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7화] 이미지 마케팅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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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 일행이 순시를 마치고 왕검성으로 돌아온 후 약 한 달이 지나자 드디어 삼의 암꽃을 실은 소가 끄는 수레 몇 대가 고조선의 궁궐에 도착했다.
한부는 내관에게 그 소식을 듣자마자 궁궐 대문까지 뛰어나가서 수레를 끄는 일꾼들에게 지시했다.
“수고했다. 궁 정원에 임시창고를 지어놨으니 그쪽을 가져다 놓거라. 내관이 길을 안내해 줄 것이다.”
대부 권의 가노(家奴)들은 태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인사한 후 내관이 손으로 가리키는 쪽을 향해 소를 몰아갔다.
주 원료를 도착했으니 이제 상품개발팀을 구성할 차례.
한부는 창고 앞에서 일꾼들이 짐을 내리는 모습을 보다가 자신의 시중을 전담하는 내관 참에게 지시했다.
“어서 궁중약사를 불러오게.”
“전하. 혹시 궁중 주술사도 필요하신지요?”
“주술사? 약을 만드는데 주술사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약사는 민간요법에 의지해 병을 다스리고 주술사는 천지신명의 힘을 빌려 환자의 몸에서 악귀를 쫓고 다양한 약을 만듭니다.”
“궁중 약사만 불러오면 충분하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내관 참은 태자의 지시를 받자마자 약사의 작업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한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처음 궁에서 눈을 떴을 때도 어마마마는 내가 횡설수설하는 걸 보시고 주술사부터 부르셨지. 어의(御醫) 대신이 주술사고. 왕족이 아닌 고조선 사람들은 성씨도 없이 외자 이름을 쓰고. 아직도 고조선 분위기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구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내관 참이 궁중약사를 임시창고로 데려왔다.
약사는 두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이면서 태자에게 인사했다.
“전하. 궁중 약사 천, 분부대로 대령했습니다.”
“내관 참에게 자네를 부른 이유는 들었는가?”
“그렇습니다. 전하. 삼의 암꽃으로 새로운 약을 만들고자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얘기가 빠르겠군. 나와 함께 여기 있는 꽃으로 신약을 만들어보세. 자루에 꽃을 담아서 자네 작업실로 가져가는 게 좋겠구먼.”
“전하.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소인이 한 말씀 드려도 될는지요?”
“말해보게.”
“삼은 때때로 통증을 누그러뜨리는 약을 지을 때 쓰이지만, 약효가 그다지 강한 약재는 아닙니다. 또한 삼의 잎을 약재로 사용하는 경우는 봤어도, 꽃을 약재로 쓴다는 말은 30년째 약사 노릇을 하면서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헛고생을 할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군. 걱정하지 말게! 자네가 한 번도 보지 못할 대단한 약을 만들 수 있을 걸세!”
한부는 당찬 목소리로 장담했지만, 천은 의아한 표정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삼 잎은 꽃보다 효능이 훨씬 약하다고. 지금은 저렇게 애써 표정관리 하고 있지만, 곧 감탄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후 한부는 궁중 약사의 작업실에 따라가 삼 꽃을 여러 가지 형태로 가공하도록 지시했다.
“먼저 약절구에 꽃잎을 빻은 다음 식용 기름과 다른 재료를 섞어서 구슬 모양으로 만들어주게.”
“환약을 만들라는 말씀이지요?”
“그렇지. 그리고 곱게 갈아서 차를 우려내거나 과자에 섞는 방법도 좋을 것 같군.”
현대 한국인이 아는 대마 제품은 주로 담배처럼 피워서 연기를 마시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네덜란드나 캐나다 같은 대마 제품이 합법인 나라에서는 담배형태 이외에도 과자나 초콜릿에 섞거나 차로 마시는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대마 제품을 소비한다.
한부는 굳이 고대에는 생소한 방식을 고집해서 제나라인들이 새로운 조선의 특산품에 문화적 거부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중세 오스만 제국에서는 신하들 몸에서 담배 냄새만 나도 바로 사형시켜버리는 술탄이 있었다고 했지. 고대 중국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어. 분명 제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형태로 만든 대마 상품을 파는 게 정답일 거야.’
