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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64화 (64/210)

64화

훤한 낮이었지만, 창문 안으로 타고 들어오는 빛도 잠잠할 만큼 마구간 안은 조용했다.

아트리스는 걸어와 란의 옆에 섰다. 란은 그의 라드를 차가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아트리스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뜬 뒤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 아트리스는 빛을 보았다.

란의 발밑에서 흘러나온 반짝거리는 노란색의 빛이 서서히 퍼져,, 마구간에 땅과 벽에 스미고 있었다.

별의 색으로 바뀐 마구간 안은 금세 화사한 빛으로 뒤덮였다. 아트리스는 주먹을 쥐고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름이?”

“……아트리스 메놈입니다.”

“이게 당신의 라드고.”

“그렇습니다.”

“며칠 전, 기도회가 열리는 주간에 왜 신전에 왔었지?”

군인답게 서 있던 아트리스가 눈을 위로 떠 그를 바라봤다.

라드를 유심히 바라볼 때부터 이미 이럴 것을 예상하고 있던 아트리스는 눈을 감았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

하하, 건조하게 웃은 란은 삐딱한 자세로 서서 그를 바라봤다.

란의 손이 위로 올라가자 바닥을 돌아다니던 노란 별빛들이 위로 올라와 아트리스의 목을 감쌌다.

“요즘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게 묘하게 기분이 나쁘단 말이지. 너라도 알려 주면 좋겠는데.”

노란 별빛이 공격적으로 휘감아 목을 조르고 있는데도 그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비명을 질러도 그가 마구간의 소리를 차단해 놓았기에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독한 남자는 애초에 비명을 지를 생각이 없었다.

란은 여기서 자신이 목을 꺾어 죽인다고 하더라도 편안히 죽을 거라는 걸 알았다.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를 보며, 다른 방식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란의 머릿속에는 이 부대에 살고 있는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떠올랐다.

나디사 마로닌. 수장이나 수하나 똑같이 그의 머리를 아프게 만든다.

하, 가는 숨소리와 함께 별빛에서 풀려난 아트리스는 제 목을 가볍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숨이 꽤 막혔을 텐데도 담담한 그를 보니 기가 막혔다. 단순히 깡이 있는 놈이 아니라 어디서 훈련을 받고 온 티가 났다.

란은 이런 이들이 뭐에 죽고 사는지 알고 있었다. 나디사 마로닌 또한 제 동료들을 위해서 그 죽을상을 하고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던가.

“아트리스. 나는 오늘 네게 고통을 주기 위해 온 게 아니야.”

졸린 목을 단추로 잠가서 가리던 아트리스가 지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너희들에게 임무를 맡기고자 왔어. 너희 부대가 그렇게 일을 잘한다며?”

“개인적으로 요청하고 싶은 임무여도 상부를 한 번 거쳐서…… .”

“너희 동료들에게 내가 왜 너랑 단둘이 여기에 있는지 알려도 되겠어?”

그 말에는 입을 딱 다문다. 란은 원하던 반응이 나오자 그의 어깨를 잡아서 꽉 쥐었다.

“잘하자. 내가 여기에 있는 게 싫으면 네가 내 질문에 대답해 주면 돼. 나디사 마로닌도 그렇고. 그 쉬운 걸 왜 안 해 주는지.”

나디사, 라는 이름이 나오자 아트리스의 눈빛이 궤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먹잇감을 발견한 란은 턱을 쓰다듬으며 그를 떠보았다.

“그래, 나디사 마로닌. 왕세자의 파티에서 죽어도 나가지 않는 이유를 알고 싶지 않아?”

그러나 눈치 빠른 아트리스는 떠보려는 그의 심기를 파악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까의 칼끝처럼 서늘한 눈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재미없는 놈.

“그래서. 저희한테 의뢰하실 임무가 뭡니까.”

란은 쓰러지지 않을 것처럼 버티는 그들을 보는 게 재밌었다.

나디사 마로닌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인 감정이 컸다.

하지만 아트리스 메놈 같은 경우에는 그가 모르는 모든 것의 해답을 쥐고 있는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놈을 공격해야 하는지는 명확해지는 법이었다.

* * *

엎드려 풀을 뽑던 발톱 부대는 이가 갈렸다. 편히 신전 차양 그늘에 앉아 음료를 마시는 란을 보면 살인 욕구가 들었다.

“저거 신관 맞아?”

“조사해 볼 필요는 있네요. 껍데기만 신관이고 속은 양아치 같은데.”

저는 부채 바람을 맞으며 여름이 다가오는 이 계절을 시원하게 즐기고 있었다.

