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43화] 그럼 개발을 시작하지.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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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저기 좀 보십시오! 북동쪽에 항구가 보입니다!”
한부는 석의 외침을 듣자마자 계와 함께 선실에서 뛰쳐나와 큰 창고 몇 채와 초가집 수백 채가 늘어서 있는 고조선의 무역항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분명히 우리가 떠나왔던 항구구나! 드디어 고향에 돌아왔어! 두 사람 다 지난 2년 동안 나 때문에 정말 고생 많았다!”
그 말을 듣고 계와 석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전하. 전하께서 이번 국외 순방에 만약 소신과 석을 데리고 가주지 않으셨다면 저희는 여전히 우물안 개구리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었을 겁니다.”
“전하. 계의 말이 백번 옳습니다. 이번 여행 도중에 두세 번쯤 죽을 고비를 넘기긴 했습니다만, 외국에서 쌓은 방대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생각하면 싼 수업료를 치른 셈이지요.”
“두 사람 다 그렇게 말해주니 참으로 고맙구나. 드디어 우리가 온갖 고생을 하면서 얻어온 온 세상의 기술로 나라를 부강하게 할 일만 남았다! 앞으로도 고생길이 훤하니 모두 마음 단단히 먹어라!”
“그런 고생이라면 달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전하!”
세 사람은 조국을 발전시킬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그들과 같은 배를 타고 있던 드루수스는 선실에서 나오자마자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고조선의 항구도시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태자에게 물었다.
“저······ 전하. 설마 저 작은 항구마을에 배를 대실 생각이신지요?!”
“음······.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살던 그대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겠지만, 저 항구도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무역항이라오.”
“저 작은 마을이 무역항이란 말씀입니까?! 해안가에 늘어선 초라한 나무집을 보니 고귀한 분께서 저 같은 퇴물 노예를 거둬주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이 나라의 건물은 왕궁까지도 목재로 지었다오. 그대는 앞으로 열심히 새 건물을 짓고 공인들에게 로마의 건축기술을 가르쳐서 조선 땅을 천 년이 지나도 굳건할 석조 건물로 가득 메워주시오.”
“저 땅에 발을 디디면 밤낮으로 일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오! 기술자의 수호신이신 위대한 불카누스시여! 부디 가엾은 노병의 건강을 지켜주시옵소서!”
“드루수스. 너무 겁먹지 마시오. 앞으로 꽤 바빠지긴 할 테지만, 알렉산드리아의 노예보다는 조선의 관리로 사는 게 훨씬 만족스러울 거요.”
한부가 겁먹은 로마인 건축가를 달래는 동안 태자 일행을 태운 28척의 범선이 항구에 입항했다.
마침내 한부가 일행과 함께 커다란 범선에서 내려 왕실 직할령인 항구도시의 시내로 들어서려는 순간, 도시의 관리가 그의 곁으로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태자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세관 책임관 율이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잘 있었나? 계와 석 말고 조선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니 참으로 반갑구먼!”
“이곳을 떠나실 때와는 전혀 다른 배를 타고 입항하셔서 마중이 늦었습니다. 부디 소신의 실책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대의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니 걱정하지 말게. 작은 배 한 척을 타고 떠난 태자가 커다란 범선 스물여덟 척을 끌고 돌아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그럼 저기 있는 외국 선단에 탄 사람이 모두 전하의 수행원이란 말씀이신지요?!”
“그렇다네. 배를 몰고 온 선원들은 보급을 마치면 자기 나라로 돌아갈 예정이지만, 나머지 승객 695명은 모두 조선에 귀화할 걸세. 하나같이 무예가 뛰어나거나 특출난 기술을 익힌 귀중한 인재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곧바로 왕검성의 궁궐에 전령을 보내서 왕검께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게. 아, 그리고 가지고 온 짐이 워낙 많아서 하역 작업을 마치려면 며칠 걸릴 걸세. 왕검성으로 출발할 준비를 마칠 때까지 배에서 내린 승객들이 묵을 숙소와 양식을 준비해 주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잠시 관청에서 기다려 주시면 금방 숙소를 준비하겠습니다.”
세관 책임관은 태자의 명을 받자마자 한부와 같은 배를 타고 온 승객들을 관청으로 안내한 다음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항구도시는 평소 제나라나 초나라에서 온 사신이나 상인들이 묵는 숙소가 마련되어 있었기에 배에서 내린 승객 전원이 해가 지기 전에 육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 후 닷새가 지나자 항구의 인부들이 배에서 내린 화물을 소가 끄는 수레에 옮겨 싣는 작업을 마쳤다.
