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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179화 (179/210)

179화

라드군의 사람 수가 더 많아 불공평하다는 란의 의견이 있었으나 묵살되었다. 나디사는 란을 빼놓고 진행한 다수결에서 아트리스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리사의 의견도 다르지 않고.

라드군은 윗분의 명을 따르는 게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라드와 연결된 것은 자신이지만 라드를 내린 것은 수비타 왕국이었다. 왕국에 충성을 바치는 맹세를 한 몸으로 공주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 정말…… 여기 가만히 있는 게 그리 어려워? 다시 되돌아가자고?”

구시렁거리긴 하지만 떠날 채비를 하듯이 겉옷을 입는 란이었다. 지켜본 바로 그는 말은 거칠어도 행동은 부드러웠다. 그 때문에 그가 미워도 밉지 않아 보였다.

“공주님이 원하시는 건 그 지도이고, 저희는 지도를 얻었으니 돌아가 보고를 드려야 합니다.”

금색의 허리끈을 묶으며 란은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혹시 너희 세상에는 비둘기라든가 편지라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거냐.”

“비둘기보다 저희가 더 빠른데 굳이 왜 그래야 합니까.”

란은 더 할 말이 없는지 콧방귀만 뀌었다.

“군의 이동 경로는 알고 있나?”

“이리로 오기 전에 보고 외웠습니다.”

“그거 하난 다행이군.”

마지막까지 삐뚠 마음을 보이는 게 그답다 싶었다. 나디사는 품에 안고 있는 지도를 조심스레 매만져 보았다. 이것만 있으면. 순간 드는 생각에 지도를 누르던 손을 천천히 미끄러트렸다. 명을 수행했다는 기쁨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공주의 말이 구원 같았다. 지금껏 자신을 움직인 건 그 말이었음을 알자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도 모를 남자를 위해 약속 하나 얻어 두고 싶은 마음. 세간에 사랑이 사람을 어리석게 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의 의미를 알 것도 같았다.

* * *

그리사, 아트리스는 방향을 잘 잡으니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디디와 로마도 그녀의 말을 잘 따르고. 교대로 라드 위에서 잠을 자고 방향을 이끌어 주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쉼 없이 달려오니 지칠 만도 했다. 특히나 나디사는 휴식이 간절한 몸이었다.

탁탁, 병을 흔들어 라넌이 준 가루약의 남은 양을 가늠해 보았다. 비싼 약이라고 했다. 그냥 먹지 말고 물에 타서 마시라고. 진정한 라드군이 된 걸 환영한다던 라넌은 눈으로 저를 걱정하고 있었다.

‘여기를 나가게 되면 그 동료가 버리고 갔다던 라드는 죽여라.’

전보다 더 자주 라넌의 생각을 하는 듯했다. 떠난 사람들의 생각이 잊히지 않아 그녀는 자신이 사는 곳이 어디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과거인지 현재인지. 약을 물 없이 입에 털어 넣은 나디사는 그 질은 가루를 꿀꺽 삼켰다.

“그건 무슨 약이냐.”

나디사는 저에게 싱거운 목소리로 질문한 란과 눈이 마주쳤다. 눈치를 보듯 앞에 있는 두 사람에게로 시선이 갔다. 약을 먹는다는 걸 동료인 그들에겐 들키고 싶지 않았다. 무탈하고 또 밝게 보였으면 싶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그렇게 감춰서 먹어?”

피곤해하는 란을 위해 속도를 늦춰 날고 있던 것이었다. 하늘에서 잠을 자는 건 라드와 연결된 사람이라면 편히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안하고 걱정되는 게 당연하니.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를 재워 두는 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것이었다. 괜히 그랬다. 피곤하게 내버려 두었으면 지금쯤 꾸벅꾸벅 졸았을 텐데.

“별거 아니면 나도 줘 봐.”

“……란 님에게는 효과가 없을 겁니다.”

“못 주는 걸 보니, 몸이 어딘가 아픈 게 확실하군.”

