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9화] 드디어 철기 생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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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작별인사를 마친 한부는 호위병들과 함께 서해안의 항구 마을로 이동한 다음 배에 탔다.
고대의 배는 크기가 작고 고조선 태자 일행의 수는 1백이 넘었기에 다섯 척의 배에 나눠타야만 했다.
한부는 일행 중 가장 먼저 갑판에 오른 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배 곳곳을 둘러보았다.
‘일단 범선의 형태는 갖추고 있구나! 혹시 뗏목 같은 걸 타게 될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그런데 아직 키가 개발되지 않아서 숙련된 항해사가 아니면 배 모는게 쉽지 않겠다.’
그가 배 구석구석을 구경하는 동안 고조선 사절단 일행을 태운 배 다섯 척은 닻을 올리고 출항해 하루 만에 산둥반도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인 즉묵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외국의 배가 부둣가로 접근하자 그곳을 지키던 제나라 수군 병사들이 작은 나룻배를 여러 척을 타고 태자 일행이 탄 배에 접근하면서 소리쳤다.
“멈춰라! 즉묵항에 입항하고 싶으면 먼저 어디서 온 자들인지 정체를 밝혀라!”
“나는 조선의 태자 한부다. 조선과 제나라와 우호를 다지기 위해 수도 임치에 계신 제왕을 뵙고 선물을 드리고자 하니 어서 길을 안내해라.”
“아! 조선의 태자 전하셨군요.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잠시 수문 밖에서 기다려주시면 곧 상부의 허락을 받고 시내로 모시겠습니다.”
즉묵항을 지키는 제나라의 관리와 병사들은 요즘 조선과 제나라의 무역이 부쩍 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한부의 말을 쉽게 믿었다.
잠시 후 상부의 허락을 받은 수병들이 고조선 태자 일행을 안내하자 제나라의 관리 몇 명이 부두에 마중 나와서 배에서 내리는 한부에게 인사했다.
“제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조선의 태자 전하. 전하의 안내를 맡은 즉묵성주의 종사 형조라고 합니다.”
“반갑소. 조선의 태자 한부요. 수도 임치로 떠나기 전에 즉묵성주님과 인사를 나누고 싶으니 안내해주시오.”
“유감스럽게도 성주님께서 공사다망하시어 오늘은 전하를 뵙기 어려울 듯합니다. 송구스럽지만, 성주님께서 이틀 후에 전하와 대담하고 싶다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한부는 종사의 말을 듣자마자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간신히 겉으로 내색하지 않을 수 있었다.
‘즉묵성주 놈이 고조선이 이민족 약소국이라 얕보고 있구나. 보좌관이 마중 나온 건 그렇다 쳐도 한 나라의 태자가 직접 찾아왔는데 모레 만나자고? 당장 뒤집어엎고 싶지만, 여기까지 온 목적을 달성하려면 참아야 한다.’
그는 억지로 입가에 미소를 띠면서 종사 형조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려. 우리도 일정이 바쁘니 바로 임치로 출발해야겠소.”
“정 그러시다면 마차와 길잡이를 제공하겠습니다. 한 시진 정도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렇게 고조선 태자 일행은 즉묵성주를 만나지 않고 육로를 통해 제나라의 수도 임치로 향했다.
먼발치에 임치의 성벽과 성문을 드나드는 수많은 인파가 보이기 시작하자 말을 타고 태자의 마차 뒤를 따라가던 비왕 무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중얼거렸다.
“허······ 생각보다 훨씬 큰 도시였구나. 분명 제나라의 기세가 많이 꺾였다고 들었는데. 그런데도 저렇게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단 말인가.”
한 변이 약 4km나 되는 정사각형의 높은 성벽과 그 안에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는 다양한 목조 건물.
한부는 전생에 고고학 논문을 읽은 덕에 전국시대 임치의 규모를 예상하고 있었지만, 성안으로 들어서자 눈 앞에 펼쳐진 번화한 모습에는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인산인해가 따로 없구나. 이보게 마부. 대체 이 도시의 인구는 몇 명 정도 되나?”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7만 호 쯤은 될 겁니다.”
그는 마부의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7만 호······. 전생에 사료에서 읽었던 것하고 거의 비슷하구만. 한 집에 네 명만 산다고 쳐도 28만 명. 전국칠웅 중 2류국가로 전락한 제나라 수도에 고조선 인구 전체보다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니······. 좌절할 것 없다. 출산율이 워낙 높은 시대잖아. 이 격차는 철기로 농업혁명을 일으키면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어.’
그렇게 다짐한 한부는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중원의 학문 중심지인 임치의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그러는 사이 한부가 탄 마차는 사신이 묵는 숙소에 도착했다.
