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50화] 메소드 연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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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어어어억! 허억! 헉! 헉!”
잔칫상 위에 쓰러진 대제사장은 바로 숨이 끊어지지 않고 두 손으로 목을 움켜쥐며 간간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면서 가쁜 숨을 내쉬었다.
한열 왕검과 제후들은 그런 대제사장을 보고 하나같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허둥거리기 시작했고 한부는 연회장 입구에 서서 속으로 혀를 찼다.
‘쯧! 독살 의혹이 바로 터져 나오지 않도록 즉사하지 않을 정도로 양을 조절했다고는 하지만, 설마 의식도 잃지 않을 줄이야. 역시 사람이 기른 짐새의 독은 야생 짐새의 짐독보단 약할 수밖에 없나.’
중원 대륙의 장강 이남에서 서식하는 야생 짐새는 늘 맹독을 지닌 독충과 독사, 독이든 식물 등을 먹었지만, 계가 마우리아 제국 출신 사육사가 기르고 있는 짐새 열 마리는 매일 독이 든 먹이를 먹지는 못했다.
한반도의 평양 일대에는 야생 짐새의 서식지인 아열대 우림처럼 강한 독을 지닌 생물을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부가 기밀 유지를 위해 짐새를 기르고 있다는 사실은 고조선인 중에선 계와 석 이외에는 아무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독이 든 먹이를 구하는 일은 더욱 어려웠다.
‘이 정도라면 독성 자체는 비상 같은 다른 독극물하고 비슷한 정도인 것 같네. 그래도 무색무취에 맛도 안 나니까 쓸모는 있겠어. 그건 그렇고 지금부터 제대로 연기를 해야 의심을 안 받는다.’
그는 머릿속에 현생에서 가장 간 떨어질 뻔한 순간인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뻔했을 때를 떠올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짓더니 연회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소리쳤다.
“대제사장님! 대제사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대제사장님! 대체 어디가 편찮으신 겁니까?!”
대제사장은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간신히 한부의 목소리를 듣고서는 힘겹게 손가락을 들어 짐독이 식도를 지나면서 다친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한부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고개를 돌려 한열 왕검과 눈을 마주치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대제사장께서 아직 의식을 잃지는 않으신 모양입니다! 소자는 당장 궁중 약사를 불러올 테니 그동안 대제사장님께서 안정을 취하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래! 알았다! 우선 대제사장님을 근처에 있는 내관의 숙소로 모시마! 넌 약사를 그리로 불러오너라!”
“알겠습니다! 폐하!”
대화를 마친 한열 왕검은 자리에서 일어나 연회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관에게 대제사장을 업게 한 다음 간신히 정신을 차린 제후들과 함께 내관들의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한부는 어린 시절에 함께 대마차를 만들던 궁중 약사 천의 약방으로 달려가서 문을 열며 소리쳤다.
“천! 천 안에 있는가?!”
궁중 약사는 갑자기 태자가 들이닥치자 깜짝 놀라 손에 든 약사발을 바닥에 떨어트리면서 대답했다.
“어휴! 전하! 어인 일로 소인을 찾아주셨는지요?”
“아침에 입궁하신 대제사장님께서 연회장에서 갑자기 각혈하시면서 쓰러지셨네! 어서 나와 함께 가서 그분의 용태를 살펴주게나!”
“대제사장님께서 말입니까?! 오! 천신이시여! 어서 가시지요! 전하!”
한부의 속내를 알 길이 없는 천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태자의 뒤를 따라 대제사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두 사람이 방문을 열고 내관의 숙소 안에 들어서자 한부의 눈에 이부자리에 누워서 눈을 감고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는 대제사장과 그의 주변을 둘러싸듯 앉아있는 왕검과 제후들의 모습이 보였다.
한열 왕검은 궁중 약사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거기 서서 뭐 하고 있느냐! 어서 이리 와서 대제사장님의 맥을 짚거라!”
“어명을 받들겠사옵니다.”
궁중 약사 천은 잽싸게 대제사장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맥을 짚고 환자의 낯빛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한부에게 물었다.
“전하. 대제사장님께서 입궁하셨을 때부터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셨는지요?”
“아닐세. 계속 정정해 보이시다가 연회가 시작되면서 갑자기 각혈하시면서 잔칫상 위로 쓰러지셨다네.”
“음······ 소인이 감히 이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대제사장님께서는 독에 중독된 환자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계십니다. 다만 입안에서 피 냄새 이외에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으니 어떤 독에 당하신 것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궁중 약사 천이 머뭇거리면서 대답하자 한열 왕검이 갑자기 도끼눈을 뜨면서 노성을 질렀다.
