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38화] 서방의 기술과 인재를 모으다. (6)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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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는 크테시비오스의 부친에게 자기가 묵고 있는 숙소의 위치를 알려준 다음 이집트인 안내인에게 말했다.
“이제 그 유명한 알렉산드리아의 시장을 좀 구경하고 싶구먼. 먼저 물건을 파는 시장에 갔다가 노예시장으로 가세.”
“알겠습니다. 나리. 마침 요즘은 몇 년 전 위대하신 파라오께서 시리아와 소아시아 지역을 평정하신 덕에 오리엔트 출신 미녀들이 자주 매물로 나옵니다요.”
“내가 찾는 건 로마 출신의 남자 노예일세.”
“아······ 나리께선 그쪽 취향이셨군요. 하지만 로마인들은 성정이 투박하고 예술에 무지해서 침대 위에서는 몰라도 대화를 나눌 때 즐거움을 느끼기는 어려우실 겁니다.”
“아닐세! 난 남색에 흥미 없네! 그저 로마의 건축 기술을 익힌 노예가 필요할 뿐이야!”
“남색은 흉이 아닌데 왜 그리 역정을 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바로 무역항 근처의 시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풀이 죽은 안내인은 태자 일행을 인파가 북적이는 시장으로 안내했다.
세 고조선인은 지중해 세계 각지와 시리아 지역에서 흘러들어온 여러 사치품과 가축, 그리고 여러 농작물을 둘러보며 시선을 한곳에 붙들어두질 못했다.
특히 신기한 물건을 좋아하는 석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감탄하며 소리쳤다.
“와! 전하! 저기 좀 보십시오! 등에 혹이 난 커다란 짐승이 있습니다!”
“아, 저건 낙타라고 부르는 짐승이다. 말보다는 조금 속력이 느리지만, 지구력이 강하고 소보다도 힘이 세서 짐을 아주 잘 나르지.”
“그럼 조선에 몇 마리 데려가면 쓸모가 많지 않겠습니까?”
“배를 오래 타야 하니 그동안에 낙타가 많이 죽을 것 같구나.”
“아······ 정말 아쉽습니다.”
“너무 실망하지 마라. 아마 흉노족도 낙타를 기를 테니 조선에 돌아가서도 저 신기한 짐승을 수입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보다 여기서 뭐라도 사가려면 밑천을 좀 마련해야겠구만. 계야. 왕검성에서 가져온 은거울이 이제 몇 개 남았지?”
“이제 딱 한 개 남았습니다. 전하.”
“그래? 아마 그것만 팔아도 노비 한두 명 살 돈 정도는 충분히 나올 거다. 구경은 나중에 하고 얼른 그 거울부터 파는 게 좋겠다.”
한부는 부하 장수들과의 대화를 마친 후 이집트인 안내인에게 은거울을 팔아달라고 부탁했다.
이집트인 상인은 곧 태자 일행이 보는 앞에서 귀금속 강인과 흥정하더니 2kg이 넘는 묵직한 은화 주머니를 한부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기뻐하십시오. 나리. 은거울에 희귀하고 정교한 무늬가 그려진 덕에 무려 15 므나에 팔 수 있었습니다.”
“15 므나면 노예를 몇 명이나 살 수 있겠나?”
“가장 젊고 건장한 남자 노예도 세 명은 살 수 있을 겁니다.”
“그거 잘됐구먼! 잠시 후에 노예시장에서도 흥정을 부탁하네. 이건 수고해준 답례니 받아두게.”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나리! 그럼 바로 노예시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안내인은 한부가 건네준 작은 은화 열 개를 받아들고는 신이 나서 고조선인 세 사람을 노예시장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태자 일행이 농산품 시장을 지나갈 때, 아직 한반도에는 없는 귀중한 두 작물이 한부의 눈에 띄었다.
‘어?! 저 시뻘건 꽃은 아무래도 양귀비 같은데? 그리고 저 하얀 당근처럼 생긴 건 분명 파스닙이야! 목화를 빼면 그동안 본 작물 중에서 제일 대박이다!’
양귀비는 열매가 익기 전에 꽃봉오리에 상처를 내면 우유처럼 흰 즙이 나오는데, 이 즙은 아편과 헤로인을 만드는 원료로 사용된다.
또한 양귀비의 씨앗은 마약 성분은 없지만 대신 영양가가 많아 기름을 짜거나 빵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파스닙은 후세에 ‘설탕 당근’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하얀 뿌리채소인데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선 약재로, 중세 이후의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감자가 들어오기 전까지 구황작물로 사용하던 농작물이다.
‘자세한 수치는 기억이 안 나지만, 파스닙은 순무나 당근보다 칼로리가 높다는 기록을 읽은 것 같은데. 그리고 잠재적 적국의 주요 인물들에게 아편을 풀면 외교를 편하게 이끌어 나가면서 부수입도 짭짤하게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는 두 작물의 종자를 잔뜩 사서 자루에 넣고 계와 석에게 지게 한 다음 노예시장으로 향했다.
