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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100화 (100/210)

100화

나디사는 야릇하게 파고들고 있는 두 손가락을 저지하고 싶었지만 힘 빠진 손을 그의 팔 위에 얹는 게 고작이었다.

따듯한 물이 손에 담겨 그녀의 밑으로 왔다. 온기를 가진 손가락이 들어와 민감해진 내벽을 톡톡 건드렸다.

휘저으며 파고드는 것이 안 해도 될 손짓을 했다. 앞뒤로 움직이는 손가락 움직임에 나디사의 허리는 가엽게도 뜨고 졌다.

퍽, 퍽, 그의 손을 때려 보았다. 따듯한 물을 더 퍼 온 그는 닦아 준다는 알량한 목적마저 다 잊은 사람처럼 아래를 희롱하는 데에 정신이 팔렸다.

“아, 으흐!”

부풀고 있는 그의 아래를 보며 나디사는 모든 걸 포기하고픈 심정이 됐다. 저 만족을 모르는 망아지 같은 남자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됐다.

“나디사.”

첫 번째. 그녀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며 슬금슬금 옆자리를 차지한다.

“아직도 힘들어?”

두 번째. 걱정해 주는 척하며 그녀의 위로 올라탄다.

“여기, 외로워 보여서.”

세 번째. 되지도 않는 말을 하면서 아래에 욕심껏 부푼 그것을 비비적거리다가.

“으!”

“하, 최고야…….”

이럴 줄 알았다. 짝, 소리를 내며 가르고 들어와 그때부터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했다.

사실 그의 풀린 눈동자와 무섭게 치대는 허리를 보면 말리고픈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는 저 혼자 다른 세상에 갔다 온 것 같았다. 그녀의 신음 소리를 짜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세상에 말이다.

“아, 으, 으!”

기운이 없어 죽겠는데도 그의 성기 끝이 누르는 곳마다 전신이 떨려 왔다. 크기도 커서 담아 두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래도 나디사는 어설픈 요령이 생겨났다. 미친 듯이 박아 대기 시작할 즈음 그의 목덜미를 물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흐, 아아, 나디사아…….”

그의 목과 쇄골 주변에는 온통 그녀의 입술이 낸 자국으로 가득했다. 그는 쉬는 시간에 그게 몇 개인지 세어 보기까지 했다. 그와 그녀의 입장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는 행위였다.

그럼에도 이만큼 먹히는 방법이 없는 터라 지금까지도 쓰고 있었다.

“아, 아, 하아…….”

푹, 푹, 음부를 휘젓고 다니던 성기가 왕복을 끝내고 천천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기나긴 절정의 여운을 보내지 못한 나디사는 팔다리의 힘을 모두 소진했다. 팔이 떨어짐과 동시에 히아신이 그녀의 위로 덮쳐 왔다.

“무, 거워.”

쪽, 쪽, 아직 끝나지 않은 그의 입맞춤이 그녀의 눈가와 이마에 내려왔다. 한여름에 두껍고 무거운 이불에 깔려 있는 기분이었다.

땀이 진탕 난 몸끼리 얽혀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할퀴어진 자국이 선명한 그의 팔이 나디사의 머리를 감쌌다.

“배 안 고파?”

“고파…….”

“기다려, 공주님.”

쪽, 마지막까지 질리게도 그놈의 입맞춤을 하고서야 히아신이 침대에서 떠났다. 겨우 자유를 얻은 나디사는 몸을 둥글게 말아서 누웠다.

그러다가 침대로 흘러내리는 하얀 액을 느끼곤 시선이 밑을 향했다.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이러면 닦아도 소용이 없지 않나 싶어서.

그녀는 그가 두고 간 따듯한 물에 손을 담갔다.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히아신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래 닦고 싶어?”

“내가, 할 거야.”

목소리가 쉬었다. 히아신은 킬킬 웃으며 그녀의 등과 침대 사이에 손을 넣었다. 아주 익숙한 접촉인데도 나디사는 경계하듯 등을 떨었다. 이번만큼은 정말로 그녀를 일으켜 주려는 듯했다.

“이거 먹어 봐.”

그를 때려눕히기 위해서라도 체력이 필요했다. 나디사는 그가 가져온 빵을 의욕 없는 손길로 집었다.

치즈 맛이 무언지 느껴지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고소한 빵의 맛은 그다음으로 느꼈다. 가장 강렬한 순부터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나디사는 빵을 반쯤 남겨 둔 시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하는 거야.”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아니, 그냥 둬.”

그러나 그는 물에 적신 수건을 들고 그녀의 아래로 들어왔다. 전적이 있어 몸을 잔뜩 긴장시키고 있던 나디사는 그의 물수건이 진정 아래를 닦고만 있자 차차 안심할 수 있었다.

그는 무너진 신뢰를 쌓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아래를 열심히 닦아 주었다.

“임신할까 봐 걱정했어?”

불현듯 들린 그의 말에 빵을 삼키던 그녀는 목을 긴장시켰다. 따듯한 물수건 덕에 풀어지던 다리도 급하게 오므렸다. 그러나 그는 다 닦았다는 듯이 수건을 미련없는 동작으로 물렸다.

“임신?”

물그릇을 치우기 위해 일어선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가 하는 거. 아기 만들기잖아. 당연히 그게 주목적은 아니지만.”

그러고 상큼하게 돌아서는 그의 등 근육을 보며 나디사는 멍해져 있었다. 샤포드 촌구석에서 일만 하고 자란 나디사는 그런 쪽으론 무지했다.

