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61화 (61/210)

61화

나디사는 몸이 회복되자마자 마구간으로 들어갔다.

지금이 신전의 기도회 주간이라서 그 기도회가 열리는 본거지 근처는 라드들의 훈련을 금하고 있다는 공문이 내려왔다.

히아신은 꿈을 꾸듯 자고 있었고, 시네라와 그리사만이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눈을 뜨자마자 왕세자에게 불려 갈 줄 알았으나 그는 이상하게 자신을 찾지 않았다.

“다른 생각 해요?”

“아, 미안. 뭐라고 그랬지?”

“됐어요.”

지금까지 못 한 훈련을 도와준다는 그리사가 제 라드를 꺼내 왔다.

노디를 든 그가 무어라 설명하고 있었지만, 달라진 분위기가 이상해 집중이 안 되던 차였다.

이상한 건 아까 본 마벤의 표정이었다. 원래 훈련을 주도하던 아트리스는 어디로 갔냐고 하자, 늘 솔직하던 그녀가 우물쭈물 말을 숨겼다.

그리사에게도 여러 번 물어봤지만 그 역시 대답해 주지 않는다.

또 시네라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기에 함부로 묻지 않았다.

지금까지 못 들어간 만큼 열심히 해야 따라잡을 수 있을 거다. 왕세자가 부르는 파티에 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그때 성탑의 문이 쾅, 열렸다. 라드까지 놀랄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열린 문 앞에는 마벤이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벤의 얼굴이 그들 너머를 쪼듯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성탑 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아트리스였다. 마벤은 창문으로 계속 망을 보며 그의 귀환을 기다린 것이었다.

아트리스는 팔에 후드를 걸치고 성큼 걸어왔다. 라드를 타고 나갔다 온 듯, 그의 등 뒤에는 무스가 따라오고 있었다.

“어디 다녀와요?”

“잠깐 본거지에.”

아트리스의 말에 마벤은 뛰어와 그의 앞에 섰다.

“뭐라고 했는데.”

“나디사가 더 이상 왕세자에게 불려 가지 않고 우리와 함께 훈련할 수 있다는 확답을 받았어.”

아무도, 심지어 나디사 본인조차 예상하지 못한 말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트리스는 피로가 내린 눈으로 나디사를 격려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앞으로는 안 가도 되니까 염려 마.”

“아, 고마워.”

그리사, 시네라는 잘됐다는 듯이 웃었지만 유일하게 마벤만 뚱했다.

마벤은 시선을 떨어트리며 풀이 죽은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런 그녀를 쭉 눈여겨보던 그리사는 앞길을 장난스레 가로막았다.

“같이 훈련하죠.”

“몸이 안 좋아.”

“어디가 안 좋은데요.”

그러나 마벤은 그리사를 손으로 밀치고 성탑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아프지 않다는 건, 방금 기운차게 뛰어온 것만으로도 증명이 됐다.

나디사는 마음이 좋지 않아 계속 눈으로 그녀를 쫓았다. 몸살이 난 자신의 옆을 밤새 지켜 주던 건 마벤이었다.

“나, 나디사.”

그때 깃발을 든 시네라가 수줍은 얼굴로 그녀에게 걸어왔다.

마벤에게 쏟아지던 나디사의 시선이 시네라의 깃발로 향했다.

“나, 기수가 됐어.”

“어? 기수?”

시네라는 아까부터 자랑하고 싶었는지, 저 푸른색과 금색으로 된 깃발을 계속해서 들고 있었다.

시네라의 말에 듣고 있던 그리사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우리 부대 기수는 시네라로 정해졌어요. 시력도 좋고, 우리 중에 가장 길을 잘 찾으니까.”

“아, 정말.”

깃발로 명령을 전하고, 선두에 선 수장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게 조언을 하는 기수. 시네라는 그런 자신이 뿌듯한 듯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축하해, 시네라.”

“아니야, 나디사가 아니었으면…….”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아트리스는 눈가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데도 후드를 나무 밑에 던져두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럼 훈련하자.”

“좋아요. 방어부터 배울까요.”

나디사는 노디를 들고서 성탑 쪽을 바라봤다. 마벤이 없어 덜 즐거운 하루였다.

* * *

귓가에 스치는 바람이 노랫소리 같았다. 나디사는 자신도 모르게 양팔을 벌리고 웃었다. 이렇게 라드를 모는 일이 좋을 줄은 몰랐다.

신이 난 로마도 꼬리를 붕붕 흔들며 하늘을 날았다. 그간 좀이 쑤셨을 거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하늘을 나는데, 마구간에 갇혀 시간을 보냈을 로마가 미안해, 그 매끄러운 뒤통수에 입을 맞췄다.

“나디사!”

그때 그리사가 앞을 보라는 듯이 외쳤다. 바람이 불어 그의 말이 작게 들림에도 나디사는 앞을 바라봤다.