막 한부는 막 노예시장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이 상품으로서 사고 팔리는 장면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찼디,
‘쯧! 고조선에서도 노비를 매매하는 장면을 종종 봤었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노예시장에 와본 건 이번이 처음이구나. 현대인의 감성이 남은 탓에 영 찝찝하네.’
한편 계와 석은 태어나서 처음 북아프리카 출신 흑인을 보고는 두 눈을 크게 뜨면서 소리쳤다.
“석아! 저기 좀 봐! 웬 남자가 숯처럼 피부가 검은 노비를 팔고 있어! 마우리아국 사람보다도 더 피부가 검은 인종도 있었네!”
“계 이 헛똑똑이야!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까말 수가 있어? 분명 저건 사람을 닮은 짐승일 거야.”
한부는 그런 부하 장수들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석아. 저 노비는 분명히 사람이다. 이 나라에서 서쪽으로 쭉 가면 저런 흑인들이 사는 리비아라는 지역이 있단다.”
“천하엔 참으로 별의별 인종이 다 있군요. 세상을 구석구석 뒤져보면 피부가 파란색이나 초록색인 인종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분명 그런 인종은 없을 거다.”
그런데 석이 태자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 벙찐 표정을 짓는 순간, 그들에게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경매 진행자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자! 여기 좀 보십시오! 흔히 보기 어려운 건장한 로마 출신 성인 남자 노예가 나왔습니다! 올해 나이 마흔다섯! 나이는 좀 있어도 로마군 하급장교 출신이라 경호원을 맡기기도 좋고 건물 수리도 곧잘 하는 다재다능한 일꾼입니다!”
한부는 그 외침을 듣자마자 방향을 틀면서 이집트인 안내인에게 말했다.
“마침 저기서 로마인 노예를 파는구나! 이번에도 나 대신 경매에 참여해 주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나리.”
네 사람은 경매 진행인의 외침이 들려오는 쪽으로 걸어가서 단상 위에 선 로마인 노예 주변에 모여든 행인 무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한부가 경매장에 자리를 잡고 양팔이 밧줄에 묶인 채로 경매에 나온 노예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들은 순간, 근처에 있던 한 행인이 경매 진행자에게 말했다.
“뭐야? 애꾸눈이잖아? 아무리 힘이 좋아도 애꾸눈 노예가 경호원 노릇을 제대로 하겠소?”
“손님! 이 녀석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유명한 군사지휘관이었던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의 군대에 용감히 맞서 싸운 로마군의 군단병이었습니다! 격렬한 전장 속에서도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지요!”
로마는 현재로부터 십여 년 전인 기원전 280년부터 기원전 275년까지 당대 최고의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의 군대에게 침략을 당했다.
로마군은 약 5년 동안 피로스군과 사투를 벌인 끝에 결국 막강한 침략자를 이탈리아 반도 밖으로 몰아내면서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그 과정에서 여러 전투에서 참패하면서 수천 명의 병사가 피로스군에게 포로로 잡혔고 그중 일부는 국외에 노예로 팔려나갔다.
그리고 그때 그리스로 팔려간 로마인 노예 중 한 명이 여러 주인을 전전하며 팔려나가다 머나먼 알렉산드리아에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다.
경매 진행자는 로마인 노예를 팔아보려고 호객행위를 계속했지만, 주변에 모여든 몇 안 되는 행인들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면서 하나둘 떠나갔다.
“아무리 전장에 서본 경험이 있어도 애꾸눈은 좀 그렇지.”
“내 말이. 게다가 딱 봐도 갈색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잖아. 사실 마흔다섯이 아니라 쉰다섯 살쯤 된 거 아냐?”
열변을 토하던 경매 진행자는 발길을 돌리는 고객을 보고 한숨을 푹 쉬면서 중년의 로마인 노예에게 그리스어로 말했다.
“후······ 이거 아주 진 빠지는구먼. 이봐. 이름이 드루수스라고 했던가? 자네 주인이 오늘 안에 꼭 자네를 팔라고 의뢰했거든. 그런데 아무래도 광산 운영자 말고는 자네를 살 사람이 없을 것 같아. 기분이 영 찝찝하지만, 나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나쁘게 생각하지 마.”
“아······! 위대한 번개의 신 유피테르시여! 어찌하여 저에게 이런 시련을 내리십니까! 몸값이 없어서 계속 노예로 살아야 하는 처지가 참으로 한스럽구나!”
이집트인 안내인은 그 모습을 보고 경매 진행자의 곁으로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이런······. 사정이 참 딱하구먼. 이보시오. 경매 진행자 양반. 저 불쌍한 친구를 광산에 보낼 바에야 여기 계신 나리께 파는 게 어떻겠소?”
“젊은 오리엔트의 귀족 나리께서 이 친구를 사신단 말이오?”
“나리께서는 로마의 건물에 관심이 많으셔서 말이오. 저 노예는 고향의 건축 기술을 익혔소?”
