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40화] 귀향길에 오르다.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태자 일행이 이집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파탈리푸트라에 돌아온 다음 날부터 한부는 본격적으로 제왕학과 마우리아 제국의 행정제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저녁 일과를 마친 아소카 대왕과 함께 마우리아 제국의 전략서 아르타 샤스트라를 읽고 대화하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게 정말 고대에 편찬된 책이라고?! 통치에 도덕을 배제하고 실용성을 강조하는 정치 서적이라고만 알았었는데 국가운영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다 때려 넣으려고 만든 책이었구나.’
전체 15장으로 구성된 아르타 샤스트라에는 널리 알려진 대로 적국과 국가 내부의 적을 음험한 계략으로 제거하는 방법이나 첩자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 등도 적혀있었지만, 여러 가지 광물을 캘 수 있는 광산을 찾는 법이나 마우리아 제국의 행정‧사법제도 또한 찾아볼 수 있었다.
한부는 그 책의 내용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부분을 발견하고는 아소카 대왕에게 물었다.
“삼라트시여. 마우리아 제국의 율법에는 정말 이 책에 적힌 대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규정도 있는지요?”
“물론이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율법에는 노동자가 고용주와 계약한 내용보다 더 많이 일했을 때는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추가작업에 관한 초과수당을 주도록 강제하는 규정이 있소. 노동자에 관한 법규는 민생과 직결되기에 특히 엄격하게 집행해야 하오.”
그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는 바람에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21세기의 한국에도 야근 수당 못 받는 직장인들이 수두룩한데 기원전 3세기에 초과수당이라니······. 괜히 마우리아 제국 시대를 인도 역사 중에서 최고의 전성기로 치는 게 아니었구나.’
그렇게 한부가 당대 최강대국의 통치술을 배우는 동안 어느덧 시간이 흘러 기원전 263년의 봄이 다가왔다.
태자 일행은 날씨가 점점 따듯해지자 고조선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파탈리푸트라의 궁궐 밖으로 나섰다.
아소카 대왕은 파탈리푸트라의 성문까지 배웅을 나와서는 섭섭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면서 한부에게 말했다.
“그대와 헤어져야만 하는 게 참으로 아쉽지만, 불자로서 동방에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진 젊은 현자의 앞길을 막을 수가 없구려. 전에 약속한 대로 조선으로 떠날 인력과 물자는 모두 항구도시에 미리 보내두었소.”
“바다보다 깊은 삼라트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고향으로 떠나는 배 위에서 매일 마우리아 제국의 신민들이 삼라트의 인도 아래 열반을 향해 나아가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대도 훗날 조선의 왕이 되어 동방의 여러 나라에 불교를 전파하길 바라오. 이 성물(聖物)을 가져가면 동방의 백성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이니 부디 받아주시오.”
“불교의 성물이라 하신다면······ 헉! 삼라트시여! 그 귀한 물건을 정말 제게 맡기셔도 될는지요?!”
한부가 마우리아 제국에 도착한 후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 허둥거리자, 아소카 대왕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 뒤에 서 있던 하인에게 지시했다.
“동방의 현자에게 손에 든 상자를 건네주어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위대하신 삼라트시여.”
하인이 앞으로 걸어 나와 큼직한 황금 상자를 고조선의 태자에게 건네주었다.
한부는 마치 갓난아기를 안 듯 조심스럽게 황금 상자를 받은 다음 천천히 뚜껑을 열더니 그 안에 담겨 있는 오색찬란한 구슬 무더기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아······!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부처님의 진신사리구나!”
진신사리는 열반에 든 부처님의 육신을 화장한 뒤에 나온다는 작은 구슬 모양의 결정체로 불교 신자 사이에서는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성물이다.
