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 [44화] 아파트와 소방대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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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수스는 흥분하는 태자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전하. 건물부지가 궁궐 근처여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그런 제안을 했습니다만, 정말로 왕실 근위병이 살 건물로 인술라를 지어도 되겠습니까?”
“어떤 점이 그렇게 걱정되나?”
“조선에서 왕실 근위병이라면 일반적인 병사보다는 좋은 대우를 받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인술라는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살기 불편해서 로마에서는 가난한 시민이 사는 경우가 많지요. 또 여름에 덥고 겨울에는 춥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네. 내가 지으려는 인술라는 그런 외양간 같은 건물이 아니라 도무스(Domus: 고대 로마의 고급주택)에 가까운 고급 공동주택이라네. 근위병들이 고층까지 오르내리려면 힘들 테니 건물도 3층까지만 올릴 생각일세.”
“전하. 죄송하지만 소인은 군단병이 생활할 숙영지나 평민이 살 집은 자주 지어봤지만, 원로원 의원들이나 살법한 고급스러운 도무스는 별로 지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말게. 내가 조선에 데려온 건축가는 자네 한 명이 아니야.”
“아! 일행 중에 마우리아 제국 출신 건축가도 몇 명쯤 있었나 보군요!”
“그렇다네. 자네와는 다르게 주로 귀족이 사는 고급주택을 지어왔다는 자가 두 명 있지. 건물의 기초와 외벽은 자네가 짓고 실내 구조나 장식은 그 두 사람하고 상의해서 꾸미면 어떻겠나?”
“그 방법이면 꽤 그럴싸한 건물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해보겠습니다. 전하.”
“아, 그리고 집집마다 쪽구들이라는 난방 장치를 설치할 예정이네.”
“쪽구들이라······. 발음하기도 어려운 생소한 단어로군요.”
“쉽게 얘기하자면 로마의 하이포코스트(hypocaust)와 비슷한 난방 장치라네.”
하이포코스트는 고대 로마의 난방장치로 아궁이에 불을 때면 발생한 뜨거운 공기가 바닥을 덥히는 구조가 한국의 온돌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 서양의 온돌은 비싼 설치비용 때문에 주로 대중목욕탕의 온수를 데울 때 사용되었고 민가에 난방용으로 설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반면 동북아시아에서는 한반도 북동부와 현대의 연해주 지역에 살던 옥저인들이 약 기원전 4세기부터 원시적인 온돌인 쪽구들을 민가에 설치해서 사용해왔다.
쪽구들은 방바닥 밑 전체에 열선 역할을 하는 긴 돌인 고래를 까는 조선 시대의 온돌과 달리 실내의 한 귀퉁이에만 고래를 설치하는 부분 난방 시스템이 특징인데, 한부는 이 쪽구들을 적용한 세계최초의 개별난방 아파트를 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드루수스는 한부의 기대와는 달리 그의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하이포코스트를 민가에 설치하실 생각이십니까?! 전하께서는 로마에서도 구경해보지 못한 호사스러운 인술라를 지을 생각이셨군요. 참으로 기발한 발상입니다만, 인술라의 2층이나 3층 바닥 밑에 무거운 돌을 깔면 건물이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버릴겁니다.”
“조선의 동쪽 땅에서 사는 부족은 그 열을 전달하는 돌을 고래라고 부르더군. 고래를 바닥 전체가 아니라 사람이 누워서 자는 공간의 바닥 밑에만 한두 줄 깔아도 건물이 위태롭겠나?”
“전하. 아무리 인술라를 3층으로 짓고 고래를 집집마다 하나씩만 깐다고 해도 바닥이 무게를 견딜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3층의 외벽을 어지간히 가벼운 자재로 만들지 않으면 쪽구들을 설치한 주택은 2층으로 짓는 편이 안전하겠지요.”
한부는 로마인 건축가의 비관적인 대답을 듣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 최소한 3층 건물은 지어야 부지를 확보하기 편할 텐데. 그렇다고 따듯한 나라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쪽구들도 없는 조선의 겨울을 나는 건 힘들 텐데. 특히 요즘 같은 시기에는 말이지. 하필이면 기후도 골든타임을 살짝 빗나간 시대에 와 버려렸냐.’
현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기원전 3세기 후반에서 기원전 2세기 초반부터 지구의 기후가 빠르게 온난해지면서 앞으로 약 7백여 년 동안 역사학자들에게 ‘로마 기후 최적기’라고 불리는 살기 좋은 시대가 쭉 이어진다.
