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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57화 (57/195)

[57화]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맹독

다사다난했던 기원전 262년의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새해의 봄이 찾아오자, 고조선의 왕실은 본격적으로 개혁의 고삐를 당기기 시작했다.

기원전 261년 3월 초, 한열 왕검은 왕실에 우호적이고 제후들 사이에서 인망이 높은 곰 부족의 장로 웅에게 대부의 자리를 장남에게 물려주게 한 다음 국상으로 임명했다.

또한 그는 이제 약 5백 명으로 늘어난 이룡도 졸업자 중 특히 학문 성취도가 뛰어난 문관 스물다섯 명을 선별해 궁궐의 알현실로 불렀다.

왕실 서재의 사서나 박사의 업무를 보조하던 견습 문관들이 관복을 입고 알현실에 모이자 한열 왕검은 내관을 시켜 그들에게 옥새가 찍힌 죽간을 나누어 주게 한 다음 입을 열었다.

“오늘부로 경들을 현감으로 임명한다. 앞으로 다섯 해 동안 짐을 대신해 지방을 다스리고 부처님의 말씀과 짐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파하여라. 소임을 성실히 이행한 자는 다시 궁궐에서 대신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하급 문관의 신분에서 벗어나 입신양명의 기회를 잡은 젊은이들이 청운의 꿈을 가슴에 품고 퇴궐하자, 왕검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흐뭇한 목소리로 태자에게 말했다.

“태자야. 저들의 총명한 눈빛과 자신만만한 표정을 보니 조선의 미래가 밝구나. 이제 제후의 수탈과 횡포에 시달리는 백성이 나날이 줄어들 테니 몇 년 지나지 않아 전국에서 왕실을 칭송하는 백성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그러나 한부는 현재의 성취에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다.

‘아직도 땅덩이가 좁긴 좁구나. 원역사의 조선에는 전국에 현령과 현감이 175명이나 필요했다는데, 고조선에는 스물다섯 명으로도 충분하네. 관찰사급 고위 행정관은 아직 필요하지도 않고. 그나저나 군현제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왕실이 지방관들을 관리 감독할 시스템도 확립해야지.’

그는 옥좌에 앉아 기뻐하는 아버지와 눈을 마주치면서 충언을 올렸다.

“폐하. 간신히 시행한 군현제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왕실이 현감을 보좌할 지방의 아전들을 확실히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전은 현감들이 알아서 잘 관리하지 않겠느냐?”

“현감은 5년마다 바뀌니 제후들처럼 반역을 꾀하기 어렵지만, 대신 지역에 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아전은 평생 고향을 떠나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지역 사정에 어두운 현감의 감시를 피하거나 아예 현감을 끌어들여 백성에게 없는 세금을 거두어 착복할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럼 어찌해야 현감과 아전이 부정을 저지르는 걸 막을 수 있을꼬?”

“마우리아의 왕 아소카는 대신 중에서 가장 충직한 자들을 뽑아 5년에 한 번 각 지역을 암행하게 하여 부패한 지방관과 아전을 색출했습니다. 조선은 아직 영토가 넓지 않으니 이런 암행어사를 서너 명만 뽑아도 현감과 아전이 백성의 고혈을 빨기 어려울 겁니다.”

“그럴싸한 방법이다. 다만 동문끼리 사정을 봐주는 일이 있으니 암행어사는 이룡도 출신 중에서 뽑기 어렵겠구나. 짐이 왕족

중에서 특히 행실이 올바르고 체력이 좋은 자를 골라서 암행어사에 임명할 테니 너는 그동안 중앙 관청을 개혁하는 일에 집중하도록 해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폐하.”

현감들이 왕검성을 떠난 바로 다음 날, 한부는 고조선의 대신들을 모두 중앙 관청과 관등 제도 개혁을 위한 정책회의를 시작했다.

한부는 먼저 미래의 관료제도를 모티프로 한 중앙 관청 조직 개혁을 왕검에게 제안했다.

“지금 조선의 관직체계는 업무가 제대로 분장 되어 있지 않아 오늘 조세 업무를 담당하던 관리가 내일은 토목공사 현장에 나가기 일쑤입니다.”

“덕분에 관리 한 명이 여러 가지 업무를 담당할 수 있으니 실보다는 득이 더 크지 않느냐?”

“물론 우리나라의 대신들은 여러 분야의 업무를 맡다 보니 여러 가지 작은 일을 처리할 수 있지만, 대신 한 가지 분야에 깊이 통달하지 못해 막상 중대사를 맡기면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태자의 말을 듣고 늘 온갖 분야의 업무에 시달리던 박사 정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열 왕검은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은 다음 다시 태자에게 물었다.

“그럼 어찌해야 전문성을 갖춘 관리를 육성할 수 있겠느냐?”

“실무를 맡을 중앙 관청을 여덟 개의 조직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분야의 업무를 맡기면 관리들은 쉽게 자기가 맡은 업무 분야의 전문성을 쌓아가게 될 겁니다.”