전승에 따르면 진신사리는 그 양이 8섬 4말이나 되는데, 당시 불교를 믿던 고대 인도의 여덟 나라가 진신사리를 나눠 가진 다음 각자의 나라에 불탑을 하나씩 세워 그 안에 안치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2백여 년이 지난 후 원역사의 아소카 대왕은 불교에 귀의한 후 진신사리가 안치된 여덟 개의 탑을 해체한 다음 마우리아 제국 전역에 8만 개가 넘는 불탑을 세워 그 안에 사리를 조금씩 나눠서 안치했다.
한부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귀한 성물을 선뜻 내주는 아소카 대왕의 의도를 알아내려고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현대로 가져가면 조 단위의 가격이 붙을 엄청난 유물이잖아. 이 귀한 걸 왜 그냥 줄 리는 없을 텐데······. 대체 어떤 어려운 부탁을 하려는 거지?’
그러자 아소카 대왕은 그런 한부의 속내를 눈치채고 너털웃음을 웃은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하하하하! 아르타 샤스트라의 음험한 책략을 배운 덕인지 생각이 늘었구려! 그저 그대가 정말로 부처님의 말씀을 널리 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니 의심을 거두시오.”
“삼라트시여. 그러하시다면 제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억만금에 팔지 않을 거라고 믿어주시는 겁니까?”
“그대는 6천만 백성을 거느린 마우리아 제국의 옥좌를 사양하지 않았소? 그 자리를 받아들였으면 그대가 손에 들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진신사리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오.”
“아······! 그럼 그날은 저를 시험하신 거였군요!”
“그대가 세상에 부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할 인물인지 확실히 알아보고 싶었다오. 포교의 사명을 잊고 권력의 유혹에 휘둘리는 인물에게 진신사리를 맡길 수 있을 리 없지 않소? 부디 짐의 무례를 용서하시오.”
“이토록 귀한 성물을 선물하신 분께 용서라니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삼라트시여! 삼라트의 바람대로 천수를 다할 때까지 동방 전역에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한부는 몇 번 더 아소카 대왕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 후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마차에 올라 동쪽으로 출발했다.
* * *
파탈리푸트라를 떠난 태자 일행은 20일 만에 처음 인도 땅을 밟았던 항구도시에 도착했다.
한부가 도시의 성문을 통과하자 그 지역을 다스리는 총독이자 마우리아 제국의 태자인 쿠날라가 마차에서 내리며 수행원들과 함께 마중 나와 그에게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조선의 태자여. 삼라트의 명을 받들어 그대를 마중 나왔습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삼라트의 후계자시여. 지난번에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뵙지 못해 아쉬웠는데, 마우리아 제국에 도착하고 해가 바뀌어서야 인연이 닿았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한부는 쿠날라의 짧은 대답을 듣고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쿠날라가 그를 대하는 태도는 공손하면서도 뭔가 차가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마우리아 제국 태자와 함께 도시의 성문을 지나며 곰곰이 생각하다 쿠날라가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유를 깨달았다.
‘맞다. 이 친구는 자이나교도였지. 내가 아버지를 자기하고 다른 종교로 개종해 버려서 못마땅한 거구나. 어차피 아소카 대왕은 불교에 귀의하기 전에도 자이나교도는 아니었는데.’
두 태자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거리를 지나다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마차에서 내렸다.
쿠날라는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백 명의 병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한부에게 말했다.
“이 자들은 위대하신 삼라트의 명을 받들어 평생 그대를 지킬 3백 명의 호위병입니다. 하나같이 칼링가 왕국 정복전에서 활약한 역전의 용사들로 제가 다스리는 영지에서 가장 용맹한 병사들이지요. 다만 마우리아 제국을 떠난 이후에는 이들의 봉급은 조선의 왕실에서 지급해야 함을 꼭 기억하십시오.”
