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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21화 (21/195)

〈 21화 〉 [21화] 그까짓 거 하면 되지!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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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열 왕검이 주최한 축제가 끝난 날 저녁, 상 완은 하인 몇 명과 함께 왕검성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현대에는 대성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평양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 그 산의 꼭대기에는 대제사장 단이 사는 사원이 있었다.

상 완이 몇 시간 동안 산을 올라 사원의 굳게 닫힌 대문 앞에 서서 목청을 가다듬은 다음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선의 상 완이 대제사장님을 뵙고자 찾아왔습니다. 부디 이 문을 열고 이 어리석은 자에게 대제사장님의 신통력과 지혜를 빌려주소서!”

그러자 잠시 후 치렁치렁한 흰색 옷을 입고 몸가짐이 단정해 보이는 청년이 대문을 열고 나와 상 완에게 읍하면서 말했다.

“대제사장님께서 상의 방문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분께 안내해 드릴 테니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고맙네. 내 하인들도 함께 사원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는가?”

“사원의 정원까지는 괜찮습니다. 다만 대제사장님께서 계신 사당 안에는 경 혼자서 들어가셔야 합니다.”

“알겠네. 어서 앞장서게.”

상 완이 그렇게 말하면서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청년은 그를 질 좋은 나무와 기와를 아낌없이 써서 지은 사당 앞으로 안내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상께서는 잠시 문 앞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대제사장님께 손님께서 도착하셨음을 아뢰겠습니다.”

“그리하겠네.”

청년은 가죽신을 화강암을 깎아 만든 댓돌 위에 벗어두고 닫힌 문 앞에 서서 말했다.

“대제사장님. 제자 은입니다. 밖에 상 완이 대제사장님을 뵙고자 기다리고 있습니다. 손님을 안으로 들일까요?”

“들라 해라.”

대제사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청년은 미닫이문을 열고 손님을 사당 안으로 안내했다.

상 완은 여러 제기(祭器)와 목제 신상으로 가득한 방 한가운데에 정좌한 대제사장의 앞으로 다가가서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상 완이 대제사장님을 뵙습니다.”

“상.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보니 산길을 지나느라 고생 많았구려. 어서 자리에 앉으시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대제사장님.”

“분명 큰 고민거리가 있어 천신의 거처에 찾아온 게로군요.”

“과연 천신의 대변자이십니다. 그저 안색을 한번 보신 것만으로도 소신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고민거리를 읽으셨군요.”

“뭘 그 정도로 놀라시오? 천신께서 본인을 당신의 입으로 삼으신 지 벌써 스무 해가 지났소. 그러나 본인이 상을 도울 방법은 많지 않으니 너무 섭섭하게 여기지 마시오.”

“대제사장이시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신의 말씀을 들어보시지도 않으시지 않고 벌써 내치시려 하시다니요?!”

“상이 천신께 어떤 부탁을 드릴지야 뻔한 거 아니겠소? 천기는 이미 왕실을 향해 흐르고 있으니 하늘의 뜻을 거스르려 하지 마시오.”

상 완은 대제사장의 뜬금없는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올랐지만, 간신히 그런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이 늙은이가 갑자기 노망이 났나?! 내 말도 들어보지 않고 왜 저런 울화통 터지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속세를 떠난 몸이라곤 하지만, 저도 본래는 호랑이 부족 출신이지 않나!’

그런데 그때, 대제사장 등 뒤의 제단 위에 놓여있는 낯선 제기 여러 개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새하얀 은으로 만든 향로와 새것이 분명한 매끈한 은제 거울. 은광 개발로 점점 부유해진 왕실이 대제사장에게 헌납한 것이 분명했다.

‘그랬구먼. 왕실이 대제사장을 은붙이로 길들이고 있었단 말이지. 저 능구렁이 같은 영감은 나날이 세력을 불려가는 왕실의 등에 올라타 이득을 얻으려는 속셈인 게 분명하다. 왕실과 대제사장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는 틈이 있긴 한 지 한번 떠봐야겠구먼.’

상 완은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한 후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대제사장님. 소신은 일신의 안위나 가문의 영광을 위해 천신의 거처에 찾아온 게 아닙니다.”

“그럼 뭐 때문에 이 쌀쌀한 날씨에 험한 산길을 걸어온 거요?”

“소신은 그저 단군왕검께서 조선을 건국하신 후 지금까지 이어져 온 신앙과 전통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 대제사장님께 대책을 여쭙고 싶어 천신의 거처에 찾아왔습니다!”

“신앙과 전통이 무너지다니? 상. 그게 무슨 소리요?”