남녀가 같이 있으면 아이가 생긴다는 것쯤은 눈치로 알았지만 마로닌 부부가 그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해 준 적은 없었다.

나디사는 그녀와 멀리 떨어져 담뱃갑을 여는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피우고 싶은 듯 그걸 바라보고 있던 히아신은 그녀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왜?”

“임신……. 한다고 했잖아.”

“말이 조금 달라졌어, 공주님. 임신할까 봐 걱정했냐고 했지.”

의자를 돌려서 앉은 히아신은 식탁 위에 발을 올려 두었다. 그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려는 듯 하나를 꺼내 입에 문다.

피워도 되냐고 눈으로 묻고 있었지만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럼, 아이가 생기면…….”

“그런 일 없어.”

불을 붙이지는 않고 그는 제 입에 문 담배를 위아래로 까닥까닥 움직였다.

“나디사하고 이렇게 될 것 같아서 피임이 되는 약을 먹었거든.”

나디사는 그런 약도 있냐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금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서운하다기에는 너무 가볍고 안심했다기에는 너무 무거운 감정을.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감정이 그녀의 가슴께를 두드리고 있었다.

“만약 아이가 생기면.”

“하하.”

히아신은 재밌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피임약을 만든 사람을 찾아서 죽이는 게 첫 번째고. 글쎄, 낳아야 되나?”

“그게 무슨 소리야.”

남자라면 몰라도 여자는, 그것도 군인이 임신을 한다는 건 무척 곤란했다. 라드를 모는 것만 해도 그렇다. 다 자란 성인도 픽픽 쓰러질 만큼 체력과 정신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멀쩡한 성인도 그럴진대 임신한 몸으로 라드를 몰 순 없는 건 당연했다. 그러니 뜻이 있다면 임신 같은 건 애당초 눈독 들여선 안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생기는 행위를 하면서, 그 아이가 생겼을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이 그 경우였다. 모를 땐 몰랐어도 알고 나니 남녀 간의 은밀한 행위가 왜 그리 터부시됐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낳아야 되나, 라니.”

담배를 포기한 히아신은 철제 갑을 식탁에 버려두고 그녀에게로 걸어왔다. 그 태연한 몸짓에 나디사는 본인이 나신인 것도 잊고서 그를 쳐다봤다.

침대 앞까지 온 히아신은 급할 것 없다는 태도로 바지를 주워 입었다. 나디사는 태초의 여인처럼 벌거벗은 채로 그를 맞이했다.

“말했잖아. 앞으로 내 모든 미움, 슬픔, 기쁨은 너밖에 없다고. 이게 그런 운명이라고, 나디사.”

“그래서.”

“아이가 생기면 나는 그 애를 특별 취급할 수 없을걸. 지나가는 아저씨나 저기 머나먼 곳에 사는 아가씨와 똑같이 대하게 될 텐데. 그래도 좋아?”

히아신은 그 말을 하면서도 조금의 죄책감이나 미안함 같은 게 없었다. 세상 평온한 얼굴로 설득하는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열이 식은 그 손은 비 내린 바깥보다 차가웠다.

“네 말이 맞아, 히아신. 우리는 군인이니까, 조금 더 조심해야 한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리고…….”

“아, 맞아.”

이 주제를 길게 이어 갈 생각이 없는 그는 중간에 그녀의 말을 잘라먹었다. 행동만 친근하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혀를 섞고 몸을 섞었지만 나디사는 갈수록 그에 대해 알 수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셔츠를 주운 히아신이 그걸 그녀의 맨몸에 덮어 줬다. 그 배려가 이처럼 와닿지 않는 건 처음이었다.

새벽 동이 트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히아신만을 비껴가는 듯했다.

“할 말이라도 있어?”

급속도로 차분해진 그의 머릿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나디사의 물음에 그의 멍한 눈빛이 깨어났다.

“군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디사.”

“얘기해.”

그녀는 언제나 진실을, 솔직함을 바랐다. 여러 번 그녀를 가져서 나른해진 히아신은 옆에 앉아 몸과 얼굴을 가까이했다.

마치 청혼하듯 그녀의 네 번째 손가락을 만진 그는 웃으며 말을 꺼냈다.

“언제가 좋을지 싶었는데, 지금이 아닐까 해서. 더 늦으면 안 되기도 하고.”

보기 드문 그의 진지한 태도에 그녀까지 긴장이 되고 있었다.

“그만두자, 이제.”

“…… 뭐.”

라드군을 그만두자는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기도 전이었다. 희망찬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히아신의 목소리는 밝고 활기찼다. 농담이었다면 그녀의 반응을 봤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정확히 그녀의 눈을 보지 않고 있었다. 저도 이 말이 불러올 여파를 다 아는 것이었다.

“랭보로 가면 나랑 손을 잡고 가서 가장 먼저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나 그만두겠어, 하고.”

어떤 대답이 나올지 훤히 알면서도 그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말했다.

덕분에 잠은 달아났다. 끓는 물에 넣다 뺀 것처럼 얼굴이 빨갛게 익어 갔다. 말을 한 자씩 끊어 뱉었다.

“내가 왜.”

아기 이야기가 그리도 싫었나 싶었다. 그게 마지막 희망이었다. 히아신은 진실을 바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그 희망을 단칼에 잘랐다.

“내가 말이야, 나디사.”

누군가의 세계를 박살 내는 데에는 몇 분씩이나 필요하지 않았다. 단 몇 초 만에 그는 조용히 흐르는 그녀의 일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곧 수비타 왕국을 망하게 할 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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