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27화] 상남자의 호랑이 사냥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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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아아!”
석이 성난 맹수처럼 괴성을 지르며 호랑이에게 달려들자 다른 세 사람도 밧줄을 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사냥개 무리에게 정신이 팔렸던 호랑이는 어지간한 수컷 반달가슴곰보다 덩치가 큰 인간이 갑자기 덤벼드는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주춤하고 말았다.
석은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썰매를 타듯 눈으로 뒤덮인 바닥에 미끄러지면서 호랑이의 오른쪽 앞발을 밧줄로 감아서 힘차게 앞으로 잡아당겼다.
- 캬우우웅?!
어린 호랑이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비틀거리는 사이에 네 사람 중 가장 발이 빠른 계가 호랑이의 뒤로 돌아가 왼쪽 뒷발에 밧줄을 감아서 뒤로 잡아당겼다.
그러자 호랑이는 사납게 으르릉거리며 왼쪽 앞발에 발톱을 세우며 석의 가슴팍을 마구 할퀴기 시작했다.
- 크르르르릉!
그러나 석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두꺼운 반달가슴곰 가죽으로 만든 옷을 몇 겹이나 껴입고 왔기에 묵묵히 호랑이의 공격을 견뎌낼 수 있었다.
한부는 이를 악물고 버티는 석의 모습을 보고 입술을 질끈 깨물며 도움닫기를 하다가 우렁찬 고함과 함께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이야아아아아아!”
그는 정확히 호랑이의 등에 떨어진 다음 두 손으로 호랑이의 목에 밧줄을 감아서 녀석의 목을 졸랐다.
- 크아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앙!
호랑이는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포효를 내뱉으며 발버둥쳤지만, 호랑이 사냥꾼이 왼쪽 앞발에도 밧줄을 감아서 앞으로 잡아당기는 바람에 숨통을 조여오는 한부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르니 호랑이는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힘이 빠져서 발버둥을 멈췄다.
석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호랑이의 입에 재갈을 물렸고 한부는 그 모습을 보고 호랑이 목에 감은 밧줄을 조금 느슨하게 풀면서 계속 녀석의 몸을 짓눌렀다.
그렇게 몇십 분이 흘러 호랑이가 완전히 지친 다음 계와 호랑이 사냥꾼이 긴 나무 막대기와 밧줄로 호랑이 다리를 묶자 마침내 호랑이 생포 작전이 막을 내렸다.
한부와 계, 석 세 사람은 사나운 호랑이가 마치 멧돼지 바비큐를 할 때처럼 꽁꽁 묶인 모습을 보고 서로 얼싸안으면서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우아아아아아! 우리가 해냈다! 드디어 호랑이를 잡았어!”
“정말로 호랑이를 생포하다니! 전하!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벌써 이룡도의 동문 녀석들이 입을 쩍 벌리면서 놀랄 게 눈에 선합니다! 전하!”
사냥개들도 신이 났는지 꼼짝 못 하는 호랑이를 놀리듯 눈밭에서 뒹굴어댔다.
중년의 호랑이 사냥꾼은 기뻐 날뛰는 세 명과 세 마리를 보고 지친 미소를 지으면서 태자에게 말했다.
“전하. 이 고생을 하시고도 아직 기운이 남으셨단 말입니까? 소인은 호랑이보다 바닥을 알 수 없는 10대 소년의 체력이 더 무섭사옵니다.”
“엄살은. 자네도 아직 농담할 기운이 남은 걸 보니 아직 팔팔하구먼. 그런데 아까는 너무 흥분해서 몰랐는데, 이 녀석이 이렇게 컸나? 정말 덜 자란 녀석 맞아?”
“분명합니다. 전하. 호랑이는 수컷이 암컷보다 덩치가 훨씬 큰 동물입니다. 이놈은 수컷이니 덜 자랐어도 제법 몸집이 큰 것입니다.”
한부는 재갈을 물린 입에서 하얀 김을 뿜어내는 호랑이를 내려다보자 새삼스럽게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몸길이가 2m는 넘어 보이는데도 덜 자란 녀석이란 말이지. 저 앞발에 삐져나와 있는 발톱 좀 봐라. 아무리 석이 근육이 탄탄해도 곰 가죽옷 없이 냥냥 펀치를 맞았으면 뼈와 살이 분리됐겠네.’
계도 흥분이 가라앉자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주변을 둘러보면서 한부에게 말했다.