“사흘 전 천신께 드린 제사는 왕실의 주도로 열렸다고 알고 있습니다. 조선인이라면 하늘에 드릴 제사를 주관할 권한을 가지신 분은 오직 대제사장님뿐이란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요. 그런데 어찌 왕실이 다른 제사도 아닌, 천신께 드릴 제사 일정에 관여한단 말입니까?!”

“그건 상이 오해한 거요. 그날의 제사를 열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한 사람은 바로 본인이요.”

“허나 돌팔매 대회를 열면서 제사를 지내자는 말을 가장 먼저 꺼낸 사람은 태자 전하이지요. 지난 사흘 동안 왕검성의 저잣거리에 나가보니 불온한 무리가 삼삼오오 모여 차마 들어줄 수 없는 참람된 말을 수군대고 있었습니다.”

“참람된 말? 설마 그자들이 감히 천신을 모욕했소?”

“거의 그런 셈이지요. 천신의 입이신 대제사장님께서 태자 전하의 강요를 이기지 못해 사흘 전의 제사를 여셨다는 말을 떠들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상! 말조심하시오! 감히 천신의 거처에서 그분의 대변자인 본인을 모욕하려는 것이오?!”

“소신이 어찌 감히 대제사장님께 무례를 범하겠습니까? 다만 조선 땅 곳곳에 그런 독버섯 같은 무리가 자라나고 있어 걱정이 많다는 말씀을 드린 것뿐입니다.”

“크흠······!”

대제사장은 그 대답을 듣고 노기를 참지 못하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는 작년부터 고조선 땅 곳곳에서 도는 태자에게 신령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는 소문을 듣고 언젠가 어린 태자가 자신의 종교적 권위를 위협할까 봐 염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태자의 활약 덕에 고조선 왕실이 더 많은 제기와 식량을 자신의 사원에 헌납하고 있으니 그런 불만을 가슴속에만 쌓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상 완은 대제사장의 반응을 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그의 처지를 간파했다.

‘옳거니! 역시 태자를 고깝게 생각하고 있구나! 이 노인네는 써먹을 수 있겠어! 왕실 전체가 아니라 태자에 대한 반감만 키우도록 유도하면 알아서 제 역할을 해줄 거야.’

그는 여전히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한다는 듯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대제사장님. 현 왕검께서는 진심으로 천신과 대제사장님을 존경하십니다. 그 사실은 조선의 모든 제후와 백성이 다 아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태자는 어떻습니까? 소신과 친분이 있는 왕실 근위병의 말에 의하면 태자는 평소 순장 제도를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말을 왕검 폐하와 대신들에게 자주 하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뭐라고요! 이런 고얀······! 순장은 오랜 세월 동안 이어온 우리 조선의 숭고한 전통이오! 그걸 하루아침에 없애 버리려 하다니! 천신께서 대로하실 것이오!”

“그러니 소중한 신앙과 전통이 퇴색되기 전에 아직 수염도 나지 않은 태자가 더는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뭔가 조치를 해야만 합니다.”

“음······. 허나 그 오만방자한 태자는 백성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소. 또 그 왕검 폐하와 적지 않은 제후들의 신임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오. 섣불리 태자를 모함했다가는 오히려 왕검의 역린을 건드려 좋지 못한 꼴을 보게 될 거요.”

“소신 또한 왕검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허나 천신의 대변자이신 대제사장님께서는 왕실을 도발하지 않고도 태자의 손발을 묶어버리실 수 있으시지요.”

“그게 무슨 소리요?”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어미가 어디 있겠느냐만, 모후의 태자 사랑은 특히 유별나다고 들었습니다.”

대제사장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입가에 음흉한 미소를 묻히면서 대답했다.

“과연······. 그런 수가 있었군. 상의 깊은 지혜에 탄복했소. 더 기다릴 것 없이 내일 중에 손을 쓸 것이오.”

“참으로 감사합니다. 대제사장님. 천신께서도 오랜 신앙과 전통을 지키고자 하시는 대제사장님의 노력에 기뻐하실 겁니다.”

그 후 상 완은 한 시간 정도 더 대제사장과 대화를 나눈 다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사당에서 나왔다.

* * *

대제사장 단은 상 완과의 밀회를 마친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장정 네 명이 드는 가마를 타고 사원을 나와서 왕검성의 궁궐로 향했다.

한열 왕검은 대제사장이 예고도 없이 궁궐로 찾아오자 급히 예복을 입고 알현실에 들어서면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대제사장에게 인사했다.

“왕검 한열이 대제사장님을 뵙습니다.”

“폐하. 전령을 보내지도 않고 궁궐에 불쑥 찾아온 본인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워낙 급박한 사태라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제사장님. 사태가 급박하다니요?”