그러나 이렇게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고려했음에도 신상품 개발은 처음부터 뜻밖의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한부가 빻은 삼꽃을 넣어서 만든 꽤 큰 환약을 돼지 직접 다섯 마리에게 한 알씩 먹여봤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는 녀석은 한 마리도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약이 소화되는 시간을 고려해도 한 시진(약 두 시간) 정도가 지나면 이놈들이 뭔가 반응을 보여야 하는데!”
“전하. 역시 삼꽃에는 약효가 별로 없는 모양입니다.”
“그럴 리가 없네! 뭔가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을 걸세!”
그는 체통도 잊고 의자에 털썩 앉은 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면서 문제점을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고대의 돼지는 기껏해야 중형견 정도 크기잖아. 이렇게 큰 환약을 먹으면 반응이 와야 정상인데······. 대체 뭐가 문제지?!’
궁중 약사 천은 그런 태자의 안색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하. 벌써 점심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먼저 식사로 기력을 보충하신 다음에 작업을 계속하셔도 늦지 않을 듯합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알겠네. 그리하세.”
한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실 밖에서 기다리던 내관 참과 함께 자기 방 쪽으로 힘없이 걸어갔다.
‘대체 뭐가 문제지? 대마의 약효는 식용 기름에 잘 배어 나온다고 미드에서 봤었는데. 고증 잘된 드라마라더니 아니었던 건가?’
그가 방에 들어서니 곧 젊은 궁녀 한 명이 밥상을 가져왔다.
“전하. 진지상을 가져왔습니다. 식기 전에 어서 드시옵소서.”
“수고했다. 거기 두고 가거라.”
한부는 밥상 앞에 앉아서 나무를 깎아서 만든 숟가락을 들었다.
언제나처럼 소금을 아껴서 끓인 싱거운 국에 불에 구운 들짐승 고기와 가짓수 적은 채소요리가 차려진 담백한 밥상.
그래도 그날은 평소에 보지 못했던 선명한 색의 과일이 후식으로 나와 있었다.
“어? 이거 산딸기잖아? 그러고 보니까 벌써 여름 과일이 익을 계절이구나.”
그는 오랜만에 현대에서 즐겨 먹었었던 음식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산딸기 한 개를 집어먹고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에휴······ 역시 맛이 밍밍하네. 어쩔 수 없지. 현대의 과일은 당도가 높아지도록 품종개량 한 거니까. 잠깐! 품종개량?! 그래 그게 문제였구나!”
한부는 단맛이 거의 나지 않는 산딸기 덕에 조금 전에 만든 대마 환약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현대에 대마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삼은 오랜 세월 동안 품종개량을 거친 것이니 마약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는 고대의 삼보다 약효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 생각을 여태까지 못했지? 그나저나 약효가 약한 게 문제면 양귀비를 찾아봐야 하나? 음······ 아니다. 양귀비는 말도 안 돼.’
한반도에서 아직 중국이 원산지인 배추도 보기 힘든 시대에 유럽이 원산지인 양귀비를 구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게다가 너무 위험한 약물을 제나라에 팔면 최후의 적 진나라를 도와주게 될지도 몰랐다.
“제나라의 국내 정치가 마약 때문에 혼란스러워지면 지금도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전국칠웅 사이의 파워밸런스가 순식간에 무너져버릴지도 몰라. 그랬다가는 진시황이 태어나기도 전에 진나라가 지들끼리 싸우다 약해진 다른 나라를 잡아먹어 버릴지도 모르지.”
원 역사의 진시황인 진나라의 왕자 영정은 앞으로 9년 뒤인 기원전 260년에 태어난다.
작은 이익에 집착하다가 미래의 라이벌의 앞길에 탄탄대로를 깔아주면 고토 회복은커녕 고조선의 멸망을 앞당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튼 꽃잎을 얼마나 써야 효력이 생기는지를 먼저 알아봐야지.”
그는 서둘러 눈앞의 밥공기를 비운 다음 다시 작업실로 돌아가서 궁중 약사와 함께 밤낮으로 실험을 계속했다.
그 후 사흘이 흐르자 드디어 한부의 노력이 결실을 보았다.
- 뀌이이이익~!
