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거침없는 남벌 (3)
부족장 누의 걱정대로 임둔국과 진번국에 소속된 부족
중 61개의 부족은 반조선 동맹을 체결했하고 고조선군과 한부에게 협력하는 부족을 공격하기 위해 연합군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그 후 계절이 초여름에 들어서자 현대의 함경북도 남부와 강원도 북부에 사는 반조선 연합군의 병사들이 큰 먹이에 모여드는 개미 떼처럼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동쪽으로 정찰을 나갔던 석과 고조선군의 기병 50기는 이미 고조선군의 규모를 뛰어넘은 적군의 무리를 발견하고 바로 동쪽으로 진군하고 있는 고조선군의 행렬을 향해 말을 달렸다.
쉬지 않고 반나절을 달린 석은 아군 본대 근처에 도착하자마자 행렬 중간에서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는 태자의 곁으로 다가가서 말에서 내린 다음 보고를 시작했다.
“기병대장 석이 태자 전하께 보고드립니다! 적군이 이미 우리 군영에서 동쪽으로 1백 리 떨어진 곳까지 진군했으며 그 규모는 대략 9천 명에서 1만 명쯤으로 보입니다!”
“1만 명이라. 생각보다 꽤 많이 모였구만. 그리고 오는 길에 혹시 조선 연합 소속 부족이 우리에게 보낸 지원군과 마주치지 않았나?”
“적군 이외에 아군 행렬을 향해 접근하는 무리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가죽 조각을 미늘처럼 엮어서 만든 가죽 갑옷을 입은 병사 한 명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부의 곁으로 달려오더니 잠시 숨을 고른 후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슴 부족의 부족장님 누의 전언을 전하께 보고 드립니다! 조선 연합의 일원이 되기로 약속했던 세 부족이 왕검 폐하를 배신하고 적군에 합류했다고 합니다!”
“발칙한 놈들! 그래서 우리 정찰대가 지원군을 만나지 못했구나! 누 부족장에게 돌아가서 전해라! 아군이 조금 줄어들었어도 이번 전투는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말이다!”
“전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양군은 서로를 향해 똑바로 진군하다가 이틀 뒤에 푸른 풀로 뒤덮인 완만한 구릉지에서 적군과 마주쳤다.
전투에 앞서 태자의 지시를 들으러 온 부족장 누는 약 150m쯤 앞에 있는 언덕을 선점한 수많은 적군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한부에게 물었다.
“전하. 보시다시피 적의 수는 아군보다 훨씬 많은 데다 경사가 완만하긴 해도 고지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병사들이 적보다 훌륭한 병장기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정면에서 적과 충돌하면 아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누 부족장. 저들은 숫자만 많았지 하나같이 오합지졸이오. 아무 걱정하지 말고 부족장의 자리로 돌아가서 휘하의 병사들을 작전대로 지휘해주시오.”
“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부족장 누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대답하고는 힘없이 뒤돌아서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한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누 부족장은 아마 내가 혈기만 왕성한 애송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렇지만 이 전투에서는 우직하게 정면으로 부딪쳐서 압도적으로 이겨야 나중에 진국을 정벌할 때 더 편해진다고. 곧 내가 생각이 옳았음을 결과로 증명해 보이지.’
그는 그렇게 마음먹고 허리춤에 찬 강철 환도를 뽑아 들며 보병 부대를 지휘하는 중대장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작전대로 본대의 진형을 변경하라!”
태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초여름날의 푸른 하늘에 울려 퍼지자, 5,800명의 병사가 장교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조선군의 중대장들은 먼저 강철 경번갑과 푸른 용이 그려진 화려한 방패로 무장한 휘하의 팽배수 3천 명을 본대의 중심부에 가로로 길게 늘어 세웠다.
수가 많은 적에게 측면을 내주어서 포위당하지 않기 위해 적진과 비슷한 너비로 옆으로 길고 두께가 얇은 일(一)자 모양의 진형을 짠 것이다.
그리고 본대의 양쪽 끝에는 각각 자루가 긴 장창이나 보병용 편곤을 든 고조선군 보병 1천 명과 부족장 누가 지휘하는 석기로 무장하고 가죽 갑옷을 입은 한족
부족민 출신 5백 명을 배치해 본대의 팽배수 부대를 지원하도록 했다.
또한, 본대 맨 오른편에는 석이 지휘하는 기병 3백 기를 배치해 맞은 편에 모여있는 적의 기병대를 상대하게 했으며 마지막으로 최전방에는 가벼운 차림의 투석꾼과 궁수 부대를 배치했다.
