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 [45화] 아파트와 소방대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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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는 한열 왕검이 자신의 요청을 승낙하자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루빨리 성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허허! 녀석! 8척 장신의 청년이 됐어도 웃는 모습은 어린 시절과 똑같구나. 그나저나 이제 한 달만 지나면 매미가 울기 시작할 거다. 올해 안에 큰 건물을 지을 생각이면 그 로마국 출신 공인에게 작업을 서두르라고 지시하는 편이 좋을 거다.”
“말씀하신 대로 계절이 한여름에 접어들기 전에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냐. 그리고 어지간하면 힘든 일은 아랫사람들에게 맡기고 너는 쉬엄쉬엄 일했으면 좋겠구나. 앞선 외국의 문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비로서 1만 리 여행길에 시달렸던 자식이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과로에 시달리는 건 마음 아픈 일이다.”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그럼 소자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한부는 아들을 대견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한열 왕검에게 절을 하고 침실 밖으로 나온 다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수행해온 내관 참에게 말했다.
“다시 사신단의 숙소로 돌아가야겠네. 마우리아국 출신 광산 개발 기술자들을 데리고 석회암 광산을 찾아봐야 해서 말일세.”
“전하. 궁궐을 떠나시기 전에 광산을 발견하면 바로 채굴을 시작할 수 있도록 왕실의 관리들에게 소가 끄는 수레와 인부를 준비해 놓으라고 명하시는 게 어떨는지요?”
“그게 좋겠구먼. 일정이 촉박하니 그 일은 사정을 잘 아는 자네가 맡아주게. 이 반지를 보여주고 내가 시킨 일이라고 말하면 관리들이 따를 걸세. 아, 그리고 계 무관에게 사람을 보내서 곧 왕검성 밖으로 외출할 테니 호위병 1백 명을 준비해 놓으라고 전해주게.”
“석 무관은 부르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그렇네. 이번에는 그리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을 거 같아서 말일세.”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내관은 태자가 건네준 왕족의 징표인 옥반지를 건네주자 종종걸음으로 궁궐의 복도를 걸어갔다.
그리고 한부는 서둘러 궁궐을 나온 다음 사신단의 숙소로 돌아가서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인도 출신 기술자를 찾아가서 말을 걸었다.
“파탈리푸트라의 황궁에서 지낼 때 자네가 광물 탐색에 능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네. 그 소문이 사실인가?”
“그렇사옵니다. 전하. 소인은 아르타 샤스트라에 적혀있는 광물 탐색 기술을 전부 익힌 후로 마우리아 제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광물 매장지를 찾아내었습니다.”
“자네의 기술과 경험으로 석회암 광산을 찾을 수 있겠나? 마우리아 제국 출신 귀화자들이 살 집을 짓는데 석회가 많이 필요해서 말일세.”
“물론입니다. 전하. 그런데 광산을 찾으러 떠나기 전에 한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는지요?”
“말해보게.”
“집이 다 지어지면 소인도 이 좁은 숙소를 떠날 수 있겠습니까? 시설은 훌륭하지만, 워낙 인원이 많다 보니 힘들어하는 자가 많습니다.”
“먼저 병사들의 거처부터 지을 예정이긴 하지만, 물론 자네의 집도 지어줘야지. 그리고 공사가 끝날 때쯤에는 모두 왕실을 섬기는 관리로 임명된 다음 조선인 처녀와 혼인식을 치르고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걸세.”
“그게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전하! 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불교 전파에 힘을 보태라는 삼라트의 명을 받고 조국을 떠나긴 했지만,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불안해하던 중이었습니다.”
“내가 함께 폭풍우를 이겨내면서 먼 바닷길을 지나온 불교 신자들을 홀대할 리가 있겠나? 지금쯤 호위대가 왕검성을 떠날 준비가 끝났을 테니 어서 출발하세.”
“기쁜 마음으로 전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그 후 한부가 인도인 광산 기술자와 함께 사신단 숙소에서 나와 궁궐 앞으로 돌아오자,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계와 석이 창을 든 호위병 1백 명과 함께 태자에게 인사했다.
“무관 계가 전하를 뵙습니다. 분부하신 대로 호위병 1백 명과 수송대를 대령했습니다.”
