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25화] 교육과 발명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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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룡도 단원들이 한글과 아라비아 숫자를 배운 다음 날, 한부는 그날의 일과를 마치자마자 내관 참과 함께 궁궐의 서재로 향했다.
그는 서재의 책장에서 빈 죽간을 꺼내 책상에 올려놓은 다음 앞으로 만들어낼 물건의 목록과 그림을 새기려다가 잠시 서도를 멈췄다.
‘잠깐만. 철기 도입으로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고조선의 생산력은 아직 대단치 않은 수준이야. 당장 몇 년 안에 시작될 정복 전쟁에 유용한 물건부터 만들어야겠어.’
현재 연나라는 남쪽 국경을 맞댄 조나라나 제나라와 사이가 좋지 않아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압록강 이남 지역에 병력을 배치할 여유가 별로 없다.
그렇기에 지금의 역사가 한부가 전생에서 읽었던 자료와 비슷하게 흘러간다면 연나라는 앞으로 몇 년 안에 스스로 한반도 북부를 포기하고 압록강 북쪽으로 물러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천강 이북부터 압록강과 두만강 남쪽에는 아직 석기를 주력 무기로 사용하는 군소 부족만이 남게 될 것이고 고조선은 영토를 북쪽으로 확장하기 딱 좋은 기회를 맞게 된다.
그는 잠시 궁리하다가 세 가지 물건의 간략한 그림을 죽간에 새긴 다음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관 참을 불렀다.
“참. 안으로 들어와 보게.”
내관은 태자의 부름을 듣고 서재 문을 열고 들어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전하. 부르셨습니까?”
“어서 대장장이 강을 불러오게. 이 시간이면 아직 왕실의 은 제련소나 대장간에서 일하고 있을 걸세.”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참은 태자의 명을 받자마자 서재 밖으로 나가더니 금방 대장장이 강을 데리고 돌아왔다.
강은 한부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면서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태자 전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올해 들어 처음 뵙습니다.”
“강. 자네도 그동안 잘 지냈나? 가끔 자네 대장간에 들르고 싶은데 궁궐 밖 출입이 금지돼서 답답해 죽겠구나.”
“소식 들었습니다. 전하께서 직접 호랑이를 잡으시기 전까지는 외출하실 수 없다지요? 어쩌다 대제사장님께서 그런 계시를 받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걱정해줘서 고맙다. 그나저나 요즘 무예와 병법을 배우다 보니까 군사용으로 쓸만한 물건 몇 개가 머릿속에 떠오르더구나. 여기에 대강의 모양을 새겨놨으니 한번 보고 네가 만들 수 있는 물건인지 말해다오.”
한부가 그림을 그린 죽간을 넘겨주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전하. 죽간 맨 왼쪽에 그리신 물건은 농부가 쓰는 도리깨 아닙니까?”
“도리깨와 비슷하게 생긴 편곤이라는 무기일세. 추를 나뭇가지 대신 철로 만들어서 휘두르는 물건이지.”
“과연! 이거라면 병사로 징집된 농부들이 따로 훈련을 받지 않아도 쉽게 쓸 수 있겠군요. 그런데 다른 두 물건은 어디에 쓰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두 물건은 등자와 편자라고 부르는 물건이다. 등자는 안장에 발걸이를 달아 기수가 안정감 있게 말을 탈 수 있게 도와주지. 또 편자는 말발굽에 금속으로 만든 틀을 덧대서 발굽이 빨리 닳지 않게 하는 물건이다. 우리 조선은 말이 귀하고 암석 지대가 많은 나라라 말의 발굽이 빨리 닳으니 편자가 있으면 기병을 양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다. 어떠냐? 만들 수 있겠느냐?”
“흠······ 전하. 무식한 소인이 보기에는 이 편자라는 물건은 널리 쓰이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리고 등자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합니다.”
“뭐?! 대체 왜?”
“이 편자라는 물건을 말의 발굽에 박으려고하면 말이 발버둥 칠 게 분명하니 공인이 그 기술을 익히는 데만 몇 년이 걸릴 겁니다. 또한, 철은 단단하지만 강한 충격을 받으면 잘 깨지는 금속이라 편자를 만들기에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단단하면서도 질긴 청동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인데, 청동은 아시다시피 금이나 은 다음으로 값비싼 귀금속이지요.”
