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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다시 위대하게-2화 (2/195)

〈 2화 〉 [2화] 고조선의 태자가 되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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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뒤통수 깨지는 줄 알았······. 어?!”

한준은 혼잣말을 하다말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을 닫았다.

중저음이었던 자신의 목소리가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앳된 소년의 목소리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등 밑에서는 차갑고 딱딱한 어선의 바닥 대신 푹신한 요의 감촉이 느껴졌다.

‘우리 배는 아닌 것 같은데. 통수 맞고 기절한 사이에 육지의 응급실에 실려 왔나?’

그는 아직도 얼얼한 뒷머리를 오른손으로 쓸어내리면서 허리를 일으켜 요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준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병원의 응급실이 아닌 마치 사극 드라마 촬영장 같은 고풍스러운 침실.

“여긴 대체 어디지······? 그리고 내 몸은 또 왜 이 모양이야?!”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 시야에 들어온 자신의 팔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불법 중국어선을 나포할 때 해경특공대원들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단련했었던 근육질의 팔뚝이 초등학생의 팔처럼 짧고 가늘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느다란 팔을 감싸고 있는 흰색 소맷자락은 어느 나라의 사극에서도 본 적이 없는 생소한 전통복장이었다.

한준이 무엇하나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넋을 놓고 있을 때, 어디선가 기쁨에 찬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자! 눈을 떴군요!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한준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침실의 입구와 문가에 서서 기쁨의 눈물을 글썽이는 두 여인이 서 있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의 것인지 감도 안 잡히는 화려한 붉은색 비단 치마에 금과 옥으로 만든 장신구를 걸친 젊은 귀부인과 그녀의 바로 옆에 서 있는 수수한 옷을 입은 시녀.

하지만, 그가 놀란 이유는 두 여인의 이국적인 옷차림 때문이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언어인데도 모국어처럼 알아들을 수 있잖아?! 고막에 번역기라도 박혀있는 기분이야. 게다가 지금 들은 말로 대화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대체 정신을 잃은 동안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한준은 엉켜버린 전선처럼 복잡한 마음을 간신히 다잡고 눈앞의 귀부인에게 침착하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아직 지금 상황이 잘 이해 안 돼서 그러는데 여기가 어딘가요? 병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비단옷을 입은 귀부인은 그 말을 듣고 낯빛이 창백해지더니 한준에게 소리쳤다.

“아아······! 태자! 사흘 만에 눈을 뜨자마자 이 어미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군요! 열 살 소년이 어찌 치매 노인처럼 부모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한단 말입니까?!”

한준을 태자라고 부른 귀부인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소리치더니 이마에 오른손을 얹고 조금 비틀거렸다.

옆에 있던 시녀는 급히 그녀를 부축하면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왕후마마! 고정하시옵소서! 태자전하께서 심한 열병을 이겨내시느라 잠시 마음이 어지러워 저러시는 것일 겁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구나······. 언년아. 어서 입이 무겁고 영험한 주술사를 불러와라. 요즘 같은 시국에 조선의 태자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으니 되도록 은밀히 움직여야 한다.”

“알겠습니다. 왕후마마.”

한준은 두 여인의 대화를 듣고 더욱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여기가 조선인데 내가 태자라고? 세자도 아니고 태자? 게다가 유교 국가에 웬 주술사? 설마 평행우주의 조선에 와버리기라도 한 건가?’

귀부인은 당혹감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보고 애써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태자.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견디세요. 영험한 주술사의 치료를 받은 다음 왕검의 용안을 뵙고 나면 금방 기억이 돌아올 겁니다.”

한준은 그 말을 듣자마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왕검은 고조선 군주의 호칭이잖아! 설마 여긴 고조선인 건가?! ’

그런 생각을 떠올린 순간,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생소한 기억이 밀물처럼 몰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사람의 모습과 이름, 드넓은 벌판에서 승마를 배우던 장면, 그리고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봤었던 세형동검을 휘두르며 검술을 단련하는 장수들의 모습.

한준은 기억과 함께 찾아온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두통 때문에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면서 신음했다.

“큭!”

귀부인은 허리를 숙인 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다시 시녀에게 소리쳤다.

“언년아! 서둘러 주술사를 불러오래도! 우리 태자가 이토록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게냐!”

“왕후마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

한준은 끔찍한 두통이 점차 사그라지자, 허리를 세우고 자신을 품에 안고 눈물을 글썽이는 여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연기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감이다. 이 상황이 악몽인지 환각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우선 이 사람을 진정시키는 게 좋겠어.’