내심 그를 무시하고 있었던 나디사는 깜짝 놀라 눈이 커졌다. 유들유들하게 남의 말이나 감정을 잘 받아치지 못한다. 란은 그것에 능한 편이었고 말이다. 표정에 드러난 감정을 건진 란은 누운 자세로 바람을 느끼는 듯이 말이 없었다. 몸의 회복을 위해 약을 먹는다니 조용해진 걸까. 아니면 동료들에겐 말을 하지 말라고 부탁해야 하는 걸까.

그때 고민하는 나디사를 나무라듯이 란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나 그는 나디사를 보는 게 아닌, 돌아앉아 뒤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어둡고 차가워 그녀를 진땀 나게 했다.

“왜 그러십니까.”

“무언가 따라오고 있어.”

“뒤에서?”

나디사는 눈이 나쁜 편이 아니었다. 라드와 연결된 후로는 시력도 전보다 좋아졌다. 하지만 희멀건 구름만이 그들을 따라다닐 뿐, 뒤에서는 오는 것이 없었다.

“천천히, 기분 나쁘지 않게 나를 건드리고 있다고. 꽤 오래전부터 따라온 느낌인데.”

바람이 머리칼을 헤집어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검은 머리카락이 그녀를 잡으려고 다가오는 그림자 같았다. 구름 너머로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나디사는 란의 마지막 말에 주먹을 쥐었다.

“어두운 기운…….”

그녀의 귀에는 그 말이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들렸다. 저게 히아신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아주 적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나디사는 이미 뒤로 갈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네가 가려…….”

“아, 윽!”

란과 나디사의 추적꾼 탐색은 실패로 돌아간 듯싶었다. 나디사는 앞에서 달리고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없어진 걸 보고 곧장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리사!”

아래로 추락한 그리사는 정신을 잃은 듯 보였다. 공중으로 그의 궤적을 따라 검붉은 핏자국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트리스는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머리를 가격당했어.”

나디사는 로마의 등을 두 번 두드렸다. 로마는 믿음직스러운 눈빛으로 방향을 돌렸다. 아직 입가에 남은 가루를 씹으며 나디사는 떨어지는 그리사를 향해 날아갔다. 와아아악, 그때야 하늘에선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들려왔다.

“나디사!”

따라온 아트리스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에 의해 얼굴이 망가지고 있는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아래에 사람이 있어!”

지금 수도로 진군하고 있는 공주의 군대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런 데서 갑작스레 습격이라고.

“네 지도!”

“잘 갖고 있어!”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오게 된 가을바람은 유난스러웠다. 뺨이 갈라지는 듯한 느낌에 가슴까지 고장이 났다. 더 빠르게 닿으려면 날개를 한 개 더 쓰는 게 좋겠다. 하지만 그때도 몸이 찢어지고 갈라지는 느낌이었는데.

망설임이 길어질수록 그리사를 잡을 수 없을 뿐이었다. 저대로 그리사가 땅에 박히면 그때는 늦는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누군가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지 않았다.

“로마!”

날개가 하나 더 드러나며 그녀의 몸은 빠르게 떨어진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과 같이 땅으로 떨어지는 그녀는 그 빠른 속도 중에도 범인을 찾아냈다. 나무 뒤로 숨으려던 범인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바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사! 정신 차려!”

머리에 피를 흘리며 떨어지는 그리사보다 더 먼저, 더 빨리. 조급해하는 나디사의 마음을 받아 로마의 날갯짓 소리가 온 세상을 덮을 듯이 커졌다. 쌍 날개로 내려오는 라드의 모습에 도망가려던 자의 발길이 바람에 눌렸다. 엄청난 양의 바람이 땅에 쏟아져 나무와 돌이 흔들리고 날아가느라 고생이었다. 하지만 범인이 질식해 죽든 말든 나디사는 무사히 그리사의 밑으로 들어갔다.

“윽!”

땅에 닿기 직전이었다. 로마가 만들어 낸 바람이 그리사를 위로 들어 올렸다. 따라온 아트리스가 쓰러진 나디사를 앞발로 낚아채 갔다. 그리사를 무사히 데려갔다고 확신한 때에 그녀는 몸을 뒤집었다. 바람을 이용해 그리사의 라드를 땅으로 무사히 옮긴 후 착지할 수 있었다.

쿵, 땅이 울며 날개가 접혔다. 숨이 멎은 범인이 저가 침대로 쓰던 나무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멀리서도 보이는 파르난의 문양에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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