수장의 옆에 선 시네라가 전에 없던 진지한 표정으로 깃발을 아래로 돌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깃발이 한 바퀴 원을 그리면 방어로 들어가야 한다.

나디사는 한 손으로는 목줄을, 나머지 손으로는 노디를 꺼내 들었다. 노디를 들고 커다란 원을 머리에 그렸다.

날고 있는 로마의 정신을 완전히 빼앗지 않으면서, 그녀의 하얀 숨결로 방어막을 만들어야 했다.

로마의 입에서 흘러나온 숨결이 커다란 방어막을 만들어 냈다. 나디사는 로마의 눈을 확인하며, 천천히 나오는 숨결의 양을 조절했다.

“좋아!”

매섭게 그녀와 그리사의 방어막 양을 체크하던 아트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트리스는 손에 숨기고 있던 두 개의 물 폭탄을 뒤로 던졌다.

물감을 푼 물 폭탄이 날아와 방어막에 맞았다.

단단히 만들지 못한 방어막은 물 폭탄은 막지 못하고 타고 있는 이를 젖게 만들 것이었다.

빨간 물 폭탄을 막아 낸 나디사와 그리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훈련은 아직이었다.

이번에는 시네라가 들고 있는 깃발을 높이 들고 하늘을 찔렀다. 이번엔 공격 태세로 들어가라는 뜻이었다. 다급하게 노디를 두르고 있는 원형의 방어막을 해체하고 모양을 바꾸었다.

그리사는 금세 방어막을 검의 형태로 바꾸었다. 하얀 숨결로 만든 검을 들고 시네라의 깃발이 전할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나디사는 그보다는 늦게 검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녀가 검을 만들자마자 시네라의 지시가 떨어졌다. 마음의 여유가 없이 하강을 준비하게 된 나디사는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노디와 비행. 그 두 가지를 전부 해내는 게 보통의 일은 아니었다.

나디사는 떨어지라는 지시, 그리고 방향까지 짚어 주는 시네라의 깃발을 뒤늦게 보고서 떨어졌다.

이미 떨어지고 있던 그리사는 웃으며 그녀를 약 올렸다. 집중력이 흩트릴 수 없기에, 나디사는 평정심을 유지했다.

입이 쓴 건 어쩔 수 없었다. 고작 훈련에 몇 번 참여하지 않은 것뿐인데, 저만 두고서 성장한 동료들을 보는 건 속이 쓰라릴 만도 했다.

땅으로 도착한 그리사는 내려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디사 또한 그 앞에 내렸으나 약간 착지가 불안하여 로마의 몸이 약간 앞으로 숙어졌다.

미끄럼틀 타듯 미끄러진 나디사는 정신 차리고 노디로 만든 검을 들고서 그리사와 대척했다.

“그럼 갑니다.”

“응.”

지시에 따라 방어막 형성, 검으로 바꾼 뒤, 떨어지라는 곳에 떨어져 상대와 노디로 만든 검을 들고서 대련.

이 훈련만을 지독히 해 온 동료들은 그녀를 위해서 봐주는 바 없이 순서대로 진행하고 있었다.

달려오는 그리사를 피하지 않고 노디로 만든 검을 들어 그의 검을 막았다. 숨결과 숨결이 부딪치자 그 사이에서 번개같이 불이 번쩍거렸다.

그 번개가 익숙지 않은 나디사는 눈을 수시로 깜빡거렸다. 그리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힘을 줘서 노디에 흘려보냈다.

“아!”

강한 바람이 실린 노디에 맞서던 나디사의 몸이 뒤로 날았다. 흙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던 나디사는 지쳐서 노디를 놓쳤다.

누워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그녀의 뒤로 바람이 불었다.

쿵, 소리와 함께 착륙한 아트리스가 내려와 그녀의 머리 옆에 섰다.

“일어나.”

내밀어진 아트리스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나디사는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몸은 가뿐하여서 좋았다.

“노디에 힘을 실어서 보내면 상대를 날릴 수도 있거든요.”

“고마워. 가르쳐 줘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벌써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렇게 하루 종일 훈련만 하고 있는 게 적성에 맞았다.

“오늘 저녁은 기대되네요.”

“왜.”

“왜?”

“마벤이 나디사가 일어나면 근사한 저녁 쏜다고 그랬잖아요.”

나디사는 들은 적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아트리스는 들은 적이 있었나 보다.

그리사는 무심한 그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하네, 조금.”

노을이 지는 저녁. 나디사는 오늘 하루 종일 얼굴을 비추지 않는 마벤을 떠올리며 흙 위에 드러누웠다.

근사한 저녁 같은 건 필요 없으니 예전처럼 떠들고 참견해 주었으면. 진정 그녀의 잔소리가 그리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