길잡이는 마차에서 내리는 한부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면서 말했다.
“먼저 도착한 임치에 도착한 조나라와 한나라의 사신이 먼저 대왕을 알현한 후 모레 오전쯤에 궁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그런데 가능하면 남는 시간 동안 가르침을 청하고 싶은 학자가 한 분 임치에 계시다던데, 혹시 그분을 뵐 방법을 알아봐 줄 수 있겠나?”
“전하. 송구하오나 소인은 그저 하급 관리일 뿐이라 지체 높은 어르신들과는 연이 없습니다.”
“자네 직무를 보니 왕족이나 제후를 만날 기회도 자주 있을 것 같은데?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할 테니 한번 알아봐주게.”
한부는 그렇게 말하면서 길잡이의 손에 작은 주머니 하나를 은근슬쩍 쥐여주었다.
길잡이는 주머니 안에서 풍겨오는 냄새를 맡고 외국 태자가 준 물건이 얼마 전부터 비싸게 팔리는 고조선산 차임을 알아차렸다.
“이······ 이건 혹시 군자차입니까?! 요즘 문자 그대로 금값인 귀한 물건인데······!”
“그래서, 내 부탁을 들어줄 텐가? 직하학궁에 소속된 학자이신 순황이라는 분께 가르침을 받고 싶네.”
“임치에서 유가의 순황 학사님을 모르면 연나라 첩자지요. 마침 직하학궁에서 일하는 사람을 몇 명 알고 있습니다.”
“순황 학사님께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오면 같은 양의 차를 더 주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전하! 늦어도 오늘 저녁까지는 순황 학사님의 답변을 받아오겠습니다!”
제나라인 길잡이는 연거푸 허리를 숙이며 한부에게 인사하더니 빠른 걸음으로 인파 속으로 사라져갔다.
한부는 그와 헤어진 후 자신의 숙소로 들어가면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자! 그럼 지금부터 순자를 꼬드길 방법을 생각해 둬야지. 먼저 그 사람이 들으면 좋아할 만한 얘기를 정리해 볼까?”
* * *
한부와 순황의 만남은 추가 보수에 눈이 먼 길잡이의 노력 덕분에 무사히 성사되었다.
순황은 고조선 태자 일행이 임치에 도착한 날 저녁에 지인을 통해 한부의 부탁을 전해 듣고 그에게 사람을 보내 승낙의 뜻을 전했다.
“전하. 직하학궁의 학사 순황이 전하만 괜찮으시다면 오늘 저녁에 이곳에서 뵙겠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아닐세. 당연히 내가 학사님을 찾아 뵈어야 도리 아니겠나?”
“하오나······.”
“두말하게 하지 말게. 오늘 저녁에 호위병 두 명만 데리고 학사님의 댁으로 찾아가겠네.”
“그럼 순 학사에게 말씀하신 대로 전하겠습니다. 전하.”
순자, 전국시대 후기의 몇 안 되는 모럴리스트이자 로맨티시스트.
그는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는 시대에도 도덕적인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만이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한부는 순자의 사상이 현재 고조선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별로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유학자의 환심을 사는데 예의를 차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그는 저녁이 되자 호위병 두 명과 함께 순황의 집으로 찾아가 허리를 숙이며 그에게 인사했다.
“조선의 태자 한부가 스승님께 인사 올립니다.”
“태자 전하! 고개를 드십시오! 저는 그저 직하학당의 수많은 학사 중 한 명일 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조선의 대왕께 군주가 될 자에게 예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배웠습니다. 단 한 시진 동안 가르침을 받더라도 사제지간이니 당연히 제자가 스승에게 예를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훌륭한 말씀입니다. 그러하시면 전하는 예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백성의 귀천과 직업을 나누는 성인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온 나라의 백성이 예를 통해 구분된 신분과 직업을 중히 여기고 각자 자기 일을 성실히 수행하면 나라는 점점 부강해지고 평화로워 질 겁니다. 군주의 역할은 그러한 일을 능히 해낼 수 있는 현명한 자를 뽑아 신하로 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럴 수가! 전하께서는 벌써 왕도 정치의 뜻을 깨우치셨군요! 놀랍습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후 한부는 순황과 함께 현대에도 유명한 성악설과 왕도론에 대하여 논하기 시작했다.
그는 군주가 도덕적이어야 나라가 제대로 운영된다는 정치이론에 감탄하는 시늉을 하면서 조금씩 순황의 환심을 얻어나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회가 왔을 때, 한부는 감쳐왔던 본심을 넌지시 드러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백성이 자신의 위치와 예를 알도록 해야 천하가 평온해지는 법인데, 조선에는 연나라와의 전쟁이 끝난 후 법도를 어지럽히는 불측한 무리가 많습니다.”