그러자 한부는 수레 수십 대와 병사가 아닌 승객들이 탄 마차를 한 줄로 세운 다음 두 부하 장수와 함께 인도의 명마 마르와리를 타고 행렬의 맨 앞에 섰다.
그리고 길게 늘어선 행렬의 양옆에는 강철제 무기로 무장한 인도인 병사 5백 명을 배치해 행군 도중에도 마차에 탄 승객과 화물을 호위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드디어 왕검성으로 출발할 모든 준비가 끝나자 한부는 말 위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동쪽으로 행군하라! 앞으로 사흘 뒤에는 왕검성에 도착해야 한다!”
태자가 소리치자 긴 수레 행렬이 항구도시에서 벗어나 흙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주변 마을에 사는 백성들이 길가로 몰려나와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태자 일행을 구경하면서 수군거렸다.
“이보게! 저기 좀 보게나! 피부가 갈색인 병사들이 태자 전하를 호위하고 있어!”
“어이구야! 안 그래도 도깨비처럼 생긴 사람들이 큰 칼까지 허리에 차고 있으니 더 무서워 보이는구먼!”
“전하께서는 왜 저렇게 무시무시하게 생긴 병사들을 조선에 데려오신 건지 모르겠네.”
“초나라에서 귀한 물건을 많이 가져오시느라 호위병이 필요하셨겠지. 수레에 실린 물건 중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도 많이 있지 않나.”
“듣고 보니 그렇구먼. 그나저나 저렇게 많은 선물을 가지고 돌아오신 걸 보면 초나라 제후들이 태자 전하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던 모양일세.”
그렇게 사흘 동안 열심히 행군한 끝에 태자 일행은 드디어 왕검성에 도착했고, 한열 왕검은 장남이 궁궐까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아내와 함께 성문으로 마중을 나갔다.
한부는 성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마중을 나온 부모를 보고 말 등위에서 뛰어내리더니 반가운 목소리로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폐하! 모후시여! 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두 분 다 그동안 무탈하셨는지요?!”
한열 왕검은 남국의 햇볕에 피부가 건강한 구릿빛으로 변한 장남을 얼싸안으면서 대답했다.
“태자야! 겨우 두 해 만에 참으로 늠름해졌구나!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 돌아와 줘서 고맙다!”
모후 연도 그런 두 부자 곁으로 다가가더니 눈물을 글썽이면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태자! 이게 대체 얼마 만입니까! 어디 다친 곳은 없나요?”
“모후시여! 소자 그 어느때보다 건강하옵니다! 아무 걱정마십시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이 어미에게 서신 한 통 안 보냈나요? 태자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늘 걱정이 많았습니다.”
한부는 애정과 원망이 뒤섞인 어머니의 말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까지 아직도 내가 초나라에 다녀온 줄 알고 계시잖아? 그럼 아버지는 끝까지 내가 마우리아 제국에 간 걸 숨겨오셨단 말이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머니한테까지 숨겨오셨을 줄이야!’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아버지의 안색을 살폈지만, 한열 왕검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들의 시선을 피했다.
한부는 짧은 순간에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이 위기를 모면할 방법을 궁리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모후시여. 대국에서 여러 현인을 만나며 많은 것을 배우다 보니 미처 서신을 보낼 틈이 없었습니다. 부디 소자의 무심함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모후 연은 부자의 수상쩍은 표정과 태자 일행을 호위하고 온 인도인 병사들을 보고는 한부의 뒤에 있는 석을 불렀다.
“석 무관은 이리 가까이 오세요.”
태자와 함께 말에서 내렸던 석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모후의 곁에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대답했다.
“모후시여. 무관 석 대령했습니다.”
“석 무관. 왕실의 녹을 먹는 신하가 왕족에게 거짓을 고하는 게 얼마나 큰 죄인지 잘 알고 있지요?”
“무······ 물론입니다. 모후시여.”
“우리 태자와 함께 어디에 다녀왔나요? 그대가 타고 있던 우람한 말과 피부가 어두운 호위병들을 보면 초나라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그게······ 서쪽의 대국에 다녀왔습니다. 모후시여.”
“서쪽의 대국이 어디 한두 개인가요? 대체 왕검성에서 얼마나 떨어진 나라에 다녀온 건지 자세히 대답하세요. 서쪽 대륙에서 두 번째로 부강하다는 조나라인가요? 아니면 머나먼 진나라인가요?”
