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12화 (12/195)

〈 12화 〉 [12화] 동쪽을 향하여!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기원전 270년의 늦봄. 한열 왕검은 다시 한번 왕검성에서 부족회의를 열었다.

그는 모든 고조선의 모든 제후가 궁궐의 집무실에 모이자 옥좌에 앉아서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선의 모든 제후 여러분. 오늘 경들을 이 자리에 초대한 이유는 드디어 우리가 힘을 합쳐 동쪽의 반역자들을 정벌할 시기가 무르익었기 때문이오. 이제 조선의 군대는 철기를 갖추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지만, 적들은 아직도 조잡한 돌창과 석검을 손에 들고 있소. 또 조선의 밭에는 잘 익은 보리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지만, 적들의 논에는 말라비틀어진 벼가 뙤약볕에 타들어 가고 있을 뿐이라고 하오. 단언컨대 지금보다 반역자들을 처단하고 잃어버린 국토의 회복하기 좋은 시기는 없소.”

왕검의 선언에 탁자 주변에 둘러앉은 제후들이 하나같이 결의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폐하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서둘러 반역자들을 처단해 반도 전역에 조선의 국력이 쇠하지 않았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게다가 동쪽을 미리 정벌해두면 패수 일대에 병력을 집중해서 만에 하나 연나라군이 다시 침략해 올 때를 대비할 수 있습니다.”

늘 사사건건 왕실의 정책에 반대하던 상 완 조차도 이번만큼은 군말없이 한열 왕검의 의견에 찬성했다.

“소신 또한 폐하의 고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동쪽 땅은 산지가 많아 지형이 험하지만, 산비탈에 밭을 일구고 임산물을 세금을 걷으면 왕실과 제후의 곳간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부는 옥좌 오른편의 작은 의자에 앉아 부족회의 내용을 귀담아들으면서 가만히 미소 지었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일이 원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려는 모양이구나.’

현재 상황에서 동진은 고조선 왕실과 모든 제후 양쪽을 만족시키는 정책이었다.

한열 왕검은 최근에 철기로 무장한 군대의 위력을 과시하며 반역자를 처단해 왕실의 권위를 드높이려 했고 제후들은 늘 더 넓은 영지와 전리품에 목말랐기 때문이다.

한부 또한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단기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려댔다.

‘함경남도 해안지대에는 엄청난 수입원이 있다. 그 지역을 차지하려면 아바마마하고 다른 제후들을 어떻게든 설득해야 하는데 말이지.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네.’

그렇게 고조선의 지배계급이 만장일치로 동진에 찬성한 덕에 대동강 일대에서 병사들의 보급품을 준비하기 위한 작업이 대대적으로 시작되었다.

대장장이와 장인들은 검과 창날 모양 거푸집에 쇳물을 붓고 작은 철편이나 가죽 조각을 엮어 미늘 갑옷을 만들었고, 보급품을 나를 수레 따위를 만드느라 어딜 가도 망치질 소리가 요란했다.

한열 왕검은 한부와 함께 전쟁 물자 준비 현장을 시찰하다가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태자야. 주변을 둘러봐라. 우리 조선이 옛 영광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짐의 대에서는 불가능한 일일 줄 알았단다. 모두 단군왕검께서 네게 축복을 내려주신 덕분에 가능했어!”

“소자도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아바마마.”

“장군들이 올해 겨울이 오기 전에 낭림산맥 서쪽의 옛 영토를 모두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구나. 이대로 국력을 기르다 보면 언젠가 패수 너머의 연나라군을 반도 밖으로 몰아내는 일도 꿈은 아닐 것이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아바마마. 다만 이 기회에 낭림산맥을 넘어 반도의 동쪽 해안지대까지 진격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태자야. 그런 고생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겠느냐? 낭림산맥은 산세가 험한 데다 그 너머에는 농지로 쓸만한 땅이 적다고 들었다.”

“어젯밤에 동쪽 바다가 가까운 해안가에서 은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산을 보는 꿈을 꾸었습니다. 잠에서 깨니 전에 단군왕검께서 꿈에 나타나 제게 가르침을 주셨을 때처럼 신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아바마마. 어쩌면 꿈에서 본 장소에 귀한 물건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음······ 그렇다면 마냥 네 말을 흘려듣기가 어렵구나. 지금 조선의 형편이 좋아진 것도 다 네가 작년에 꾼 꿈에서 비롯된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어디 있는지도 모를 곳을 찾겠다고 군대를 움직이는 일에 제후들이 동의하지는 않을 거다.”

