로 한 달 안에 고집 센 여섯 부족의 지배에 불만을 품고 있는 작은 부족의 부족장들을 전부 이곳으로 데리고 와라. 강압적인 큰 부족에게 저항할 힘을 빌려줄 생각이라고 하면 대부분 흔쾌히 따라올 것 같군.”
“아주 간단한 임무로군요.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 * *
한부를 만나고 돌아온 사절단이 돌아오자 반조선파 였던 열일곱 부족의 부족민들은 조선 연합에 가입하여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열심히 태자의 명을 이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시간이 흘러 기원전 259년의 1월이 시작되자 마침내 현대의 경기도 여주지역에 사는 작은 부족의 부족장 스무 명이 고조선군의 군영에 도착했다.
지휘관 막사에 들어선 부족장들은 의자에 앉아있는 태자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자 전하! 이 자리에 모인 스무 부족의 부족장은 조선 연합의 일원이 될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부디 저희가 조선 왕실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할 수 있도록 아직도 조선에 대적하려 하는 여섯 대부족을 처단할 힘을 빌려주십시오!”
“스스로 왕실에 충성을 맹세하는 그대들의 모습을 보시면 왕검께서도 크게 감명을 받으실 듯하구려. 그러나 지금까지 조선 연합에 가입한 부족은 모두 자기 지역에서 맹주 노릇을 하는 대부족이었소. 그대들에게 두 가지 제안을 할 테니 한 번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시오.”
“어서 말씀해주시옵소서. 전하.”
“하나는 본인이 내년 봄에 직접 군대를 이끌고 반항적인 여섯 부족을 정벌하고 그 지역을 왕실의 직할령으로 삼는 것이오. 그럼 그대들은 강압적인 여섯 부족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대신 왕실의 신민으로 살아가게 될 거요.”
“전하! 그 말씀은 저희 부족장들의 지위를 박탈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왕실의 병사들이 피와 땀을 흘려 차지한 땅은 당연히 조선 왕실의 영토가 되는 게 당연하지 않겠소?”
“하오나······!”
“끝까지 들어보시오. 두 번째 제안은 조선 왕실이 그대들에게 강철 병장기와 전시에 쓸 군량을 팔 테니 그대들 스스로 여섯 부족을 멸하고 자유를 되찾은 것이오. 이 방법대로 하면 조선 연합에 소속된 다른 부족들도 그대들이 여섯 부족의 영토를 나눠 갖고 조선 연합의 일원이 되는 것에 반대하지 않을 거요.”
“음······. 전하. 안타깝게도 이 자리에 모인 스무 부족의 부족민들은 하나같이 작고 가난합니다. 부족민들에게 아무리 세금을 많이 걷어도 그 비싼 금속 무기를 몇 개나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그대들의 영토에 묻혀있는 광물을 채굴할 권리를 조선 왕실에 넘기면 스무 부족의 모든 병사를 무장시킬 수 있는 강철 병장기와 넉넉한 군량을 지원할 것을 약속하오.”
“혹시 저희 부족의 부족민들을 잡아다가 광부로 쓰실 생각이신지요?”
“임금을 주고 그대들의 동포를 광부로 고용할 생각은 있지만, 강제로 잡아다가 노비로 삼고 곡괭이를 들려서 광산에 밀어 넣는 일은 결코 없을 거요.”
“참으로 관대한 처사로군요! 전하의 두 번째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반드시 반항적인 여섯 부족을 물리쳐서 왕검 폐하와 전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대들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겠소.”
한부가 작은 부족들에게 건넨 제안은 원역사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강대국이 적대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그 나라의 자원을 차지하는 일반적인 수법이었다.
한부는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이 활짝 웃으면서 기뻐하는 부족장들을 보고 잠시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곧 생각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우리가 신문물을 전파하지 않으면 금광 개발할 기술도 인력도 없는 부족들이잖아. 이 정도면 서로 윈윈이지 뭐.’
* * *
고조선의 군영에 찾아왔던 작은 부족의 부족장들은 한부가 보낸 병장기와 식량이 도착하자마자 고조선에 반항적인 여섯 대부족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대노한 여섯 부족의 부족장들은 즉시 병사를 모아 반란을 진압하려 했지만, 가죽을 기워 만든 갑옷은 강철을 벼려서 만든 반란군의 검과 창을 막지 못했고 돌도끼와 돌창은 단단한 경번갑을 뚫지 못했다.
기원전 259년 3월 초, 결국 고조선에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여섯 부족은 성난 피지배자들의 손에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고 고조선은 드디어 한반도 남부 전역을 왕실의 세력권 아래에 두게 되었다.
한부는 그렇게 1년 만에 반도 남부를 정벌하고 왕검성으로 돌아가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이제 북동부의 옥저만 흡수하면 드디어 한반도를 통일하는구나. 그건 비왕에게 맡겨도 충분하겠지. 앞으로는 몇 년 동안 주변의 강대국하고의 외교하고 내정에 집중해야겠네. 먼저 나부터 권세가의 딸에게 장가가서 혼인 동맹을 맺어야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