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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28화 (28/195)

〈 28화 〉 [28화] 목숨을 건 여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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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열 왕검은 시중을 드는 내관을 물리친 다음 등불을 든 태자와 단둘이 궁궐의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한부가 서재의 문과 창문을 모두 닫자 왕검이 먼저 책상 앞에 앉으면서 입을 열었다.

“태자야. 어서 말해봐라. 조선의 미래에 관한 중요한 얘기라는 게 대체 무엇이냐?”

“아버지. 소자가 며칠 전에 몹시 불길한 꿈을 꾸었습니다.”

“뭐라고?! 오오! 천신이시여! 전에 은광산을 발견했을 때처럼 예지몽을 꾼 게로구나?!”

“그렇습니다. 사흘 전 밤에 잠을 자다 꿈에서 여섯 나라를 정복한 진나라 왕이 보낸 사신이 손에 든 협박문 앞에서 흰 수염이 난 소자가 옥좌에서 내려와 이마를 땅에 대고 절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뭐라고! 조선의 왕검이 다른 나라의 군주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다니!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그나저나 몇십 년 후에는 진나라가 서쪽 대륙을 통일할지도 모른단 말이야? 진나라가 강대하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어린 시절에 제나라에 갔을 때 직하학궁의 학사 순황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진나라는 이미 인구가 천만 명에 달하고 진나라 왕실은 다른 여섯 나라 왕실의 재산을 전부 합한 것보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다 합니다.”

“이럴 수가······. 제나라나 연나라가 야만인 취급하던 진이 대체 무슨 수를 썼기에 그리도 강해졌단 말이냐.”

“법가라는 사상을 도입해 과감한 개혁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 왕은 가혹한 법과 세율로 백성을 착취해 국고를 채우는 대신 전장에서 적군의 수급을 하나라도 취한 자에게는 더 높은 신분과 좋은 땅, 그리고 노비를 하사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나라의 장정들은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라도 늘 전쟁터에 나가 사람을 죽일 궁리를 하겠구나. 가혹한 정치로 백성을 호랑이로 만들어 이웃 나라를 물어 죽이려는 게야.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아버지. 우리 조선도 진나라처럼 새로운 정치이념을 도입하고 더 강한 무기를 만들 신기술 개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은근히 왕실을 견제하는 대제사장 일당을 억눌러 왕권을 강화하고 부족한 병력의 수를 질로 대신하면 서쪽에서 다가올 위협을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설마 대제사장을 건드리려는 거냐? 비록 위선적인 속물이지만 대단한 권위와 영향력을 가진 자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까 봐 두렵구나.”

“사실 사흘 전에 꾼 꿈에 전에 뵀던 귀인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조선을 부흥시킬 묘책을 알려주셨습니다. 다만 이 방법을 실행하려면 소자가 약간의 고생을 감내해야 할 듯합니다.”

“이번에도 단군왕검께서 조선과 왕실을 도와주셨구나! 그래. 그 묘책이란 게 무엇이냐?”

“소자가 서쪽의 대국에 사신으로 가서 선진문물과 지금보다 더 강한 철을 만드는 기술을 배워오는 것입니다.”

“진나라가 아닌 서쪽의 대국이라면 초나라를 얘기하는 거겠구나. 그런데 ”

“아닙니다. 아버지. 꿈속의 귀인께서는 소자에게 성군 아육왕(阿育王)이 다스리는 마우리아라는 대국에 가서 가르침을 받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나라보다 서쪽에 그런 대국이 있다고? 처음 듣는 얘기구나. 조선에서 그 나라까지는 얼마나 떨어져 있느냐?”

“음······ 사실 거리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마우리아는 왕검성에서 남서쪽으로 8,500리쯤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너무 위험하다! 태자야. 네 말을 믿어 의심치 않는지만, 너 대신 제후나 대신 중에서 유능한 인물을 뽑아 그 마우 어쩌고 하는 나라에 사신으로 보내면 될 일이다.”