“아바마마.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소자를 원정길에 데려가 주십시오.”

“뭐라?! 설마 네가 검을 들고 전장에 서겠단 말이냐?!”

“아닙니다. 아바마마. 먼발치에서 전장을 관찰해 일찌감치 군사 전술에 대한 감을 기르고 겸사겸사 꿈에서 본 장소를 찾고 싶을 뿐입니다.”

“네가 전쟁을 너무 얕보고 있구나. 아무리 우리의 군세가 적보다 우세하고 후방에 배치되어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 전장이다.”

“아바마마. 그러니 더더욱 일찌감치 군무를 경험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조선은 영토가 넓지 않고 연나라라는 강대한 적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언제 어느 곳이라도 전장이 될 수 있는 나라입니다. 만에 하나 예측하지 못한 재앙이 닥쳐왔을 때 그저 울먹이면서 누군가 구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어린애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한열 왕검은 태자의 간청을 듣고 10여 년 전 막 수염이 나기 시작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셀 수 없이 많은 연나라군이 들불처럼 요동의 벌판을 휩쓸며 몰려와 궁궐에 불을 지를 때, 그저 눈물을 흘리며 겨우 기병 수십 기와 함께 성문을 빠져나왔던 치욕의 날.

그날부터 지금까지 자식들만큼은 같은 굴욕을 겪게 하지 않겠노라고 얼마나 다짐해왔던가.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한부의 청을 들어주었다.

“좋다. 대신 전장에서는 항상 짐의 곁에 바짝 붙어있어야 한다. 만약 짐의 명령을 조금이라도 어기거나 전장의 참혹함에 견디지 못하는 기색을 보이면 바로 궁궐로 돌려보낼 것이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바마마!”

* * *

기원전 270년의 초여름, 한열 왕검과 고조선의 제후들은 갓 수확한 여름 보리로 군량을 확보하자마자 5천 명의 보병과 기병 2백 기, 그리고 보병의 숫자보다 두 배 정도 많은 병참 부대를 소집해 왕검성의 동문 밖에 집결시켰다.

아직 중원의 나라들에 비하면 대군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철제 무기와 갑옷을 장비한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갖춘 모습은 제법 볼만했다.

한열 왕검은 원정군이 모두 집결하자 원정을 떠나기 전 치러야 할 마지막 의식을 위해 비왕 무를 시켜 대제사장을 불렀다.

대제사장이 동문에 도착하자 왕검이 고개를 숙이면서 그에게 부탁했다.

“대제사장님. 당신의 영험한 신력으로 이번 원정의 길흉을 점쳐주십시오.”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제사에 쓸 소 한 마리를 준비해 주십시오.”

“미리 준비해뒀습니다. 여봐라. 어서 제물로 쓸 이리로 데려오너라.”

왕검이 명령하자 그의 시중을 드는 병사 한 명이 곧 덩치 큰 황소 한 마리를 데려왔다.

한부는 그 모습을 보고 지금부터 치러질 의식이 뭔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어?! 이거 설마 우제점법(牛蹄占法)인가? 소를 죽인 다음  발굽 모양을 보고 길흉을 점쳤다는 그거? 부여랑 고구려에서 자주 행했다는 기록은 읽은 적이 있는데 고조선에서 했었구나. 잠깐! 그럼 잘못하면 갑자기 원정이 취소될 수도 있는 거잖아!’

한부가 돌발 상황에 당황하며 눈을 크게 뜨는 순간, 대제사장은 허리에 청동검을 찬 채로 황소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주술을 외기 시작했다

그는 한참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뭔가를 중얼거리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허리춤의 청동검을 뽑아 소의 목을 찔렀다.

- 움머!!

소가 고통스러운 단말마를 남기고 바닥에 쓰러지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고 소 발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대제사장은 능숙한 솜씨로 소의 오른발을 잘라낸 다음 발굽을 오른손으로 들어 올리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보시오! 발굽이 벌어지지 않고 제대로 합쳐져 있소! 천신께서 이번 원정을 축복하셨소!”

한부는 대제사장의 선언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왕후 연은 눈물을 글썽이며 한탄했다.

“그럼 우리 어린 태자가 결국 전장으로 떠난다는 말이 아니더냐! 태자!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보세요! 어린 소년 한 명이 전장에 따라가 봐야 방해만 될 뿐입니다!”

“어마마마. 아직 어린 제가 전장에서 공을 세울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철이 없지는 않습니다. 안전한 아바마마의 곁에만 머물면서 식견을 쌓고 오겠습니다.”

