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34화] 서방의 기술과 인재를 모으다.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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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 일행은 마우리아 제국의 지방관이 붙여준 수행원들과 함께 다양한 피부색의 행인이 북적이는 이국적인 시장을 지났다.
고조선의 선원들과 대만 출신 부족민들은 처음 동물원에 놀러 온 어린아이처럼 일행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똘똘 뭉쳐 다니면서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여러 가지 물건과 사람을 구경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호기심으로 눈을 빛내던 석은 한 노점 가판대에 진열된 상품을 보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부에게 말했다.
“전하. 마우리아국 사람들은 시장에서 돌멩이도 사고파는 모양입니다. 이 나라에서는 갈색 돌멩이를 신성하게 여기는 걸까요?”
“음······ 석아. 이건 돌멩이가 아니라 간식이나 조미료로 쓰이는 물건이다.”
“네? 이게 먹는 거라면 좀 더 물렁물렁하지 않겠습니까? 만져보니 이 물건은 제법 단단합니다.”
“잠깐 기다려봐라. 아까 항구에서 만난 세관 책임관이 노잣돈으로 쓰라고 준 돈으로 그걸 하나 사주마. 내 말을 듣는 것보다는 그걸 핥아보는 게 더 빨리 이해될 거다.”
한부는 석에게 대답한 후 상인과 대화를 나누더니 허리에 찬 가죽 주머니에서 고대 인도의 화폐 파나 몇 개를 꺼내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상인은 네모난 동화를 받아서 주머니에 넣은 다음 자기 손바닥만 한 갈색 결정을 석에게 건네주었다.
석은 그 물건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혀로 한번 핥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허! 이거 꿀처럼 달잖아?! 전하! 마우리아인들은 꿀을 돌처럼 딱딱하게 만드는 기술이 있는 모양입니다. 단지 값을 아끼느라 이런 기술을 개발한 걸까요?”
“석아. 그건 꿀이 아니라 사탕수수라는 갈대처럼 생긴 식물의 즙을 가공해서 만든 조미료다. 우리나라 말엔 그 물건을 표현할 단어가 없지만, 앞으로 설탕이라고 부르면 될 거 같구나.”
“갈대즙으로 이렇게 달콤한 조미료를 만들어 낸단 말씀입니까?! 햐······ 참으로 신기합니다. 전하.”
“그렇지? 이 나라에서는 사탕수수가 많이 나서 그런지 설탕이 별 비싸지 않구나. 마우리아보다 더 서쪽에 있는 나라에서는 왕족이나 먹을 수 있는 비싼 음식이니 기회가 있을 때 많이 먹어두거라.”
고대 인도는 기원전 4세기부터 사탕수수를 재배해서 이렇게 귀한 설탕을 만들어왔는데, 기원전 3세기인 현재는 아직 사탕수수즙을 고운 가루로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아 설탕을 돌처럼 단단한 결정 형태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워낙 단 음식이 부족한 시대인 데다 고대와 중세에는 설탕을 귀한 약재로 여기는 나라가 많다 보니 설탕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부르는 게 값인 고급품이었다.
석이 태자의 말을 듣고 손에 든 설탕 결정을 씹어먹기 시작하자 이번엔 두 사람의 대화를 흥미롭게 듣던 계가 입을 열었다.
“전하. 그렇다면 그 사탕수수라는 식물을 우리나라에 가져가서 기른 다음 설탕을 만들어 팔면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겠습니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탕수수는 1년 내내 눈이 내리지 않는 더운 지역에서만 자라니 조선에서는 기를 수 없겠구나.”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기후만 맞았으면 새로운 특산품이 됐을 텐데 말입니다.”
“아직 실망하긴 이르지. 조선에서 사탕수수를 기르기는 힘들지만, 대만에서라면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귀국길에 어차피 대만에 들러야 하니 그때 사탕수수 종자를 파도 부족에게 선물하자.”
