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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77화 (77/210)

77화

시네라는 양옆에 불구덩이를 끼고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앞서 나간 이들과 반대 방향의 길로 들어가 조사하기 시작한 시네라, 아트리스, 히아신이었다.

하지만 말이 조사였지, 아트리스는 아이라는 단어와 가장 먼 이였고, 히아신은 아예 이 주제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걸핏하면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시간을 낭비하며 나디사를 찾아댔다.

듣다 못 한 시네라는 그가 사 준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을 들고 말했다.

“나디사는, 우리랑, 그, 반대 방향이잖아.”

“아하.”

초코 맛 아이스크림을 야금야금 베어 물던 히아신이 왼손에 든 딸기 아이스크림을 건네었다.

“시네라, 그럼 이건 너 할래?”

“나 이미 있는데…….”

히아신은 시네라의 손에 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보고 끄덕인 뒤 아트리스에게 건넸다.

“화해하자.”

“치워.”

“봐봐, 시네라. 이따가 나디사에게 말해 줘. 얘가 늘 내게 이런다고.”

그러는 동시에 맛별로 한 입씩 아이스크림을 베어 문 히아신은 좀처럼 입을 가만두지 못했다.

거의 나디사 찬양가를 불러 대기에, 단순히 싸움을 말리고자 끼어든 시네라는 급격한 피곤함을 느꼈다.

“시네라. 이쪽 가게는 다 둘러본 것 같은데 뒤쪽으로 가 보는 게 좋겠다. 그렇지.”

“아, 히아신. 우리는 이쪽이라고, 내가 계속 그랬잖아.”

그때 무언가를 메모하며 걸어가던 아트리스가 멈추어 서서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군복을 입고 나온 아트리스를 흘끔거리는 숙녀들 무리가 지나갔다. 그사이 히아신은 아이스크림 두 개를 다 먹어 치웠다.

상가를 지나 광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아트리스는 메모지를 안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서로 반대편 상가 거리를 지나 이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하나의 성과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광장에 도착하게 된 것이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오자 아트리스의 표정이 굳어 갔다.

시네라는 광장 앞에 가만히 있는 아트리스를 보며 불안함을 느꼈다.

“우리, 저기, 일단 다른 팀을 기다려 볼까.”

“히아신 아스.”

시네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불꽃이 또 튀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네라의 손수건을 빌려 끈적거리는 손을 닦고 있던 히아신은 무슨 일이냐는 듯이 눈썹을 올렸다.

“넌 회의에 참가할 자격이 없어. 돌아가.”

“아무 일도 안 한 건 우리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같이 돌아가자, 그럼.”

“이번 임무에 방해가 된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

“시작도 안 한 임무를 방해하는 재주가 있었네? 나한테?”

“아예 시작조차 못 하게 만든 게 너라는 자각도 하지 못한다는 건가?”

시네라는 말로 주고받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서서 팔을 양쪽으로 뻗었다.

더욱이 아트리스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사복을 입은 히아신과 다투기 시작한다면 지금처럼 안 좋은 이목이 끌리는 게 당연했다.

“아트리스, 제발.”

“가기 싫으면 내가 가지. 시네라, 먼저 모세스 댁으로 돌아간다고 전해 줘.”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아트리스는 마차를 찾는 듯했다.

시네라는 한숨을 돌렸다. 어찌 됐든 큰불은 막았다고 생각했다.

“유난히 짖어 대네?”

히아신이 입을 놀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거의 히아신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던 아트리스의 걸음이 되돌아왔다. 시네라는 차라리 보지 않는 걸 선택했다.

아트리스가 돌아와 히아신의 옆에 섰다. 시네라는 저 좁은 틈으로 비집고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짖어 댄다고.”

아트리스의 눈빛이 저토록 험한 것은 처음 보았다.

머리를 감싸 쥐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들 시선이 많았다. 시네라는 빨리 반대편 사람들이 광장에 도착하기를 바랐다.

아니면 히아신의 도발이 그만 멈추기를.

“나한테 불만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 정확히 언제야. 키스하는 걸 몰래 훔쳐본 후였나. 아니면…….”

퍽, 돌아가는 히아신의 고개를 보고 시네라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군인 폭행, 같은 신문을 떠올린 시네라는 다가가 그의 재킷에 매달렸다.

“아트리스, 지금, 사람들 눈이 있어…….”

“놔.”

그러나 아트리스는 이성을 잃었다. 두 사람 사이에 생긴 일이 무언지 모르는 시네라는 거의 아트리스를 안듯이 했다.

제 입가에 난 피를 손으로 찍어 본 히아신은 비릿하게 웃었다.

“너무 부드러운 주먹이잖아. 누가 보면 우리 연인인 줄 알겠어.”

“히아신! 그만, 해!”

더 해 보라는 듯이 히죽 웃는 눈으로 아트리스를 보던 그가 돌연 울상을 지었다.

아주 급작스러운 변화라서 그에게 살의를 불태우던 아트리스조차 멈출 정도였다.

무언갈 기다리는 표정의 히아신이 광장 건너편을 보다가, 뜬금없이 제 입술을 쥐어 싸매며 고개를 숙였다.

“아트리스!”

그의 변화에 놀라는 것도 잠시. 그 이유는 금방 나타났다.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고서 달려온 마벤이 아트리스의 앞으로 와 그의 얼굴을 살폈다. 시네라는 그제야 아트리스를 놓을 수 있었다.

“싸운 거야? 어디 맞았어?”

그러나 정작 아트리스의 시선은 나디사에게 꽂혀 있었다. 히아신은 풀 죽은 표정으로 제 입술을 가린 손을 치웠다.

“세상에.”

나디사의 말 한마디에 세상을 얻은 것처럼 환해졌다. 제 상처를 살피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서 고개를 떨궜다. 히아신의 모습에 시네라는 울고 싶었다.

“히아신!”

아트리스의 대변자로 나선 마벤은 히아신의 입가에 난 피를 보고도 속지 않았다.

“뭐라고 도발했기에 그래, 도대체.”

짐을 들고 있던 그리사는 힐난하고 싶은 표정으로 섰다.

“뭘 하든 때린 쪽 잘못 아닌가요? 그것도 군복을 입고. 내가 싸우지 말라고 그랬죠.”

시네라는 그리사와의 2차 싸움으로 번질 것 같아 그의 앞을 막아섰다.

“히아신이 잘못하긴 했어.”

“아무리 그래도 때린 건 너무한데.”

이번엔 얌전히 있던 나디사까지 가세했다.

쌍심지를 켜고 있던 마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디사에게 다가갔다.

“아침에도 식탁에서 못 봤어? 맞을 만하니까 맞았겠지.”

“히아신이 무슨 말을 했건, 그리사의 말대로 함부로 주먹을 쓴 건 안 되는 일이야.”

나디사의 질책을 듣자마자 아트리스가 빠른 걸음으로 뒤돌아 걸었다.

상가 쪽으로 사라지고 있는 아트리스를 보며 마벤은 손을 저었다.

“좋아. 팀을 다시 짜자구. 나하고 시네라, 아트리스. 그리고 너희 셋. 조사 잘 안 해 오면 진짜 가만 안 둬. 너 말이야, 너.”

가자, 시네라. 시네라는 마벤의 부름에 의해 아트리스 쪽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본 결과, 뭐니 해도 실책은 히아신 쪽이 더 있다고 본 것이었다.

히아신 옆에 선 두 사람이 안타까웠다. 시네라는 마벤과 함께 아트리스를 쫓아갔다.

여섯 밤 남은 공연을 어떻게 계획해야 좋을지. 임무는 점점 산으로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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