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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55화 (55/195)

[55화] 함정에 빠진 호랑이 (2)

상 완은 반란을 일으키기로 한 다음 날 아침에 장남과 데리고 온 가병 스무 명 중 열여덟 명을 왕검성에 남겨두고 일단 자기 영지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러자 상의 장남 경은 겨우 호위병 두 명과 함께 걸어서 영지로 돌아가려는 아버지를 말렸다.

“아버지. 도보로 여드레 길을 수레에 타시지도 않고 가실 수 있겠습니까? 연세를 생각하셔야지요. 차라리 소자가 영지로 돌아가서 다른 제후들을 설득하겠습니다.”

“그래도 되는 상황이면 네 말대로 했을 거다. 하지만 왕검성에는 내 얼굴을 아는 자들이 너무 많다. 게다가 왕실의 기세에 겁을 먹고 잔뜩 움츠려있는 제후들이 네 말을 믿고 거사에 뛰어들겠느냐? 내가 직접 나서야지.”

“아······. 아버지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러니 너는 사병들하고 숙소에 묵으면서 왕검과 태자를 참살할 별동대가 쓸 병장기를 준비해 둬라. 조만간 상인으로 위장한 다른 가병들에게 군자금을 들려 보낼 것이야. 무기를 한꺼번에 많이 사면 의심하는 자가 있을 테니 조금씩 사들여야 하느니라.”

“그리하지요. 그리고 준비한 병장기는 모두 계의 집에 숨겨두도록 하겠습니다.”

“그 수밖에는 없겠지. 그럼 한 달 뒤에 보자꾸나.”

상 완은 장남과 작별인사를 나눈 다음 자신의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호랑이 부족

출신 경과 대부 중에서도 가장 믿을 만한 일곱 명에게 전령을 보냈다.

그의 부름을 받은 제후들은 말을 타고 신속하게 그의 집으로 모여서 창문이 없는 밀실의 탁자 앞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상에게 인사했다.

“상이시여. 그동안 무탈하셨습니까?”

“상.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어인 일로 그리도 급하게 저희를 부르셨는지요?”

상은 자기가 부른 제후가 전원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호랑이의 후손 중에서도 가장 믿음직한 분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구려. 오늘은 그대들과 긴히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이 자리에 초대했소. 자, 우선 모두 자리에 앉으시오.”

일곱 명의 제후가 그의 말대로 자리에 앉자, 상은 그들을 안내해온 하인들을 모두 밀실 밖으로 내보낸 다음 서글픈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다시 입을 열었다.

“최근 왕검이 순장을 엄히 금지하는 율령을 반포하고 백성들에게 삿된 서역의 종교를 퍼뜨리면서 조선의 아름다운 풍습이 나날이 훼손되어 가고 있어서 이마의 주름살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구려. 경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역시 상께서는 왕실의 횡포에 대해 논하려고 저희를 부르셨군요. 참으로 통탄할만한 일입니다!”

“소신은 보름 전에 부친을 여의었는데, 천신의 곁으로 떠나신 부친을 모실 몸종 한 명도 순장하지 못했습니다! 저승에서 손수 밥을 지으실 부친의 모습이 문득 떠오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듯합니다!”

두 대부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면서 열변을 토하자, 다른 제후들도 모두 입을 모아 그동안 가슴 속에 쌓여왔던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상은 그런 제후들의 모습을 보면서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 전부 속에 쌓아둔 게 많았구나. 이 사람들이라면 함께 큰일을 도모해 볼 만하겠어.’

그는 성난 들개무리처럼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제후들을 진정시킨 다음 드디어 그들을 부른 진짜 이유를 입에 담았다.

“더는 오랜 신앙과 조선의 전통이 짓밟히는 모습을 좌시할 수 없소. 게다가 이대로는 왕실이 모든 제후의 영지를 빼앗아서 온 나라를 왕검이 통치하게 될 것이오.”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일입니다. 하오나 이미 왕실의 세력은 우리 호랑이 부족

제후의 힘을 모두 합친 것보다 강하니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힘으로 적을 이기기 어려우면 지혜를 짜내는 수밖에 없지 않겠소? 지금 왕검은 조선의 모든 제후가 왕실의 힘에 굴복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하오. 그러니 때를 기다리다가 자만에 빠진 적에게 천신을 대신해 벌을 내립시다.”

상이 말을 마치자 일곱 명의 제후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떠들기 시작했다.

“상이시여. 설마 모반을 일으키실 생각이신지요?”

“율 대부! 설마 그럴 리가 있겠소? 이 자리에 모인 제후의 병사를 모두 합해도 왕검성을 공격하기는 어렵소!”