신관 란의 의뢰는 잃어버린 진주를 찾는 것이었다.

신력을 쏟아부은 신성한 진주인데 그걸 제 처소 마당에서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라드와 연결된 라드군은 다른 이들보다 시력이 월등히 좋으니 의뢰를 청하는 것도 문제는 아니지만, 이 더운 날에 휴식 시간도 없이 세 시간째 굴리고 있는 것은 악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못 해, 더는 못 해.”

아직 여름 군복을 지급받지 못했다. 가을부터 늦봄까지 입는 군복은 땀을 배출하는 데에는 능하지 않다.

더위에 약한 마벤이 벌러덩 드러눕자, 갑자기 부채를 들고 흔들던 하급 신관이 총총 걸어왔다.

“진주는 찾으셨나요?”

선한 얼굴로 저렇게 못될 수도 있다니. 누워 있던 마벤은 제 익은 팔을 일부러 보이며 소리쳤다.

“아니요! 이 넓은 데서 그렇게 쉽게 찾겠어요? 새끼손톱보다 작다면서!”

그는 마벤이 소리를 지르는데도 웃으며 고개를 숙이곤 다시 란의 곁으로 달려가 무어라 쫑알거렸다.

신관의 처소는 그 지위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데, 차기 첫 번째 신관 후보인 란은 이 신전에서 세 번째로 큰 처소를 받아서 쓰고 있었다.

그가 떼를 쓰듯이 그들에게 의뢰를 넣어도 아트리스가 아무 말 하지 못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겠지.

하지만 마구간에 둘만 있다가 나온 아트리스의 목이 빨갛던 것이 내심 마벤은 마음에 걸렸다.

아트리스는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 몰래 쉬도록 지시하고, 본인이 더 열심히 그 진주를 찾았다.

진주는 핑계이고, 어쩐지 자신들을 괴롭히고 싶어 하는 신관의 미소는 날이 더워질수록 짙어져 갔다.

“나디사. 덥지.”

엄청 큰 마당이었기에 그들은 골고루 흩어져 찾고 있는 중이었다.

흐르는 땀을 닦은 나디사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았다.

“그건 어디서 났어.”

앞으로 온 히아신이 그녀의 앞에 쭈그려 앉아 부채를 흔들었다.

황금으로 만든 그 부채는 신관들의 것이었다. 안 그래도 저 멀리서 신관 하나가 부채를 찾는 듯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게 보였다.

나디사는 제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웃으며 부채를 흔드는 게 기가 막혔다.

“임무 와서 다른 사람 거를 훔치면 안 돼.”

“덥지 않아? 여기 땀 좀 봐.”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부채를 흔드는 히아신을 보며 웃음이 났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시원했지만, 고생은 다 같이 하고 있었다.

나디사는 팔랑거리는 부채를 잡아서 그의 품에 밀어 넣었다.

“아무도 모르게 돌려놔.”

“네.”

“너도 얼른 찾아봐.”

“없던데?”

“없다니.”

히아신은 부채를 구기듯이 접어 주머니에 쑤셔 넣은 뒤 곱게 자라난 잔디를 군화로 지그시 짓밟았다.

“이 마당에 진주 같은 건 없어. 그러니까 아까운 땀 흘리지 말고 저기 그늘에 가서 쉬고 있어. 내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안 띄게 해 줄게.”

진주가 없다는 말에 나디사는 뒤를 돌아보았다.

시원하게 앉아 음료를 마시고 있는 란과 눈이 마주쳤다. 란은 자신을 약 올리듯 음료를 흔들며 마셨다.

아까 마구간에서 나왔을 때 아트리스의 표정도 그렇고. 저 악랄한 신관의 꼬마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른다.

땀을 흘리며 마당에 있는 이들을 보자 가슴이 아려 왔다.

하늘에 있어야 할 이들이 자신 때문에 또 땅에 붙어 있는구나.

나디사의 목적지는 명확했다. 란은 다가오는 그녀를 보며 웃는 얼굴로 기대하고 있었다.

장갑을 벗어 던진 나디사는 란의 앞에 섰다.

“무슨 일로? 진주는 찾았어?”

“잠시 저랑 얘기 좀 하시죠.”

란의 옆에 있던 하급 신관이 눈을 부라리며 그녀에게 고함을 지르려는 순간이었다.

“그래. 무슨 얘기 할지 기대된다.”

란은 그런 하급 신관을 막아서고 그녀를 제 처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나디사는 그를 따라 들어가며 주먹을 쥐었다. 하얀 장갑이 처참하게 구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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