“어젯밤에 잠을 자는 도중 꿈에 천신께서 나타나셔서 몹시 불길한 계시를 내려주셨습니다. 모후와 태자, 그리고 비왕 무도 함께 들어야 할 내용이니 세 사람을 이 자리에 불러주시길 청하옵니다.”

“대체 무슨 일인지 너무도 불안하군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내관은 안으로 들어오너라!”

한열 왕검이 다급한 목소리로 부르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관이 알현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어서 모후와 태자, 그리고 비왕 무를 이곳으로 불러오너라! 대제사장님께서 세 사람이 듣는 데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신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폐하.”

내관은 서둘러 알현실 밖으로 나와서 궁인들에게 세 사람을 즉시 불러오도록 지시했다.

잠시 후 모후 연과 한부, 그리고 비왕 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알현실에 모이자 대제사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천신께서 내려주신 계시에 관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런 왕검과 모후께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참으로 유감스러우나, 천신께서는 본인에게 태자 전하께서 커다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꿈을 보여주셨습니다.”

모후 연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리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대제사장님! 천신께서는 무엇을 경고하시기 위해 그런 끔찍한 계시를 내려주신 겁니까?! 어서 말씀해 주십시오!”

“천신께서는 태자 전하께서 여러 끔찍한 재난, 그중에서도 호환(虎患)을 당하실 것을 주의하라는 계시를 내려주셨습니다. 분명 태자께서는 이미 호랑이에게 습격을 당한 적이 있었을 겁니다.”

“그건 대제사장님께서 잘못 아신 겁니다. 우리 태자의 몸에는 호랑이는커녕 살쾡이의 발톱조차 닿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모후시여. 천신께서는 본인에게 태자 전하께서 호랑이에게 물려가실 뻔했던 장면을 보여주셨습니다. 비왕. 본인의 말이 맞지 않소?”

대제사장이 그렇게 말하면서 자기의 얼굴을 바라보자 비왕 무는 고개를 숙이고 참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 제사장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모후시여. 태자 전하께서는 재작년의 전국 순시 도중 호랑이의 습격을 받으신 일이 있습니다.”

모후 연은 그의 대답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한부는 피가 조금 날 정도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비왕 무가 병사들의 입을 제대로 막았다고 했었는데······! 왕실 근위병 중에 끄나풀이 있구나. 대제사장 아니면 나를 견제하는 제후한테 용돈을 받는 녀석이 몇 명 있는 게 분명해’

한부는 자기도 계시몽을 들먹이면서 대제사장의 말에 반박할까 생각하다가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적지 않은 고조선인이 태자가 꿈속에서 단군왕검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믿고 있긴 하지만, 아직 한부에게는 왕검의 권위에 필적할만한 대제사장의 종교적 권위를 당해낼 사회적 영향력은 없었기 때문이다.

‘고조선에서 단군(檀君)은 종교적 지도자를 의미하는 단어고 왕검(王儉)은 정치적 지도자를 뜻하는 단어지. 내가 이미 죽고 없는 단군의 제자라면 대제사장은 이 시대의 단군 그 자체야. 괜히 이 자리에서 나대면 아버지만은 내 말을 믿어줘도 다른 제후들이나 백성들은 완전히 등을 돌릴지도 모른다.’

한열 왕검은 고개를 숙인 비왕 무를 노려보면서 근엄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태자의 안위와 직결된 사건을 짐에게 보고하지 않았단 말이오? 실망스럽구려. 비왕.”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폐하.”

“분명 태자가 그대에게 그 일을 숨겨달라고 떼를 썼겠지. 이번에는 특별히 석 달간의 근신으로 죄를 면해주겠소. 허나 또 이런 일이 반복되면 더는 왕실의 무관으로 일할 수 없을 거요.”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왕검은 비왕의 질책을 마친 후 다시 대제사장에게 물었다.

“대제사장님. 그럼 태자가 재난을 피하려면 어찌해야겠습니까?!”

“천신께서는 태자가 앞으로 세 명의 시종과 사냥개 세 마리만 거느리고 호랑이를 사냥할 만큼 강인해지시기 전까지는 궁궐 밖으로 나가시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제사장님! 겨우 장정 네 명이 호랑이를 어떻게 잡는단 말입니까?! 숙련된 사냥꾼도 최소한 열 명은 몰려다니며 호랑이를 사냥하지 않습니까?!”“저는 그저 폐하께 천신의 뜻을 전할 뿐입니다.”

한부는 대제사장의 말을 듣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네 명이서 호랑이를 잡을 정도로 강해지라고? 까짓 거 얼마든지 해주마! 네놈들은 내가 먼치킨이 될 계기를 만든 걸 후회하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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