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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56화 (56/195)

[56화] 본격적인 내정의 시작

한부는 병사들이 반란군들을 옥에 가두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다음 왕검에게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궁궐로 향했다.

그가 궁궐의 정문에 도착하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인도 출신 근위병들이 제법 능숙한 한국 조어로 태자에게 인사했다.

“전하. 무사하신 모습을 다시 뵐 수 있어서 기쁩니다.”

“나도 자네들의 검과 갑옷에 피가 묻지 않은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 궁궐을 습격하는 반역자 무리는 없었던 모양이지?”

“그렇습니다. 전하. 비왕이 매복시켜둔 왕실 근위병들이 사찰을 습격한 자객을 한 명도 남김없이 죽이거나 체포한 덕입니다.”

“그거 다행이구나! 비왕은 지금 왕검 폐하를 알현하고 있나?”

“그렇습니다. 전하. 전하께서도 왕검 폐하를 알현하실 생각이신지요?”

“그래야지. 나도 왕검께 보고드릴 게 꽤 많으니 말이다.”

왕실 근위병은 태자의 명을 받자마자 궁 안으로 들어가 내관 참을 불러왔다.

내관이 한부를 알현실로 안내한 다음 문을 열자 그의 눈에 미늘 갑옷을 입은 채로 옥좌에 앉아있는 한열 왕검과 여전히 어의(御衣)를 몸에 두르고 있는 비왕 무가 보였다.

한부는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버지랑 비왕이 야자 타임을 하고 있는 줄 알겠구나.’

태자가 입가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가자 왕검이 몇 년 만에 돌아온 자식을 본 사람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그를 반겼다.

“태자야! 무사했구나!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소자와 남문에 배치한 병사 전원이 다치지 않았습니다. 폐하.”

“참으로 다행이다! 부처님과 천신의 가호가 너와 함께한 게야! 네가 파놓은 함정에 반란군 무리가 제 발로 걸어들어온 모양이지?”

“그렇습니다. 폐하. 말을 탄 반란군 무리는 모두 대로변에 미리 뿌려둔 마름쇠를 밟고 낙마하면서 죽거나 다쳤습니다. 덕분에 상 완을 비롯한 호랑이 부족

출신 제후 여덟 명과 적 기병 약 4백 명을 손쉽게 붙잡았습니다.”

“역시 반란군의 수괴는 상이었단 말이지······. 눈엣가시 같은 자를 손쉽게 없앨 수 있게 된 건 반가운 일이지만, 죄 없는 백성들이 내전의 고통을 겪게 할 수밖에 없겠구나.”

상의 반란이 실패함으로써 왕실은 호랑이 부족

제후들의 영지를 쓸어버릴 명분을 모두 갖게 되었고 그럴 군사력도 충분했다.

하지만 고향에 남아있는 반역을 일으킨 제후의 자식들이 항복 대신 농성을 택하면 고조선의 왕실은 그곳을 점령하느라 아까운 예산과 시간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왕검성에서 사로잡힌 제후들의 영지에는 아직 성벽이나 울타리를 두른 마을과 적지 않은 보병, 그리고 풍년을 맞아 곡식으로 가득 찬 식량창고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한부는 제도 개혁에 힘쓰면서도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호랑이 부족

출신 제후들의 영지를 점령할 방법을 궁리했다.

‘예산은 둘째치고 안 그래도 부족한 인력을 반란군 잔당 정리에 돌리고 싶지는 않단 말이지. 뭐 좋은 방법 없을까?’

그런데 그때, 비왕 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왕검에게 말했다.

“폐하. 먼저 반역자들의 영지에 전령과 함께 불교 승려들을 보내 항복을 권해보시는 게 어떨는지요? 승려들이 반역자의 자손들을 교화시킨다면 아비의 죄를 부끄럽게 여기고 순순히 성문을 열지도 모릅니다.”

