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33화] 서방의 기술과 인재를 모으다. (1)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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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인 전투가 끝난 후 계와 석은 한부가 기다리고 있는 부족장의 집을 발걸음을 재촉했다.
두 사람은 태자가 상처를 치료받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가면서 차례로 입을 열었다.
“전하! 석이가 살아 돌아왔습니다! ”
“전투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전하. 상처는 좀 어떠신지요?”
한부는 석이가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서 방 안으로 들어오자 상처에 약을 바르고 있는 약사의 손길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가면서 소리쳤다.
“석아! 무사했구나! 정말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천신께서 우리를 도우신 덕입니다! 그리고 계가 제때 적장을 처치하지 않았다면 아마 소신은 다시 검을 쥘 수 없는 몸이 됐을 겁니다.”
“계야. 석을 지키라는 임무를 훌륭하게 임무를 완수하고 적장의 수급까지 취했구나. 진심으로 너희가 자랑스럽다!”
“과찬이십니다. 전하. 석이의 덩치가 워낙 커서 쉽게 찾은 덕에 제때에 손을 쓸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렇게 세 사람이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때, 파도 부족의 부족장이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한부의 손을 꼭 잡으면서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소! 조선의 태자여! 덕분에 오랜 숙적을 물리치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영토를 지킬 수 있었소!”
“저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옛 선조의 전통을 이어온 먼 친척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대가 우리를 위해서 지혜를 빌려주고 피를 흘렸으니 우리 부족의 전사들도 그대를 위해 피와 땀을 흘릴 것이오. 약속대로 우리 부족의 젊은이들은 그대와 함께 서쪽 바다를 항해할 것이오.”
“신의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장님. 그럼 서쪽 바다로 나갈 준비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그대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에만 신경 쓰시오. 앞으로 열흘 안에 배와 보급품을 준비하겠소.”
그로부터 정확히 열흘 후 파도 부족은 원양항해용 아우트리거 카누 여섯 대와 선원 60명, 그리고 항해 중 먹을 식량과 물을 준비한 다음 고조선인들과 함께 배에 올랐다.
길이가 약 18m 정도 되는 카누 두 척에 위에 상갑판과 삼각돛을 설치한 아우트리거 카누는 소형 범선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컸지만, 이번 항해에는 많은 보급품을 운반해야 했기에 한 척에 15명 정도만 탈 수 있었다.
한부는 석과 계, 그리고 고조선의 범선을 몰았던 선장 해와 함께 한 배에 오른 다음 그 배를 몰아, 파도 부족 선장에게 고대 중국의 나침반인 남사를 건네주면서 말을 걸었다.
“항해할 때 이 물건을 사용해 보겠나? 아마 도움이 될 걸세.”
“부족의 은인이시여. 그건 뭐에 쓰는 물건입니까?”
“이 쇠를 갈아서 만든 길쭉한 물건에는 신기한 힘이 있어서 항상 남쪽을 가리키게 되어 있다네.”
“그러니까 그걸로 바다 위에서 방위를 찾으란 말이십니까?”
그런데 두 사람 곁에서 돛을 펴다 그 말을 들은 파도 부족의 선원 두 명이 갑자기 웃음을 참으면서 쑥덕거렸다.
“풉! 저런 장난감으로 바다 위에서 방위를 찾으라고?”
“내 말이. 지혜로운 은인께서도 바다에는 서투신 모양이구먼. 그래.”
그러자 파도 부족의 선장이 실례를 범한 부하들을 꾸짖었다.
“이 녀석들아! 부족의 은인에게 무슨 실례되는 말이냐! 벌로 너희 둘은 오늘 저녁 식사를 굶어라!”
태자가 그 상황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자 파도 부족의 선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부족의 은인이시여. 마음은 감사하지만, 우리 부족의 남자들은 걸음마를 떼자마자 별자리를 읽는 법과 배를 모는 법을 배우기 때문에 보통 열 살 정쯤이면 밤하늘을 보고 방위와 배의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물건은 천문에 밝지 못한 이들이 쓰는 편이 나을 겁니다.”
“겨우 열 살짜리 꼬맹이도 별자리를 지도로 여긴다니······. 참으로 대단하구먼.”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모든 선원이 여섯 척의 카누에 나누어서 올라타자 드디어 인도를 향한 항해가 시작되었다.
