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14화] 성공적인 원정 결과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한열 왕검은 태자를 참혹한 전장에서 떨어트린 후 비왕 무에게 아군의 피해 상황과 복병의 정체를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비왕 무는 곧 병사들이 모아온 정보를 취합한 후 보고했다.
“폐하. 포로를 심문한 결과 복병의 정체는 짐작하셨던 대로 동쪽 국경지대의 몇몇 부족이 모인 연합군이었습니다.”
“역시 그랬구먼. 아군과 적의 피해 상황은 어떻게 되오?”
“아군 전사자는 총 열한 명이고 부상자는 서른한 명입니다. 적군은 약 2천 명 중 2백여 명이 죽었고 252명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먼저 포로 중에서 귀족과 평민을 구분하시오. 귀족은 숲을 빠져나갈 때까지 인질로 삼았다가 나중에 몸값을 받은 다음 풀어주고, 평민들은 몸값을 낼 형편이 못 될 테니 노비로 삼겠소.”
“폐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왕명이 떨어지자 고조선의 병사들은 며칠 동안 노비로 삼을 포로를 왕검성으로 보내고 아군 전사자의 시신을 매장하는 작업을 마친 후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한열 왕검은 군대를 이끌고 원시림을 빠져나온 다음 그때까지 잡아둔 귀족 포로들을 청동 장신구와 면포 등의 몸값을 받고 풀어주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고향에 돌아가면 너희 부족의 장로들에게 짐의 말을 전해라. 너희에게 다시 조선 왕실을 받들 기회를 주겠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너희의 마을은 한 줌의 재가 될 것이고 너희가 흘린 피가 강물을 이룰 것이며 너희의 자손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대대로 노비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며······ 명심하겠나이다 폐하.”
고조선군 병사들이 포박을 풀어주자, 사색이 된 포로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고향으로 돌아가 왕검의 최후통첩을 전했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후, 비왕 무는 항복하지 않은 부족의 수와 현황을 왕검에게 보고했다.
“폐하. 이제 낭림산맥 서쪽에 사는 부족 중 대부분이 영토 일부를 내놓고 매년 왕실에 세금을 바칠 것을 약속했습니다. 다만 산기슭에 사는 세 부족만이 여전히 무의미한 저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반역자의 마을 중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어디요?”
“도보로 하루 거리 있는 마을이 가장 가깝습니다.”
“그곳을 쳐서 본보기를 보여줘야겠구려. 병사들에게 점심을 든든하게 먹이고 바로 행군을 시작하시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폐하.”
고조선군 병사들은 보리에 잡곡을 섞은 밥을 든든히 먹은 후 다시 무기를 들고 일어나 동쪽으로 진군했다.
마침내 5천이 넘는 군대가 공략 목표인 마을 어귀에 도착하자,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부족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마을로 도망쳤다.
“으아아아악! 조선군이 쳐들어왔다!”
“도망쳐! 어서 촌장님께 알려야 해!”
그러자 마을의 수비대가 마을을 둘러싼 나무 울타리를 방패로 삼고 그 뒤에 서 있은 조잡한 감시탑 위에 궁수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한부는 대열의 선두에서 말을 몰아가다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옆에 있는 왕검에게 말했다.
“폐하. 주변의 밭에 농작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보니 저 마을에는 비축된 식량이 얼마 없을 겁니다. 마을을 포위해 외부의 지원을 끊으면 피를 보지 않고도 저곳을 점령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렇겠지. 그러나 아직도 저항하는 반역자들에게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주어야 이번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단다. 당장은 과격해 보이는 수단도 길게 보면 아군의 희생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알아두거라.”
“폐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겠습니다.”
한열 왕검은 아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대열의 선두로 말을 몰아갔다.
병사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왕검은 허리춤에서 청동검을 뽑아 마을을 가리키면서 외쳤다.
“궁수와 돌팔매꾼을 배치하라!”
왕검의 명이 떨어지자 몇몇 장교가 박달나무로 만든 단궁을 든 궁수 3백 명과 무릿매를 든 돌팔매꾼 3백 명이 고조선군 대열의 맨 앞으로 내보냈다.
왕검은 두 부대가 준비를 마친 것을 확인한 후 발사 명령을 내렸다.
“발사하라!”