그러자 상은 탁자 위에 계가 그려준 왕검성의 지도를 펼치면서 구체적인 작전을 제후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왕실의 군대와 전면전을 벌일 생각은 없으니 모두 안심하시오. 왕검과 태자만 처치하면 왕검성의 수비대와 왕실 근위병들은 지휘체계가 흐트러져서 머리가 잘린 채로 꿈틀대는 구렁이의 몸통과 다를 바 없을 거요.”

“그야 그렇겠지만, 왕족을 없애려면 먼저 성문을 돌파하고 궁궐을 쳐야 하지 않습니까?”

“그럴 필요 없소. 왕검성에 심어둔 간자가 성문을 지키는 병사가 됐는데, 그자가 말하길 왕검은 불교에 귀의한 뒤로 한 달에 한 번 처자식을 데리고 새벽에 시내 한복판에 있는 사찰에 가서 백팔 배를 올린다고 하오. 그때를 노려서 별동대가 왕족을 전원 척살하고 우리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궁궐과 왕실 근위병의 숙소를 점거하면 드디어 왕실의 횡포를 끝낼 수 있을 거요.”

“그 간자가 우리에게 성문을 열어줄 모양이군요. 상이시여, 그자를 정말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그 간자는 이룡도를 졸업한 내 양자인데, 태자와 함께 설산에서 호랑이를 산 채로 잡고 함께 서역에 다녀왔음에도 그 박정한 놈에게 버림받았고 말았다오. 1년 전부터 무관직을 박탈당하고 일개 병졸이 되었으니 녀석의 왕실에 대한 원한이 우리만큼 깊을 것이오.”

“저희가 입만 조심하면 내부에서 기밀이 새어나갈 걱정은 없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소신은 상과 함께 하겠습니다!”

“소신 또한 호랑이 부족의 부흥에 목숨을 걸겠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든 대부가 자기 뜻에 찬성하자 상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그럼 이제 천신께 모두가 한마음으로 폭군에게 저항할 것을 다짐합시다!”

밀담을 마친 호랑이 부족의 여덟 제후는 밀실에서 나와 저택의 마당에서 덩치 큰 황소 한 마리를 잡아 제물로 바친 다음 한 명씩 단검으로 손바닥에 작은 상처를 내 흰 술이 가득 담긴 큰 사발에 자신의 피를 흘려 넣었다.

상 완은 마지막 제후의 피가 사발에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두 손으로 사발을 들어 연한 분홍색으로 변한 술을 몇 모금 마신 후 옆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잠시 후 모든 제후가 상을 따라서 피가 섞인 술을 마시자 상은 제물로 바쳐진 소가 누워있는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외쳤다.

“위대하신 천신이시여!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완, 율, 적, 범, 조, 청, 박, 허 여덟 사람은 서로의 피가 섞인 술을 나눠마시며 조선의 미풍양속을 망치는 광기의 시대를 끝내기로 맹세했나이다! 부디 저희 중에서 다른 마음을 품는 자에게는 천벌을 내리시고 맹약을 엄수하는 자는 영광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일곱 제후와 피의 맹세를 마치자 상 완은 우선 가능한 한 많은 기병을 자신의 영지로 모으기 시작했다.

발이 느린 보병을 이끌고 천천히 왕검성으로 진군했다가는 왕검성 근처에 가보기도 전에 왕검에게 그 소식이 전해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상은 군사훈련을 핑계로 자기 영지의 훈련장에 모은 기병 5백 기를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제후들에게 말했다.

“저 용맹한 기병들을 보시오! 왕실의 그늘에 가려서 그렇지 요 몇 년 동안 우리 호랑이 부족도 세력을 많이 기르긴 했구려! 겨우 제후 여덟 명이 저렇게 많은 기병을 모으다니 말이오!”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왕검성에는 이보다 더 많은 기병이 있다고 하니 제발 별동대가 일을 잘 해줘야 할 텐데요.”

“별동대가 왕검과 태자를 처단하고 수비대를 교란하는 데 성공하면 새벽에 성벽 위에서 횃불로 신호를 주기로 했소. 정성을 다해 천신께 복을 빌어봅시다.”

* * *

기원전 262년 11월 15일 아침, 상은 모반 결행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다른 제후들과 함께 기병 5백 기를 왕실 직할령에서 가까운 마을로 이동시켰다.

그동안 상의 장남 경은 그동안 25명으로 불어난 가병들과 함께 숙소에 모여서 왕족을 암살하기 위한 작전을 설명했다.

“내일 새벽에 수탉이 울면 왕검이 처자식을 데리고 사찰에서 백팔배를 올릴 거다. 그때 우리는 품속에 비수를 숨기고 행인인 척하면서 사찰 주변에 흩어져서 잠복했다가 왕족들이 사찰에 들어가려고 할 때 한꺼번에 달려든다.”

“도련님.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겠습니까? 왕족

전원이 움직인다면 분명히 중무장한 호위병이 사찰 주변을 지키고 있을 겁니다.”