“아버지. 귀인께서는 마우리아가 우리 조선이나 서쪽 대륙의 여섯 나라와는 전혀 다른 말과 글을 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하의 모든 언어와 글을 익힐 수 있는 소자가 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까지 생각하면 1만 7천 리나 되는 대장정이잖느냐! 설령 네가 여행을 떠난 지 수십 년 만에 무사히 왕검성에 돌아온다고 해도 네가 옥좌를 물려받기 전에 짐이 먼저 조상님을 뵙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열 왕검은 태자의 말을 듣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자식에 대한 사랑과 군주의 의무 사이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부는 그런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먼 나라에 가겠다는데 걱정을 안 할까? 그래도 인도에 갔다 오면 동아시아 최초로 강철을 생산하고 불교의 전륜성왕 사상으로 왕권을 강화할 수 있어. 게다가 목화 같은 농작물도 잔뜩 가져올 수 있지. 목숨 걸고 도박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기원전 265년 현재, 마우리아 제국은 서양에선 서기 1742년에나 개발되는 도가니 제강법과 비슷한 방법으로 질 좋은 강철을 생산해 유럽에 수출하고 있으며 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 아래 카스트 제도에 반대하는 불교가 지배계층에 맞설 정도로 세력을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마우리아 제국을 다스리고 있는 명군 아소카 대왕은 앞으로 4년 뒤인 기원전 261년에 불교에 귀의하면서 그 해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 불교를 전파하기 시작한다.

한부는 전생에 불교 신자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데다 동아시아사를 연구하며 불교에 대한 지식이 많았기에 아소카 대왕의 환심을 살 자신이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결심을 굳히고 한열 왕검에게 말했다.

“아버지. 육로 대신 바닷길을 이용하면 훨씬 빨리 마우리아에 다녀올 수 있습니다. 소자 왕검성을 떠나면 아무리 늦어도 5년 안에는 돌아오겠습니다. 한 번만 더 소자를 믿어주십시오.”

“배를 타고 가겠단 말이지······. 정말 괜찮겠느냐? 배를 자주 타는 제나라 상인 중에도 초나라보다 먼 곳에 가본 적이 있다는 자를 본 적이 없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자는 호랑이도 맨손으로 때려잡지 않았습니까? 이미 마우리아까지 갈 방법을 생각해두었습니다. 만약 여행 도중 소자의 예상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지체없이 왕검성으로 돌아오겠습니다.”

“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네 소원을 들어주겠다. 하지만 천신께 맹세코 위험이 닥칠 것 같으면 바로 왕검성으로 뱃머리를 돌려야 한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고맙기는. 늘 비범한 행보를 보여온 네 말이니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구나. 그나저나 이번 여행은 준비를 단단히 하고 떠나야겠구나. 여행에 필요한 것을 말해보아라. 이 아비가 구할 수 있는 것이면 뭐든 준비해주마.”

“튼튼하고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배 한 척과 노련한 선원, 그리고 마우리아의 왕에게 선물할 값진 선물이 있으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호위병도 좀 데려가는 게 좋겠다. 그거면 되겠느냐?”

“아! 제나라에서 사남(司南)이라는 물건을 수입해서 항해에 사용하고 싶습니다.”

“사남? 그건 뭐에 쓰는 물건이냐?”

“남쪽을 가리키는 신기한 성질이 있는 금속을 가공해 만든 물건인데, 그걸 가지고 있으면 어디서나 쉽게 방위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정말 신기한 물건이 많구나. 모든 준비를 마치려면 몇 달은 필요할 게다. 그리고 겨울은 항해하기에 좋지 않은 계절이니 내년 봄에 여행을 떠나도록 해라.”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다른 사람들에게는 네가 그 초나라로 유학을 간다고 말해두겠다. 특히 부인은 네가 8,500리나 떨어져 있는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알면 앓아눕고 말 테니까.”

“소자도 그러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 * *

기원전 264년 초봄, 한부는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하급장교가 된 석, 계와 함께 기나긴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

한열 왕검과 모후 연, 그리고 수많은 대신과 백성이 왕검성의 성문까지 나와 태자 일행을 배웅했다.

한부가 말 위에 오르기 전에 모후 연은 나무를 깎아서 만든 부적을 넣은 비단 주머니를 아들에게 건네주면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태자. 이건 대제사장님께서 직접 만드신 병마를 막아주는 부적입니다. 초나라는 날씨가 습하고 무더운 곳이라고 하니 늘 건강에 주의해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소자 대국의 학자들에게 학문을 배우고 몸 건강히 돌아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꼭 그래야 합니다. 이 어미는 태자가 돌아올 때까지 좋은 집안의 색시를 알아보고 있겠습니다.”

한부와 모후 연이 얼싸안으며 작별인사를 나눈 후 한열 왕검도 걱정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아들에게 말했다.