고조선의 선장 해는 물고기 떼를 쫓는 돌고래 무리처럼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폴리네시아인의 카누 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오! 천신이시여! 태자 전하! 소인은 수십 년 동안 서해를 누비며 제나라와 초나라를 오갔지만, 이렇게 큰 배 중에서 이토록 빠른 물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직 놀라긴 이르다네. 파도 부족의 선원들은 해안가에서 멀리 떨어진 먼바다에서도 하늘의 별을 보며 바닷길을 찾을 수 있다니 말일세.”
“이런 세상에······ 전하 우리 조선의 선원들이 그런 기술을 배울 수만 있으면 제나라 선원들에게 들어만 봤던 반랑국(베트남 지역의 고대 국가) 까지도 무역선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자네가 한번 파도 부족의 항법을 배워보겠나? 통역은 내가 해주겠네.”
“정말이십니까?! 참으로 감사합니다! 전하!”
한부는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선장 해의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폴리네시아인의 항해기술을 제대로 배워두면 고조선을 중원 대륙과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무역 허브로 만들 수도 있겠다. 아직 인도에 도착하기도 전에 귀국 후가 기대되네.’
* * *
대만을 떠난 여섯 척의 카누는 순풍을 등에 업고 거침없이 서쪽으로 나아갔다.
한부가 항해에 나서기 전 백사장에 대략적인 아시아 지도를 그려주면서 인도의 위치를 설명해 준 덕분인지 파도 부족의 선원들은 동남아시아의 복잡한 해안선 근처를 지나면서도 기가 막히게 뱃길을 잘 찾아냈다.
선장 해는 태자의 도움을 받아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폴리네시아의 항법을 빠르게 습득해 나가면서 매일같이 감탄을 늘어놓았다.
“전하! 이 갈색 피부의 선원들은 천문에만 밝은 게 아니었습니다! 바닷새의 날갯짓을 보고 육지를 찾아내고 작은 나무 조각을 바다에 띄워서 해류의 움직임을 알아낼 생각을 해내다니요! 참으로 신기라 부를 만한 기술입니다!”
그렇게 순조로운 항해를 4개월 동안 계속하여 계절이 정수리에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으로 바뀌자, 고조선의 태자 일행은 마침내 수평선 위로 고개를 내민 인도 아대륙을 볼 수 있었다.
석은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먼발치에 보이는 번화한 항구도시를 보고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아아아! 전하! 드디어 망우리국이 보입니다! 순전히 돌로만 지은 저 곤륜산의 신선이 살 것 같은 거대한 건물 좀 보십시오! 저기가 바로 망우리 국의 왕의 궁전이 분명합니다!”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석아. 그런데 망우리국이 아니라 마우리아국이다. 그리고 저기는 마우리아국의 수도가 아니야. 아마 그저 평범한 지방 항구도시 중 하나일 뿐일 거다.”
“네?! 그럼 저 으리으리한 건물은 대체 뭡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이 도시를 다스리는 관리의 관사일 것 같구나.”
“조선 왕실의 궁궐보다 몇 배나 큰 건물이 일개 지방관의 관사란 말씀입니까?! 정말 대단한 나라로군요······.”
“대단하지. 서쪽 대륙의 인구를 전부 합한 것보다 거의 두 배나 많은 백성이 사는 나라다. 영토가 워낙 넓어서 지방마다 기후가 다르고 이 나라 안에서 쓰이는 언어만도 수십 가지라고 하더구나.”
“그런데도 하나의 나라가 됐단 말씀입니까? 도저히 믿기질 않습니다. 전하.”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계가 풀죽은 석의 표정을 보고 입을 열었다.
“석아. 그렇게 기죽지 마라. 이 나라가 이토록 번성할 수 있었던 비결을 배워가면 우리 조선도 동방 제일의 강대국이 될 수 있을 거야.”
“기죽기는! 조금 놀랐을 뿐이지. 왕검성을 떠난 뒤로 거의 반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면서 왔으니 배울 수 있는 건 전부 배워가자고!”
한부는 석의 호기로운 대답을 듣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거의 반년이나 걸린 게 아니라 겨우 반년밖에 안 걸린 거지. 역시 나침반 없이 3년 만에 세계 일주에 성공한 폴리네시아의 항해기술이다. 우리끼리 항해했다가는 분명 남중국해 어디쯤에서 물고기 밥이 됐을 거야.’
태자 일행이 기뻐하는 동안 아우트리거 카누 여섯 척은 인도 아대륙 북동부 항구도시의 수문 근처에 도착했다.