“중앙 관청을 여덟 개나 두자고?! 태자야! 그럼 짐은 그 많은 관청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를 읽느라 밤낮으로 죽간만 붙잡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폐하와 실무 기관들 사이에 국상이 관장하는 국상부를 두면 그렇지 않을 겁니다. 각 실무 기관이 국상부에 업무 진행 결과를 보고하면 국상부가 모든 자료를 검토하고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린 다음 왕실에 보고하면 폐하께서 격무에 시달리실 일은 없겠지요.”

“그게 좋겠구나! 확실히 그리하면 효율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야!”

한부의 의견을 듣고 왕검과 거의 모든 대신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국상의 자리에 오른 대부 웅 한 명만이 사색이 되었다.

한부가 제안한 정책이 시행되면 국상은 실권과 명예를 함께 갖는 요직이 되는 대신 기존의 상 자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양의 업무를 처리해야 할 텐데, 그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죽은 상 완처럼 권력욕이 강한 편이 아니었고 장손인 석이 상의 반란을 진압한 공신이자 태자의 최측근이라 왕실과 대립할 이유가 없었는데, 그게 바로 왕검이 그를 국상 자리에 앉힌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왕검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국상이 그토록 막중한 자리라면 소신에게는 과분할 듯합니다.”

“국상. 그게 무슨 소리요? 경보다 조선의 사정에 밝고 여러 제후에게 존경받는 사람은 달리 없소.”

“하오나 소신의 나이가 벌써 일흔이 훌쩍 넘어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데다 제나라의 글을 간신히 읽을 수 있을 뿐 학문적 성취가 일천하여 여러 관청에서 빗발치는 보고서를 읽는다고 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허······. 참으로 난감하구려. 경은 스스로 학문적 성취가 일천하다고 하지만, 원로 대신 중에는 아예 제나라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흔하오. 그렇다고 새파랗게 젊은 문신에게 그 자리를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소?”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때, 한부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국상 웅에게 말했다.

“국상. 그렇다면 내가 국상부의 일원이 되어 그대를 보좌하면 어떻겠소?”

“전하! 소신이 전하를 보좌하지는 못할망정 제가 어찌 전하의 보좌를 받겠나이까?”

“국상부에 몸담으면 조선에서 시행되고 있는 모든 정책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으니 군주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기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오.”

그때 두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듣고 한열 왕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국상. 경이 태자를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게 정 꺼려진다면 태자에게 짐의 권한을 일부 위임하여 그대와 대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하면 어떻겠소? 그럼 경은 격무의 부담을 덜고 태자는 장차 왕검으로서 국정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이오.”

“그렇게 해주신다면 소신도 여러모로 마음이 놓일 듯합니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한부는 국상 웅이 자신의 예상대로 움직여 주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혹시 석이네 할아버지가 보기와는 다르게 노욕을 부리는 타입일까 봐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이제 국상을 얼굴마담으로 세우고 내가 조정의 실권과 정보를 장악할 일만 남았구만.’

그렇게 원만한 분위기 속에서 정책회의가 마무리되자 드디어 한반도 최초의 중앙집권적 관료제도인 고조선 특유의 8조 제도가 시행되었는데, 이는 원역사의 고려와 조선의 6조 제도를 모티프로 한 것이었다.

고려와 조선의 6조 제도는 중앙 관청을 인사를 담당하는 이조, 조세와 예산 분배를 담당하는 호조, 행사와 제사를 담당하는 현대의 회사로 치면 총무부 격인 예조,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병조, 범죄와 법률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형조, 그리고 토목공사와 공업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공조로 나눈다.

반면 고조선의 8조 제도는 원본 6조 제도에 외교를 담당하는 외조를 더하고 공조를 토목공사와 병장기 생산을 담당하고 로마인 건축가 드루수스가 수장으로 하는 제1 공조와 기계공학과 자연과학을 연구하며 크테시비우스가 수장인 제2 공조로 나누어서 기술발전을 촉진하도록 했다.

한열 왕검은 정책회의를 마치고 한부와 함께 자신의 침실로 돌아온 다음 장남을 크게 칭찬했다.

“태자야! 이번에도 정말 큰 일을 해냈구나! 아직 천하의 어떤 나라에도 없는 체계적인 관료제도를 생각해냈어! 대체 어디서 그런 지식을 얻은 게냐? 그것도 서역에서 배워온 게냐?”

“아닙니다. 아버지. 그저 아버지께서 나라를 다스리시는 모습을 늘 유심히 관찰하다 보니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른 생각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참으로 놀랍구나! 이제 스물한 살 된 청년의 지혜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야! 너는 매년 박사 열 명과 장군 열 명의 공적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성과를 내는구나!”

“과찬이십니다. 아버지. 아직도 정비해야 할 제도가 산더미 같으니 여러 대소 신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 듯합니다.”

