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꽃과 파티가 무성한 날의 꿈을 꿨다. 하얀 옷을 입고 우스운 춤을 췄다. 까만 옷을 입은 히아신만이 그 파티에 껴들지 못했다.
그게 못내 안쓰러워 함께하자고 다가간 순간이었다.
그와의 사이에 깊은 구렁이 생겼다. 히아신은 어디 와 볼 테면 와 보라는 듯이 웃고 있었다.
동료는 가지 말라며 그녀를 말렸다. 나디사는 절망에 빠진 기분이었다.
쪽, 쪽, 외설스러운 소리가 들려와 그 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인 눈물까지 빼내 간 입술로 그녀의 귓불을 살며시 물었다.
“읏.”
무거운 무게에 가슴이 짓눌려 있었다. 눈을 뜬 나디사는 천천히 손을 움직이려고 했다. 온몸이 뻐근했다. 하루 종일 훈련한 다음 날처럼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삿된 손길이 둔부와 허벅지를 만져 왔다. 심술궂게 그녀의 두 다리를 벌렸다. 나디사는 팔다리를 내저으며 바르작거렸다.
그러나 그는 몇 번의 경험으로 이것이 거부가 아님을 알아챘다. 손은 망설임이 없었다.
확실히 음부를 가르며 들어온 손이 찌걱, 찌걱 목적을 갖고 움직였다.
아직 비몽사몽한 정신이었다. 묵직한 느낌의 아랫도리가 치대는 것을 느꼈다. 열심히 팔다리를 흔들었다. 떨어지라는 뜻이다.
“으, 흐…….”
하지만 그는 웃었다. 이게 무슨 재미난 몸싸움이라도 되는 듯이 웃을 뿐이었다. 히아신의 숨소리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서 더욱 거칠어졌다.
미친 것처럼 좌우를 쑤시는 손가락이 기어코 내벽에 한 지점을 건드렸다. 제 귀로 듣기에도 남사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나디사는 그의 손을 꼭 잡아 눌러 보았다. 그래 봤자 그의 손가락 움직임까지 막을 순 없었다만.
그의 나쁜 손가락이 음핵을 굴려 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어젯밤 그 요사스러운 손길이 다시금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흐, 아으, 흣!”
나디사는 허리를 떨었다. 절정이 지난 몸을 아래로 푹 떨어트렸다. 침대에 누워 숨을 고르는 사이 히아신이 손가락을 뽁 뽑아내었다.
“하지, 마.”
그는 꼭 의식처럼 젖은 손가락을 맛보았다.
“아직, 힘이 있네?”
여태껏 떨리는 그녀의 허리를 안았다.
“아니, 아니야.”
그녀의 벗은 가슴께를 가려 주던 얇은 여름 이불이 걷어 내졌다. 하얀 다리 근처에서 기회를 엿보는 그의 손이 보였다.
차근차근 춤을 추듯 올라오는 그의 손이 이미 빨갛게 농락당한 음부 근처에서 노닐었다. 그러다 때가 됐는지 얼굴을 내렸다.
“안 돼…….”
여러 번의 경험으로 깨달은 터였다.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아래로 내려온 그의 입술이 기회를 주듯 허벅지에 입을 맞췄다. 음부 근처를 전전하는 그의 숨이 뜨거웠다.
고른 이가 허벅지를 아프지 않게 물었다. 자국만 남기고 떠난 입술이 슬쩍슬쩍 비벼지며 물었다.
“저기 물이 고여 있는데, 나는 목이 마르고. 굳이 마시지 않아야 할 이유는 뭘까, 나디사?”
원래도 그는 짓궂은 편이었으나 잠자리에선 그 정도가 달랐다.
히아신은 또 다른 재미를 찾은 것이었다. 평상시 감정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그녀의 온 얼굴이 빨개지는 게, 그리고 다 꺼져 가는 목소리로 애원하는 게.
“부탁, 해.”
그의 아래에 깔려 수십 번도 더 외친 말이었다. 히아신은 허벅지에 누우며 일부러 더 자극했다. 음부에 난 잔털을 부드럽게 쓸어 만졌다.
“응?”
타락의 속삭임인 줄 알면서도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허벅다리 사이로 들어오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에. 나디사는 눈을 질끈 감고 다시 한번 부탁했다.
“부탁할게, 그만.”
히아신은 자애로운 남자인 척 고개를 끄덕였다. 허벅지를 잡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일어나려는 듯하던 그의 방향이 이상해진 건 그즈음이었다.
나디사는 꺾여 내려가는 그의 얼굴을 보고 의아함이 커져 갔다. 그의 얼굴 방향은 그녀의 다리 사이에 들어간다. 도착지는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곳이었다.
“으, 아!”