석은 모후의 날카로운 질문에 울상을 지으면서 태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한부는 그런 부하 장수와 눈을 마주치면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마우리아국이라는 나라에 다녀왔습니다. 모후시여. 서쪽 대륙의 일곱 나라를 합친 것보다 부강하고 영토가 넓은 나라였습니다.”
“뭐라고요?! 천하에 그런 나라가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거늘! 설마 왕검 폐하 앞에서 국모를 능멸하는 건 아니겠지요?!”
“모후시여! 소신이 어찌 감히 그런 무엄한 일을 저지르겠나이까! 마우리아국은 왕검성에서 4천 리 밖에 있는 대국입니다!”
“4천 리······.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군요. 석 무관. 그만 일어나서 그대의 자리로 돌아가세요.”
석은 모후의 명을 받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여 인사한 후 자기 말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모후는 고개를 돌려서 한부를 바라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태자. 궁궐을 떠나기 전에 낭림산맥 너머의 은광을 찾아냈을 때처럼 계시몽을 꾼 거지요? 꿈속의 귀인께서 이번엔 서쪽의 대국에 나라와 왕실을 부강하게 할 지식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던가요?”
“그······ 그렇습니다. 모후시여. 미리 말씀드리지 않은 소자의 잘못을 용서해주십시오.”
“후······ 그렇게 먼 곳에 있는 나라의 사람들과 교류하려면 천하의 모든 말을 할 줄 아는 태자가 갈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리고 저 강인해 보이는 갈색 피부의 병사들과 수레에 실린 값진 물건들만 봐도 태자가 서역에 다녀왔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건 잘 알겠어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후시여!”
“고맙긴요. 태자는 아무 잘못 없어요. 나랏일과 관계된 사안은 어미보다 나라를 다스리시는 왕검께 먼저 말씀드리는 게 도리니까요. 그리고 폐하의 표정을 보니 태자가 궁궐을 떠나기 전에 모든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 같군요. 폐하. 소첩의 말이 맞는지요?”
한열 왕검은 아내의 질문에 침통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면서 무거운 입을 열었다.
“부인······. 면목없소. 짐은 분명히 태자가 먼 나라로 떠난다고 말하면 크게 반대할 줄로만 알고······.”
“폐하. 태자가 무려 4천 리나 되는 뱃길을 지나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그 얘기는 먼저 지친 장남에게 따듯한 밥을 먹인 다음 하시는 게 어떠실지요? 물론 단둘이서 말입니다.”
“음······. 부인의 뜻대로 하겠소.”
한열 왕검은 아들과의 재회를 마치고 온몸에서 냉기를 뿜어내는 아내와 함께 쌍두마차에 오르면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전능하신 천신이시여. 먼 길을 떠났던 태자를 지켜주셨듯 오늘 밤 저의 목숨 또한 지켜주소서······.”
* * *
부모와 함께 왕검성에 돌아간 한부는 휴가를 즐길 틈도 없이 고조선에 귀화한 외국인들이 살 집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했다.
태자가 외국에서 데려온 기술자와 병사들은 일단 사신단을 위한 숙소에 묶게 됐지만, 인원이 많아서 실내가 비좁았기 때문이다.
한부는 오랜만에 궁궐의 자기 침실에서 하루 푹 쉰 다음 아침 일찍 사신단 숙소를 찾아가 로마 군단병 출신인 드루수스를 찾았다.
“드루수스. 드디어 자네가 실력을 발휘해 줄 때가 됐네. 먼저 숫자가 많은 마우리아 제국 출신 병사들이 지낼 집을 지어야 할 텐데 어떤 건물을 짓는 게 좋겠나?”
“병사들의 집을 지을 위치는 어디쯤으로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그자들은 전원 왕실 근위병으로 삼을 생각이라 최대한 궁궐에서 가까운 곳에 병사들의 집을 지을 생각이네.”
“궁궐 근처에는 공터가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인술라(Insula)를 몇 채 짓는 수밖에 없겠군요.”
인술라는 기원전 3세기부터 고대 로마인들이 짓기 시작한 아파트의 조상쯤 되는 건물로 보통 5층건물로 지었다.
한부는 왕검성에 동아시아 최초의 아파트가 들어서는 모습을 상상하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정말로 인술라를 지을 수 있겠나?”
“재료와 인부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럼 어서 필요한 재료와 인부의 수를 알려주게! 하루라도 빨리 그 건물을 보고 싶으니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