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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197화 (197/210)

197화

신전 천장에 선명한 금이 갔다. 금방 이곳이 무너지리라는 섬뜩하고도 친절한 예고였다. 나디사는 품 안에 있는 히아신의 몸이 투명해지는 것에 몰두할 새가 없었다.

“디디! 로마!”

신전 구석, 어둠의 장막에 덮여 있던 디디와 로마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안개가 라드들을 숨기고 있었나 보다. 나디사는 무너지려는 천장을 주시하며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손짓했다. 믿음직한 로마에겐 후처리를 맡기고 그리사의 에이와 아트리스의 무스에게도 자신의 주인을 물고 나가라는 말을 전했다.

똑똑한 라드들은 그녀가 바란 것처럼 제 주인들을 입에 물어 가볍게 띄운 다음 등에 올렸다. 착한 로마도 그녀의 마음을 읽고서 쓰러진 란을 제 등에 태웠다. 나디사는 형체만 희미하게 남은 히아신을 안고서 디디의 등에 올라탔다. 물론 그 와중에도 임무의 연장선인 빛의 검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검은 마치 가야 할 길을 알려 주는 것처럼 뚜렷한 빛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나디사는 라드 네 마리를 이끌고 무너지려는 신전 입구를 빠져나왔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히아신.”

이곳의 기후를 안다. 바람의 방해가 심해 비행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았지만 거짓말처럼 날씨는 화창했다. 날개를 접는 폭풍이 그치고 바람도 잔잔했다. 겁을 먹고 낮은 비행을 시도했던 디디도 바람의 기운을 읽고서 강한 날갯짓을 이어 간다.

나디사는 로마를 비롯한 라드들이 제 주인을 태우고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려는 것을 보았다. 제 주인에게 안전한 곳이 어디인지 아는 것처럼 산을 내려가는 라드의 무리에 로마만이 끼지 못하고 그녀의 명을 기다렸다.

“따라가, 로마.”

로마가 맡은 란은 부상이 심각했다. 자신은 히아신을 살리기 위해서라지만 그 때문에 다른 사람도 위험을 감수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잠깐 그녀를 기다리는 듯하던 로마는 방향을 바꾸어 점처럼 작아진 동료들을 따라나섰다. 나디사의 마음도 그들을 따르는 쪽에 있었지만 히아신을 위해서라면 세상의 반대편이라도 날아갈 것이었다.

“가자, 디디.”

자신이 든 것은 검보다 태양 같았다. 검이 원하는 경로를 쏘고 있는 빛은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고 있었다. 디디도 빛으로 방향을 지시해 주니 훨씬 더 날아가기 수월한 모양이었다. 바람을 타는 날갯짓의 느낌이 훨씬 좋아졌다.

“히아신, 눈을 떠 봐.”

물거품처럼 사라질까 두려운 히아신의 뺨을 만져 보려고 해도 손으로는 그의 몸을 만지지 못했다. 자신이 그를 제대로 안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가 왜 이런 불행을 당해야 하는지는 신도 말해 주지 않는다. 자신은 이까짓 검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지만 히아신을 위해선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다. 그는 딴 곳만 바라보고 선 자신에게 상냥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설산과 어두운 파르난의 황야에서도 말이다.

“히아신, 제발…….”

디디는 천천히 산 아래로 내려갔다. 동료들과 갈라선 방향으로 내려와 마주친 건 푸릇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평지였다. 신이 칼로 무심히 깎아서 만든 듯이 위태롭던 산은 눈이 녹아 걷혔다. 봄과 여름이 제 몸에 맞는 꽃과 풀이 계절을 모르고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검이 재촉한 양 빨갛고 노란 꽃이 수줍게 피어났다. 옛 신화의 태양을 모는 마차를 끄는 것처럼 그녀가 지나간 자리마다 새 생명이 태어나고 자랐다. 머리를 들고 선 모습 자체로 아름다운 생명이 땅을 메우고 있을 때 그녀의 연인은 이 축복에서 제외된 듯이 잠들어 있었다.

“히아신!”

바람에 실린 것처럼 히아신의 몸이 천천히 하늘로 떠올랐다. 바람이 데려가는 것이다.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다. 허공으로 떠 버린 히아신을 잡아채려 해 봐도 걸리는 게 없었다. 나디사는 맨손만 휘두르다가 안 되겠다 싶어 디디의 목줄을 당겼다.

“디디! 히아신을 따라가.”