“아! 파도 부족이 만든 설탕을 사다가 제나라와 초나라에 파실 계획이시군요!”
“역시 계는 한마디만 해도 열 마디를 알아듣는구나! 설탕 중계무역은 제대로 자리만 잡으면 신선차 보다도 더 큰 수입원이 될지도 모른다.”
“전하께서는 저희는 존재조차 몰랐던 외국의 특산품을 활용할 방법을 이미 생각해 두셨군요.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대단치 않은 일로 칭찬을 들으니 조금 낯간지럽구나. 그저 너희보다 다양한 서적을 접할 기회가 많았을 뿐이다. 설탕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시장에서 파는 채소나 과일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봐라. 조선에 가지고 가서 재배할 수 있는 작물도 꽤 많을 거다.”
목화, 오이, 생강, 마늘, 토란, 그리고 색이 연한 고대의 당근.
태자 일행이 고작 30분 정도 고대 인도의 시장을 지나면서 본 채소 중 아직 한반도에 없는 작물이 이렇게나 많았다.
한부는 이 모든 작물을 한반도로 가져가 고조선의 문익점이 될 생각을 하니 지난 반년 동안 쌓인 여독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
‘오늘 본 작물 중 한반도 북부에서 구황작물로 기를만한 게 없는 것만 빼면 완벽하네. 겨울에 목화솜으로 만든 폭신한 이불을 덮고 잘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웅장해지는구만.’
그렇게 태자 일행은 즐거운 시장 구경을 마치고 항구도시에서 나와 마우리아 제국의 수도 파탈리 푸트나로 출발했다.
한부는 경호원 격인 석과 계와 함께 항구도시의 지방관이 구해준 차양이 쳐진 쌍두마차에 탔고 나머지 선원들은 건초를 나를 때나 쓸법한 말이 끄는 수레 몇 대에 나눠 탔다.
그들을 태운 마차와 수레가 항구도시의 성문 밖으로 나오니 인도 아대륙 북동부에서 현대의 파키스탄 지역까지 이어지는 고대의 무역로, 그랜드 트렁크 로드가 태자 일행을 반겼다.
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대의 포장도로를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럴 수가······. 전하. 이게 정녕 사람의 힘으로 만든 길이란 말입니까? 행인과 수레가 편안하게 지나가라고 길바닥에 저 많은 돌을 깔다니요?!”
“하······ 계야. 나는 천하에 이런 길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두 눈으로 직접 보니까 저절로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오는구나. 아마 마우리아국의 거의 모든 대도시와 요새는 이런 도로로 연결되어 있을 거다.”
“전하. 강철 제조법과 함께, 이런 훌륭한 도로를 까는 기술도 배워가시는 게 어떨는지요? 각 지방의 물자가 궁궐의 창고에 쌓일 것이고 백성들 또한 고향에서 나지 않는 물건을 쉽게 구하게 되어 생활이 윤택해지면 왕실과 전하를 칭송할 것입니다.”
“그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허나 마우리아국의 도로 건설 기술로는 우리나라에 도로를 깔 수 없다.”
“이렇게 훌륭한 도로를 건설하는 나라인데도 말입니까?”
“계야. 마우리아국이 천하의 어느 나라보다 대단한 번영을 이룬 가장 큰 비결은 바로 천혜의 자연환경이다. 이 나라에는 부드러운 흙으로 뒤덮인 평지가 많은 데다 기후가 온난해서 겨울에도 땅속이 얼지 않아 도로를 깔기가 쉽거든.”
“아······ 우리가 사는 반도는 암석 지대가 많지요. 게다가 겨울에 땅이 깊이 얼어붙으니······.”
“그래, 그래서 도로를 만들려면 땅을 아주 깊이 파서 석재를 깔아야 한다. 그러니 도로에 대한 욕심은 잠시 접어두자.”
