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23화] 내친 김에 인재육성 (2)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고조선 전역에서 모여든 명가의 자제들은 왕실 근위병의 안내를 받으며 궁궐 대문을 지난 다음 한열 왕검과 한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대열의 맨 앞에서 소년들을 인솔해온 비왕 무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룡도 입단 희망자들은 왕검 폐하와 태자 전하께 예를 올려라!”
열 살 전후의 소년 수백 명은 인솔자의 지시에 따라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고 비왕 무는 지원자의 수를 마지막으로 점검한 다음 한열 왕검의 곁으로 다가와서 보고했다.
“폐하. 이룡도 입단을 희망하는 명가의 자제 503명이 모두 입궐했습니다.”
“수고했소 비왕.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명가의 자제가 모여서 무척 기쁘구려.”
“뜻밖에도 상 완을 비롯한 대부분의 호랑이 부족 출신 제후가 지원자를 보낸 덕분입니다. 폐하.”
“그 고집 센 호랑이 부족 출신 제후들이? 참으로 신기한 일이구먼.”
“다만 호랑이 부족 출신 제후가 보낸 지원자들은 전원 서자이거나 평민이나 몰락한 귀족 가문에서 들인 양자입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그래도 예전의 뻣뻣했던 태도에 비하면 많이 나아지기는 했구려.”
한열 왕검은 그럭저럭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지만, 한부는 호랑이 부족의 대응에 짜증을 느꼈다.
‘상 완과 호랑이 부족······. 왕실의 체면은 살려줘도 가문의 적자는 볼모로 보내고 싶지 않단 말이지? 대놓고 왕실을 무시하면 그걸 빌미로 토벌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네. 호랑이 부족이 앞으로 어떤 스탠스를 취할 생각인지 파악했으니 전략을 다시 짜봐야겠다.’
한부는 이번 일로 호랑이 부족이 한동안 왕실에 고개를 숙이면서 현재 가지고 있는 영지와 지위의 유지, 그리고 농지 개간 등을 통한 세력 확장에 몰두할 거라고 판단했다.
그의 예상이 맞다면 호랑이 부족은 한열 왕검의 왕권이 건재한 동안은 먹잇감을 노리고 수풀에 매복한 호랑이처럼 웅크리면서 기회를 노리다 고조선에 위기가 닥쳤을 때 조용히 갈아왔던 발톱을 드러내며 왕실을 위협할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호랑이 부족을 치면 왕실에 우호적인 곰 부족도 적으로 돌리고 말겠구나. 몇 년만 기다려 봐라. 아직 발톱이 날카로워지기 전에 네놈들이 먼저 왕실에 덤빌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낼 테니까. 내부의 걸림돌을 척결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개혁 시작이다.’
그렇게 한부가 다시 한번 고조선 부흥의 목표를 상기하는 동안 비왕 무가 지원자 무리를 바라보면서 입단 시험의 시작을 알렸다.
“지금부터 이룡도 입단 시험을 시작하겠다! 먼저 숙련된 병사가 시범을 보일 터이니 모두 잘 지켜보거라! 전! 시작해라!”
“알겠습니다. 비왕님.”
날렵한 체형의 젊은 병사는 비왕의 명에 따라 작년 겨울에 태자가 알려준 네 가지 운동을 선보였다.
첫 번째 종목은 버피테스트로 똑바로 선 자세에서 빠르게 쪼그려 앉았다가 팔굽혀펴기를 한번 한 다음 다시 쪼그려 앉은 자세로 돌아왔다가 점프하면서 일어서는 동작이다.
병사는 버피테스트를 절도있는 동작으로 여덟 번 반복한 다음 곧바로 약 3m 높이의 벽돌담 앞으로 달려가서 벽 바로 앞에 놓여있는 큰 수박만 한 가죽공을 두 손으로 집었다.
그런 다음 그는 공을 두 손으로 든 채로 스쿼트 자세로 앉았다가 일어나면서 공을 머리 위로 던져서 벽에 맞고 튕겨 나온 공을 다시 잡고 스쿼트 자세로 돌아오기를 여덟 번 반복했다.
그러자 조금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몇몇 소년은 그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수군거렸다.
“휴······ 다행이다. 입단 시험이 있다고 해서 긴장했는데 별거 아니네.”
“그러게 말이야. 난 또 활쏘기 시합이라도 벌이는 줄 알았지.”
그리고 다음 종목인 배틀로프 시범이 시작되자 몇몇 아이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즐거워하기까지 했다.