“사찰이 궁궐하고 가까워서인지 호위병은 보통 열 명 정도라고 하더구나. 우리 쪽 피해도 없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숫자가 두 배 이상 많으니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다. 왕족을 모두 죽이고 나서 계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 우리 임무는 끝이다.”

“알겠습니다. 도련님. 천신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길.”

작전 설명을 마친 경은 가병들과 함께 일찍 잠자리에 든 후 다음날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서 품속에 계의 집에서 가져온 비수를 한 자루씩 숨겼다.

다음날 새벽에 잠에서 깬 반역자들은 계의 집에서 한 명씩 나온 다음 뿔뿔이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곧 시내 한복판에 있는 사찰의 주변의 골목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잠시 후 수탉이 울고 한 시간쯤 시간이 더 흐르자 왕검과 왕족의 옷을 몸에 걸친 남녀 다섯 명이 호위병 열 명과 함께 사찰 앞으로 다가가서 제단에 불을 피웠다.

경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손가락을 입 안에 넣고 온 힘을 다해 휘파람을 불었다.

- 삐이이이이익!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자 서른 명의 자객이 일제히 품에서 비수를 꺼내 들고 함성을 지르면서 뛰쳐나왔다.

“우와아아아아아!”

“천신을 위하여!”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사찰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그 안에서 석과 왕실 근위병 50명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달려오는 자객들을 향해 일제히 화살을 연사했다.

- 피융! 피융! 피융!

살해대상만 바라보면서 똑바로 달려오던 자객들은 숙련된 궁수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조준사격을 해대자 저항 한 번 못해보고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갔다.

“크아악!”

“크어어억!”

석은 전날 태자의 명을 받아 근위병들과 함께 평범한 불교 신자인 척하고 사찰안에 들어간 다음 그대로 잠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골목에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경은 부하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소리쳤다.

“오! 천신이시여! 대체 누가 기밀을 누설했다는 말이냐!”

그는 자기 아버지가 기병을 이끌고 왕검성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상에게 작전이 실패했음을 알리려고 남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왕검으로 변장한 비왕 무가 달아나는 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외쳤다.

“저자를 붙잡아라! 꼭 생포해서 반역의 배후를 캐야 한다!”

경은 사력을 다해 도망쳤지만, 왕실 근위병들의 집요한 추적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체포되고 말았다.

그동안 계는 성문을 활짝 열어둔 다음 성벽 위에 올라가서 횃불을 흔들면서 홀로 중얼거렸다.

“자, 이제 끝을 내볼까?”

그러자 제후들과 함께 기병대를 이끌고 왕검성을 향해 말을 달리던 상은 왕검성의 남문 위에서 횃불이 일렁이는 모습을 보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우리 장남이 큰일을 해냈구나! 성문이 열렸다! 모두 전속력으로 궁궐까지 달리는 거다!”

여덟 제후와 5백 기의 기병은 기세 좋게 활짝 열린 성문 안으로 들이닥쳤지만, 곧 선두의 기병 수십 기가 탄 말이 태자의 지시로 병사들이 바닥에 깔아놓은 마름쇠를 밟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 히히히히히힝!

그 뒤를 달리던 제후들과 다른 기병들은 그 모습을 보고 속도를 줄이려 했지만, 넘어진 말과 세게 충돌하면서 도미노처럼 차례로 바닥에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 히히히히히힝!

한 덩이로 뭉쳐서 쓰러지는 기병들과 함께 낙마한 상은 바닥에 닿자마자 손바닥과 허벅지에 박힌 날카로운 마름쇠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악!”

그러자 성벽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한부가 함께 숨어있던 병사 수백 명과 함께 성벽 아래로 내려와 하나같이 중상을 입거나 즉사한 기병들을 포위했다.

한부는 반란군 무리를 둘러보다가 아직 숨이 붙어있는 상을 발견하고는 서글픈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상. 제후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당신이 어찌 감히 반역을 꾀했단 말이오? 부처님의 계시가 없었다면 오늘 해가 지기 전에 왕족의 씨가 말랐겠구려!”

상은 한부의 뒤에 서 있는 계의 모습을 보고 허탈한 표정을 짓더니 표독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런 사악하고 교활한 것들! 일이 그렇게 된 거였구나! 1년 동안이나 나를 속이려고 연기를 해오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여봐라. 상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옥에 가둬라. 저자는 왕검께서 직접 재판을 진행하신 다음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벌하실 거다.”

“알겠습니다. 전하.”

병사들은 발밑의 마름쇠를 치워가면서 아직 살아있는 제후와 기병들을 포박해 감옥으로 끌고 갔다.

계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태자에게 말했다.

“전하. 이제야 끝이 났군요,”

“아니. 이제 시작이다. 제도를 정비하고 원정을 다니려면 앞으로는 정말 바빠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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