“글쎄······.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 같구려. 호랑이 부족의 제후들은 아직 불교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소.”

왕검은 비왕 무에게 회의적인 대답을 했지만, 한부는 그의 말을 듣고 전생에 읽었던 역사기록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래! 아소카 대왕의 손자 삼프라티도 삼라트가 되자마자 자이나교 승려로 변장한 병사들을 보냈다고 했지! 분명 그 방법으로 반역자들에게 빼앗긴 지역을 거의 다 되찾았다는 기록을 읽었었어.어쩌면 고조선에서도 비슷한 전략이 먹힐 수도 있지 않을까? 안되면 밑져야 본전이고.’

한부는 즉시 머릿속에 떠오른 전략을 왕검에게 설명했다.

“폐하. 비왕의 제안도 좋은 방법이지만, 반역자들의 영지에 영험하기로 유명한 제사장이나 무당에게 그들의 제자로 변장한 우리 병사들을 데리고 가게 하는 것도 괜찮은 계책일 것 같습니다.”

“음······. 완이 반역을 일으키려고 썼던 계략과 비슷한 방법이로구나.”

“그렇습니다. 다만 상인은 가지고 있는 짐에 비해 일행이 너무 많으면 의심을 받겠지만, 제사장이나 무당은 제자가 많이 딸려있으면 오히려 더 영험해 보입니다. 분명 절박한 심정일 반역자의 자식들이 미래를 점쳐보고 싶어서 쉽게 성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요.”

“네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는구나. 비왕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소장도 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계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에 하나 반역자의 자손들이 성문을 열어주지 않더라도 병사들은 다시 왕검성으로 돌아올 수 있겠지요.”

“그럼 먼저 반역자의 영지에 전령을 보내 항복을 권하겠소. 그래도 반항을 멈추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대가 왕검성의 병사 중 영리한 자들을 선별해 무당의 제자로 변장시킨 다음 적지에 보내도록 하시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폐하.”

* * *

한부가 생각해낸 계책은 원역사의 마우리아 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고조선의 반역자 잔당들에게도 효과적이었다.

언제 왕실의 군대가 쳐들어올지 모른다며 불안에 떨던 반역자의 자손들은 신비로운 장신구를 온몸에 두르고 수백 명의 제자를 거느린 무당에게 쉽게 성문과 마음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고조선의 왕실은 겨울이 지나가기 전에 화살 한 발 쏘지 않고 호랑이 부족의 영역 중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반역자들의 영지를 완전히 접수했다.

그리고 한부는 왕검의 허락을 받은 다음 왕실 근위병들에게 더는 인질로서의 가치가 없어진 상과 제후들을 성벽 밖의 공터로 끌어내서 그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처벌을 내리도록 명령했다.

“열자 깊이의 구덩이를 파서 반역자들을 그 안에 넣고 잘 지키면서 물과 식량을 주어라. 열흘 전에 전국에 전령을 보내서 순장 제도 폐지에 반대해 반역을 일으킨 자들이 구덩이에 갇힐 것임을 알렸으니 곧 이 여덟 명에게 원한을 가진 백성들이 구덩이에 흙을 채우려고 몰려올 것이다.”

왕검이 말을 들은 상 완은 포승줄에 묶인 채로 몸부림치면서 마지막 발악을 했다.

“한부!! 이 피도 눈물도 없는 금수 같은 놈아! 네가 그러고도 훗날 왕검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차라리 그냥 목을 쳐라!”

“늙고 죄 많은 네가 그렇게도 억울해하니 죄없이 죽임을 당하고 차가운 땅속에 묻힌 젊은이들은 얼마나 억울했겠느냐?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반성하도록 해라. 만약 너희가 닷새 뒤에도 숨이 붙어있으면 목숨만은 살려주지.”

“안돼! 그냥 여기서 죽이란 말이야! 으아아아악!”