“벌써? 역시 행동이 표범처럼 날쌔구먼. 계야. 참 내관에게 널 부른 이유를 들었지?”
“그렇습니다. 전하. 새 광산을 찾으려면 또 긴 여행을 떠나야겠군요.”
“생각보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거다. 우리 조선 땅에는 석회암이 풍부하거든.”
“그렇습니까? 소신은 광물에 관한 지식은 거의 없어서 몰랐습니다.”
“내 예상대로라면 앞으로 며칠 안 걸릴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럼 슬슬 출발하자꾸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두 사람은 인도인 기술자를 쌍두마차에 태운 다음 말을 타고 앞장서며 병사들을 이끌고 왕검성의 성문을 나섰다.
그렇게 태자 일행이 암석이 많은 수도 주변의 산지를 향해 2km쯤 행군했을 때, 인도인 기술자가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더니 앞서가던 한부를 불렀다.
“전하. 저기 보이는 높은 절벽을 한번 조사해보고 싶습니다.”
“저 깍아지르는 듯한 절벽 말인가? 자네가 아무리 산지에 익숙해도 저 절벽을 기어 올라가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겠나?”
“절벽을 올라가려는 게 아닙니다. 전하. 어쩌면 저 흰색 암석으로 이루어진 절벽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그게 정말인가?! 어서 확인해봐야겠구만!”
한부는 인도인 기술자와의 대화를 마친 후 계에게 지시했다.
“계야. 어쩌면 저기 보이는 절벽이 통째로 석회암일지도 모른다는구나. 병사들에게 저쪽으로 진로를 바꾸라고 명령하거라.”
“저 절벽 전체가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전하. 모두 진로를 북서쪽으로 틀어라!”
1백 명의 병사들은 계의 명령을 듣자마자 흙길을 벗어나 절벽을 향해 진군했다.
잠시후 태자 일행이 목적지에 다다르자, 인도인 기술자는 미리 가지고 온 철제 망치와 끌로 절벽의 암석을 깨서 혀로 맛을 보더니 들뜬 목소리로 한부에게 말했다.
“전하! 제 예감이 맞았습니다! 이 절벽 전체가 석회암입니다!”
“정말 잘했다! 왕검성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석회암 산지가 있었다니! 부처님께서 우릴 이곳으로 인도하신 모양이다!”
한반도 이북에는 다양한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지만, 특히 석회암은 사방에 널렸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매장량이 풍부하다.
게다가 고조선 왕실이 제나라에 대마의 꽃으로 만든 차를 팔기 시작하면서부터 삼의 생산량을 꾸준히 늘려왔기에 한반도 북부에서는 대마 콘크리트의 또 다른 원료인 삼 줄기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한부는 그 두 가지 사실을 머릿속에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반도에 석회 매장량이 풍부하다는 기록은 책에서 읽은 적이 있지만, 이렇게 길가다가 그냥 눈에 띌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네! 산 중턱에 있는 노천광산만 발견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지! 이제 드루수스가 대마 콘크리트를 만들어 내기만 기다리면 되겠구나!’
그는 머릿속에 다음 계획을 정리한 다음 고개를 돌려 병사들을 바라보면서 외쳤다.
“석회암 절벽을 발견했으니 더 돌아다닐 것 없다! 모두 왕검성으로 돌아가서 푹 쉬자!”
병사들은 한동안 길가에서 노숙하게 될 거라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태자의 말을 듣자마자 환한 표정으로 웃고 떠들면서 왔던 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게 뭔 일이야?! 정말 잘됐구먼! 그래!”
“그러게 말일세! 꼼짝없이 앞으로 열흘 정도는 아내 대신 자네 옆에서 자면서 코 고는 소리에 시달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정말 천신께서 도우셨어!”
“누가 할 소릴? 자네 자면서 이가는 소리는 천둥소리나 마찬가지라고!”
그렇게 병사들은 일찍 귀가하게 되어 신이 나서 떠들었지만, 태자의 옆에서 말을 모는 계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한부는 그런 부하 장수의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여기면서 물었다.