“전하. 우리가 잡은 호랑이 말고도 이 산에는 많은 맹수가 살고 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어서 이 녀석을 데리고 왕검성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네 말이 옳다. 살아있는 호랑이를 본 왕검성 백성들의 반응도 궁금하니 얼른 하산하자.”
대화를 마치자마자 네 사람은 미리 챙겨온 나무 썰매 위에 온몸이 묶인 호랑이를 올려놓았다.
그런 다음 석은 호랑이를 실은 썰매에 묶인 긴 밧줄을 허리에 묶어서 끌고 가기 시작했고 나머지 세 사람은 눈밭에 던져둔 창을 집고 썰매 주변을 지키며 산비탈을 내려갔다.
한부와 계는 사냥개들과 함께 긴장된 눈빛으로 사주경계를 하며 한발 한발을 내디뎠지만, 호랑이에게서 풍기는 독한 냄새가 표범이나 늑대 따위의 다른 맹수를 쫓아주었기에 무사히 왕검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석이 살아있는 호랑이를 끌고 왕검성의 북문을 지나자 수백 명의 백성이 도깨비라도 본 듯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 태자 일행의 주변으로 몰려들어 소란을 피웠다.
“저거 호랑이 아니야?! 그런데 저 녀석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이는 거 같은데?!”
“자네 또 대낮부터 약주 했어? 새끼도 아니고 저렇게 큰 호랑이를 어떻게 산 채로 잡아?”
“아냐! 잘 보라고! 저 호랑이 창이나 화살에 맞은 자국이 없잖아! 분명히 살아있다니까?”
“옴마나! 참말이네?! 잘 보니까 눈도 껌뻑이고 있잖아?! 이게 꿈이여?! 생시여?!”
석은 구경꾼들이 법석을 떠는 모습을 보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이 녀석 앞발을 가슴으로 받아내는 사이에 태자 전하께서 직접 호랑이 등에 올라타신 다음 목을 졸라 사로잡으셨소!”
“뭐요?! 그럼 당신들 중에 태자 전하께서 계신단 말이오?!”
한부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놀라는 구경꾼을 보고 씩 웃더니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조선의 태자 한부다! 천신의 거처가 있는 대성산 중턱에서 그분께서 내리신 시련을 이겨내고 막 왕검성으로 돌아온 길이다!”
그러자 주변에 몰려든 구경꾼들은 그제야 4년 만에 궁궐 밖으로 나온 태자를 알아보고 바닥에 엎드려 절하면서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드디어 조선의 가장 큰 고민을 해결하셨군요! 감축드리옵니다! 전하!”
“총명하신 태자 전하께서 이토록 늠름한 청년으로 자라셨다니! 조선의 장래가 밝습니다! 전하!”
그 후 한부가 고작 세 명의 부하와 함께 호랑이를 산 채로 잡아왔던 소문은 바람같이 왕검성 안으로 퍼져 나가 태자 일행이 궁궐에 도착하기 전에 한열 왕검과 모후 연의 귀에 들어갔다.
왕검과 모후는 장남이 맨손으로 때려잡은 호랑이를 끌고 오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황급히 외출복을 입고 궁궐 밖으로 나섰다.
모후 연은 궁궐의 대문 앞에서 한부를 기다리면서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남편에게 따졌다.
“폐하! 설마 아직 상투도 틀지 않은 태자가 무기도 없이 호랑이를 잡는 걸 소첩 몰래 허락하신 겁니까?!”
“부인! 그럴 리가 있겠소?! 새벽에 조반을 지으러 가던 궁녀가 말하길 날쌘 인영이 궁궐의 담을 넘어가는 걸 봤다던 데 그게 아마 태자였던 모양이오.”
“태자는 대체 누굴 담아서 그리도 무모한 구석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발 다친 데 없이 무사해야 할 텐데!”
그때, 두 사람의 시중을 들던 내관이 손으로 전방을 가리키면서 왕검에게 말했다.
“폐하! 보십시오! 태자가 도착했습니다!”
왕검과 모후가 내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자 먼발치에 개선장군처럼 당당한 발걸음으로 궁궐을 향해 다가오는 태자 일행의 모습이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모후 연은 체통도 잊고 한달음에 한부에게 달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태자! 어디 다친 곳은 없나요? 정녕 무사한 겁니까?!”
“모후시여! 걱정을 거두십시오! 소자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천신께서 내리신 시련을 이겨냈습니다!”