반면 반조선 연합군의 장군은 석기로 무장한 보병대를 두꺼운 일자진형으로 배치한 다음 보병대 앞에 조잡한 나무 활을 든 궁수와 투석꾼 부대를 배치했다.
언덕을 기어오르는 고조선군에게 화살 비를 퍼부어 기세를 꺾은 다음 지친 적군을 수적 우위와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물리칠 생각이었던 것이다.
한부는 그런 적의 의도를 간파하고 먼저 어지간한 활보다 사정거리가 긴 투석꾼 부대를 지휘하는 중대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적 진영에 납탄을 발사하라!”
중대장이 부대원들에게 태자의 명을 전하자 투석꾼 5백 명은 오른손에 든 가죽으로 만든 무릿매(슬링)에 달걀만 한 납덩이를 장전한 다음 머리 위에 큰 원을 그리며 세차게 돌리기 시작했다.
- 붕! 붕! 붕! 붕! 붕!
그러자 언덕 위의 반조선 연합군 궁수들은 고조선군 투석꾼들이 무릿매를 돌리는 모습을 보고 큰소리로 비웃었다.
“저놈들 좀 봐! 저렇게 멀리서 돌팔매 해봤자 여기까지 날아오는 돌은 몇 개 안 될 텐데 힘만 빼고 있어!”
“거 참 불쌍한 녀석들이구먼! 조선군 지휘관이 무릿매가 뭔지도 모르는 애송이인 모양이야!”
“그러게 말이야!”
고조선의 투석꾼들은 10여 년 전부터 계속된 천신 제전에서 우승하고자 시간이 날 때마다 납탄과 돌멩이를 무릿매로 던지는 연습을 해왔고 덕분에 지중해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발레아레스 투석병과 견줄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힘껏 던진 납탄 5백 개가 일제히 코앞까지 날아오자 웃고 떠들던 한족
궁수들이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 퍼억!
조금 전까지 신나게 웃고 떠들던 활을 든 병사들이 온몸에 납탄을 얻어맞고 뼈가 부러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내 팔! 내 팔!”
청동제 창날이 달린 긴 창을 반조선 연합군의 총사령관 장군 천은 볏짚처럼 쓰러지는 궁수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며 소리쳤다.
“이럴 수가! 조선의 투석꾼들은 2백 보나 떨어진 적을 돌로 맞힌단 말이냐!”
그때, 그의 부관 중 한 명이 피가 묻은 납탄을 들고 그의 곁으로 뛰어오면서 소리쳤다.
“장군! 이것 좀 보십시오! 조선인들은 돌이 아니라 납을 던져대고 있습니다! 이런 흉악한 물건은 우리 군의 갑옷이나 방패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비싼 납덩이를 탄환으로 쓰다니! 이러다간 적과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겠다! 다 죽어가는 궁수들은 뒤로 물리고 전군에 돌격 명령을 내려라!”
“알겠습니다! 장군님!”
그 후 반조선 연합군의 부관이 아군 진영 곳곳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각 부족의 지휘관들에게 장군의 명령을 전하자 돌창과 석검으로 무장한 병사 9천여 명과 기병 150기가 우레같은 함성을 지르며 고조선군의 진영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야비한 조선인들을 죽여라!”
한부는 그 모습을 보고 투석꾼 부대와 궁수 부대의 중대장에게 병사를 보내 명령을 내렸다.
“적군에게 일제사격을 가하다 적과의 거리가 50보 이내로 좁혀지면 본대 뒤로 부대를 물리라고 전해라.”
“전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고조선의 궁수들은 강력하지만 더운 날씨에 약한 신무기 각궁 대신 예맥족
전통의 박달나무 단궁을 들고 투석꾼들과 함께 달려오는 적에게 일제사격을 가했다.
- 피융!
수백 개의 화살과 납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연거푸 날아들자, 선두에 서서 달려오던 반조선 연합군 병사들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푸른 초원 위에 붉은 피를 흘렸다.
그러나 반조선 연합군의 장수들은 보병들을 다그치면서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뒤로 도망쳐봐야 등 뒤에 화살을 맞고 죽을 뿐이다! 살길은 오직 전방에 있으니 모두 죽을힘을 다해 달려라!”
전우의 피를 보고 눈이 뒤집힌 한족
병사들은 돌창과 석검의 자루를 움켜쥐고 아군의 시체를 뛰어넘으며 고조선군의 진영을 향해 파도처럼 몰려왔다.