“태자야. 조심해서 다녀오너라. 이 아비와 약속한 것을 잊지 말고.”

“꼭 그리하겠습니다. 폐하.”

태자가 왕검 부부와의 작별인사를 마친 후 말머리를 항구마을 쪽으로 돌리자 석과 계, 그리고 호위기병 1백 기, 그리고 보급품을 실은 수레가 몇 대가 그 뒤를 따랐다.

말을 타지 못해 혼자 쌍두마차를 몰던 석은 왕검성이 손바닥으로 가려질 만큼 멀어지자마자 태어나서 처음 소풍 가는 어린애처럼 활짝 웃더니 한부의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전하! 참으로 기대됩니다! 8,500리나 떨어진 곳에 있는 신비의 대국이라니요! 그 나라는 제나라나 연나라보다도 큽니까?”

“물론이지. 그 나라는 서쪽 대륙의 일곱 나라를 전부 합친 것보다 넓고 5천만 명이 넘는 백성이 살고 있다고 하더구나.”

“5천만 명! 허허······ 세상 사람의 절반쯤은 그 망우리인지 뭔지 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모양입니다.”

“망우리가 아니라 마우리아. 그런데 세상은 우리 조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구나. 그 나라에서 최대한 다양한 나라 사람을 만나서 많은 것을 배워오자꾸나.”

“기왕이면 소신을 등에 태울 수 있는 힘 좋은 말도 구해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네 승마 실력이 녹슬까봐 걱정되는구나.”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계가 허리춤에 찬 주머니에 들어있는 원시적인 나침반인 남사를 꺼내면서 태자에게 말했다.

“석이 탈 말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연 이 남사라는 물건 하나만 가지고 그 먼 곳까지 배를 몰고 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전하. 정말 이 물건만 가지고 있으면 8,500리나 되는 바닷길을 무사히 지날 수 있겠습니까?”

“역시 계는 신중하구나. 방위를 안다고 해도 처음 가보는 해역을 항해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 네 걱정대로 우리 조선의 선원들이 모는 배를 타고 마우리아로 가다가는 십중팔구 물고기 밥이 되고 말 거다.”

태자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하자 석과 계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아직 동아시아의 배는 대부분 연안 항해를 목적으로 제작돼서 거친 풍랑에 약한 데다가 선박의 방향을 바꾸는 키도 발명되지 않은 상황.

게다가 기원전 3세기의 선원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정확한 위치가 알려진 육상목표를 통해 선박의 위치를 연안항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미지의 해역을 항해하는 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계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다시 태자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목숨을 담보 삼아 도박을 하실 생각이신지요?”

“그럴 리가. 거친 바다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먼저 초나라를 기준으로 정 남쪽에 있는 큰 섬에 들를 생각이다. 그곳에는 항해술에 정통한 바다의 부족이 살고 있지. 만약 그들과의 교섭이 결렬되면 정말로 초나라에나 들렀다가 왕검성으로 돌아오자꾸나.”

“세상에는 그런 곳도 있었군요. 그 섬의 이름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음······ 나도 꿈에서 섬의 위치를 봤을 뿐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구나. 그 섬에는 높게 두드러진 평평한 땅이 많이 보였으니 일단 ‘대만’이라고 불러야겠다.”

“대만이라.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군요.”

한부는 인도로 출발하기 전에 초나라의 최남단 항구마을에서 보급을 마친 다음 다시 대만에 먼저 들를 생각이었다.

기원전 3세기의 대만에 거주하는 부족은 동아시아인과는 전혀 다른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의 원주민으로 주로 폴리네시아인으로 불리는 인종이었다.

폴리네시아인은 대부분 근대까지도 청동기 시대에 머물러 있었지만, 기원전 3천 년경에 중원 대륙에서 대만으로 이주한 후 고대가 끝나기 전에 카누를 타고 피지와 뉴질랜드, 하와이, 심지어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섬까지 진출한 해양민족이다.

별자리를 보고 선박의 위치를 파악하는 천문항법에 정통한 이들의 힘을 빌릴 수 있으면 동아시아에서 인도까지의 항해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전생에 화와이 원주민의 전통 카누를 탄 모험가들이 나침반도 없이 폴리네시아식 천문항법으로 3년 만에 세계 일주에 성공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 그 사람들만 잘 설득하면 대만에서 인도까지는 몇 개월이면 갈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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