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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186화 (186/210)

186화

란은 이곳으로 오기 전에 호르스의 폭풍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대해 깔보고 멸시했다. 하지만 나디사는 그처럼 란의 독단적인 생각을 방관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호르스의 폭풍은 악마의 이름에 빗댈 만큼 냉혹한 바람이 불었다. 중턱까지 라드를 타고 날아오르리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산맥 근처로 오자 라드의 날개가 버티질 못하고 접히게 됐다. 중턱에 오르기도 전이었다.

급하게 하강을 결정했으나 란을 태운 디디가 유독 어설픈 비행을 했다. 주인을 태운 것도 아니니 의욕이 로마보다도 더 떨어졌다.

“미치겠네! 여기가 어디야!”

소리 지르고 싶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었다. 파르난의 사람이 느껴진다는 소리에 한숨도 자지 않고서 이곳으로 날아왔으나 그건 잘못된 결정이었다.

추위가 솜털을 바짝 세우는데도 잠은 쏟아졌다. 발목이 하얀 눈으로 된 뻘에 빠지고 있었다. 서둘러 온 것은 좋았지만 지금 그들이 위로 가고 있다는 확신도 할 수가 없었다.

“왜 멈추고 그래, 그리사!”

“에이가 발이 빠졌어요!”

어딘지 모를 눈밭을 헤매고 있는 거였다. 위험한 산맥이라는 말에도 시큰둥했던 것은 그들은 어떤 위험한 환경에서도 날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강인한 라드가 주저앉아 바람으로 날개를 막고 있는 순간에 그들은 현실을 알았다.

밤, 그리고 또 다른 밤을 지새우며 달려와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도착했다만, 불행히도 이곳은 햇볕이 들지 않는다. 부옇고 흐릿한 안개에 둘러싸여 있는 동료들의 모습을 돌아보며 나디사는 까만 털옷을 움켜쥐었다.

이런 곳에서 죽기는 싫다. 그녀는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엊그제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살아남고만 싶었다. 히아신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를 태울 때만 해도 삭막했었던 그녀의 눈빛이 맑고 또렷해졌다.

한발 양보해 살아서는 아니더라도 고향으로 돌아는 가야 했다. 설산에 묻혀 연고도 없는 곳의 흙이 될 순 없었다. 그녀를 기다리는 샤포드의 부모 앞으로 시체나마 보내야 했다.

사람은 사지에 몰리면 전에 했던 생각이 어떻든 살아남고자 최선을 다한다. 보물의 흔적을 찾아서 돌아갈 생각뿐이었던 나디사는 발 빠진 에이의 몸을 같이 밀었다. 힘이 좋은 아트리스의 라드 무스도 머리로 동족의 몸을 밀었다.

비명만 꽥꽥 지르지 눈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에이가 옆으로 넘어지며 빠져나왔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옆 사람의 소리의 목소리도 가로막는 눈 폭풍의 바람은 체온을 앗아갈 것이었다. 잠시라도 좋으니 눈을 피할 곳이 필요했다.

날아와 무사히 중턱에 안착한 뒤에 한숨을 돌리려고 했었다. 참으로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빠르게 끝을 내고픈 마음에 무리한 결과였다.

신전 안에서 왕자처럼 자란 한 남자와 라드의 힘을 너무 믿은 나머지 오만했던 세 사람의 결말은 처참했다. 실소를 지었으나 입술도 얼어붙어 자연스레 움직여지지 않았다. 포상으로 받은 여우의 털옷이 아니었다면 손과 발부터 썩었을 터였다.

<나디사.>

로마와 디디를 격려하던 때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대적으로 강하게만 보이던 로마도 심적으로 지치는 주인을 따라 하듯이 고개가 처졌다. 충성심 강한 라드들은 날개를 펴서 바람을 막아 주었으나 이번 바람은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라드의 바람을 두려워하는 적들의 심정을 이해하는 기분이었다.

<나디사.>

잘못 들은 줄 알고 무시한 목소리가 다시금 그녀의 귓가를 놀렸다. 바람이 만들어 낸 환청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 감정이 실린 목소리는 채근하며 저를 부르고 있으니까.

“내려가는 게 좋겠어!”

“뭐?”

버티다가 쓰러지겠는 무스의 날개 밑에 앉아 아트리스가 외쳤다. 라드의 날개와 몸이 상한다면 여기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다고 본 것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내려가자고!”

