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41화] 독을 먹는 새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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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아대륙을 떠난 태자 일행을 태운 범선 서른 척은 파도 부족의 선원들이 미리 닦아놓은 항로를 따라 거침없이 나아갔다.
한부의 선단은 항로를 찾느라 허비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 덕분에 마우리아 제국을 떠난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현대의 남베트남 지역 근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귀향길에 오른 지 딱 두 달째 되던 날, 한부는 빠른 항해속도에 기뻐하며 기함의 인도인 선장을 칭찬했다.
“선단을 이끄는 솜씨가 정말 훌륭하구먼! 우리 배의 갑판에서 깃발을 한번 흔들면 다른 배들이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네! 자네 덕분에 예정보다 빨리 조선에 돌아갈 수 있겠어!”
“과분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전하. 하오나 소인 보다는 저 대만이라는 섬의 원주민들의 공이 더 크겠군요. 저들이 하늘의 별을 보고 육지가 보이지 않는 원양에서도 바닷길을 찾아준 덕분에 항해 일정을 많이 줄일 수 있었습니다.”
“마우리아 제국과 파도 부족의 항해기술이 잘 어우러진 덕에 이렇게 큰 성과가 난 거구먼. 그럼 이대로 서쪽의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항해해주게. 그곳에 있는 반랑국이라는 나라에 들러서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 물과 식량을 보급하는 게 좋겠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그러나 바다의 신이 고조선의 태자가 별다른 고난을 겪지 않고 역사적인 항해에 성공하는 걸 질투했는지 한부의 선단이 현대의 북베트남 지역의 근해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에게 시련을 내렸다.
“선장님! 남서쪽에서 폭풍우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갑판 위에서 일행 네 명과 함께 바닷바람을 쐬던 한부는 인도인 선원의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나왔다.
“시벌······.”
그의 눈동자에 비친 먹구름 떼는 맑은 물에 떨어진 잉크처럼 무섭게 빠른 속도로 푸른 하늘을 검게 물들이면서 태자 일행의 선단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후 거센 돌풍이 바다를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파도가 요동치기 시작했고 하늘에선 칠흑 같은 먹구름을 찢고 고개를 내민 천둥 번개가 겁먹은 선원들의 고막을 할퀴었다.
- 우르릉 콰앙!
그러자 태자의 곁에 있던 로마인 드루수스와 그리스인 크테시비우스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한부에게 소리쳤다.
“오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시여! 저희를 구해주소서!”
“전하! 폭풍우가 더 거세지기 전에 해안가에 배를 정박시켜야 합니다!”
계와 석은 두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과 비슷한 말을 했다.
“전하! 이 바다의 용왕이 노한 모양입니다! 뭍이 멀지 않으니 저쪽으로 피신하셔야 합니다!”
“전하!계의 말대로 하는게 좋겠습니다! 전 수영도 못 한다구요!”
그런데 바로 그때, 파도 부족의 선원 중 한 명이 태자의 곁으로 달려오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부족의 은인이시여! 선장에게 당장 해안가에서 떨어지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이대로 해안가 근처에서 얼쩡거리다가는 다 죽습니다!”
한부는 그의 말을 듣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다음 돌풍을 이겨내며 기함의 선장에게 다가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바람이 더 거세지기 전에 먼 바다로 나가서 흩어져야 하네!”
“소인의 생각도 같습니다! 다른 배에도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선장은 즉시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려 항로를 바꾸는 한편, 뿔나팔을 불어 기함을 따르는 범선에 신호를 보냈다.
- 뿌우우우우! 뿌우우우우! 뿌우우우우우우우!
기함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범선의 선원들은 그 신호의 의미를 알아채고 다시 뿔나팔을 불어 다른 배에도 태자의 뜻을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른 척의 범선은 다른 배와의 거리를 벌리며 북동쪽의 원양을 향해 항로를 틀었다.
그러자 드루수스는 그 모습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한부에게 따지고 들었다.
“전하! 서둘러 육지로 도망쳐도 부족할 때에 어찌 먼바다로 배를 몰아가십니까?! 이러다간 우리 모두 물고기의 한 끼 식사 거리가 되고 말 겁니다!”
“드루수스! 진정하게! 지금 급하게 해안에 배를 정박하려고 하다가는 암초와 다른 배에 부딪혀서 끔찍한 해양사고가 발생할 걸세! 자네와 크테시비우스는 선실로 들어가서 우리 배가 무사하도록 기도나 드리고 있게!”