“어마마마. 심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소자 이제 두통이 멎고 기억이 돌아왔으니 안심하십시오.”

여인은 어린 아들의 대답을 듣고 아무 말 없이 그를 더욱 힘껏 끌어안았다.

* * *

- 꼬끼오오옥~!

한준은 고막을 긁는듯한 수탁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 눈을 떴다.

자리에 누운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불이 꺼진 형광등이 아닌 잘 다듬은 나무로 만든 전통가옥의 천장.

오늘이야말로 한숨 자고 일어나면 이 끔찍한 악몽에서 깰 거라는 그의 희망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스마트폰 알람 소리가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2박 3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 방이잖아! 정말로 어이없이 죽은 다음 고조선 태자가 됐나보다······. 그때 마지막까지 방심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는 전생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만에 하나를 염두에 두지 않고 경계심을 풀었던 바람에 맞이한 어이없는 죽음.

살인자에게 느끼는 증오심이 큰 만큼 목숨이 걸린 현장에서 정신상태가 해이해졌던 자신의 한심함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거기에 지난 사흘간 완전히 머릿속에 흘러들어온 고조선 태자 한부(韓否)의 기억 때문에 더욱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이 시대의 고조선 왕족은 한씨 성을 썼구나. 우리나라 학자들의 연구 결과대로 기자조선설은 픽션이었어.”

한준은 고대판 동북공정이라고 부를만한 기자조선설이 완전히 허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후련한 기분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앞날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기나긴 인류 역사 중에서 하필이면 고조선에 떨어져 버리다니······. 이 시대는 기록이 거의 없어서 미래를 아는 데도 한계가 있는데. 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냐?”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순간, 닫혀있는 침실문 밖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자전하. 기침하셨습니까? 내관 참입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무슨 일로 찾아왔느냐?”

“왕검께서 전하를 찾으신다는 말씀을 전하러 찾아왔습니다.”

“알았다. 곧 옷을 갈아입고 아바마마께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

아직 유교 문화를 도입하지 않은 고조선 왕실에선 왕자나 공주가 매일 아침 왕검과 왕후를 찾아가서 문안 인사를 할 의무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꼭두새벽부터 왕검이 태자를 불렀다면 긴히 할 말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준은 하인 두 명의 시중을 받으면서 옷을 갈아입은 후 밖으로 나와 내관 참을 따라 왕검의 침실로 향했다.

그는 내관의 뒤를 따라 걸으며 실내를 둘러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고대라도 궁궐이라고 부르기엔 작은 건물이야. 식사로 나온 음식도 꽤 조촐한 편이었고. 뭐, 기원전 270년쯤의 고조선이면 이럴 수밖에 없겠지.’

한준은 고조선 태자 부의 기억과 지난 사흘 동안 모은 정보를 토대로 현재의 시대를 거의 정확히 유추해냈다.

그가 고조선의 태자 부에게 빙의한 해는 기원전 271년.

진, 초, 위, 한, 조, 연, 제, 이렇게 일곱 개의 강대국이 중원의 패권을 두고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던 전국시대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고조선은 몇 년 전 중원의 일곱 나라 중 하북지역에 자리 잡은 연나라의 침략에 요동을 잃고 수도를 현대의 평양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던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전국시대의 강대국 연나라가 고조선의 영토를 2천 리나 뺏었다고 적혀있었지. 분명히 과장된 기록이긴 하겠지만 고조선이 그 전쟁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은 건 확실할 거야. 그나마 내가 죽기 전에 고조선이 망할 일은 없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복도를 걷다 보니 한준과 내관은 어느새 왕검의 침실에 도착했다.

내관은 침실 입구에서 걸음을 멈춘 다음 문 너머의 왕검에게 고했다.

“폐하. 분부대로 태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들라하라.”

내관이 왕검의 명대로 문을 열자 한준은 침실로 걸어 들어가 눈앞의 젊은 남녀를 바라보았다.

일국의 왕이 사용하는 침실이라기엔 조금 좁고 소박한 방 안에는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왕과 왕후가 앉아있었다.

아들과 달리 공식적인 역사기록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약소국 고조선의 군주 한열(韓烈) 왕검.

한준은 이번 생의 부모에게 고조선의 예법에 따라 문안 인사를 올렸다.

“아바마마. 어마마마. 간밤에 평안하셨습니까?”

