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독에 독을 더하다.
궁중 약사 천은 태자의 말을 듣고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전하. 소인은 손만 대도 피부가 썩어들어가는 맹독이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인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병을 치료하는 데 효험이 없는 독도 얼마든지 사람을 살리는 데 쓸 수 있네. 예를 들어 맹수가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에 독을 묻힌 고기를 떨어트려 놓으면 위험한 짐승에게 잡아먹힐 운명이었던 사람을 구할 수 있지 않겠나?”
“아! 소인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하께서는 어린 시절에 호랑이와 악연을 맺으셨지요.”
“아직 가끔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뻔했을 때의 꿈을 꾸곤 한다네.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뒤로 그 악몽을 꾸는 빈도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말이지. 그나저나 이게 정말로 독버섯인지 궁금하구만.”
“그러시다면 소인관 함께 약방에 가서 독성을 확인해보면 어떠실지요?”
“그게 좋겠군. 그럼 앞장서게나.”
두 사람은 서둘러 궁궐의 약방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궁중 약사 천은 긴 나무젓가락으로 붉은 버섯을 집은 다음 조심스럽게 빈 약사발에 담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다음 작은 절구를 오른손에 들었다.
한부는 그 모습을 보고 다시 그를 말렸다.
“그만두게. 무턱대고 그 버섯을 빻다가 작은 가루가 코나 입으로 들어가면 위험할 수도 있네.”
“전하. 가루로 만들지 않으면 짐승에게 먹여서 얼마나 위험한 독인지 알아보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음······. 쥐를 몇 마리 잡아 와서 그 녀석들의 몸에 버섯을 문질러 보면 어떻겠나? 사냥꾼들에게 쥐를 잡아 오도록 명할 테니 내 말대로 해보고 결과를 알려주게.”
“예전처럼 돼지나 닭을 쓰는 것보다는 덜 불쌍하겠군요.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한부는 천과의 대화를 마치고 약방 밖으로 나온 다음 내관에게 왕실의 사냥꾼들에게 자신의 명을 전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한부가 그날의 정무를 마친 후 왕실 근위병들과 함께 목검을 들고 검술 연습을 하고 있는데, 궁중 약사 천이 그의 곁으로 달려오더니 숨이 턱까지 찬 채로 입을 열었다.
“헉! 헉! 전하! 전하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정말로······!”
“말은 그만하고 숨부터 고르게. 자세한 얘기는 자리를 옮긴 다음에 해도 늦지 않네.”
한부는 서둘러 궁중 약사 천의 입을 막은 다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왕실 근위병들에게 말했다.
“다른 볼일이 생겨서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만 해야겠구나. 너희도 그만 숙소로 돌아가도 좋다.”
“그리하겠습니다. 전하.”
함께 훈련하던 왕실 근위병들이 퇴근하자 한부는 천과 함께 다시 약방에 가서 빨간 버섯의 독성 실험 결과를 직접 확인했다.
“끔찍하군. 정말 버섯을 먹이지 않고 문지르기만 했나?”
“그렇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죽은 쥐의 털이 빠지고 가죽이 검게 변한 부분이 있는데, 거기가 바로 버섯을 문지른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이 시뻘건 버섯은 제나라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짐독에 견줄만한 맹독을 품고 있는 모양이군요.”
“역시 이건 붉은사슴뿔버섯이었군. 하마터면 독버섯으로 끓인 탕약을 마실 뻔했다니. 상상만 해도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구만.”
“아······! 소인이 무식하여 큰 죄를 저지를 뻔했습니다! 전하!”
“아닐세. 이런 무서운 독버섯이 있다는 걸 아는 자는 아마 조선 땅에 우리 둘밖에 없을 걸세. 서역에서 배워온 지식 덕에 간신히 목숨을 건진 거지.”
“역시 전하께는 늘 부처님의 가호가 함께하는 모양입니다.”
붉은사슴뿔버섯은 주로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서 발견되는 독버섯인데, 인류가 발견한 독버섯 중 가장 강한 맹독을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버섯의 독성분인 트리코테신은 구소련이 생화학무기로 만든 적이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맹독으로 피부로도 흡수되며 극히 적은 양만 체내에 들어가도 강한 방사선에 피폭된 것과 비슷한 증상에 시달리게 된다고 한다.
게다가 트리코테신은 현대에도 해독제가 개발되지 않아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독 중에선 최상위권의 치사율을 자랑한다고.