그렇지만 란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다 죽게 생겼다고요!”

“그럼 여기가 꽃밭인 줄 알았어! 이 어리석은 것아!”

란 본인도 이곳 날씨와 환경에 당황한 듯했지만 소득 없이는 내려갈 기세가 아니었다. 제 동료들은 아랫마을로 내려가 계획을 세우고 오자는 의견을 냈다. 아트리스와 란이 말다툼을 하며 내려가자, 말자 하는 사이 나디사의 시선은 엉뚱한 곳에 꽂혔다.

<나디사. 이쪽이야.>

드디어 미친 것인가 했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에 맞추어 고개를 돌린 나디사는 손을 들었다. 손등으로 눈을 보호하며 목소리의 주인이 어딨는지 찾아다녔다. 안개가 걷히는 기이한 현상이 일었다. 말싸움에 열중 중인 사람들의 목소리에 방해되지 않게끔 귀를 막은 그때였다. 열심히 안개를 뒤지고 다니던 그녀의 시선이 무언가를 찾아냈다.

“됐어! 그럼 나 혼자라도 가겠어!”

“도대체 왜 고집을 부리는 겁니까!”

“여기까지 온 이유가 생각이 나질 않아? 저 위에 올라가 아무것도 없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파르난 그놈들이 찾던 게 저기 있다면 끝이 나는 거라고! 수비교도 왕국도 다!”

“그렇게 비약적으로…….”

“비약? 왜 네가 여기 있는 거지? 공주가 그러라고 시켜서?”

걱정뿐인 로마를 제쳐 두고 나디사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 잠깐 사이 발이 묶일 정도로 쌓인 눈을 헤치는 데에 애를 먹었다. 걸어가는 나디사의 뒤로 기어코 로마가 따라왔다. 란의 바람을 막아 주라는 명을 따르고 있던 디디도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인이 가는 곳이 위험해 보이는지 가지 말라며 목을 까닥거렸다.

가쁘게 뛰는 심장 소리가 먼 곳에 들리는 것처럼 이질적이었다. 몇 걸음 걸어왔다고 곧 죽을 것처럼 숨이 찼다. 눈의 무게를 이기며 걸어온 다리가 고통을 호소했지만 걸음은 되레 빨라졌다.

“이것 좀…….”

나디사의 목소리는 기세 좋은 칼바람에 묻혔다. 싸움을 멈추고 있지 않은 두 사람을 향해 나디사는 격렬한 분노를 느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건 양측 다 마찬가지겠지만 지금은 그들끼리 이럴 때가 아니었다.

“이것 좀 봐요!”

나디사의 찢어지는 외침이 그들에게 닿았다. 눈밭에서 얼어 가던 동료들과 란은 혼자 저만치 떨어진 나디사를 보고 놀라는 듯했다.

“나디사! 뭐 하는 거야!”

나디사는 털옷에 감싸진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한심한 싸움은 그만두고 현실을 직시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서. 제 의견만 내세우며 치고 받는 싸움은 그만둘 때도 됐다.

“여길 보라고!”

아무리 바라봐도 희끄무레한 안개만이 가득하던 길에 희망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변화를 먼저 눈치챈 것은 눈이 좋은 그리사였다.

“저기면 눈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생긴 형세가 동굴 같아 보이는 곳이다. 저 안이라면 눈과 바람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터였다. 감탄할 새도 없다. 바람을 막느라 지친 라드들을 데리고 세 사람은 움직였다. 희망으로 가는 걸음은 자연히 성급해졌다.

한편 나디사는 동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조마조마한 가슴을 안고서 설산을 오르던 일행은 동굴 가까이로 간 순간 한숨을 쉬었다. 실망에 차서 뱉는 한숨이 아니었다. 몇 시간을 기어올라 왔는지도 모를 이 찰나에. 신의 도움이라 할 수 있는 장소가 나타나다니.

안락한 내부에다가 앞만 뚫려 있고 뒤가 막혀 있어 추위를 피하기에 적절했다. 기뻐하며 들어가는 라드들과 일행을 보내 놓고 나디사는 괜히 뒤돌아 보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남자의 목소리였다. 지금 여기, 혹시 그 남자가 있는 걸까.

히아신. 네가 나를 여기에 안내한 걸까.

슬픈 얼굴의 나디사는 작은 단서라도 찾고픈 양 하얀 눈밭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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