두 시간 전에 빻은 삼 꽃잎을 잔뜩 넣은 환약을 먹은 돼지가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계속 기쁨으로 가득한 울음소리를 냈다.
궁중 약사 천은 그 모습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태자 전하! 전하의 말씀대로 삼의 암꽃에 약효가 있었군요! 조금 전까지 성질을 부리면서 몸통으로 우리를 들이받던 녀석이 저토록 얌전해졌습니다!”
“다행히 효과가 있긴 있군. 하지만 환약의 크기가 이렇게 커져서야······. 저건 이미 환약이라기보다는 조금 작은 주먹밥이잖나.”
“그래도 덕분에 약효는 확실해 졌습니다. 이 정도 크기면 아직 복용하기에 너무 힘들 정도는 아닙니다.”
“예상보다 재료 소비량이 너무 많아져 버렸다는 말을 하는 걸세. 이대로는 왕실의 재정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구먼.”
“분명 조선의 농지는 한정적이니 무턱대고 삼밭을 늘릴 수는 없겠지요. 재정에는 큰 도움이 못 돼도 통증이나 우울함에 시달리는 백성들에게는 충분히 도움이 될 겁니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네. 하지만, 조선의 백성들에게 이 약을 쓰는 건 잠시 미뤄두게. 오늘도 고생했네. 일찍 들어가서 쉬도록 하게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전하.”
한부는 인사를 하면서 작업실 밖으로 나가는 궁중 약사의 뒷모습을 어두운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농부가 하루 농사일을 마치고 마시는 막걸리 한잔 같은 이미지로 팔았다가는 원가 대비 적자가 날게 불을 볼 듯 뻔하다. 생산량이 한정적이라면 상품 하나하나를 아주 비싼 값에 파는 수밖에 없어.’
그 순간, 한부의 머릿속에 외제차를 뽑았다고 자랑하던 고등학교 동창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차의 가격은 자신이 몰던 국산차보다 세 배는 비쌌지만, 세 배 더 빠르지도, 세 배 더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부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면서 기뻐했다.
“그래! 결국은 브랜드 이미지야! 고대에는 수은이 진짜로 좋은 약이라서 비싼 값에 팔리던 게 아니잖아?! 이미지 메이킹을 기가 막히게 해서 비싸게 팔아먹자!”
한부는 다음날 출근한 궁중 약사에게 삼 꽃잎을 차를 우려내서 마실 수 있는 형태로 만들라고 지시하면서 한 가지를 당부했다.
“삼 꽃잎은 형태가 남지 않도록 꼼꼼하게 빻고 좋은 향이 나는 약재를 몇 가지 섞도록 하게. 그래야 이걸 사갈 제나라인들이 재료를 추측하지 못할테니 말일세.”
“알겠습니다. 전하.”
그렇게 대마로 만든 차를 완성한 후 세월이 흘러 그해의 낙엽이 지기 시작할 때, 제나라 상인들이 모피를 사러 왕검성에 도착했다.
한부는 한열 왕검에게 부탁해 그들을 궁궐로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제나라인 상인들은 뜻밖의 훌륭한 대접을 받자, 입이 귀에 걸리면서 고조선의 태자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다.
“이번에는 조정의 높으신 분이 함께 오지도 않았는데 이토록 융숭한 대접을 해주시다니요. 전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왕검께서는 늘 조선과 제나라 양국이 잘 지내야 공동의 적인 연나라의 만행을 벌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오. 제나라에 돌아가서도 우리 조선 왕실의 뜻을 조정에 전해주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꼭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이 차를 한 번 들어보시오. 조선에선 왕족과 경대부, 그리고 제사장만이 마실 수 있는 아주 귀한 차요.”
“햐~! 전하 향이 아주 좋습니다! 이 차의 이름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신선차’라고 부른다오.”
“아주 이름이 독특한 차로군요. 신선이 마신다고 전해지는 차인 모양입니다.”
“그렇소. 이 차를 마시고 한 시진만 기다리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신선처럼 몸이 붕 뜨는 듯한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소. 게다가 전신에 양기가 충만해져서 마음이 울적한 자도 환하게 웃게 되고 식욕을 잃고 밥알을 모래알처럼 여기던 칠순 노인도 밥솥을 끌어안고 한 말 밥을 먹게 된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