“와! 말뚝에 묶어둔 밧줄을 잡고 마구 흔드는 놀이구나! 저런 거 처음 봐!”
“밧줄이 꼭 파도처럼 출렁이네! 나도 얼른 저거 해보고 싶다!”
한부는 그 말을 듣자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이따가 팔이 끊어질 것 같다면서 울지는 말았으면 좋겠네.’
병사가 마지막으로 턱걸이 다섯 개를 하고 크로스핏 시범을 마치자 드디어 본격적인 입단 시험이 시작되었다.
비왕 무는 입단지원자 대열 중 맨 오른쪽 줄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는 태자 전하와 함께 첫 번째로 시험을 치를 것이다. 내 옆에 있는 향로의 향이 다 타서 없어질 때까지 병사들의 지시에 따라 조금 전에 본 동작을 차례대로 반복하면 된다. 동작이 어설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는 탈락시키지 않을 테니 모두 가문의 명예를 걸고 최선을 다해라.”
“알겠습니다! 비왕님!”
50명의 소년들은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하면서 태자와 함께 체력훈련장으로 걸어갔다.
한부는 전생에 처음 크로스핏 체육관에 갔을 때 겪었던 끔찍한 고통을 떠올리며 각오를 다지며 달려나갈 준비를 마쳤다.
‘이 몸으로는 처음 해보는 거라서 좀 긴장되네. 그래도 하반신만큼은 승마로 단련되어 있고 시험에 쓸 향도 30분 정도면 다 타도록 조절해 뒀으니 못 버틸 건 없다.’
잠시 후 태자와 첫 번째 그룹은 소년들은 우렁찬 징소리가 울려 퍼지자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우와아아아아아!”
소년들은 함성을 지르며 힘차게 공중으로 뛰어오르고, 2kg이 넘는 가죽공을 벽에 던지고 땅에 늘어져 있는 말뚝에 묶인 밧줄을 두 손에 잡고 흔들어댔다.
한열 왕검은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조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비왕 무에게 말했다.
“비왕. 제후와 대신의 자식들이 저토록 기운차니 조선의 미래가 밝구려. 허나 저런 기세라면 거의 전원이 시험에 합격할 텐데······.”
“폐하. 조선의 어린 이무기들이 지낼 연못이 비좁을까 걱정되시옵니까?”
“그렇소. 변변한 시설도 갖추지 않고 명가의 자식들에게 헛걸음을 시키면 왕실의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오.”
“너무 염려치 마시옵소서. 폐하. 저 향이 다 탈 때쯤에는 지금 시험을 보고 있는 쉰 명 중 열 명도 남지 않을 겁니다.”
“저 아이들 놀이 같아 보이는 운동이 그토록 힘들단 말이오?”
“소신도 태자가 고안한 운동을 처음 해본 날에는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습니다.”
“허허! 그것참 놀랍구려! 그럼 어디 한번 지켜봐야겠구려!”
그 후 5분 정도가 지나자 비왕의 예견대로 벌써 열 명이 넘는 지원자가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흐느적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헉! 헉!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아아······ 더는 못하겠어! 온몸이 후들거려!”
그리고 약 15분이 지나자 이미 3분의 2가 넘는 소년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이마에 흐른 땀을 닦거나 울먹이면서 부모를 찾았다.
한부도 20분이 지날 때쯤 슬슬 몸이 천근같이 무거워지기 시작했지만, 이를 악물고 끊임없이 팔다리를 움직였다.
‘이 정도 고통도 이겨내지 못하면 앞으로 뭘 할 수 있겠어?! 미래의 신하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그렇게 세 시간 같은 30분이 지나갈 때까지 몸을 움직이고 있던 사람은 한부를 포함해서 고작 여섯 명뿐이었다.
비왕 무는 청동 향로의 향이 다 타버린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만! 마지막까지 버틴 지원자는 왕검 폐하 앞으로 다가오너라! 왕검께서 친히 합격자에게 이룡도의 일원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증표를 선사하실 것이다!”
한부는 비왕의 외침을 듣고 자세를 바로 한 다음 한열 왕검의 곁으로 걸어갔다.
태자의 온몸은 땀으로 젖어있었지만, 그의 표정과 걸음걸이는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한열 왕검은 그런 장남에게 용의 문양이 새겨진 작은 청동거울을 건네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태자야. 참으로 장하다. 힘든 시험을 견뎌내고도 왕족의 기품을 잃지 않았구나. 장래에 네 신하가 될 자들과 함께 열심히 학문과 무예를 닦아 장차 훌륭한 왕검이 되어라.”