“우리 제나라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특히 법가에는 군주가 부도덕하더라도 유능한 신하를 등용하고 백성을 가혹한 법으로 옭아매면 천하가 잘 운영될 거라 주장하는 자가 많지요. 참으로 끔찍한 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저 잘못된 사상을 말하고 다니는 정도면 현명한 학자가 꾸짖어 가르칠 수도 있겠으나, 아예 본분을 잊고 왕실에 창끝을 들이미는 자들이 있어 고민이 많습니다.”
“그것참 안타까운 일이군요!”
“사실 그 일 때문에 제나라의 대왕께 부탁드리고 싶은 점이 있어서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제나라의 철 제련과 주조 기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우리 조선의 장인들은 청동을 잘 다루지만, 아직 철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합니다. 병사 중 열에 아홉은 무장상태가 부실한 편입니다.”
“청동은 워낙 값진 금속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대왕께서는 제나라에 아무 이득도 없는 데 조선에 철기 제조 기술을 알려주지는 않으실 겁니다.”
“철기 제조 기술을 알려주시면 지금의 절반 가격에 군자차를 팔 것입니다. 오직 제나라의 상인에게만 말입니다. 또한 조선의 군대가 강해지면 연나라는 배후를 찔리는 것이 두려워서 감히 제나라를 공격하지 못할 겁니다.”
“음······ 과연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그럼 전하께서 대왕께 뜻을 전하시면 소인은 대왕을 알현하여 전하의 청을 들어주십사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 * *
한부는 순황과의 대담을 마친 다음 날, 제나라의 양왕을 찾아가 철기 제조법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 후 양왕은 제후와 신료, 그리고 학자들을 모아 고조선에 철기 제조법을 알려주는 건에 대하여 의견을 물었다.
순황은 자기 차례가 되자 적극적으로 고조선의 편을 들었다.
“우리 제나라와 조선은 연나라라는 강력한 공동의 적과 상대하고 있습니다. 다시 세력을 기른 조선과 힘을 합쳐 연나라를 공격하면 선왕께서 당하신 치욕을 갚아 줄 수 있을 겁니다.”
“음······. 다른 사람들은 순 학사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때, 고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박사 양형이 순황의 말에 반대하고 나섰다.
“조선은 믿을 수 없는 오랑캐의 나라입니다. 저들이 요동을 회복하고 흉노와 연합해 중원의 여러 나라를 침략하기 시작하면 연나라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위협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순황이 양형의 말에 다시 반박했다.
“양 박사님. 사실 저는 어제 저를 찾아온 조선 태자와 두 시진 정도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는 비록 동이족이지만, 유가의 학문에 밝았고 예와 법도를 잘 지키는 인물로 보였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은혜를 입혀두면 그들도 우리에게 언젠가 보은을 할 것입니다.”
“순 학사! 꿈 같은 소리 하지 마시오! 중원의 나라들 사이에서도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시대요! 이런 시국에 동이족 오랑캐가 우리에게 신의를 지키길 바란단 말이오?”
“제가 본 조선의 태자가 왕위에 오르면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제철 기술을 알려주면 군자차를 반값으로 판다고 하니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제철 기술을 알려주지 않아 마음이 상한 조선이 군자차 수출을 끊어버리면 그 손해도 적지는 않을 겁니다.”
순황이 말을 마치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제후와 신료가 자기도 모르게 움찔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미 제나라의 제후와 관리 중 상당수가 대마 중계무역에 관여해 이익을 보고 있거나, 대마의 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머릿속에서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져본 후 순황의 말에 맞장구쳤다.
“대왕 폐하. 순 학사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연나라와의 침략을 막아낸 지 벌써 1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쟁의 피해를 완전히 복구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때에 이익을 버리고 손해를 택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 또한 순 학사와 생각이 같습니다. 과거 순 학사의 간언을 멀리하셨다가 선왕께서 겪으셔야 했던 비극을 생각하소서.”
그러자 제나라 양왕도 순황의 주장에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전대 왕인 민왕은 제나라가 아직 강대국인 시절, 나라가 부강해도 주변국과의 외교에 힘써야 한다는 순황의 말을 무시했다가 나라를 망치고 자신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결국 양왕은 조선에 철기 제조법을 알려주기로 마음 먹었다.
“순 학사의 말이 옳다. 적의 적은 아군이니 조선과 협력하는게 우리 제나라의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조선인들에게 철기 제조법은 물론, 철광산을 찾아내고 개발하는 법까지 상세히 알려주도록 하라.”
그 날 저녁 한부는 자신의 숙소에서 그 소식을 전해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됐다! 이제 내년 봄부터는 농업혁명에 한반도 통일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