그 순간, 팽팽한 활시위를 떠난 수많은 화살과 빙빙 돌던 무릿매에서 튀어나온 주먹만 한 돌 수백 개가 석양에 물든 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면서 마을로 날아갔다.
그러자 아직 전투 준비를 마치지 못한 감시탑의 수비병들은 온몸에 화살이 박혀 쓰러지거나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다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마을에 있던 주민들은 그 모습을 보고 혼비백산하며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천지신명이시여! 저희를 구해주십시오!”
그렇게 아군 궁수 부대가 쉴새 없이 지원 사격을 퍼붓는 사이에 비왕 무는 병장기를 든 보병 4천 명을 이끌고 마을을 향해 진격했다.
“돌격하라! 해가 지기 전에 마을을 함락시키는 거다!”
우렁찬 외침이 사방에 울려 퍼지자 고조선군 병사들은 순식간에 철제 도끼와 망치로 나무를 엮어 만든 울타리를 순식간에 부순후 해일처럼 마을로 몰려 들어갔다.
한부는 장작처럼 불타는 마을의 모습과 고막을 찢을듯한 비명이 괴로웠지만, 눈을 감거나 귀를 막지 않았다.
* * *
고조선군의 맹공을 버티지 못한 큰 마을 하나가 완전히 지도에서 사라져버렸다.
이 충격적인 사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점점 과장이 보태지면서, 주변 부족민들을 공포에 떨게했다.
그 결과 겁을 먹은 낭림산맥 서쪽의 부족들은 마침내 고조선에 항복했다.
한열 왕검은 거기서 진격을 멈추지 않고 기세가 오른 고조선군을 이끌고 낭림산맥을 넘어 동해안을 향해 진격했다.
그 지역의 토착 부족들은 연합군을 구성해 현대의 함흥 주변의 평야에서 고조선군에게 맞섰지만, 철기와 치열한 전쟁관으로 무장한 병사들의 진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고조선군은 해안가의 평야 지대를 따라 쉴새 없이 나아가다가 현대에 단천남대천이라 불리는 강가에 도착해서야 진격을 멈췄다.
한열 왕검은 그곳에서 올해의 원정을 마치기로 마음먹고 장수와 병사들을 강가에 부른 다음 청동검을 높이 들며 연설을 시작했다.
“자랑스러운 조선의 아들들이여! 우리는 여름 보리가 고개를 숙일 때 왕검성을 떠나 반역자 부족을 정벌하고 2백 리가 넘는 거리를 진격해왔다! 몇 해에 걸쳐서 이룰 업적을 단 3개월 만에 해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막대한 전리품과 함께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간다! 허나 이처럼 작은 성공에 만족하는 자는 이 자리에 없으리라 믿는다! 올해의 승리를 발판으로 단군왕검께서 나라를 세우신 요동을 향해 한발 더 나아가자!”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왕검이 연설을 마치자 고조선 병사들의 우레같은 함성이 고요했던 강가를 가득 메웠다.
왕검은 연설을 마치고 장수들 한명 한명의 공을 치하한 다음 한부와 단둘이 자기 막사로 돌아왔다.
한부는 막사에 들어오자마자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경하드리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우리 조선의 세력권을 거의 두 배나 넓히시다니! 단군왕검께서 나라를 세우신 후 가장 대단한 업적이 분명합니다!”
“허허허! 이 녀석아! 단군이래 최고의 업적이라니! 아직 수염도 안 난 녀석이 나날이 아첨만 늘어가는구나!”
“아첨이라니요! 정말 대단한 업적입니다! 낭림산맥 너머에서도 이렇게 많은 부족을 복속시킨 것을 알면 왕검성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후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할 겁니다.”
“글쎄······ 막 우리가 왕검성에 돌아갔을 때는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그자들은 아마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아서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서로 말다툼을 해댈 거다.”
“영토와 전리품 분배 문제로 말씀입니까?”
“잘 아는구나. 이번 원정에 동원한 인원 중 병사 2천 명과 수송대 3천 명만이 왕실 소속이다. 모두가 병사와 물자를 댄 만큼만 전리품을 요구하면 참 좋겠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건 끝이 없는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이번에 점령한 지역 중에서 어느 곳을 영지로 삼으실 생각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미 내심 점찍어둔 곳이 있다. 왕검성에서 가까운 산 주변의 농지를 왕실 직할령으로 삼을 생각이다. 그곳을 노리는 제후가 적지 않겠지만, 짐이 직접 지휘한 군대가 이번 원정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냈으니 감히 짐의 뜻에 반대하는 자는 없을 게야.”