“감사합니다. 폐하. 조선의 주인이 될 자로서 늘 타에 모범을 보이겠습니다.”
“그래야지. 벌써 연나라군을 몰아내고 요동벌판에서 말을 달리는 네 모습이 눈에 선하다.”
왕검이 태자를 포함한 여섯 명의 합격자에게 청동거울을 수여하자 바로 다음 그룹의 시험이 시작됐다.
그런데 한부가 왕검의 옆자리에 준비된 의자에 앉는 순간 그의 시야에 유난히 키가 큰 지원자 한 명이 들어왔다.
한부는 그를 보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비왕에게 물었다.
“어?! 비왕. 제후들에게 열 살에서 열네 살까지만 이룡도의 지원자로 받는다고 알리지 않았소? 저자는 상투만 틀지 않았을 뿐 이미 스무 살이 넘은 것 같은데?”
“전하. 저자는 대부이자 곰 부족의 장로인 웅의 손자 석입니다. 덩치가 커서 얼핏 보면 장정 같지만, 전하 보다도 한 살 어립니다.”
“그게 사실이오?! 키가 7척(약 161cm)이 훨씬 넘는 것 같은데 열두 살이라니······.”
고조선의 성인 남자 평균 키는 약 162cm, 그러나 겨우 석 달 전에 열두 살이 된 석의 키는 적어도 170cm는 되어 보였고 골격도 웬만한 성인보다 컸다.
‘등빨도 정말 장난 아니구만. 그런데도 나보다 연하란 말이지.’
시험이 시작되자 석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표범처럼 날렵하게 움직이면서 체력과 힘을 과시했다.
한열 왕검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뜨면서 비왕에게 말했다.
“허허허······. 다른 아이들이 흔드는 밧줄은 잔물결처럼 일렁이는데 웅 대부의 손자가 쥔 밧줄은 태풍이 부는 날의 파도처럼 요동치는구려.”
“소신도 적잖이 놀랐습니다. 폐하. 웅 대부가 평소 손주 자랑을 많이 하긴 했습니다만, 저 정도로 뛰어난 장사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한부는 굵은 밧줄을 실처럼 다루는 석의 모습을 보고 사마천의 사기에 실렸던 한 인물을 떠올렸다.
‘힘도 엄청나지만, 스테미너도 보통이 아니야. 사기에는 진시황을 암살하려고 120근짜리 철퇴를 던졌던 창해 역사가 동이족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기록이 있었는데. 혹시 원역사에선 저 녀석이 자라서 창해 역사가 되나?!’
한열 왕검과 한부는 뛰어난 장수 감을 찾아냈다며 기뻐했지만, 석과 함께 시험을 치르던 지원자들은 주눅이 들어 하나둘 빠르게 기권하고 말았다.
두 번째 입단 시험이 끝났을 때 석과 함께 마지막까지 힘겨운 시험을 버텨낸 소년은 단 한 명뿐이었다.
한열 왕검은 먼저 석에게 용이 그려진 청동거울을 건네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훌륭하게 시험을 통과했구나. 정말 대단한 힘과 체력이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재야! 장차 훌륭한 무관으로 자라 조선과 왕실, 그리고 너희 가문을 위해 힘써주길 바란다.”
“가······ 감사합니다! 폐하!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무술을 익히겠습니다!”
석은 순박한 미소를 지으면서 왕검에게 인사했다.
다음은 석의 옆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고 끝까지 몸을 움직였던 두 번째 합격자의 차례.
왕검은 그 소년에게도 청동거울을 주면서 물었다.
“안색을 보니 많이 지친 모양이구나. 또래의 소년보다 체격이 왜소한 데도 힘든 시험을 잘 견뎌냈다. 널 이토록 훌륭하게 기른 아비의 이름이 궁금하구나.”
“상 완의 막내 아들인 계라고 합니다. 폐하.”
그 순간, 한열 왕검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입가에서 미소를 지웠다.
“짐의 면전에서 거짓을 고하는 게냐? 상에게 너처럼 어린 아들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소인은 본래 평민의 자식이었으나 석 달 전 상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폐하.”
계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주머니에서 가문의 징표인 옥이 박힌 금반지를 꺼내 왕검에게 보여주었다.
왕검은 조금 떨떠름한 기분이 들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상의 아들이 태자와 동문이 되다니! 참으로 기쁜 일이다! 이룡도에 모인 모든 명가의 자제들은 아비들끼리의 다툼을 잊고 한마음이 되어 조선의 미래를 밝히기 위해 애써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