“음······ 그거 안타깝구만. 그러면 등자는 왜 만들기 어렵다는 거냐? 그저 안장에 발걸이를 두 개를 달 뿐인데.”
“이 안장과 발걸이를 연결하는 가죽끈이 문제이옵니다. 소인이 가죽을 다루는 공인은 아니지만, 이 죽간에 그리신 것처럼 얇은 가죽끈이 갑옷을 입은 기수의 체중을 버티려면 얇고 튼튼한 가죽끈을 만드는 방법부터 알아내야 할 듯합니다.”
한부는 대장장이 강의 말을 듣고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망할! 소설에선 등자 정도는 무슨 택배 배달 오듯이 잽싸게 만들 던대, 역시 현실은 만만치 않구나. 어쩌면 등자 개발에만도 최소 몇 개월은 걸릴 수도 있겠다. 거기에 주철이 잘 깨져서 편자는 아직 만들지도 못한 말이지······.’
원역사의 현대 한반도에서 발견된 편자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삼국시대 가야의 것인데, 그 편자는 강철의 일종인 괴련침탄강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주철보다 튼튼한 괴련침탄강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초강법은 백 년 이상이 지난 기원전 1세기의 한나라에서 개발되는 기술로 아직은 세상에 없는 것이었다.
‘너무 실망하지 말자. 어차피 내 계획이 성공하면 10년 안에 강철을 양산할 수 있어. 지금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는 게 최선이다.’
그는 그렇게 마음먹고 다시 대장장이 강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편곤부터 만들어서 이룡도에 납품해다오. 자루가 긴 보병용 편곤과 자루가 짧은 마상편곤을 각각 쉰 개씩 만들면 충분할 거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그리고 자네 혹시 청동 잔무늬거울 만들어 본 적 있나?”
“외람된 말씀이오나 조선땅에서 소인보다 잔무늬거울을 잘 만드는 자는 없을 겁니다. 전하.”
“그거 잘됐구만! 혹시 청동이 아니라 은으로 만들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전하.”
“왕검께 말씀드려서 이번에 제련한 은을 좀 줄 테니 그걸 전부 써서 잔무늬거울을 만들어다오.”
“알겠습니다. 대제사장님께 바칠 제기(祭器)가 많이 필요하신 모양입니다.”
“아니. 은제 잔무늬거울을 제나라에 팔아볼 생각이다. 슬슬 신선차 말고 다른 조선의 특산품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지.”
* * *
대장장이 강은 태자의 명을 받은 지 일주일 만에 보병용 편곤과 마상편곤 각각 50개, 그리고 은제 잔무늬거울 1백 개를 만들어 궁궐로 보냈다.
한열 왕검은 아들의 제안대로 무예 훈련을 맡은 장교들에게 편곤 사용법을 연구해 이룡도 단원들에게 가르치도록 하는 한편, 왕검성을 찾는 제나라 상인에게 은거울을 팔기 시작했고 결과는 양쪽 모두 성공적이었다.
처음 편곤 훈련이 시작된 지 반년이 지난 기원전 268년의 어느 가을날, 한열 왕검은 몇몇 제후와 함께 태자와 이룡도의 단원들이 마상 무술을 훈련하는 모습을 참관했다.
“이럇!”
한부가 흑마의 옆구리를 걷어차며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나가자 다른 이룡도 단원 네 명도 전방의 허수아비를 향해 말을 달렸다.
다섯 명의 기수는 머리에 철제 투구를 쓴 허수아비 바로 앞에 다다르자 군무를 추듯 동시에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이며 두 손으로 쥔 편곤을 세차게 휘둘렀다.
- 퍼억!
둔탁한 타격음이 참관인들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자 허수아비가 쓰고 있던 철제 투구 다섯 개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한열 왕검 그 모습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면서 어린 기수들을 칭찬했다.
“훌륭하도다! 참으로 훌륭한 솜씨야! 태자야! 네가 부순 투구를 가지고 이리 가까이 오너라.”
“알겠습니다. 폐하.”
한부는 능숙한 솜씨로 말에서 뛰어내린 다음 발밑의 투구를 주워서 왕검에게 가져가 두 손으로 바쳤다.