“아직도 손봐야 할 제도가 남았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아버지. 지금 우리 조선에서는 백성을 귀족, 평민, 노비 이렇게 셋으로만 나누고 있는데, 진나라의 작위 제도를 모방하여 노비를 제외한 양민 전원을 귀천에 따라 열두 개의 작위로 나누고자 합니다.”

“온 백성을 그렇게 열두 작위로 나누자고? 그 제도가 국정운영에 무슨 도움이 되는 것이냐?”

“진나라는 밭을 가는 촌부부터 재상이나 장군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을 스무 개의 작위로 나누는 이십등작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장에서 적군의 수급을 취하거나 공을 세운 자에게는 더 높은 작위와 큰 상을 내리니 전장에 나선 백성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사납게 적에게 덤빈다고 하더군요.”

“허······ 참으로 소름 끼치는 나라로구나. 그런 제도를 시행하면 온 백성이 항상 전쟁을 바라고 사람을 죽이는 걸 즐기게 되지 않겠느냐? 실리를 취할 수는 있어도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반하는 정책이다.”

“소자도 아버지와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전장에서 공을 세운 자뿐만 아니라 나라에 도움이 되는 다른 공을 세운 백성에게는 모두 상을 내리고 한 단계 높은 작위를 하사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글쎄······. 한낱 촌부가 왕실에 큰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예를 들면 유용한 물건을 발명하거나 재야 학자가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 하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괜찮은 생각이구나. 수고가 많이 들긴 하겠지만, 작위를 얻기 위해서 숨어 사는 백성들이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이점도 있겠어. 좋다. 그 일은 곧 설립될 호조에 맡기면 되겠다.”

“소자의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부는 왕검과의 대화를 마친 후 침실에서 나오면서 희망에 부풀었다.

‘아직 과거제도를 시행할만한 행정력은 없지만, 십이등작 제도를 시행하면 능력 있는 평민들은 신분 상승의 기회를 잡게 되겠지. 아직 인구 50만도 안되는 나라에서 평민이라고 무조건 거르면 인재 풀이 너무 좁아진다고.’

그 후 한부는 여러 관청 건물이 완성될 때까지 궁궐 한쪽에 마련된 임시 국상부 건물에서 인재 충원에 힘쓰고 관료제와 십이등작 제도를 다듬어 나갔다.

또한 다소 느슨한 소금의 전매 제도를 실시하여 국가가 소금 생산을 엄격하게 통제하지는 않지만, 염장(鹽場)의 위치와 나라 전체의 소금 생산량을 기록하여 생필품인 소금이 백성들에게 원활하게 공급되도록 힘썼다.

그렇게 몇 달의 시간이 흘러 계절이 초여름에 접어들자 고조선 백성들의 얼굴에는 점점 화색이 돌았지만, 격무에 시달리면서 무술 훈련도 매일 거르지 않는 한부의 낯빛은 조금씩 어두워져 갔다.

기원전 261년 6월 말, 근무를 마친 한부는 초췌한 몰골로 임시 관청에서 나와 침실로 걸어가면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후······. 거의 넉 달 동안 휴일 없이 달렸더니 정말 죽겠구나. 잘못하면 과로사하겠네. 내일은 정말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어야겠다.’

그런데 그때, 궁중 약사 천이 무언가가 가득 담긴 광주리를 두 손에 들고는 태자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해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하!”

“천이구나. 오랜만일세. 자네는 궁궐 안에 사는 데도 자주 보지 못하는군.”

“전하께서 워낙 공사다망하신 탓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어명으로 전하께 드릴 탕약을 끓이러 가는 참이었는데 이렇게 뵙는군요.

“탕약? 궁에 용한 약재라도 들어온 모양이지?”

“그렇습니다. 전하. 한 시진쯤 전에 대성산에서 약초를 캐던 심마니들이 궁궐에 찾아와 이 질 좋은 영지버섯을 왕검께 바쳤답니다.”

한부는 그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광주리 안을 들여다보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소리쳤다.

“잠깐만! 광주리에 독버섯이 들어있는 것 같은데?!”

“그럴 리가요! 전하. 이건 녹각 영지버섯이라는 사슴뿔처럼 생긴 품종인데, 부채 모양 영지버섯보다 약효가 더 좋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네! 그런데 녹각 영지버섯 사이에 특히 시뻘건 놈이 들어있다니까?!”

“이 버섯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궁중 약사 천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붉고 길쭉한 버섯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한부는 잽싸게 그의 손목을 붙잡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만두게! 내 예상대로라면 이 녀석은 맨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피부가 썩어들어가는 맹독버섯이니까!”

“네?! 그럴 리가······. 아니, 전하의 말씀이라면 분명히 맞겠지요. 그럼 아깝지만, 이 버섯들은 전부 태워버리도록 하겠습니다.”

한부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천에게 대답했다.

“아니. 그러지 말고 젓가락으로 집어서 이 버섯을 집어서 뚜껑이 있는 상자 속에 잘 보관해두게. 독도 잘 쓰면 약이 되는 법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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