“그게 무슨 소리냐?! 독이라니?! 그럴 리가 없다! 오늘 연회를 준비한 자는 다름 아닌 태자다! 너는 왕실의 녹을 먹는 자가 감히 태자를 암살자로 몰아가려는 것이냐?!”
“오해이시옵니다! 폐하! 소인은 어제 아침부터 약방에 틀어박혀 있느라 이번 연회를 준비한 사람이 태자라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하여간 독은 아니다! 대제사장님께서는 연회장에서 겨우 술 한잔을 드셨을 뿐인데, 짐과 여기 있는 제후들도 모두 같은 술병에서 나온 술을 마셨단 말이다! 게다가 그 술병은 은으로 만든 것이어서 독주가 들어있었다면 술병 주둥이의 색이 검게 변했을 텐데 그런 일은 없었다!”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한부가 대화에 끼어들면서 왕검에게 말했다.
“폐하. 그저 소자의 근거 없는 추측일 뿐이기는 합니다만, 어쩌면 대제사장님께서는 입궁하시기 전에 이미 지효성 독에 당하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뭐라? 지효성 독?! 천하에 먹고 나서 시간이 지나야 몸에 퍼지는 독도 있다는 말이냐?!”
궁중 약사 천은 왕검의 말을 듣고 태자 대신 대답했다.
“폐하. 태자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조선 땅에서 자라는 독버섯 중에는 지효성 독을 지닌 것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서 독버섯의 독을 중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탕약을 달여 오라! 손톱만큼이라도 대제사장님을 살릴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 봐야 하느니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폐하.”
궁중 약사는 어명을 받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약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열 왕검은 고개를 돌려 주변에 있는 제후들의 면면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혹시 여기 있는 경과 대부 중 대제사장님께서 요 며칠 사이에 누구를 만나셨는지 아는 사람이 있소? 정말 대제사장님께서 지효성 독에 당하신 거라면 누군가 대제사장님께 독이 든 음식을 선물했던지, 아니면 은밀한 장소에서 대제사장님을 만나 독을 드시게 했을지도 모르오.”
왕검이 말을 마치자 곰 부족의 장로인 웅 대부가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가 상 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분명 어젯밤에 대제사장님의 숙소에 가장 먼저 찾아가신 분은 상이셨지요. 상께서는 대제사장님의 변고에 대해 뭔가 짚이는 점이 있습니까?”
그 말을 듣고 눈을 뜨지 못하는 대제사장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상 완은 호랑이 부족의 제후들조차 자신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하자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웅 대부에게 고함을 질렀다.
“웅 대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요! 지금 본인이 대제사장님을 독살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상. 진정하십시오. 그저 두 분이 지난밤 대제사장님의 숙소에 독대하셨을 때의 정황이 궁금했을 뿐입니다.”
“그게 그 얘기이지 않소! 대제사장님은 태자 전하께서 준비하신 연회장에서 술을 드시자마자 쓰러지셨소! 독살을 의심하려면 응당 왕실을 먼저 의심하는 게 순서일 것이오!”
그 순간, 한열 왕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상에게 호통쳤다.
“닥치시오! 상! 감히 짐의 궁궐 안에서 짐과 태자를 독살범으로 몰아가려는 것이오?! 연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모두 대제사장님과 같은 병에 든 술을 마셨으나 아무 탈이 없소! 게다가 대제사장님께서는 만독을 정화한다는 코뿔소 뿔로 만든 술잔에 술을 따라 드신 것을 경도 보지 않았소?!”
“조선 사람 중에는 실제로 코뿔소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 잔이 다른 짐승의 뿔로 만든 것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럼 코뿔소 외에 그토록 장대한 뿔을 지닌 다른 짐승의 이름을 대보시오.”
“그······ 그건······.”
“그것 보시오. 감히 자신의 독살 혐의를 벗으려고 왕실을 모함하다니!”
“모함이 아니라 의혹을 제기한 것뿐입니다! 태자는 서역에서 갖가지 기묘한 물건을 많이 가져온 걸 모든 조선의 백성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중에 코뿔소 뿔조차 정화할 수 없는 맹독이 있을 줄 누가 알겠습니까?! 대제사장님께서 사용하셨던 잔을 철저히 조사해봐야 합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군! 상. 만약 짐이 정말로 그런 독을 가지고 있고 오늘 연회장에서 누군가를 독살하려 했다면 지금 침상에 누워있는 사람은 대제사장님이 아니라 경이었을 것이오!”
“뭐라고요!”