하지만 바람은 놀리려는 것처럼 히아신을 싣고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진심을 담아 추격에 나섰다. 잠이 든 히아신은 평화롭고 고요하게만 보여 이 상황이 더욱 끔찍스러웠다. 주위는 신의 축복이 전염된 듯한 꽃밭이다. 히아신이 누울 천국이라도 되는 듯한 기분에 나디사는 아무 힘 없는 다리를 들썩거렸다.

“안 돼…….”

검이 여기가 목적지라고 몸을 떨며 알렸다. 빠져나가도록 흔들리는 그 검을 두 손으로 잡고 있던 나디사는 어느 순간 눈빛이 흔들렸다. 빛이 강림하고 나서 봄을 찾은 땅과 정반대되는 땅이 나타났다. 풀 한 포기도 허락 안 되는 척박한 땅이 출현했다. 그리고 그곳이 히아신이 누울 곳이었다.

“디디, 여기에.”

저기로는 가기 싫은지 향기가 출렁거리는 꽃밭에 내려앉은 디디가 몸을 숙여 그녀를 내려 주었다. 상황을 재볼 것도 없이 쓰러진 히아신을 되찾기 위해 달려간 그녀를 검이 무식한 힘으로 끌어당겼다.

겉이 메마른 땅으로 들어가는 그 부근에서 검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마치 저 땅으로 들어가는 걸 허락하지 않는 듯이 나디사 또한 들어가지 못하게 당기고 있었다. 손에서 떼어 보려고 해 보아도 그 검의 손잡이가 찰싹 붙어 있는다.

“이것, 놓아…….”

종소리를 내며 울고 있는 검이 그녀의 팔을 들었다. 하늘로 솟았던 검은 순식간에 땅으로 꺼졌다. 얕고 부드러운 땅속에 박힌 검의 전신에서 하얀빛이 샜다.

천천히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땅과 땅을 나누는 그 선에서 불꽃이 일었다. 일렬로 길게 그어진 작은 불꽃은 곧이어 빛의 장벽이 되었다. 감옥처럼 쳐지는 빛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따스한 빛이 감도는 장벽은 투명하게 땅과 땅을 갈랐다. 히아신은 장벽 안쪽, 초록빛 없이 움푹 꺼진 평야에 누워 있었다.

그즈음 투명하던 그의 몸의 색이 돌아왔다. 장벽 뒤에 서 있던 나디사는 그걸 넘으려고 했지만 노란 벽은 그녀의 반항을 거부했다. 곧 몸이 튕겨 나왔다.

“히아신! 정신 차려 봐!”

장벽이 문제인가 싶어 주먹으로 두드렸으나 하늘까지 연결된 장벽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몸이 안 되면 소리라도 전달되기를. 쿵, 쿵, 장벽이 울며 내는 소리로 그를 깨우려고 했다.

하지만 히아신을 깨운 것은 그녀의 소리도, 장벽이 우는 진동도 아닌 자유로운 바람이었다. 그가 자라난 고향인 파르난의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잠을 깨웠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히아신은 본인의 죽음을 의심했으나 그러기엔 정신과 몸이 말짱했다.

나른해진 몸을 팔로 지탱하며 일어났다. 고단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본 그에게 보이는 건 노란 빛의 장벽을 두드리고 있는 나디사와 그의 고향 땅이었다.

쓰러지기 전의 일들이 기억남과 동시에 그녀의 몸이 멀쩡한지 눈으로 샅샅이 훑었다. 목청을 높이고 소리 지를 정신은 있는 것을 보니 괜찮은가 보다.

상황 파악이 덜 된 히아신은 미소로 그녀를 안심시키며 걸어갔다. 목 아프게 외치는 그녀의 목소리를 조금 더 가까이서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와의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과 이웃한 손바닥에서 파동이 일었다. 화염이 묻은 듯 그의 손바닥을 지졌다. 파악이 끝난 손을 뗀 히아신은 그녀의 비명이 괜한 것이 아님을 알고선 미소를 지웠다.

정확히 분리된 것이었다. 파르난이 저 검을 쥐었다면 달라졌을 이야기겠지만. 그녀는 파르난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이고 신의 사람이었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그는 파르난을 이 세상에서 떼어 놓을 수 있는 권리를 그녀에게 가져다 바쳤다. 고개를 젖힌 히아신은 하늘까지 막아 둔 철저함을 보고 놀라워 웃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 장벽을 두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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