“오오! 위대한 넵튠이시여! 저희를 구해주소서! 제발 전하의 판단이 빗나가지 않길 바랍니다!”
한부는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쥐며 선실로 도망치는 두 서양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분명 이 상황에선 내 판단이 맞을 거다. 지금 해안에 접근했다가는 백프로 1차 포에니 전쟁의 로마 해군 꼴이 날 거라고.’
로마 해군은 지금 한창 진행 중인 1차 포에니 전쟁을 치르면서 몇 년 뒤에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해양사고를 겪게 된다.
원역사의 기원전 255년에 북아프리카 근해에서 카르타고 함대를 이긴 로마 해군 함대는 귀국길에 폭풍우를 만나자 무턱대고 근처의 해안가로 도망쳤다.
그리고 한 덩어리로 똘똘 뭉쳐 육지로 도망치던 갤리선들은 암초와 아군 전함에 연쇄적으로 충돌하면서 2백 척이 넘는 전함이 침몰하고 무려 10만여 명 사상자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한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가까운 미래의 로마인들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후 육지가 보이지 않는 먼 바다로 나간 범선의 선원들은 돛을 완전히 접고 닻을 내린 다음 거센 폭풍우에 맞섰다.
한부는 선장에게 갑판 위의 지휘를 맡기고 항해 경험이 부족한 승무원들을 데리고 선실로 내려간 다음 그들을 안심시켰다.
“선원들이 배의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으니 별일 없을 거다. 모두 마음 단단히 먹고 폭풍우가 끝날 때까지 버티자.”
그후 용감한 선원들이 배에 들어온 바닷물을 퍼내면서 이틀을 버텨내자,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던 폭풍우가 간신히 잦아들었다.
한부는 파도 때문에 심하게 들썩이던 배의 움직임이 잦아들자, 갑판 위로 올라와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선장을 격려했다.
“덕분에 살았네. 이틀 동안 정말 고생 많았구먼. 조선에 돌아가면 자네와 선원들에게 큰상을 내리겠네.”
“전하. 아직 안심하시긴 이릅니다. 먼저 선단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항로를 수정해야 합니다.”
“그렇겠지. 다들 우리처럼 무사해야 할 텐데······. 그럼 다른 배에 신호를 보내보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선장은 한부와의 대화를 마치자마자 깃발과 뿔나팔로 주변의 범선에 신호를 보냈다.
그로부터 반나절 후, 폭풍우를 버텨낸 모든 선박이 한곳에 모이자 선장은 피해 현황을 집계한 다음 태자에게 보고했다.
“전하. 범선 서른 척 중 두 척이 침몰했습니다. 침몰한 두 범선의 승무원 예순 명 중에서 열다섯 명이 근처에 있던 다른 배에 구출되었고 나머지는 죽거나 실종됐습니다.”
“끔찍한 일일세. 그렇게 많은 사람이 시커먼 바닷속으로 사라지다니······.”
“전하. 폭풍우가 거셌던 걸 생각하면 정도 피해로 끝난 게 기적입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그럼 어서 조선으로 돌아가서 희생된 선원들의 넋을 기려야겠구먼. 바로 항해를 재개할 수 있겠나?”
“안타깝게도 조선으로 출발하기 전에 먼저 가장 가까운 해안가에서 돛이 찢어진 배를 정비해야 할 듯합니다.”
“알겠네. 그리고 가라앉은 배 두 척에는 귀중품은 별로 없었지만, 보급품이 많이 실려있었지. 물과 식량을 더 보충할 필요가 있겠어. 파도 부족의 선원에게 가장 가까운 육지를 찾아내라고 전하겠네.”
한부는 선장과의 대화를 마치자마자 기함에 타고 있는 파도 부족의 선원들에게 가장 가까운 육지를 찾으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그중 한 명이 북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태자에게 대답했다.
“폭풍우가 그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동쪽에서 날아오는 바닷새를 보았습니다. 북동쪽으로 항해하다 보면 며칠 안에 분명 육지가 나올 겁니다.”
그 후 28척으로 줄어버린 태자 일행의 선단은 육지를 찾아 물살을 헤치며 북동쪽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사흘이 흘러가자 선수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던 선원이 드디어 육지를 발견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전방에 육지가 보입니다! 만으로 이루어진 천연항구입니다!”