그러자 왕검의 주변에 있던 대신들이 투구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보면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럴 수가······ 철로 만든 투구가 나무판자처럼 깨지다니! 폐하! 그 편곤이라는 새로운 무기의 위력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금 대부. 위력도 위력이지만, 이룡도 단원인 제 아들놈이 말하길 검보다 훨씬 쉽게 쓸 수 있다더군요. 태자 전하께서 참으로 유용한 무기를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한부는 자기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쓸모 있지. 검하고는 달리 갑옷을 입은 상대한테도 잘 통하잖아.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가장 많이 쓰인 근접무기가 바로 이 편곤인데.’
편곤은 임진왜란 시기에 명나라군을 통해 조선에 들어오자마자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선조실록에는 명회라는 이름의 고양(高陽) 사람이 왜적에게 살해당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편곤 한자루로 왜적을 4백여 명이나 때려죽였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후기에 작성된 하멜 표류기에는 환도 없이 편곤과 활로만 무장한 기병이 많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한부가 고조선군에 편곤을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열 왕검은 대부들이 태자를 칭찬하자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 아들 자랑을 시작했다.
“편곤뿐만이 아니오. 한 반년 전에 태자가 은제 잔무늬거울을 제나라에 팔자고 제안하여 한번 시도해봤는데, 왕검성을 찾은 제나라 상인들이 그 물건을 보고 크게 감탄하면서 비싼 값에 사갔소. 지금은 다른 나라에도 명성이 퍼져서 초나라 상인들까지 왕검성에 와서 은거울을 사가고 있다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서쪽 대륙에는 귀한 물건이 많다고 들었는데, 바다를 건너와서 조선의 은거울을 사가다니 말입니다.”
“듣자 하니 서쪽 대륙에는 은이 별로 나지 않는다고 하오. 그리고 다른 나라에는 청동이나 은에 섬세한 무늬를 새길 줄 아는 공인이 거의 없다는 모양이오.”
“금속세공기술만큼은 조선이 최고라는 말씀이군요!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고조선은 늦어도 기원전 4세기부터 현대에 섬세한 무늬가 새겨진 잔무늬 청동거울인 다뉴세문경(多鈕細紋鏡)을 만들어 제기로 사용해왔다.
이 청동거울은 수없이 많은 실처럼 가는 선을 거울 뒷면에 새겨 기하학적인 무늬를 그린 것인데, 그중에서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된 정문경은 선과 선의 간격이 0.3mm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이런 정교한 세공이 들어간 청동거울은 고조선이 고대 중국의 나라들보다 먼저 만들었으며 현대에도 아직 고조선의 다뉴세문경보다 세밀한 무늬가 새겨진 청동거울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기원전 3세기의 동아시아는 유럽과 달리 은을 기축통화로 사용하지 않았기에 은 생산량이 매우 적었다.
그런 이유로 현재 은은 중원 대륙에서 같은 무게의 금값의 5분의 1 가격에 거래될 정도로 비쌌다.
그러니 중원 대륙의 나라들에서 고조선의 은거울은 좋은 가격에 팔릴 수밖에 없었다.
한부는 기뻐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폐하께서 그리 칭찬하시니 소자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제 조선 왕실의 국고가 더욱 풍족해졌으니 더 많은 무기를 만들고 강병을 양성해 몇 년 안에 다가올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다가올 기회라니? 태자야. 그게 무슨 소리냐?”
“얼마 전에 만난 제나라 상인에게 들은 얘기입니다만, 서쪽 대륙의 일곱 나라가 나날이 서로 사이가 나빠져서 틈만 나면 서로 잡아먹으려고 든다고 합니다. 특히 연나라는 다른 여섯 나라 중 친한 나라가 없다시피 하기에 몇 년 안에 엄리대수(압록강) 이북으로 군대를 물릴 가능성이 큽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조만간 많은 피를 흘리지 않고도 잃었던 땅을 많이 찾을 수 있겠구나! 그날이 오면 짐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북벌에 나설 것이다!”
한부는 아버지의 외침을 듣고 굳게 다짐했다.
‘행운의 여신한테는 뒷머리가 없다고 했지? 나도 연나라가 자멸하기 시작하기 전에는 꼭 호랑이를 잡고 궁궐 밖으로 나가고 말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