왕검성의 성벽 밖으로 끌려나간 상과 호랑이 부족의 제후들은 성인 남자 키보다 깊은 구덩이 속에서 두려움과 추위에 떨게 되었지만, 그들의 고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왕실 근위병들이 언 땅을 모닥불로 녹여가면서 팔 때부터 그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던 많은 백성이 반역자들이 구덩이에 들어가자마자 흙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순장으로 아끼는 사람을 잃었던 사람들의 원한이 얼마나 컸던지, 반역자들이 생매장되고 며칠이 지난 뒤에도 수천 명의 백성이 그 위에 흙과 돌을 끼얹는 바람에 그 자리에 작은 언덕이 생길 정도였다.

호위병들과 함께 왕검성 교외를 시찰하던 한부는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보고 씁쓸한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나도 정치를 잘못하면 언젠가 저런 꼴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지. 그 생각을 했더니 마냥 속 시원하지는 않구나.”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어지간한 왕릉보다 큰 반역자들의 무덤에서 발길을 돌려 궁궐로 향했다.

한부가 궁의 정문에 들어서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내관 참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면서 입을 열었다.

“전하. 부족회의에 참석할 제후들이 막 궁궐에 도착했습니다.”

“벌써? 예정보다 조금 빠르구먼. 그럼 어서 왕검을 찾아뵈야 겠구나.”

그가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는 내관을 따라 왕검의 침실에 찾아가자 막 어의를 입은 한열 왕검이 아들을 반겼다.

“태자야. 다행히 시간에 맞춰서 돌아왔구나.”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그래. 최근에 교외에 정착한 백성 중에 불온한 뜻을 품은 자들이 있더냐?”

“다행히 반역자 잔당으로 보이는 자들은 없었습니다. 하나같이 강가 주변의 숲이나 늪을 개간하는 데에만 열심인 순박한 농부들뿐이었지요.”

“이제야 시끄러웠던 나라가 좀 잠잠해진 모양이구나. 그럼 이제 부족회의에 참석해야 하니 너도 어서 옷을 갈아입어라.”

“알겠습니다. 아버지.”

한부는 왕검과의 대화를 마친 후 서둘러 자기 침실로 돌아가 예복으로 갈아입고 한열 왕검과 함께 부족회의에 참석했다.

두 부자가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긴 탁자 주변에 늘어선 의자에 앉아있던 수십 명의 제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왕검은 태자와 함께 제후들의 곁을 지나서 옥좌에 앉은 다음 태자가 옥좌 옆에 서자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자리에 앉아도 좋소.”

경과 대부들이 자리에 앉자 왕검이 말을 이어나갔다.

“모든 경과 대부가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오늘 부족회의를 연 이유는 반역자의 영지에 대한 처분과 흐트러진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을 시작할 것임을 그대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오. 반역자의 수괴 완과 그 일당 일곱 명의 영지는 앞으로 왕실 직할령으로 삼겠소. 그리고 앞으로 왕실이 직접 다스리는 지역에는 군현제를 시행할 생각이오.”

제후들은 왕검의 선언을 듣고 하나같이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들은 호랑이 부족의 영토 중 3분의 2를 접수한 왕실이 앞으로 전국의 7할 이상을 직할령으로 삼는 일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군현제에 관한 얘기는 오늘 첨은 들었기 때문이다.

군현제는 군주가 임명한 관리를 지방에 파견하여 직접 다스리는 제도로 근대 이전의 나라가 중앙집권 국가로 나가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이었다.

제후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봉건제도를 부정하는 새로운 제도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폐하. 천하에 군현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무자비한 통치로 유명한 진나라뿐입니다. 어찌 불쌍한 백성들을 잔인한 법가의 사상으로 옭아매려 하시나이까?”

“폐하. 설마 모든 제후의 작위와 영지를 박탈하시려는 건 아니시겠지요?”

왕검은 그 말을 듣고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제후들을 진정시켰다.