“어쩜 이렇게 고집이 쇠가죽처럼 질겨졌는지······. 1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습니다. 태자.”

왕후는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더니 한열 왕검에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부탁했다.

“폐하. 부디 태자가 적이 쏜 화살이 닿는 곳에서 어슬렁거리지 않도록 주의해주십시오.”

“반드시 그리하겠소. 부인. 꼭 태자와 함께 무사히 궁궐로 돌아오리다.”

“소첩은 폐하께서 돌아오시는 날까지 매일 하늘에 제사를 지내 폐하와 태자의 무사 귀환을 빌겠나이다.”

“천신께서도 이번 원정이 길하다는 징조를 보여주셨지 않소? “너무 심려치 마시오.”

한부는 말 등에 오르기 전에 근심 어린 표정을 지우지 못하는 왕후에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어마마마. 소자 다녀오겠습니다. 절대 아바마마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테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반드시 그리해야 합니다. 군주가 될 자는 백성을 아낄 줄 아는 만큼 자기 자신도 아낄 줄 알아야 하는 법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어마마마.”

한부가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마치자 드디어 고조선의 군대가 동쪽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고조선 백성들은 왕검이 탄 백마가 흙길 위를 지날 때마다 길가에 몰려나와 왕검에게 절을 하면서 원정군의 위용에 감탄했다.

“세상에! 살아서 이렇게 많은 병사가 행군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전부 다 합치면 만 명도 넘겠어!”

“게다가 저 창날 좀 보게. 청동거울처럼 햇빛을 반사하는 걸 보니 전부 철로 만든 모양이야.”

“동쪽의 배신자들이 이 모습을 보면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겠구먼!”

원정군은 사흘 동안 아침 일찍부터 해가 질 때까지 행군한 끝에 고조선의 동쪽 국경지대에 도착했다.

한열 왕검은 국경을 넘자마자 전방에 펼쳐진 울창한 원시림 입구에서 말을 멈춘 다음 비왕 무에게 지시했다.

“대낮에도 햇빛이 별로 들지 않을 울창한 숲이군. 비왕. 여기서부터는 적의 복병을 주의해야 하니 천천히 진군해야겠소. 본대가 숲에 발을 들이기 전에 척후병을 보내시오.”

“폐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비왕 무가 왕검의 명령을 장교들에게 전하자 갑옷을 입지 않고 짧은 철검으로 무장한 보병 1백 명이 하급장교들과 함께 재빨리 칠흑같이 어두운 숲속으로 스며들었다.

한열 왕검은 마지막 척후병이 울창한 나무 사이로 뛰어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다시 비왕에게 명령했다.

“척후병의 보고를 기다리는 동안 본대의 병사들에게 점심을 먹이되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시오.”

본대의 병사들은 왕명을 전해 듣고 풀밭에 앉아 미리 준비해온 보리떡과 삼의 씨앗을 점심으로 먹었다.

한부는 신중하고 능숙하게 장수들을 지휘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내심 감탄했다.

‘전생의 나하고 비슷한 나이이신데도 정말 신중하시구나. 전투 한 번의 결과로 나라가 망하기도 하는 시대니까 꼭 배워둬야 할 장점이야.’

그렇게 고조선군 본대가 오랜만에 긴 휴식을 취하는 동안 척후병들이 반나절 만에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비왕에게 보고했다.

“비왕께 보고드립니다. 숲속의 오솔길을 따라 10리쯤 들어간 곳에서 전신에 창상을 입고 죽은 표범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시체가 부패한 정도로 보아 죽은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고 가죽도 그대로였습니다.”

“사냥꾼이 표범 가죽을 내버려 뒀을 리 없으니 분명 복병이 한 짓이겠군. 반역자들이 순순히 항복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야. 평지를 행군할 때 숲 속의 적군이 우릴 먼저 발견한 건가?”

“분명 그럴 겁니다.”

“그래서 복병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는 확인했나?”

“아닙니다. 더 깊이 들어갔다가는 적에게 발각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일단 본대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숲으로 돌아가서 적 복병의 규모를 확인해보겠습니다.”

“됐다. 저놈들이 우리보다 숫자가 많았으면 굳이 매복 같은 짓을 하는 대신 숲을 막 빠져나와서 병사들이 지쳤을 때 한꺼번에 우릴 덮쳤을 거다. 왕검께 보고드린 후 다시 지시를 내릴 테니 그동안 뭐라도 먹어둬라.”

“알겠습니다. 비왕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