하지만 기원전 263년인 현재는 로마 기후 최적기를 두 세대쯤 앞둔 시기이니 현대 학자들의 연구결과가 정확하다면 적어도 앞으로 60여 년 동안은 제법 추운 겨울이 계속될 게 분명했다.
그는 3층 아파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드루수스를 처음 만났을 때 그가 했던 말이 떠올리고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드루수스! 그러고 보니 자네 알렉산드리아에서 대마 콘크리트로 벽돌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 않았었지.”
“그렇게 말씀드렸었습니다. 다만 비용 문제 때문에 로마에서 대마 콘크리트는 벽돌의 재료보다는 주로 건물의 마감재로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마는 풀이라서 가벼우니까 왠지 대마 콘크리트로 만든 벽돌도 가벼울 것 같은데. 내 말이 맞지 않나?”
“음······ 대마가 풀이라서 가볍다는 부분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말씀하신 대로 대마 콘크리트로 만든 벽돌은 같은 크기의 석재에 비해선 훨씬 가볍긴 합니다.”
“그럼 외벽 전체를 대마 콘크리트 벽돌로 만들면 쪽구들을 설치한 3층 인술라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먼!”
“그런 건물은 아직 지어본 적이 없지만, 대마 줄기를 쉽게 구할 수 있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있겠습니다.”
“조선에선 대마를 많이 재배한다네. 그럼 그 방법으로 한번 3층 인수를 지어보세나!”
한부의 발상은 과정이 엉망이었음에도 운 좋게도 정답에 가까운 결과에 도달했다.
대마 콘크리트로 만든 벽돌의 무게는 같은 부피의 일반적인 콘크리트로 만든 벽돌의 약 7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가볍기 때문이다.
그 후 드루수스는 태자의 지시에 따라 이집트에서 가져온 파피루스 백지에 필요한 건축자재의 종류와 양, 인부의 수, 그리고 대략적인 건설계획의 내용을 적어서 건네주었다.
한부는 그것을 받으면서 그에게 지시했다.
“그럼 나는 이걸 가지고 가서 왕검께 자세한 설명을 드린 다음 자제와 인력을 받아오겠네. 그동안 자네는 마우리아 제국 출신 건축가들과 상의하면서 인술라를 지을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게나. 지금 그 두 사람에게도 지시를 내리고 궁궐로 출발하겠네.”
“전하. 죄송하지만, 소인은 산스크리트어를 할 줄 모릅니다.”
“대신 그리스어는 제법 잘하지 않나? 자네를 도울 건축가 중 한 명도 그리스어를 할 줄 안다네.”
“마우리아 제국 출신자 중에도 그리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었군요! 그것도 모르고 계속 크테시비우스와 그 가족하고만 대화를 나눴지 뭡니까!”
“그랬구먼. 그리스어를 할줄 아는 사람이 그 외에도 몇 명 더 있을 테니 잠깐 짬이 날 때 다른 사람들하고도 친해져 보게. 그럼 난 이만 궁궐로 돌아가 보겠네.”
한부는 드루수스와의 대화를 마친 후 서둘러 궁궐로 돌아가 내관과 함께 한열 왕검의 침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내관은 태자와 함께 왕검의 침실 문 앞에 도착한 후 목소리를 가다듬고 한열 왕검에게 고했다.
“왕검 폐하. 태자가 폐하께 문안 인사를 드리러 찾아왔습니다.”
“음······ 들라 하여라······.”
왕검이 힘없는 대답을 듣고 내관이 미닫이 문을 열자 한부가 안으로 들어가 절을 하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간밤에 편히 주무셨습니까?”
“불행히도 그러지 못했느니라······. 지난밤에 네 어머니가 어찌나 매섭고 집요하게 집을 질책하는지 밤새도록 시달리다가 새벽에 잠들고 이제 막 일어난 참이다······. 부인도 짐처럼 조금밖에 자지 못했는데도 네 건강과 안전을 기원하러 아침 일찍 사당에 찾아갔단다. 모정이란 천하의 그 무엇보다 강한 것이로구나.”
“아······. 아버지께서 소자의 고집 때문에 힘든 밤을 보내셨군. 지금은 많이 피로해 보이시니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아니다. 네 얼굴을 보니 그래도 기운이 좀 난다. 그리고 뭔가를 들고 온 걸 보니 아마 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구나. 어서 말해 보아라.”
“아버지. 사실 소자가 마우리아국에서 데려온 병사 5백 명을 전원 왕실 근위병으로 임명하고 살 집을 지어주고자 합니다. 부디 허락해 주시옵소서.”