“그럴 리가 있겠소? 모반에 가담하지 않은 제후의 지위와 영지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보장될 것이오. 그러나 이번 반역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상의 자리에 앉은 제후가 과한 지위와 권한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니 앞으로는 상의 관직명을 국상(國相)으로 바꾸고 그 자리에는 왕실의 관리 중 한 명을 앉히도록 하겠소.”

한열 왕검은 태자의 제안에 따라 왕검과 맞먹는 권위를 가졌던 고조선의 이인자 자리를 폐지하고 왕검이 임명권을 가진 재상직을 신설함으로서 중앙집권적인 관료제의 첫걸음을 내딛고자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제후 중에도 왕실의 속셈을 눈치챈 자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조차도 당장 영지를 빼앗기지 않게 된 것에 만족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한부는 그들의 안심하는 표정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지금의 영지를 유지하는 건 당신들 당대까지만이야. 그동안 마지막 권세를 마음껏 누리라고.’

원역사의 한나라는 개국 초기에 군현제와 봉건제를 동시에 시행했는데, 잔존했던 제후가 사망하면 그가 남긴 아들 전원에게 영지를 쪼개서 나눠줘서 제후세력을 약하게 만들다가 흡수하는 방법으로 마침내 완벽한 중앙집권국가를 이루었다.

한부는 이 방법을 답습하여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자기 대에 제후세력의 끝을 볼 생각이었다.

그 후 의외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부족회의가 끝나자 한부는 다시 궁궐을 나와서 홀로 계의 집으로 출발했다.

계는 태자가 예고도 없이 자기 집 마당에 불쑥 나타나자 버선발로 방에서 뛰어나오면서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전하! 사람을 보내 소신을 부르지 않으시고 어찌 이 누추한 곳에 행차하셨습니까?”

“다른 사람의 귀가 없는 곳에서 긴히 할 말이 있어서 왔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그 말을 듣고 계는 더는 캐묻지 않고 한부를 아담한 벽돌집 안으로 안내했다.

계가 방석을 내주자 한부가 그 위에 앉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네 활약 덕에 호랑이 부족을 쉽게 물리쳤구나. 진심으로 고맙다.”

“과찬이십니다. 전하. 소신이 부추기지 않았더라도 완은 언젠가 반역을 일으켰을 겁니다. 전하께서 아껴주신 덕분에 소신이 양부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큰 공을 세우고도 겸손하구나. 역시 넌 중책을 맡길만한 그릇이다.”

“중책이라 하시면······?”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올바른 정치만큼이나 여러 가지 음지에서 활약할 간자가 꼭 필요하다. 이번 반란 사건이 끝난 후에 왕검께 조선과 왕실을 위해 간자를 육성하고 관리할 암부(暗部)를 설립하자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셨지. 계야. 네가 암부의 수장이 되어서 앞으로도 조선과 왕실을 위해 힘써 다오.”

“전하! 소신은 그런 중책을 맡기엔 너무 젊은 데다 경험도 일천합니다!”

“그럴 리가? 조선 땅에 너보다 다양한 경험과 학식을 쌓고 계략에 능통한 사람은 거의 없다. 암부의 수장에겐 비왕과 맞먹는 봉급과 토지가 하사될 것이니 네게도 좋은 기회일 게야.”

“전하께 도움이 된다면 그림자에 몸을 담그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사옵니다. 다만 암부의 수장이 된다 해도 당장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걱정입니다.”

“일단 서쪽 대륙의 말부터 완벽하게 익히거라. 앞으로 4년에서 5년이 지나면 서쪽 대륙에서 불패의 명장을 등용할 기회가 분명히 찾아올 텐데, 그때 네가 대륙으로 건너가서 그자를 꼭 설득해 줬으면 좋겠다.”

“일류 장수가 부족한 우리 조선에 꼭 필요한 인재로군요. 결코 전하를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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