한열 왕검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공손하게 절하면서 문안 인사를 올리는 장남의 모습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면서 감탄했다.

“태자가 열병을 떨쳐내고 일어나더니 갑자기 철이 들었구나. 몇 주 전만 해도 이 시간에 부르면 졸립다면서 칭얼거렸었는데 말이다.”

왕후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남편의 말에 맞장구쳤다.

“저도 적잖이 놀라고 있습니다. 폐하. 아직 어린 태자가 이렇게 의젓한 행동을 보이면 제나라 사신도 우리 조선을 얕보지 못할 겁니다.”

“부인의 말이 맞소. 태자. 조금 전 궁궐에 도착한 파발이 제나라의 사절단이 곧 왕검성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단다. 제나라가 15년 만에 사절단을 보내온 만큼 오늘 저녁에 그들을 궁궐에 초대해 연회를 열 생각이다. 너도 그 자리에 참석해야 하니 준비를 해두거라.”

“아바마마. 강대국인 제나라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우리 조선에서 무엇을 얻어가려고 사절단을 보낸 건지 궁금합니다.”

“사실 사절단이라기보다는 상인의 무리라고 보는 편이 맞겠지. 제나라 상인들은 오래전부터 배를 타고 서해를 건너와 우리 조선과 무역을 해왔단다. 요즘처럼 왕실 재정이 어려운 때에는 특히 중요한 손님이니 연회장에서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아바마마.”

한준은 한열 왕검과 몇 마디를 더 나눈 후 한열 왕검의 침실을 나와서 자기 방으로 돌아와 생각을 정리했다.

“제나라라······. 산둥반도 쪽에 있는 전국칠웅 중 하나인 그 제나라겠구나. 고조선이 꽤 오래전부터 중원 동부의 나라들에 모피를 팔았다는 기록이 사실이었나 보네. 제나라도 연나라한테 망할뻔한 지 얼마 안 지나서 더 친해진 건가?”

한때 전국칠웅 중 진나라 다음으로 강력했던 제나라는 고조선이 연나라군에게 침략당한 시기와 비슷한 기원전 284년 즈음부터 연나라를 중심으로 뭉친 5국 연합군과 벌인 전쟁에서 크게 패하면서부터 국운기 기울었다.

수도 임치를 포함한 72개의 성 중 무려 70개를 연나라에게 빼앗기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제나라는 구국의 명장 전단의 활약 덕분에 몇 년 안에 잃었던 70개의 성을 금방 탈환했고 전성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력이 약해지긴 했지만, 아직 전국칠웅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잃었던 땅을 되찾았 다고는 해도 제나라도 전란의 피해를 복구하느라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인 건 마찬가지겠지. 아무래도 고조선하고 제나라는 공생할 수 있는 관계일 것 같은데. 내가 더 풍족하게 살기 위해서라도 이 무역로는 지켜나가는 게 좋겠다.”

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궁녀에게 목욕물을 준비하게 한 다음 몸을 깨끗이 씻으면서 귀빈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저녁이 되어 제나라 사절단 수십 명이 궁궐로 찾아오자 왕검성 안의 모든 왕족과 유력가문의 귀족들이 함께 연회장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왕검은 환하게 웃으며 제나라 사절단의 대표에게 먼저 인사했다.

“배를 타고 먼 길을 오느라 노고가 많았소. 왕검성에 오신 제나라 사절단 여러분을 환영하오.”

고조선의 통역관이 왕검의 인사를 제나라 말로 전하자, 사절단 대표가 고개도 숙이지 않고 짧게 대답했다.

“제나라의 박사 안형입니다. 전하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고조선 왕실은 전성기였던 기원전 4세기에 칭왕(稱王)하여 이 사실을 중원의 여러 나라에 알렸으니 외국의 사신은 고조선의 왕검을 알현할 때 폐하라는 호칭을 사용해야 할 터였다.

제나라 사신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지만, 안형은 국력이 약해진 고조선을 얕잡아보고 이제는 이름뿐인 주나라 천자가 제후국의 군주들에게 내리던 작위 중 위에서 두 번째 계급인 후작 취급을 한 것이다.

한준은 사신의 대답을 듣고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뜻밖의 사실을 깨닫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재수 없는 놈! 이 시대의 박사면 왕실 고문 정도밖에 안 되는 관직일 텐데도 저렇게 건방지게 구네? 그나저나 나 고대 중국어도 알아들을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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