파도 부족의 선원들이 돛을 접으면서 배의 속도를 줄이자 수문 근처의 망루 위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초병 중 한 명이 산크리스트어로 소리쳤다.
“배를 멈추고 신원을 밝히시오!”
한부는 초병의 외침을 듣자마자 산크리스트어를 습득하고는 우렁찬 목소리로 그에게 대답했다.
“우리는 머나먼 동방의 나라 조선에서 온 사절단이오! 서역의 대국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라는 계시를 받고 먼 길을 왔소! 부디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구하는 중생들을 내치지 말아주시오!”
“항구의 수비대장님께 보고하고 다시 돌아오겠소! 입항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 배를 멈추고 기다려 주시오!”
한부와 대화한 초병은 말을 마친 후 서둘러 망루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계는 그런 초병의 모습과 항구의 수문을 차례로 바라보더니 초조한 목소리로 태자에게 물었다.
“전하. 이 나라는 수문에 저렇게 굵은 쇠사슬을 쳐서 항구에 드나드는 배를 통제하는군요. 만에 하나 저들이 우리를 환영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너무 초조해할 것 없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지금의 마우리아국은 천하의 어떤 나라보다도 외국인에게 우호적일 거다.”
두 사람이 짧은 대화를 마친 후 수십 분을 기다리자 항구에서 일하는 건장한 노예들이 굵은 쇠사슬을 잡아당겨 수문을 개방했다.
태자 일행은 다시 배를 움직여 부둣가에 배를 댄 다음 하선하니 화려한 관복을 입고 밝은 갈색 피부의 관리와 그 수행원들이 한부에게 인사했다.
“먼 길을 오신 여행자여. 마우리아 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이 항구의 세관 책임관인 유바라자입니다.”
“반갑소. 본인은 동방의 왕국 조선의 태자 한부라고 하오. 위대하신 삼라트(인도 문화권의 황제 칭호) 마우리아 아소카와 부처님의 제자들께 가르침을 청하고자 수백 요자나(yojana-고대 인도의 길이 단위: 약 7.5km~15km)의 뱃길을 지나왔소.”
세관 책임관 유라바자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나라의 외국인이 유창한 산크리어로 마우리아 제국 황제의 이름과 길이 단위를 술술 읊자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눈앞의 이방인 태자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임을 직감하고 더욱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마치 브라만 계급의 귀족처럼 유려한 발음으로 우리 말을 하시는군요. 신들께서 마우리아 제국과 조선이 인연을 맺길 원하셔서 전하께 계시를 내리셨나 봅니다. 소신은 바로 전하를 삼라트의 궁전으로 안내하고 싶사오나 지엄한 국법에 따라 거쳐야 할 절차가 있으니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물론 마우리아 제국의 법도에 따르겠소.”
“마우리아 제국의 시조이신 삼라트 찬드라굽타께서 제정하신 국법에는 세관을 통과하는 모든 상품의 5분의 1을 관세로 걷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법은 귀천을 가리지 않고 국내의 모든 백성과 외국인에게 적용되니 불쾌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알겠소. 다만 우리 물건 중에서 상품은 하나도 없소. 가져온 물건 중 값진 것은 모두 삼라트께 헌상할 생각이라서 말이오.”
“그렇다면 소신이 그 헌상품을 한 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좋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한부는 세관 책임관과의 대화를 마치자마자 고조선인 선원들에게 은제 잔무늬 거울이 담긴 상자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유바라자는 선원들이 가져온 상자를 열어 은거울을 살펴보더니 크게 감탄하면서 말했다.
“10년 넘게 세관원 노릇을 하면서 많은 보물을 봐왔지만, 이토록 섬세한 무늬가 새겨진 은거울은 처음 봅니다! 삼라트께 바칠 헌상품으로 부족함이 없는 물건이군요!”
그는 고조선의 특산품인 은거울을 보자마자 호위병과 수행원을 수십 명을 붙여서 태자 일행을 도시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한부는 짙은 갈색 피부의 고대 인도인들을 따라 부둣가를 벗어나 시내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대장간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냈다.
“아! 저건 제강용 도가니잖아! 역시 강철을 만들고 있구나!”
그는 펄펄 끓는 도가니에서 흘러나온 쇳물을 주형에 부어 강철 주괴를 만들어내는 대장장이들을 보고 굳게 다짐했다.
‘아소카 대왕을 어떻게든 구워삶아서 저 중 몇 명을 꼭 데려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