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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7화 (17/195)

〈 17화 〉 [17화] 작은 변화로 큰 성과를 노리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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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드디어 전에 말씀드렸던 납광석에서 은을 뽑아내는 기술인 연은분리법을 완성했습니다.”

독서를 즐기던 한열 왕검은 장남의 말을 듣자마자 손에서 죽간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정말로 납으로 은을 만들었다고? 그럴 리가? 나이답지 않게 대단한 일을 많이 해낸 아이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신선에게나 가능한 일 아닌가? 그저 실패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여기고 허락했을 뿐인데······.’

그는 의자에 앉은 채로 아들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연구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사흘째 아니더냐. 설마 일부러 짐에게 찾아와서 장난을 치는 건 아니겠지?”

“소자 한 나라의 군주께 실없는 장난을 칠 정도로 철이 없지는 않사옵니다.”

“짐도 우리 의젓한 장남이 그럴 리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도저히 네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구나. 지금 바로 짐에게 납으로 은을 만드는 시범을 보일 수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아버지.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서 이미 궁궐 정원에 저와 함께 기술을 개발한 공인 두 명과 함께 연은분리법을 보여드릴 준비를 해 뒀습니다.”

“잘했구나. 어서 그리로 가보자.”

한열 왕검은 대답을 마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한부와 함께 서재에서 나와 정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왕검과 태자가 정원에 나타나자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대장장이 강과 화로 장인 장연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미천한 대장장이 강이 감히 폐하의 용안을 뵙습니다.”

“공인 자······장연, 왕검 프에하를 뵈······.”

“그만. 궁중의 예는 잠시 잊어도 좋다. 태자의 말이 사실인지 몹시 궁금하니 어서 연은분리법이라는 것을 짐에게 보여봐라.”

두 기술자는 왕검의 명에 따라 대답을 생략하고 두건으로 입과 코를 가린 다음 서둘러 무쇠 화로 안의 재 위에 납광석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한부는 두 사람이 화로의 숯에 불을 붙이기 직전에 한열 왕검에게 말했다.

“폐하. 납이 녹으면서 나오는 연기가 매우 독하니 작업이 끝날 때까지는 화로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그래? 그럼 그러자꾸나. 그런데 은이 만들어질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느냐?”

“저 정도 양의 납광석이면 아마 한 시진도 안 걸릴 겁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는구나. 어디 한번 지켜보자.”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난 후 대장장이 강이 화로 위아래의 숯불을 끈 다음 재 속에서 은붙이를 꺼내 왕검과 태자에게 가져갔다.

한열 왕검은 콩알만 한 은조각을 들고 자세히 살펴보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한부에게 소리쳤다.

“이럴 수가! 정말로 납덩이에서 은을 뽑아내다니! 태자야! 참으로 놀랍구나!”

“기뻐하십시오. 폐하. 낭림산맥 너머의 은광산은 왕실의 재정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겠지! 어디를 파도 이 귀한 은이 나는 곳 아니더냐! ”

“폐하. 그럼 그곳을 왕실의 직할령으로 삼고 본격적으로 광산을 개발하시면 어떠신지요?”

“물론 그래야지! 내년 봄이 오면 본격적으로 은광의 탐색과 개발을 시작해야겠다. 분명 삼꽃차나 모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수입원이 될 거야.”

한부는 왕검의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동네에는 은하고 마그네사이트만 있는 게 아니지. 석탄만 빼면 어지간한 지하광물은 다 모인 곳이라고. 한 10년 뒤에 단천 지역이 얼마나 큰 광산 도시가 돼 있을지 궁금하구만.’

현대의 단천은 조선시대 최대 은광과 마그네사이트로 산지로 가장 유명하지만, 금, 청화백자의 안료를 만드는 데 쓰이는 코발트, 황동의 원료인 아연, 그리고 많은 양의 철광석까지 여러 유용한 지하자원이 골고루 매장되어있다.

앞으로 농업혁명으로 불어날 인력과 무역으로 벌어들인 자본을 투자하면 투자할수록 단천 일대는 고조선의 산업 발전을 지탱할 단단한 반석이 되어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한부는 단천 광산단지 개발이 이번 원정에서 얻는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번 성과 덕분에 한동안 내 발언에 더 힘이 실리겠지. 이 찬스를 잘 살려서 사람들 의식을 조금만 바꿔도 인구증가에 큰 도움이 될 거야.’