한부는 그 말을 듣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열 맞춰 서 있는 인도인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병사들은 하나같이 갑옷을 입고 있지 않았지만, 강철로 만든 장검과 창, 쇠가죽을 덧대서 만든 긴 방패, 그리고 습기에 강한 대나무 장궁 등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소카 대왕의 정복전 중 가장 치열했던 칼링가 왕국 정복전에서 활약한 병사들이라면 전투경험이 풍부할 게 분명했다.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하고는 말이 안 통해서 당장 전쟁터에 내보낼 수는 없지만, 호위병으로는 더할 나위 없겠네. 한국 조어를 좀 익히고 나면 훈련 교관 역할도 잘할 거 같고.’
그는 속으로 뛸 듯이 기뻐했지만, 체면을 차리려고 일단 사양하는 시늉을 했다.
“위대하신 삼라트의 관대함에 다시 한번 탄복했습니다. 허나 제가 감히 삼라트께서 어렵게 육성하신 정예병을 5백 명이나 데려가도 될는지요?”
“조선의 태자여. 그대의 조국에는 백성이 몇 명이나 살고 있습니까?”
“제가 조선을 떠날 때는 30만 명이 조금 넘었습니다.”
“마우리아 제국에는 상비군만 60만 명입니다. 그들은 모두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평시에도 훈련을 멈추지 않는 직업군인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병사 5백 명을 그대에게 선물하는 건 조선의 국왕께서 외국에 병사 한 명을 보내는 것보다도 부담이 적으니 사양하지 말고 받으십시오.”
한부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울화가 치밀었지만, 마우리아 제국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 화를 참았다.
‘재수 없는 놈! 내가 네 아버지 얼굴을 봐서 참는다! 몇 년 뒤에 계략에 휘말려서 눈멀고 태자 자리도 뺏길 놈하고 싸우면 나만 손해지.’
그는 잠시 마우리아 제국의 태자와 서로 겉으로는 공손한 태도로 대화를 나누다가 화물 선적 작업이 끝나자마자 계, 석, 크테시비우스, 그리고 드루수스와 함께 거대한 기함의 갑판에 올랐다.
드디어 총 1,200명의 고조선인과 고대 인도인, 그리스인, 로마인. 그리고 대만 원주민을 태운 범선 서른 척이 인도의 항구를 떠날 준비를 마치고 일제히 돛을 펼쳤다.
그러자 석이 기함의 돛을 바라보더니 들뜬 목소리로 한부에게 소리쳤다.
“전하! 우리 배의 돛을 좀 보십시오!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 들지 않으십니까?”
“이집트에 갈 때도 마우리아자 제국의 배를 탔으니 당연히 익숙하겠······. 어?!”
한부는 고개를 돌려 기함의 돛을 바라보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중얼거렸다.
“저건 폴리네시아식 삼각돛이잖아!”
마우리아 제국의 조선공들은 한부가 이집트에 다녀오는 동안 고조선의 사절단이 타고 온 아우트리거 카누를 보고 고대 인도의 대형 범선에 원양항해에 적합한 삼각돛을 접목한 것이다.
태자가 놀란 눈으로 삼각돛을 뚫어지게 바라보자, 계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저건 역풍에 강한 파도 부족의 돛 아닙니까? 아무래도 마우리아국 선원들이 파도 부족의 뛰어난 조선술을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이제 예정보다 더 빨리 왕검성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다!”
“그래. 그랬겠구나.”
한부는 고조선에 더 빠르고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게 되어 기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역사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바뀔까봐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답이 없는 고민을 멈추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명나라의 제독 정화도 대함대를 이끌고 아프리카까지 갔지만, 결국 천하의 다른 나라에는 배울 게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중국으로 돌아갔잖아. 마우리아 제국의 선원들이 원역사보다 먼바다로 나가게 돼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할 거야.’
한부는 모든 고민을 털어버리고 선수에 서서 바닷바람을 맞으면 다짐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고조선에 돌아가면 14년 뒤에 중원 진출의 적기가 올 때까지 최대한 동맹국을 늘리고 국력을 길러야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