왕검의 판단은 당시의 기준으로는 매우 합리적이었다.
전근대에는 관개 시설이 부족해서 가뭄이 들면 평지의 농지에 물을 대기가 어려웠지만,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은 가뭄이 들어도 어지간하면 끊어지지 않는다.
또한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에는 토지를 비옥하게 하는 다양한 성분이 포함된 경우가 많아 작물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
한부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확실히 18세기 중반까지도 조선에서 가장 비옥한 곳은 평지가 아니라 지리산 주변의 농지였다고 했지. 아버지의 뜻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주변 지역의 잠재력하고 산기슭 농지는 비할 바가 아니야.’
한부는 잠시 아버지에게 할 말을 머릿속에서 정리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 산 주변의 농지도 물론 좋은 땅이지만, 이 근처의 땅이 왕실의 재산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설마 네가 꿈에서 봤다는 은빛으로 빛나던 산이 이 근처였느냐?”
“그렇사옵니다. 분명히 이 지역이 꿈에서 본 곳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네 꿈이 빗나간 모양이다. 여기까지 오면서 비왕 무에게 이곳의 특산품을 조사하게 했는데, 납 이외에 특별한 것은 없었단다.”
“저도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디서든 땅을 조금만 파도 납광석이 나오는 지역이라고 말입니다.”
“태자야. 금속 중에서 귀하지 않은 게 어디 있겠느냐만, 금이나 청동같은 귀금속에 비할 바는 아니다. 납광산 보다는 비옥한 농지가 훨씬 유용해 보이는구나. 게다가 이곳에서 왕검성까지 거리가 멀고 길이 험하니 운송비도 만만치 않게 들어가겠지.”
“폐하의 말씀이 모두 맞습니다. 하지만, 소자가 이곳의 납광석으로 큰 재물을 모을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얘기가 달리지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납은 너무 물러서 무기나 농기구를 만들지도 못해. 냄비나 솥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아마 이 자리에서 그 방법을 말씀드려도 쉽게 믿지 못하실 듯합니다. 이곳의 납광석을 가지고 왕검성에 돌아가서 소자의 말이 진실임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니 허락하겠다만, 궁궐에 돌아가면 최대한 빨리 짐을 설득하는 게 좋을 거다. 왕검성에 돌아가면 일주일 안에 영지와 전리품을 분배하기 위한 부족회의를 열 생각이니 말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옵니다. 이번에도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 보겠습니다.”
“좋다. 기대하고 있으마. 그럼 납광석은 얼마나 가져갈 생각이냐?”
“소자에게 병사 몇 명만 빌려주시면 직접 궁궐로 가져갈 물건을 구하겠습니다.”
“허락하마. 내일 아침을 먹으면 귀향길에 오를 것이니 그 전에 하고 싶은 걸 다 해보아라. 이 청동검을 보여주면 병사들이 네 명을 따를 거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한부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왕검의 청동검을 받은 다음 막사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는 곧바로 병사 야영지로 달려가서 장작불 곁에 모여서 밤을 구워 먹고 있던 병사들 앞에 섰다.
병사들은 갑자기 태자가 나타나자 손에 들고 있던 밤을 던져버리고 경례하면서 말했다.
“태자 전하! 이런 누추한 곳에 어인 일이신지요?!”
“쉬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급히 처리해야 할 작업이 생겼다. 여기 왕검께서 주신 청동검 보이지? 여기 있는 스무 명은 삽과 자루를 가지고 나를 따라와라. 아! 나귀 몇 마리랑 밧줄도 가져오고.”
“아······ 알겠습니다. 전하. 혹시 작업 내용이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납광석을 최대한 많이 파서 가져갈 생각이다.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갑자기 작업에 동원된 병사들은 풀 죽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태자의 뒤를 따라나섰다.
한부는 그런 그들의 얼굴을 흘끗 돌아보면서 조용히 미소지었다.
‘군대에서 갑자기 작업 동원되면 그거만큼 짜증 나는 게 없지. 납광석에서 은을 뽑아내는 데 성공하면 조금 나눠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