계는 태자의 대답을 듣고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한부는 부하들에게 괜한 기대심을 주고 싶지 않아 계에게 그렇게 말해 뒀을 뿐, 아직 고조선에 도로망을 깔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이 시대의 인도인은 한반도에 도로를 못 깔아도 고대 로마인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다. 마우리아 제국은 그리스계 나라들하고 활발하게 교역하니까 수도인 파탈리 푸트라에서라면 건축 기술을 익힌 로마인 노예를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이 시대의 고대 로마 공화국은 이제 막 지중해 세계에서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중이었지만, 토목건축 기술 만큼은 의심의 여지 없이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3세기에 이미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산투성이인 이탈리아 반도 전역에 포장도로를 깔았고, 수도관을 지하에 매설해 수돗물을 사용했으며 콘크리트로 5층 아파트를 지었다.
이런 로마인 건축가를 고용할 수만 있다면 목제 건물 위주인 고조선의 건축문화는 크게 발전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마우리아 제국이 그리스계의 나라들과 활발히 교역을 하고 있다고는 해도 수도에서 머나먼 로마 출신의 노예를 반드시 찾을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렇게 한부가 고대 인도에서 얻어갈 수 있을 만한 것들을 머릿속에 정리하는 동안 고조선의 사절단은 겨우 보름 만에 약 500km를 이동해 파탈리푸트라에 도착했다.
잠시 후 태자 일행은 64개의 성문과 570개의 탑으로 이루어진 장엄한 성벽 안으로 들어서면서 약속이라도 한 듯 거의 동시에 입을 쩍 벌리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지나온 도시들은 전부 대단했지만, 마우리아국의 수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사람이 너무 많아서 현기증이 날 것 같구만. 이 도시에 사는 백성이 조선 전체의 인구보다 많을지도 모르겠어.”
한부는 바로 뒤의 수레에 탄 한 선원의 혼잣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소카 대왕 시대를 기준으로 파탈리푸트라의 추정인구는 약 40만 명, 기원전 3세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대도시 중 하나임이 분명했다.
거리에 워낙 인파가 붐볐기에 말을 타고 고조선의 사절단을 호위하던 마우리아 제국의 호위기병 몇 기가 한부가 탄 마차 앞으로 나서면서 길을 텄다.
“길을 비키시오! 위대하신 삼라트의 손님이신 외국 사절단의 행차요! 모두 길을 비키시오!”
그렇게 혼잡한 거리를 몇 시간 동안 뚫고 지나간 후 태자 일행을 태운 마차는 마침내 페르시아의 궁전과 비슷하게 생긴 화려하고 웅장한 황궁 앞에 멈췄다.
그러자 황궁의 정문 안에서 말끔한 관복을 입은 내관이 나오더니 마차에서 내리는 한부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위대하신 삼라트 아소카 마우리아의 황궁에 오신 조선의 태자를 환영합니다.”
“환대에 감사드리오. 낯선 방문객을 이렇게 반겨주시는 걸 보니 삼라트께서는 참으로 관대한 분이시군요.”
“물론 삼라트께서는 더없이 자비로운 분이시지만, 불교의 가르침을 얻으러 먼 길을 오신 외국의 왕족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셨기에 특별히 전하를 황궁에 초대하셨습니다. 많이 피로하지 않으시다면 바로 삼라트께 안내해 드려도 괜찮을는지요?”
“지나온 길이 워낙 평탄했던 덕에 조금도 피곤하지 않소. 본인도 한시라도 빨리 삼라트를 뵙고 싶으니 어서 안내해 주시오.”
“그럼 전하께서만 저와 함께 가시지요. 그동안 전하와 함께 온 자들에게는 궁궐의 식당에서 음식을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부는 그의 말대로 그와 나눈 대화 내용을 일행에게 알려준 다음 내관과 함께 아소카 대왕이 기다리고 있는 응접실로 향했다.
두 사람이 거대한 궁궐의 긴 복도를 지난 후 응접실 입구에 도착하자 내관이 발걸음을 멈추면서 청동으로 만든 커다란 문을 열었다.