“계야. 왜 그렇게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느냐? 여행이 일찍 끝나서 고생을 덜 하게 된 게 기쁘지 않으냐?”
계는 태자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더니 주변에 두 사람의 말을 들을 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전하. 다만 가족의 품에 돌아가게 되어 기뻐하는 병사들을 보니 고향에 있는 소신의 부모가 생각나서 저도 모르게 어두운 표정을 지었나 봅니다.”
“낳아준 부모를 말인가?”
“그렇습니다. 2년 전까지는 전하께 허락을 받고 호랑이 부족의 제후들에게 대단치 않은 왕실의 정보를 넘겨주면서 상의 신뢰를 얻어왔지만, 지금은 마우리아국에 다녀오는 동안 상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하급장교라고는 하나 네가 왕실의 무관으로 임명된 이상 상도 대놓고 너의 부모와 형제를 핍박하지는 못할 거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왕실이 외국의 앞선 문물과 물자를 이용해 나날이 번성하면서 불교를 전국에 전파하기 시작하면 상을 필두로 한 호랑이 부족의 제후들은 상처 입은 맹수처럼 필사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할 겁니다.”
“상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겠지.”
“그러다 왕실과 호랑이 부족의 관계가 더욱 나빠지면 상이 자기 영지에 사는 소신의 부모를 인질로 삼고 정보를 요구할지도 모를 일 아니겠습니까?”
한부는 계의 말을 경청한 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원역사의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왕권 강화를 위해 중국에서 불교를 수입할 때, 처음에는 샤머니즘을 신봉하는 귀족과 지방 토호 세력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혔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당시 삼국을 다스렸던 국왕들은 하나같이 불교와 샤머니즘의 공존을 인정하고 불교의 교리를 귀족과 토호 세력에게 여러 특권을 인정해주면서 불만을 잠재웠었다.
하지만 한부는 고조선을 중앙집권 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제후들, 그중에서도 왕실에 비협조적인 호랑이 부족 출신 제후들에게 티끌만큼의 특권도 인정해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왕실이 군대를 내전을 치러가면서 제후세력을 제거할 형편은 되지 않았다.
‘내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영토와 왕실 직할령을 엄청나게 늘어간 건 잘된 일이지만, 당장은 국경선이 늘어나서 왕검성 수비에 배치할 수 있는 병사가 줄어들었단 말이지. 그러니까 한국 조어도 못 하는 인도인 병사 5백 명을 왕실 근위병으로 삼자는 제안도 통 크게 받아들이신 거고. 지금 내전을 벌였다가는 연나라 정벌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그는 짐새를 얻으면서부터 구상해온 샤머니즘 종교세력과 제후세력을 은밀하게 억누르기 위한 계략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계야. 사실 그 문제 때문에 오늘 너만 부른 거다. 석은 충직하지만, 어쨌든 곰 부족 출신 제후의 후계자라서 말이다.”
“소신에게 뭔가 지시하실 게 있군요.”
“역시 눈치가 빠르구나. 이번 인술라 건축 사업은 단지 외국 출신 근위병들에게 살기 좋은 건물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에서만 짓는 게 아니다.”
“다른 이유가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웅장한 3층 건물을 지어서 외국 출신 병사들에게 선물했다는 소문이 돌면 자기가 능력 있다고 생각하는 전국의 인재들이 속속 왕검성으로 모여들 게 아니냐? 조선인들이 보기에는 근본이 없는 외국인도 이렇게 대접받으니 자기는 왕족의 눈에 띄기만 하면 더 출세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말이야.”
“아! 전하께서는 연나라의 소왕이 재상 곽외를 기용하실 때와 같은 계책을 사용하시려는 거군요!”
“그렇지. 일이 내 예상대로 돌아가서 제후들의 영지를 빠져나온 인재들이 왕검성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면 상은 왕실의 세력이 더 커질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왕검 폐하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안달하겠지.”
“혹시 그때 제게 상을 낚을 미끼로 쓸 수 있는 정보를 주시려는 겁니까?”
“그렇지. 네가 다시 상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호랑이를 길들이다가 마지막에는 맹독이든 먹이를 던져 주도록 하자꾸나.”
한부는 계에게 그렇게 대답하면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