인간이 붉은사슴뿔버섯을 먹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최대한 빨리 의료장치로 환자의 혈액에서 직접 노폐물을 걸러내는 혈액투석 치료를 받는 것뿐이지만, 고조선 시대에 그런 최첨단의 치료를 받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이 시대에도 붉은사슴뿔버섯이 있을 줄이야. 전생에 친구 아버지가 이걸 영지버섯으로 착각하시고 차를 끓여 드신 다음 하루 만에 돌아가셨었지. 그런데 짐새에게 이걸 먹이면 어떻게 되는 거지? 어쩌면 야생 짐새만큼 강한 독을 만들어 낼지도 모르겠네.’
한부는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린 후 천에게 말했다.
“자네.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로 이 버섯의 존재를 알려서는 안 되네.”
“네? 전하. 영지버섯은 조선 말고도 여러 나라에서 귀한 약재로 쓰입니다. 약사와 심마니들에게 영지버섯과 닮은 맹독버섯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 실수로 독버섯을 먹고 죽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지. 만약 적국의 자객이 이 버섯을 구해서 왕실이나 제후들에게 영지버섯이라고 속여서 팔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나? 지금이야 색이 워낙 선명해서 자세히 보면 구별할 수 있지만, 말린 영지버섯 속에 섞인 말린 붉은뿔사슴버섯을 골라내는 건 숙련된 약사라도 쉽지 않을 걸세.”
“미처 그 생각을 못했군요. 오늘도 전하께 중요한 사실을 배웠습니다.”
“아무튼, 이 시뻘건 버섯은 내 예상보다도 훨씬 독성이 강하구먼. 이 정도면 호랑이도 충분히 해치울 수 있겠어.”
“소인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럼 나는 나가서 왕실의 사냥꾼을 데려올 테니 자네는 그동안 그 버섯을 천으로 잘 싸주게. 버섯을 만질 때는 장갑을 끼는 걸 잊지 말게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한부는 궁중 약사 천과의 대화를 마친 후 자기 침실로 돌아가서 서신을 적어 내관 참을 통해서 계에게 보낸 다음 책상 앞에 앉아서 제나라에서 들여온 서적을 읽었다.
그 후 약 한 시간이 지나자 사냥꾼의 옷을 입은 계가 방안으로 들어와 태자에게 인사했다.
“암부의 수장 계가 전하를 뵙습니다.”
“계야.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렇게 딱딱한 말투로 인사하지 않아도 된다.”
“하오나 오늘은 소신에게 임무를 주시기 위해 부르셨으니 신하로서 예를 갖추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전하.”
“아이고······. 암부의 일을 시작하고 나서 성격이 더 고지식해졌구나. 그나저나 암부의 조직원은 좀 늘었나?”
“간자로 훈련 중인 자가 일곱 명이고 짐새를 기르고 있는 마우리아 출신 사육사가 두 명입니다.”
“아직은 인원이 부족하구만. 얼른 그 일곱 명이 한 사람 몫을 해야 네가 이런 단순한 임무를 수행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지.”
“하나밖에 없는 중요한 물건을 운반하는 일이라면 아직 소신이 직접 임무를 수행하는 편이 마음 편합니다. 그런데 그 독버섯을 어떻게 쓰실 생각이신지요?”
“우선 그걸 암부의 조직원들에게 보여주고 더 많은 붉은사슴뿔버섯을 캐와서 짐새에게 먹여볼 생각이야. 전에 썼던 짐독은 독성이 비상 같은 다른 독하고 별로 다를 게 없었거든. 그리 흔한 버섯은 아니지만, 여름이나 가을에는 영지버섯이 자라는 곳에서 같이 자라고 있는 경우도 많다고 알고 있으니 요즘엔 잘 찾으면 어느 정도 구할 수 있을 거다.”
“짐새가 맹독버섯을 먹고 만든 짐독이라······. 그런 물건을 확보하면 암살 임무를 수행하기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
“그렇겠지. 그럼 반도의 남쪽 지역을 좀 더 쉽게 복속시킬 수 있을 거고.”
“남쪽 지역이라면 임둔국과 진번국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그 밑에 있는 진국까지 포함해서 말이지.”
“전하께서는 연나라와의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반도 전역을 왕실에 복속시킬 계획이시군요.”