폭풍우에 지친 태자 일행은 수평선에 고개를 내민 육지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넓게 펼쳐진 평평한 백사장을 향해 배를 몰아갔다.
기함이 만 안쪽에 접근하자 한부는 갑판 위에서 육지 쪽을 바라보면서 계와 석에게 말했다.
“봐라. 백사장 너머에는 울창한 우림이 있구나. 저 숲에 수색대를 보내서 물과 식량을 구해와야겠다. 통역 때문에 나도 함께 갈 생각이니 다들 무기를 챙기거라.”
“보기만 해도 으스스한 숲이군요. 위험한 맹수가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계가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석이 너털웃음을 웃더니 호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계! 우리가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걸 벌써 잊은 거야?! 더운 나라에 사는 호랑이는 조선의 호랑이보다 덩치가 작다니까 너무 겁먹을 거 없어!”
그러자 한부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면서 석에게 경고했다.
“계의 말이 맞다. 어쩌면 저 숲에는 어쩌면 호랑이보다 더 위험한 짐승이 있을지도 몰라. ”
“전하. 이 세상에 호랑이보다 더 위험한 동물도 있습니까?”
“있고말고. 그러니 숲에 들어가면 한시도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범선은 해안가 근처에 닻을 내리고 정박했다.
곧 태자 일행 중 한부, 석, 계, 그리고 아열대우림에 익숙한 마우리아 제국 출신 병사 80명과 파도 부족 선원 20명이 무장을 마친 후 수십 척의 보트를 타고 해안가로 향했다.
103명의 수색대는 독충에 물리지 않기 위해 두꺼운 가죽신발과 가죽옷을 몸에 걸치고 지나는 곳에 있는 나무에 칼로 문양을 새기면서 중원 대륙 장강 이남의 열대우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길도 없는 숲을 지나던 중 선두의 파도 부족 출신 선원이 발걸음을 멈추고 바로 뒤에서 그를 따라가고 있는 한부에게 보고했다.
“전하. 전방에서 시냇물 소리가 들립니다. 아마 50보쯤만 더 걸어가면 식수를 보충할 수 있겠습니다.”
“아! 정말 다행이구먼! 어서 냇가로 가서 물통에 깨끗한 물을 채우세!”
“알겠습니다. 다만 물가에는 목을 축이러 온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가 많이 모이는 법이니 지금보다 더 조심하면서 전진해야 합니다.”
“알겠네. 작은 소리나 움직임도 놓치지 않도록 조심하겠네.”
그런데 한부가 선두의 병사와의 대화를 마치고 다시 다리를 움직이려는 순간,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울창한 숲속에서 소름 끼치는 짐승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끼에에에에에에에엑!
103명의 수색대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손에 든 무기를 세게 움켜쥐면서 더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냇가에 도착하자 드디어 괴성을 질러댔던 짐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두의 파도 부족 선원은 짐승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뭐야? 그렇게 소름 끼치는 소리를 지르던 게 고작 새였어? 그나저나 참 재수 없게도 생겼구먼.”
한부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자 그의 눈에 냇가에서 뱀을 잡아먹고 있는 새 두 마리가 보였다.
그 새들은 어지간한 독수리만큼 덩치가 컸고 온몸에 짙은 녹색 깃털이 자라나 있었으며 구리색의 부리는 마치 황새처럼 길었다.
또한 머리에는 기괴한 모양의 볕이 자라있고 눈동자는 피처럼 붉은색이어서 세상의 그 어떤 새보다도 불길해 보였다.
그는 그 새 두 마리를 보자마자 창대를 움켜쥔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저 새새끼들 설마······?!’
그런데 그때, 파도 부족의 선원이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나뭇가지를 쳐내던 곡도를 휘저어 눈앞의 새를 쫓아내려고 했다.
“훠이~! 저리 꺼져라! 맛없게 생긴 것들아!”
한부는 그 모습을 보고 창대를 앞으로 내밀면서 그에게 소리쳤다.
“어서 다시 돌아오게! 저 새는 호랑이보다 위험할지도 모르네!”
“네?!”
파도 부족 선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 커다란 새 두 마리가 다시 불길한 괴성을 지르며 일제히 날아올랐다.
- 끼에에에에에에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