“천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참으로 다행이에요! 허나 호랑이를 잡으러 가기 전에 왕검 폐하나 이 어미에게 언질을 주고 가야 할 것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하지만 두 분께서는 소자를 아직 어린아이로 여기시는 것 같아 쉽게 허락하시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정말로 대단한 일을 해냈습니다. 허나 다시는 이 어미를 놀라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명심하겠습니다. 모후시여.”
모후 연이 한부를 칭찬하면서도 꾸짖는 동안 한열 왕검이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하하! 부인! 태자를 너무 꾸짖지 마시오! 용이 된 이무기가 누군가의 허락을 받고 승천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소? 장성한 태자에게는 궁궐이 비좁았을 뿐이니 너무 책망하지 마시오.”
“폐하! 공은 칭찬하되 잘못은 제대로 꾸짖으셔야지요! 태자가 다시 무모한 일을 벌이면 어찌하시렵니까?!”
“짐이 태자를 낳았을 때가 딱 열일곱 살이었지. 태자는 아직 혼례만 치르지 않았을 뿐 이미 충분히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나이요.”
“후······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태자를 더 꾸짖으면 속 좁은 어미가 되고 말겠군요. 폐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한열 왕검은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 다시 한번 웃은 다음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태자야. 네가 정말로 자랑스럽구나. 사실 짐은 지난 4년 동안 네가 평생 천신께서 내리신 시련을 이겨내지 못할까 봐 걱정이 많았단다. 그런데 이제 막 수염이 나기 시작할 나이에 호랑이를 잡았구나! 그것도 산채로 말이지!”
“모두 폐하께서 조선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무예와 학문을 익힐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덕분입니다.”
“겸손이 과하구나! 이룡도 단원 중 너하고 네가 데려간 저 세 사람을 제외하면 누가 감히 사나운 맹수에게 맨손으로 덤빌 생각을 하겠느냐?”
왕검은 아들의 어깨를 몇 번 더 두드린 다음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내관을 바라보면서 지시했다.
“당장 전국에 전령을 보내 태자가 천신께서 내리신 시련을 완수했다는 소식을 알려라! 그리고 앞으로 닷새 동안 축제를 열어 왕검성에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좋은 술과 음식을 대접하도록 해라!”
“폐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 * *
한부가 호랑이 사냥을 미친 지 나흘째 되던 날, 왕검성 시내 한복판에는 태자 일행이 잡아 온 호랑이의 가죽이 걸린 기다란 장대가 섰고 그 주변에 차려진 잔칫상에 모여든 수천 명의 백성이 왕실이 베푼 술과 음식을 즐기며 웃고 떠들었다.
그동안 궁궐에서는 고조선 전역에서 모여든 제후들이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한열 왕검과 태자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태자가 저렇게 강인하고 현명하니 장차 폐하 다음으로 훌륭한 왕검이 될 게 분명합니다!”
“고맙소. 웅 대부. 여러 제후가 궁궐에 보낸 전도유망한 인재들과 함께 학업에 힘쓴 덕분에 태자가 훌륭하게 자랐소. 특히 그대의 손자 석은 태자가 시련을 이겨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오.”
“소신도 어제 손주 놈에게 그 얘기를 들었습니다. 폐하. 그 무모한 녀석이 호랑이의 공격을 몸을 받아냈다는 말을 듣고는 등짝을 후려치고 말았지 뭡니까! 할애비로서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부족한 손주가 조선과 왕실의 앞날을 밝히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니 참으로 기쁩니다.”
“조선 최고의 장사더러 부족한 손주라니! 겸손이 과하시구려! 그나저나 오늘 이 자리에 상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안타깝소. 상의 막내아들 계도 석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냥에 큰 공을 세웠는데 말이오.”
“상은 고뿔에 걸려 몸져눕는 바람에 경사스러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구먼.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오.”
한열 왕검은 그렇게 늦은 저녁까지 제후들과 술잔을 부딪치다 술자리가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왕검이 내관과 함께 막 연회장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한부가 그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폐하. 너무 피로하시지 않다면 침소에 드시기 전에 꼭 드리고 싶은 부탁이 있습니다.”
“지금 말이냐? 뭔가 또 기발한 생각을 해낸 모양이구나. 어서 말해 보아라.”
“조선과 왕실의 미래에 관한 중요한 일이라 허락하신다면 듣는 귀가 없는 곳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음······ 그렇다면 서재로 가자꾸나. 이번에는 네 머릿속에 무슨 계획이 들어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