“솔직히 그렇지 않소?! 짐과 경의 오랜 반목은 조선의 백성 중에서 모르는 자가 없지만, 짐이 대제사장님께 쓴소리를 들은 건 오늘이 처음이오. 게다가 만에 하나 짐이 대제사장님을 독살하려 했다면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조잡하지 않소?”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모름지기 독살이란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암살법이오, 그런데 대제사장님과 경들은 예고 없이 새벽부터 궁궐에 찾아오셨소. 짐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부랴부랴 예복을 입고 알현실로 향해야 했다오.”
“음······.”
“정말 짐이 대제사장님을 독살하려 한 것이라면 짐이 오늘 새벽의 상황을 예측하고 태자에게 늘 품속에 코뿔소 뿔로도 정화할 수 없는 맹독을 숨겨두게 하다가 대제사장님의 잔에 독을 넣으라고 명했다는 건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라 생각하오?!”
상 완이 왕검의 반박에 아무 대답도 못하자,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웅 대부가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폐하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게다가 정말로 왕검께서 대제사장님을 독살하려고 결심하셨다면 굳이 범행 장소를 궁궐 연회장으로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코뿔소 뿔조차 정화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맹독을 가지고 계신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물론 짐독보다도 강한 맹독이 실재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웅 대부의 말에 주변의 제후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정말 그런 무서운 독이 있다면 그저 은으로 만든 술병에 담긴 독주 한 병을 선물로 보내는 편이 간단할 겁니다.”
“그렇지요. 보통은 독을 빨아들이는 은병에 독주를 담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테니 말입니다.”
“그럼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혹시 대제사장님께서는 부처라는 서역의 신이 내린 저주로 쓰러지신 게 아닐는지요?”
“그것도 아니라면 설마······.”
웅성거리던 제후들이 서서히 대화를 멈추고 다시 상 완은 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의 등줄기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흐르기 시작했다.
‘분하지만 웅 대부의 말에 일리가 있다. 왕검이 우리가 빤히 보는 앞에서 이 난리를 쳐가며 대제사장을 독살할 이유가 떠오르질 않아! 그런 위험부담을 안아가면서까지 왕실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지 않은가! 이러다가는 내가 독살범으로 몰릴지도 모르겠어!’
대제사장이 가끔 상과 은밀히 결탁하여 왕실을 견제하는 때가 가끔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지금까지 왕실과 공생관계를 이어왔다.
대제사장은 왕검이 주최하는 천신 제전에 벌써 9년 동안 참여하여 제사를 지냄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드높여왔고 한열 왕검은 그런 대제사장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게다가 왕실과 대제사장의 갈등이 표면에 드러난 경우는 바로 오늘, 대제사장이 불교 전파에 대하여 따지고 들 때뿐이었는 데 이 또한 대제사장 암살로 이어질 만한 심각한 사항이라고 여기는 제후는 한 명도 없었다.
오늘 궁궐에 모인 제후들은 왕검이 불교를 전파하려 했던 건 서역 문물에 흥미가 많은 태자의 부탁을 들어줘서 생긴 해프닝일 뿐이고 한부가 불교를 고조선의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삼을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한열 왕검은 주변의 제후들이 왕실에 대한 의심을 거둔 것을 눈치채고 기세등등하게 상 완을 몰아붙였다.
“상. 아무리 생각해도 궁궐 연회장에서 대제사장님께서 독살당하셔서 여러 경과 대부가 왕실에 등을 돌리면 가장 큰 이득을 볼 사람은 단 한 명뿐인 듯하오.”
“폐하! 설마 소신이 어젯밤 대제사장님을 독대했다는 이유만으로 독살범으로 몰아가시려는 겁니까?!”
“몰아가긴! 그저 조금 전 그대가 짐에게 했던 것처럼 의혹을 제기한 것뿐이라오!”
“큭!”
그렇게 왕검과 상의 대립이 극에 달해가는 찰나, 한부가 간절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호소했다.
“고정하시옵소서! 폐하! 대제사장님께서 정말 독에 쓰러지신 건지도 판명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군주와 제후가 다투는 건 옳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선 다 함께 지혜를 모아 대제사장님을 구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음······. 네 말이 옳다. 태자야. 짐이 흥분한 나머지 위독하신 분 앞에서 언성을 높이고 말았구나.”
“만약 대제사장님께서 정말로 독에 당하신 거라면 코뿔소 뿔을 갈아서 탕약으로 만들어 드시게 하면 효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폐하. 그리고 얼마 전 궁궐의 약방에 들여놓은 수은을 대제사장님께서 모두 드시게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서쪽 대륙에서 가장 부강한 진나라의 왕족들도 수은을 생명력이 넘치는 영약으로 여겨 즐겨 먹는다고 합니다.”
“귀한 분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한낱 물건을 아낄 때가 아니지. 그럼 서둘러 중 약사에게 코불소 뿔과 수은을 넣은 탕약을 달이라고 전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