파묻힌 얼굴, 그 얼굴에서 나온 혀가 다물린 살을 독하게 핥는다. 빛이 드는 새벽하늘을 보며 허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다리 사이로 떠난 그의 얼굴은 거기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후르릅, 마시는 소리와 함께 그의 혀가 내벽에 찰싹 붙었다. 목으로 끝없이 무언가를 삼켜 댔다.
제 아래를 움킨 그의 요란한 손놀림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그는 아래가 많이 부었다며, 입으로 치료해 주겠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그 치료가 새벽을 다 보낼 때까지 이어진 건 말할 기운도 없었다.
* * *
나디사가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옷을 챙기는 것이었다. 무표정하게 일을 처리했다. 셔츠를 찾아 입고, 허리에 긴 치마를 맸다. 그러나 손은 장마철 버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그녀가 도둑같이 일어나서 옷을 챙겨 입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날씨가 훗훗한 낮이며, 무엇보다 히아신 아스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제 몸에 자국과 여운을 남기고 떠난 그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나디사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로 오두막 안을 배회했다.
무단 외박이었다. 이 데이트를 알고 있는 이들은 전부 두 사람의 행방을 궁금해하다가, 끝내 음탕한 밤까지 추리해 내고 말 것이었다.
차라리 혼자서 일찍이 복귀한다면 그 같은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나디사는 어긋나게 단추를 맸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황급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 삐걱, 삐걱, 뛰어가는 그녀의 발소리를 따라 오두막에서 소리가 났다.
히아신이 불시에 등장할 것만 같아 긴장이 됐다. 그만두라고 수십 번 외쳤음에도 끝까지 밀어붙인 그 독한 남자가 떠올랐다.
얼굴이 화끈거려 급하게 상상하던 장면을 지웠다. 복귀 생각만 간절할 뿐이었다. 거친 손길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아.”
나디사는 주춤 뒤로 물러났다. 마침 오두막으로 들어오던 히아신은 희게 웃었다.
그의 손에는 누런 봉투가 들려 있었다. 빵과 각종 식료품을 사 온 그는 천천히 발을 들였다.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에 나디사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나 두고 가게?”
“빨리, 복귀해야 될 것 같아서.”
히아신은 콧노래를 부르며 화롯불이 있는 곳으로 갔다. 성냥으로 불을 켜고 솥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누런 봉투에서 잘 익은 토마토를 꺼냈다.
“앉아서 기다려 줘. 다리 아프면 어떡해.”
“아니, 난 나가 봐야겠어.”
히아신은 얼굴에 철판을 깐 게 틀림없었다. 자신은 눈을 마주치는 것도 이토록 버거운데 말이다. 어쩜 저리 눈을 접으며 웃을 수 있을까.
그와 얼굴을 맞대고 있을수록 어젯밤에 들었던 대사들만 뚜렷해지는 기분이었다.
‘다리 더 들어. 그래, 그렇게.’
‘여기 많이 부었다. 내가 그랬으니까 내가 치료해 줄게.’
‘괜찮아. 내 혀는 다정한 편이야.’
온갖 잡소리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솥에 물을 끓이고 재료를 넣는 저 단아한 모습과 비교됐다.
히아신은 박자를 타듯이 고개를 흔들거렸다. 가슴 포켓에는 선물 받은 금색 시계를 넣어 뒀다. 그 모습 하나에 마음이 말랑해져선 안 됐다.
저러다가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만약 새벽에 자신을 덜 괴롭혔다면 어땠을까. 아마 일어나 웃는 얼굴로 그와 포옹했겠지.
그는 웃는 얼굴로 사람을 반 죽여 놓는 이였다. 침대에서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게 수준급이었다. 오죽 시달렸으면 그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을까 싶다.
나디사는 몰래 탈출할 결심을 했다. 그가 요리에 집중하는 사이 문을 열고 나가는 계획이었다. 배를 타고 먼저 도망가 버리면 제가 별수 있으랴.
그런 생각으로 슬금슬금 걸어가 오두막 문까지 당도했다. 문고리만 잡아당기면 이 눈치 싸움도 끝이었다.
하나, 둘, 셋. 마음먹고 문고리를 당긴 나디사는 이내 땀을 삐쭉 흘렸다. 한 번 더 당겨 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덜커덩, 소리만 내고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좌절했다.
이게 이럴 리 없었다. 어떤 잠금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히아신은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었다. 어느 정도 끓인 스튜를 떠서 간을 보고 앉았다.
오기가 생겼다. 문을 당기며 다시 열려는 찰나. 피식, 피식 웃음 새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토마토를 써는 중인 히아신은 이쪽을 보지 않고 있었다. 문을 닫아 둔 범인이 저라는 걸 숨기지 않는다. 웃는 얼굴이나 얕보는 태도나.
지금 병에 갇힌 쥐 신세라고 좋아하기라도 하는 건가.
“히아신.”
나디사는 지난밤의 설렘을 꾸욱 눌러 삼켰다. 할 수 있는 한 그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문 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