* * *

한열 왕검은 연은분리법 시범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 즉시 올해의 원정에서 얻은 전리품을 나누기 위한 부족회의를 소집했다.

그후 엿새가 지나자 왕검성 궁궐의 집무실에 수십 명의 경과 대부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이자 예정된 난장판이 벌어졌다.

“양 대부! 그 지역에 새로 얻은 수수밭은 내가 가져가는 게 맞소! 경은 이번 원정에 고작 1백 명도 안 되는 장정을 보내지 않았소!”

“현 경대부님! 비록 소신이 병사는 적게 보냈어도 군량미는 모든 제후 중 한 손에 꼽힐 정도로 많이 보탰습니다! 소신에게도 그 정도 영토를 주장할 권리는 충분히 있습니다!”

한열 왕검은 조금이라 더 좋은 땅과 전리품을 차지하기 위해서 서로 언성을 높이는 제후들의 모습을 살펴보다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자중하시오! 이토록 서로 자기 욕심만 내세우면서 다투기만 해서야 어디 오늘 해가 지기 전에 결론을 낼 수 있겠소?!”

원정을 성공으로 이끈 군주가 호통을 치고 나서야 시장 한복판 같던 실내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한열 왕검은 아직도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리는 제후들의 면면을 바라보다가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올해 원정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우리 조선의 국력은 아직 숙적 연나라에 미치지 못하오. 힘과 마음을 합쳐도 연나라의 위협을 이겨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판국에 어찌 조선의 제후들이 고기 한 조각을 놓고 다투는 이리 떼처럼 으르렁거린단 말이오?!”

그 말을 듣고 상 완이 머리를 조아리며 왕검에게 말했다.

“폐하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지금은 자기 가문의 이익만을 놓고 조선의 제후들끼리 아귀다툼을 할 때가 아닙니다. 하오니 폐하께서 몸소 어리석은 제후들에게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십시오. 그리하면 이 자리의 모든 이가 폐하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상 완의 말투는 공손하기 그지없었지만, 말의 내용을 잘 뜯어보면 ‘너부터 먼저 양보해보던가?’라는 의미를 담은 항변이었다.

그러자 한열 왕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대답했다.

“경의 말에 일리가 있소. 군주가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서 제후와 신료에게 겸양과 양보를 강요한다면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것이오. 그러니 짐은 이번 원정에서 얻은 영토 중 낭림산맥 너머 북동쪽 해안 지역의 사방 50리 땅만을 왕실 직할령으로 삼고 나머지 영토는 그대들에게 양보하겠소.”

왕검이 선언하자 그곳이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제후들은 놀란 눈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왕검이 차지하겠다고 선언한 영토는 많은 인력과 물자를 투자한 왕실이 전리품으로 삼기에는 좁고 척박한 땅인 데다 왕검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다스리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상 완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이거 생각보다 세게 나오는구먼. 설마 그런 돌산밖에 없는 지역을 갖겠다고 나올 줄이야. 완전히 한 방 먹었어. 조선의 일인자가 통 크게 제후들에게 전리품을 양보하는데 이인자인 내가 탐욕을 부리면 호랑이 부족의 위신이 실추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른 건 다 참아도 그것만은 참을 수 없다.’

그는 애써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왕검에게 말했다.

“폐하의 아름다운 마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소신 또한 낭림산맥 너머의 남쪽 땅만을 새로 영지로 삼고 그 외의 지역은 다른 제후들에게 양보하겠나이다.”

상 완이 갖겠다고 말한 곳은 현대에는 비옥한 함흥평야가 있지만, 기원전 3세기에는 늪지대가 많아 푸른 황무지라 부를 만한 곳이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약소 제후들이 비옥한 농지를 더 많이 차지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해 마지막 부족회의가 막을 내렸다.

한부는 내관 참에게 부족회의 결과에 대해서 전해 듣고 내심 기뻐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상 완이 그렇게 나올 줄은 미처 몰랐네. 안 그래도 강성한 제후들이 비옥한 땅을 차지해서 세력을 불리는 게 걱정됐는데 말이지. 그나저나 그 양반 황무지인 줄 알았던 땅이 사실 노다지인걸 알면 속이 좀 쓰리겠구만.”