한부는 화려한 페르시아제 융단을 바닥에 깐 넓은 방과 방 한가운데에 놓인 커다란 대리석 테이블 앞에 앉아있는 중년 남자를 보자 심장이 뛰었다.
‘저 사람이 바로 아소카 대왕이구나! 거리가 멀어서 아직 얼굴은 안 보이지만, 벌써 몸에서 풍기는 아우라부터 다르구나.’
먼발치에서 본 아소카 대왕은 풍채가 당당하고 고급스러운 보라색 비단옷을 입고 있었던 데다 등 뒤에 강철검과 강철 미늘 갑옷으로 무장한 호위병 두 명을 세워두고 있어 위압감이 흘러넘쳤다.
한부는 내관의 안내를 받으며 테이블 앞에 선 다음 허리를 숙이며 아소카 대왕에게 인사했다.
“조선의 태자 한부가 위대하신 삼라트 마우리아 아소카를 뵙습니다.”
“반갑소. 머나먼 동방에서 온 귀인이여. 전령의 말대로 우리 말을 정말 능숙하게 하는구려. 짐의 아들 중에도 그대처럼 총명한 자가 하나라도 있다면 걱정이 없으련만.”
“마우리아 제국을 강대국으로 일궈내신 성군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 나라는 본래 강성해질 운명이기에 저절로 그렇게 됐을 뿐이오. 짐 또한 그저 배우가 연극 대본에 따라 움직이듯 운명에 따랐을 뿐이라오. 하지만 군주에게 주어진 운명을 따르며 피로 물든 길을 걷는 게 이토록 힘겨운 일이라는 걸 작년에 깨닫고 나니 늘 마음이 무겁고 괴롭소.”
아소카 대왕의 목소리에는 인도 역사상 최고의 정복군주이자 성군답지 않게 고뇌와 번민이 묻어있었다.
한부는 그의 말을 듣고 아소카 대왕의 심리 상태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정해진 운명 운운하는 걸 보니 아소카 대왕이 아직 불교가 신자가 아니네. 그건 분명 불교에서 육사외도라면서 경계하는 아지비카교의 교리였지. 그러면서도 불교에 관심이 있는 걸 보면 불교에 귀의 할까 말까 고민하는 중이구나.’
아지비카교는 고대 인도의 토착 종교로 모든 생물은 이미 결정된 운명이 있으며 이는 자연계의 운행이 결정한 것이기에 바꿀 수 없다는 운명론이 특징이었다.
그리고 역사 기록과 불교의 아육왕경에 따르면 원 역사의 아소카 대왕은 원래 아지비카교 신자였지만, 기원전 260년경에 자신이 일으킨 정복전쟁 때문에 고통받는 백성들을 보고 괴로워 불교에 귀의했다고 전해진다.
한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위대하신 삼라트시여.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운명이란 정해진 것이 아니며 모든 생물이 과거에 쌓은 업이 현재의 결과를 낳는다고 합니다. 지금이라도 불교에 귀의하시어 백성을 덕으로 다스리신다면 과거에 쌓으신 악업을 상쇄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불교 승려들은 하나같이 윤회의 고리를 벗어날 수 있는 건 오직 수행자들뿐이라고 했소. 그렇다면 짐의 행동으로 고통받았던 평범한 백성들은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지 않소? 근래에 부처님의 가르침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사실이나 오직 그 가르침 하나가 마음에 걸려서 불교에 귀의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오.”
한부는 그 말을 듣고 아소카 대왕의 마음에 파고들 틈을 발견하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무슨 말씀이세요! 대왕님! 미래에는 중생을 전부 구원하자는 불교 종파도 있다고요! 한번 전생에 책에서 읽은 대승불교의 교리를 읊어볼까? 만약에 그걸 계기로 아소카 대왕이 불교에 귀의하면 어느 정도 호감을 얻을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