“그래야지만 인구를 불려서 서쪽 대륙의 나라들을 상대해 볼 만한 병력을 모을 수 있거든. 진정한 짐독을 만들어 내서 남쪽 지역의 적대적인 부족의 지도자들을 해치우면 우리 병사들이 피를 덜 흘리고도 반도를 차지할 수 있을 거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럼 하루빨리 이번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계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태자에게 다시 인사한 다음 왕검성 도심에 있는 자신의 집이자 암부의 본부인 저택으로 향했다.
이 저택은 원래 한 호랑이 부족
출신 귀족의 집이었는데 그의 일가가 상 완의 반란에 연루되어 전부 공노비가 되는 바람에 빈집이 된 것을 왕검이 반란 진압에 큰 공을 세운 계에게 하사한 것이었다.
그리고 계는 암부의 수장직을 맡으면서 과거 호랑이 부족의 제후들에게 순장 당한 가족의 원한을 갚아준 왕실에 충성하는 평민 중에서 암부의 조직원을 선발해 자신이 부리는 노비나 머슴으로 변장시킨 다음 늘 곁에 두고 있었다.
그가 저택의 대문 안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자, 흰옷을 입은 남자 일곱 명이 일제히 모여들면서 두 손을 모으며 계에게 읍했다.
계는 그런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아준 다음, 눈짓으로 안방으로 따라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고 일곱 남자는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계는 방 안에 들어가서 방석 위에 앉은 다음 한쪽 무릎을 꿇고 그를 바라보는 조직원들의 면면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태자 전하께서 우리에게 첫 번째 임무를 내려주셨다. 짐새 사육사를 제외한 모든 암부 조직원이 이번 임무에 동원될 것이다.”
“수장님께서도 말입니까?”
“그렇다. 조선과 왕실의 안녕을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 할 중요한 임무이니 모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그 말을 들은 일곱 명의 남자가 하나같이 긴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결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원수를 갚아주신 태자 전하를 위해서라면 호랑이 굴에라도 들어가겠습니다.”
“수장님. 여기 모인 동지들은 모두 왕실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습니다. 저희가 무슨 일을 하면 되는지 알려주십시오.”
그러자 계는 여전히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선 내일 날이 밝으면 다 같이 성 밖의 뒷산에 가서 버섯을 캔다.”
그 말을 들고 질문을 던진 암부의 조직원은 맥이 풀린 표정을 숨기지 못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 웬 버섯?”
* * *
계는 태자를 만난 다음 날 새벽 수탉이 울자마자 잠자리에서 일어나 암부 조직원들과 함께 왕검성 주변의 숲과 산을 샅샅이 뒤지면서 붉은사슴뿔버섯을 캤다.
이 강한 방사선만큼이나 위험한 독버섯은 주로 썩은 나무에서 자라는 경우가 많은데 도시나 마을 밖으로 몇 발짝만 나가도 숲이 보이는 시대이다 보니 한부의 예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계는 암부의 조직원들과 겨우 사흘 만에 붉은사슴뿔버섯 다섯 되를 캔 다음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사육사를 시켜 큰 창고에 넣어둔 새장에서 기르는 짐새 열 마리에게 독버섯을 모두 나눠 먹였다.
짐새들은 피처럼 새빨간 버섯을 집어 먹은 후 반나절이 지나자 새장이 들썩거릴 정도로 몸부림치면서 큰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 꽤애애애애애액!
계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짐새들의 반응을 보고 크게 당황하면서 사육사들에게 물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내가 다른 일로 바쁜 사이에 새들의 건강이 안 좋아졌었던 거냐?”
“아······ 아닙니다! 수장님! 빨간 버섯을 먹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제까지는 살모사를 통째로 삼켜도 멀쩡했던 녀석들입니다!”
“그럼 우리가 캐온 버섯이 짐새도 고통스러워할 정도의 맹독을 품고 있단 말이냐?!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구나!”
짐새들이 붉은뿔사슴버섯을 먹은 후 사흘이 지나자 열 마리의 짐새 중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건강을 회복한 녀석은 단 두 마리뿐이었다.
계는 사육사들에게 두꺼운 가죽 장갑을 끼고 짐새의 깃털 몇 개를 뽑게 한 다음 산 채로 잡아 밧줄로 묶어온 큰 멧돼지의 몸을 깃털로 몇 번 문질렀고 그 멧돼지는 이틀 만에 온몸의 털이 모두 빠지더니 숨을 거두었다.
계는 멧돼지의 주검을 보고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상처가 없는 몸통에 깃털이 닿았다고 저렇게 되다니······. 아무래도 내가 야생 짐새의 짐독 보다도 더 무서운 맹독을 만든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