드루수스라는 이름의 노예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더니 마음이 급한 나머지 한부에게 통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나리! 소인은 재산이 부족해서 트리아리(최선임병)가 돼 본 적은 없지만, 로마의 군단병으로 10년 이상 근무하면서 도로와 숙영지 건설에 여러 번 참여했습니다! 그 경험을 살리면 로마식 건물을 짓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그 소리를 듣고 이집트인 안내인이 드루수스에게 버럭 화를 냈다.
“네 이놈! 감히 노예가 귀족에게 먼저 말을 걸다니! 나리! 저런 건방진 녀석은 광산에 팔려가도록 내버려 두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한부는 그런 안내인을 말리면서 드루수스에게 다가갔다.
“오죽 마음이 급하면 저러겠나? 한번 저자와 얘기를 나눠 보고 마음을 정하겠네.”
그는 안내인에게 대답한 다음 드루수스에게 물었다.
“몰골을 보니 지난 15년 동안 노예로 살면서 안 해본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광산일 만은 죽어도 일하기 싫은 모양이구먼.”
“나리! 제발 이 불쌍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집트의 광산에 끌려간 노예는 대부분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짐승처럼 일하다 죽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사람답게 죽고 싶습니다!”
“자네 사정은 딱하지만, 우리도 예산이 한정되어 있어서 여러 노예를 살 수는 없어서 말일세. 자네 로마 시민이었던 시절에는 직업이 뭐였나?”
“콘크리트 제조 작업장에서 회반죽을 만드는 인부로 일했습니다.”
“오호! 그럼 로마식 콘크리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와 제조법도 알고 있겠군!”
“물론 알고 있습니다. 화산재와 석회석을 구할 수 있는 지역에서라면 얼마든지 로만 콘크리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 그거 안타깝군. 우리나라에는 화산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네.”
“나리! 로마에서 사용하는 콘크리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리의 고향에서도 대마를 재배한다면 대마의 줄기와 석회석으로 쓸만한 콘크리트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뭐? 대마라면 옷감을 만드는 데 쓰는 식물 대마를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대마 콘크리트로도 충분히 훌륭한 집을 짓고 튼튼한 벽돌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부는 로마인 노예의 말을 듣고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포털 사이트에서 대마 콘크리트라는 건축자재가 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영어로 헴크리트(hempcrete)라고 불리는 대마 콘크리트는 서양에서는 고대 로마 시대에도 사용되던 역사가 깊은 건축자재이다.
대마 콘크리트는 또 하나의 고대 로마의 콘크리트인 로만 콘크리트에 비해 덜 유명하지만, 대마 줄기와 석회석, 그리고 물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준수하다.
또한 단열과 방음, 방충효과가 뛰어나서 현대에도 친환경 건축자재로 애용되고 있다.
한부는 그 사실을 아직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드루수스가 거짓말을 하지는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그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이 로마인은 내가 사겠네. 나이가 많고 한쪽 눈이 불편하니 3므나 정도면 충분하겠지?”
“물론입니다요! 나리! 그럼 먼저 계약서부터 작성하시지요!”
경매 진행인은 젊은 고객의 마음이 변할까 봐 재빨리 파피루스와 필기도구를 한부에게 내밀었고 한부는 깃펜에 잉크를 묻혀 계약서에 서명한 다음 그에게 드루수스의 몸값을 지불했다.
그런 다음 석이 태자의 지시에 따라 로마인 노예의 두 손에 묶인 밧줄을 풀어주자 드루수스가 허리를 숙이며 한부에게 인사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나리 덕분에 말년에 비참한 죽음을 면하게 됐습니다.”
“나는 동방에 있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태자이니 앞으로는 전하라고 부르도록 해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네 업무 성과를 봐서 노예 신분에서 해방하고 관직에 임명하며 살집과 땅을 줄 생각이다. 그러니 조선에 도착하면 열심히 일하거라.”
“감사합니다! 반드시 전하께서 만족하실만한 튼튼한 건물을 짓겠습니다!”
한부는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로마인 건축가를 얻은 다음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태자 일행이 막 숙소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기계공학자 크테시비우스가 나타나 한부에게 인사했다.
“나리! 낮에 뵀었던 이발사 크테시비우스가 다시 인사드립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자네 부친이 내일까지 가족회의 결과를 알려준다고 하지 않았나?”
“저희 가족은 가게 문을 닫고 오래 상의한 끝에 나리를 따라 이집트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 부모가 가게의 비품을 정리하는 동안 먼저 나리께 이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어서 이곳까지 달려왔습니다!”
“자네처럼 유능한 인재를 얻어서 참으로 기쁘네! 그럼 언제쯤 출발할 수 있겠나?”
“앞으로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알겠네. 그럼 사흘 후에 알렉산드리아를 떠나도록 하세나.”
“나리. 그럼 사흘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한부는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가는 크테시비오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서방에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다 얻었다! 얼른 인도에 돌아가서 겨울을 나고 고조선으로 출발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