“음······ 그렇지 않아도 왕실 직할령이 크게 늘어서 상비군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던 참이긴 했다. 하지만 우리말을 못 하는 게 좀 마음에 걸리는구나.”
“이번에 데려온 마우리아국 출신 병사와 공인은 모두 아직 미혼이거나 전 부인과 사별했으며 아직 자식을 보지 못한 자들입니다. 이들을 조선의 처녀와 혼인시키면 몇 년 전 조선에 귀화한 제나라 출신 공인들처럼 금방 우리 말을 배워나갈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긴, 그토록 군율이 잡혀있는 자들이라면 그 존재만으로도 다른 병사들에게 귀감이 되겠지. 좋다. 허락하마. 다만 그 많은 병사가 지낼 거처를 어디다 마련해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구나.”
“그렇지 않아도 새 왕실 근위병의 거처에 대한 말씀도 드리려 했습니다. 아버지. 소자가 데려온 기술자 중에 로마라는 나라에서 온 자가 있사온데 그자에게 로마국에서 인술라라고 부르는 3층 건물을 지어보도록 해보고 싶습니다.”
“뭐라고? 3층 건물? 왕검성의 궁궐조차도 단층 건물이거늘······. 고작 병사 한 명 한 명에게 그토록 화려한 건물을 하사할 생각이란 말이냐?”
“아닙니다. 아버지. 소자가 지으려는 것은 건물 한 채에 열두 호가 살 수 있는 공동주택입니다. 그런 웅장한 건물을 한 곳에 수십 채나 짓는다면 새로 얻은 정예병들의 거처를 마련하면서 동시에 이웃 나라와 국내의 여러 제후에게 그동안 쌓아온 왕실의 부를 과시할 수 있을 겁니다.”
“그 거 괜찮은 제안이로구나!. 네가 조선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신선차 무역으로 얻은 옷감과 은천에서 생산된 은이 왕실의 창고에 가득하고 짐이 북벌을 하면서 얻은 전리품도 적지 않다. 그 많은 재물을 어디다 쓸지 고민이었는데 그런 방법이 있었어. 그런데 3층 건물이라고 하니 또 하나 걱정스러운 점이 있구나.”
“어떤 부분이 마음에 걸리시는지요?”
“그렇게 크고 높은 건물이 한곳에 모여있다가 불이라도 나면 왕검성 전체가 잿더미가 될 수도 있을 게야.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고민해 봤느냐?”
“물론입니다. 아버지. 로마에는 삼의 줄기와 석회를 섞어서 만드는 대마 콘크리트라는 건축 자재가 있사온데 이 물건은 가볍고 단단하면서도 불에 잘 타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마 콘크리트로 만든 벽돌로 집을 지으면 한 집에서 불이 나도 옆집에 불이 옮겨붙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쉽게 화재를 진압할 수 있습니다.”
“허허······. 천하는 짐의 생각보다 훨씬 넓은 곳이었구나. 서쪽 대륙에서 가장 부강한 진나라에도 그런 물건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거늘.”
“그리고 그 외에도 인술라가 완공되기 전에 왕검성의 성벽 안에 불이 났을 경우를 대비해 상설 소방대를 조직할 생각입니다.”
“상설 소방대?! 불이 나면 백성과 병사들이 물통을 들고 화재현장으로 달려가 불을 끄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 설마 왕검성 시내 곳곳에 우물을 팔 생각인 게냐?”
“그 방법도 괜찮습니다만, 우물을 팔 자리에 들어서 있는 건물을 철거해야 하고 인력과 재물이 많이 소비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자가 데리고 온 크테시비우스라는 공인에게 큰 물통을 싣고 다니면서 불이난 집에 굵은 물줄기를 뿜어내는 소방용 마차를 만들게 할 생각입니다.”
“그것 또한 참으로 신기한 말이구나! 물통으로 물을 퍼서 끼얹는 게 아니라 물줄기를 뿜어낸다고? 마치 소변을 보듯이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아버지. 그 크테시비우스라는 공인은 소인과 만나기 전에 이미 펌프라는 신기한 물건을 발명했는데, 그 물건의 일부를 물에 담그고 손잡이를 위아래로 움직이면 금속으로 만든 관을 통해서 물이 쏟아져 나온다고 합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 크테 뭐라고 하는 자는 물건에 신통력을 담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왕실 창고의 열쇠를 맡길 테니 어서 그 대마 콘크리트와 펌프라는 물건을 만들어보아라! 대체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