임무를 마친 고조선군의 궁수와 투석꾼들은 적이 50보 앞으로 다가온 것을 보고 등 뒤의 보병들 사이를 지나 후방으로 퇴각했고 본대의 고조선군 보병들은 적과의 교전에 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반조선 연합의 보병들이 10보 앞으로 다가왔을 때, 맨 앞줄에 자리 잡은 팽배수 1천 명이 기합을 넣으면서 성난 황소처럼 달려오는 적군을 향해 오른손에 들고 있던 투창을 힘껏 던졌다.
“흐읍!”
그러자 곧 백병전이 벌어질 거로 생각하고 있던 선두에선 반조선 연합의 보병들은 하나같이 번개같이 날아온 창에 가슴과 배를 맞고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고 그 뒤를 따라 달리던 자들도 쓰러진 아군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끄아아아아악!”
“조심해! 투창이다! 저놈들 모두 투창을 가지고 있어!”
한부는 갑작스러운 투창 공격에 적군의 진형이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고 즉시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다! 팽배수 부대는 적 본대를 압박하고 다른 보병 부대는 적진의 측면을 공격해라!”
태자가 명이 전군에 전해지자, 고조선군의 팽배수 부대는 허리춤에서 환도를 뽑고 방패를 가슴까지 들어 올리면서 함성을 지르며 적을 향해 돌진했다.
“우와아아아아아!”
몇몇 용감한 반조선 연합군의 병사들은 미친 듯이 손에든 무기를 휘두르며 팽배수들의 전진을 막고자 했지만, 돌을 깎아서 만든 무기가 나무판을 세 겹이나 겹쳐져서 만든 두꺼운 방패와 강철 경번갑을 뚫을 수는 없었다.
“이런 미친! 내 석검이 부러졌어!”
“이젠 틀렸어! 사람이 아니라 벽하고 싸우는 것 같다고!”
그러자 투창 공격으로 이미 기세가 꺾인 반조선 연합군의 본대가 더더욱 뒤로 밀려나면서 더욱 진형이 흐트러졌고 그사이 장창과 편곤을 든 고조선군 병사들과 부족장 누가 지휘하는 한족
출신 경보병들이 무방비 상태인 적의 측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렇게 한부가 지휘하는 보병대가 적군의 본대를 밀어붙이는 동안 석은 정예 기병 3백 기와 함께 등자도 없고 수도 적은 적 기병대를 손쉽게 격퇴하고 적 본대 후방을 향해 돌진하면서 소리쳤다.
“궁기병들도 활을 내려놓고 편곤을 들어라! 적 본대의 뒤통수를 치는 거다!
고조선의 기병들은 큰 말을 타고 선두에서 기병대장의 뒤를 따라 말을 달리면서 자루가 짧은 편곤으로 무방비한 적군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 퍽! 퍼억! 퍼억!
장군 천은 적 기병대가 아군 본대의 후방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병사들의 머리가 조롱박처럼 깨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도망쳐라!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남아서 후일을 도모하는 거다!”
그 순간, 석은 아직도 말을 타고 있는 적군을 보고 그가 적장임을 알아채고 말의 고삐를 당기며 소리쳤다.
“나는 조선의 기병대장 석이다! 적장은 도망칠 생각 말고 무인답게 덤벼라!”
장군 천은 예맥족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고함을 지르며 바로 달려오는 석을 보고 반사적으로 청동 창을 내질렀다.
석은 잽싸게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적장의 공격을 피한 후 솥뚜껑만 한 손으로 창대를 움켜쥐고 자기 쪽으로 세게 잡아당겼고 장군 천은 낚싯대의 미끼를 물은 물고기처럼 앞으로 끌려가면서 균형을 잃으면서 낙마하면서 다리가 부러졌다.
“으아악!”
석은 부하들을 시켜 다친 적장을 포박하게 한 다음 그에게서 빼앗은 청동 창을 높이 들고 맹수처럼 포효했다.
“적장을 사로잡았다!!”
그러자 반조선 연합군의 병사들은 총사령관의 무기가 적장의 손에 들려있는 모습을 보고 완전히 사기를 잃고는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악!”
“천 장군님이 당했다! 이젠 끝났어!”
그 모습을 본 고조선군의 중대장 중 한 명이 한부의 곁으로 말을 달려오더니 들뜬 목소리로 보고했다.
“전하! 적군이 퇴각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적을 추격하면 패잔병을 거의 궤멸시킬 수 있을 겁니다!”
“패잔병을 끝까지 추격하되 되도록 생포해라. 특히 신분이 높아 보이는 자들은 인질로서 가치가 높으니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
“전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태자가 명령을 내리자마자 고조선군 병사들은 사슴떼를 쫓는 사냥꾼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는 패잔병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