* * *

다시 해가 지나고 기원전 269년의 봄이 찾아오자 한열 왕검은 본격적으로 은광산 개발에 착수했다.

지난 원정에서 고조선군에게 사로잡혀 공노비가 된 장정 수백 명과 왕실이 품삯을 주고 고용한 단천 일대의 현지인들이 손에 삽을 들고 노천광산에서 납광석을 파내 수레에 실었다.

비록 낭림산맥의 산길 중 수레가 지날 만한 곳이 적어 운송이 어렵긴 했지만, 거리는 그리 먼 편이 아니었기에 착실하게 왕검성 외곽에 설치한 제련 시설에 납광석이 도착했고 곧 고조선 왕실의 창고에는 점점 은붙이가 쌓여갔다.

그리고 왕실이 새로 얻은 영지에 큰 은광을 개발했고 그 일에 태자의 공이 컸다는 사실이 왕검성 시내에 널리 알려지자 그 소식을 백성들은 크게 감탄하며 소식을 퍼트렸다.

“자네 그 소문 들었는가? 몇 달 전에 왕실이 낭림산맥 너머 영지에 엄청난 은광을 개발했다는구먼. 땅을 깊이 팔 것도 없이 몇 번 삽질만 하면 은광석이 쏟아져나온다는 모양이야.”

“왕검성에서 그 얘기 모르면 연나라 세작이지! 왕검께서 그 지역 이름을 ‘은천’이라고 지으셨다며? 은이 천지에 널려있다는 뜻으로 은천!”

“그런데 그 땅을 왕실의 영지로 삼자고 왕검께 청하신 분이 바로 태자 전하라며? 그 땅에 은이 많이 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계셨던 걸까?”

“그야 우리 같은 천것들이 알 방법이 없지. 아무튼, 뭔가 신묘한 능력을 지니신 분인 건 확실해.”

그렇게 왕검성과 인근 지역에서 자신의 평판이 좋아지고 주변의 신뢰를 얻기 시작하자 한부는 왕검이 왕실의 신료들과 국정을 논하는 자리에서 정책을 제안했다.

“폐하. 우리 조선의 인구를 늘리고 백성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주청 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래? 어서 말해 보아라. 태자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맨땅에서 은덩이가 솟아 나오니 어찌 네 말을 귀담아듣지 않을 수 있겠느냐?”

“다름 아니라 왕검성 안의 백성들에게 모두 이틀에 한 번씩은 흐르는 물에 몸을 씻고 집 안이나 주변에 고약한 냄새가 나면 즉시 그 원인을 찾아서 제거하고, 하루에 한 번은 한낮에 문과 창문을 열어 실내에 햇볕을 쬐게 하라는 왕명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귀족말고 평민에게도?”

“그렇사옵니다. 폐하.”

“그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구나. 몸과 집이 깨끗하면 더 건강해지기라도 한단 말이냐?”

한부는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 왕검의 대답을 듣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뭐······ 어쩔 수 없지. 건강에 위생상태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전 세계에 널리 퍼트린 사람은 19세기의 나이팅게일이었다잖아. 19세기 초의 영국 병원에도 쥐 떼가 들끓었다는데 기원전 3세기에는 오죽하겠어. 그나저나 이제 꿈 드립은 너무 식상한데 뭐 좋은 핑계 없을까?’

그는 머릿속에 왕검을 설득할 말을 빠르게 정리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전에 제나라의 수도 임치에 머무를 때 읽었던 책에서 그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왕과 대화할 때 청결한 생활습관을 가진 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나라는 학문 연구로 유명한 곳이니 그들의 말들 믿고 새로운 위생관념이 정말로 건강과 관련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음······ 왕검성 안의 백성들에게만이라면 왕명을 내리는 거라면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겠구나. 뜻대로 해도 좋다.”

“감사합니다! 폐하!”

한부는 왕검에게 인사한 후 집무실 밖으로 나오면서 다음 목표를 마음속에 되뇌었다.

‘우지가 턱없이 부족해서 비누를 못 만드는 게 아쉽구만. 하지만 나이팅게일도 야전병원에 비누랑 약품이 넘쳐나서 부상병 사망률을 1년 만에 10분의 1 이하로 떨어트린 게 아니잖아? 깨끗한 물에 잘 씻고 청소를 더 자주 하는 것만으로도 고조선의 평균수명이 꽤 올라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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