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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57화 (57/210)

57화

무릎 부대와의 경합에서 이겨 정식 훈련에 참여하게 된 발톱 부대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정식 훈련이 있는 곳인 훈련소까지 가기 위해 여기서 아침 일찍 출발을 해야 했다.

외곽에 떨어진 부대라 그런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취급이라서 놀랍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각오하게 되는 부분 같은 게 있었다.

지금까지 무릎, 몸통과 함께하는 훈련에 참여해 본 적 없으며, 자신들이 차별받는다는 걸 모르지 않고 있었다.

그러하니 정식 훈련을 처음 참석하는 자리에서도 아마 보일 듯 말 듯 한 차별로 괴롭히리라고, 생각했다.

“아트리스?”

“네.”

“몸통의 수장, 헤번이다. 우리 얼마 전에 함께 비행했었지.”

“기억합니다.”

“잘 부탁해. 오늘은 가볍게 대형을 만들어 나는 연습부터 한다. 너희들은 맨 마지막이지만 첫 훈련이니 아래서 우리가 어떻게 대형을 만드는지 보아 둬.”

필요한 말 이상 하지 않았던 헤번이 훈련장에 들어온 그들에게 먼저 찾아와 식당의 위치와 탈의실을 가르쳐 주었다.

“남자들 탈의실은 야외에 있지만, 여자들은 안으로 들어가야 해. 여기 욕탕은 최고 수준이니까 훈련 끝나면 뜨거운 물에 푹 몸을 담그고 가도록 해.”

또 어떤 차별이 올지 서로 내기하다가 온 발톱 부대들은 눈짓으로 대화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헤번은 윗선다운 태도로 아트리스에게 대형을 그려 둔 종이를 건넸다.

“마지막으로 이건 내가 입단할 때 성적순으로 짜 본 대형이야. 물론, 수장인 네가 참고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감사합니다.”

“그래. 에리사! 대형 준비 해!”

헤번이 떠나고 아트리스는 그가 주가 전해 준 대형 그림을 외우듯 보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제 막 하늘로 떠오른 몸통과 무릎 부대의 대형을 머릿속에 익혀 뒀다.

“야. 적응 안 된다. 저러다가 갑자기 우리는 안 끼워 주고 그러는 거 아니겠지?”

“지켜봐야죠. 그래도 말하는 거 보면 무시할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시네라는 조용히 챙겨 온 종이를 꺼내어 하늘을 나는 대형을 따라 그리고 있었다. 나중에도 복습하며 공부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디사는 팔을 제 어깨에 걸쳐 두고 있는 히아신에게 따가운 눈총을 줬다.

“내 초상화 어쨌어.”

“내 가슴에 살아 있지.”

“돌려줘.”

“안 돼. 내가 그랬잖아. 다 가져갈 거라고.”

“도둑이 되겠다는 뜻이었을 줄은 몰랐지.”

나디사는 모의 훈련 중인 하늘을 올려다봤다.

몸통 선두의 지시 아래서 하나가 됐다. 그의 양옆에 있는 기수가 깃발의 방향을 바꾸자 뒤에서 따르는 이들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노디를 쓰는 후방이 일어나 비행하며 그들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오래 훈련한 성과가 보이듯 원숙한 움직임이었다.

“노디 쓰는 것도 벅차 죽겠는데 저걸 들고 비행까지 하다니.”

“저들도 한 번에 한 것은 아닐 테니. 돌아가서 따로 훈련도 해야겠어.”

아트리스의 계획을 듣고 모두 버거운 듯이 웃었지만,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슬슬 비행에 맛이 들고 있던 그들이어서 열심히 하자는 말에 토를 달 사람은 없었다.

인정받고서 이 자리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그들이 열심히 할 이유는 충분했다.

하늘을 지배하고 있는 라드군을 보며 그들도 간접적으로 배우는 중이었다.

황금색 불청객이 찾아왔다.

아트리스가 손가락으로 대형을 살피며 설명하던 순간.

“나디사 마로닌.”

비집고 들어온 목소리에 모두의 관심을 뺏겼다. 황금 망토를 두르고 있는 그는 권위적인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 왕실군이었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왕세자님께서 찾으신다.”

통보를 마친 황금 망토는 훈련장을 가로질러 갔다.

타이밍이 뭣 같았다. 막 훈련을 시작하기 위해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는 몸통의 수장이 보였다.

나디사는 갈팡질팡하였으나 상황 판단이 빠른 아트리스는 길을 정해줬다.

“훈련은 내일도 있어. 갔다 와.”

“응.”

알겠다고 말하면서도 나디사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대형을 보며 차오르던 기대가 식은 기분이었다.

나디사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황금 망토를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라드들을 보며 로마도 기대 어린 얼굴을 했는데.

주인이 사라져 혼자 대기 상태로 있어야 할 모습이 떠올라 애가 닳았다.

앞으로 이런 통보는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왕세자의 부름을 받은 나디사가 끌려간 곳은 왕실 집무실도, 회의실도 아니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여 들어간 수도의 아름다운 여름 별장은 한 귀족가의 것이라고 들었다.

막연하게 어떤 임무를 맡기리라고 생각했던 나디사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는…….”

왕세자의 직속 시녀들이 말을 늘어뜨리는 나디사를 끌어다가 앉혔다.

푹신한 의자에 감촉을 느끼기도 전에 붓이 다가왔다. 파티 분장이 익숙지 않은 나디사는 얼굴을 뒤로 뺐다.

“눈꼬리만 살짝 올리려고 그러는 거예요.”

“괜찮습니다.”

“왕세자님 지시입니다. 자꾸 이러시면 저희만 곤란해져요.”

정체불명의 가루를 묻힌 붓은 그렇게 나디사의 얼굴에서 한참을 돌아다녔다.

한 번 재채기를 했다가 시녀들의 얼굴을 죽상으로 만든 전적이 있었다.

이 새로운 고문만 참으면 탈출하게 해달라고 빌고팠다. 그때 희망이 오물통으로 들어갔다.

나디사는 거울 뒤로 비치는 시녀들의 모습에 재채기를 참을 수 없었다.

“어머!”

“아이…….”

탄식을 내뱉는 시녀들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나디사는 거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옷걸이 행거에 걸린 수십 벌의 드레스를 보며 마벤의 저택에서 겪었던 악몽이 떠오른 것이었다.

설마 제 것은 아니겠지.

속으로 빌면서 눈을 감고 있었으나 들려오는 목소리는 나디사의 편이 아니었다.

“이 색이 낫겠지?”

“걸음걸이를 보니 붙는 것은 제외시켜야 할 듯해.”

나디사는 눈을 떴다. 누가 보아도 저를 보면서 하고 있는 이야기였다. 훈련도 빠지고 여기서 무얼 칠하고 있는 거지.

한심한 기분이 들어 자세가 삐딱해졌다.

“나디사 경. 몸을 바로 해 주세요.”

“네.”

도대체 왕세자가 저에게 무얼 시키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나디사는 허리를 펴고 다시 시선을 거울에 놓았다.

오늘 하루만 견디자. 하루만. 나디사의 간절한 바람은 분장실 침묵 속에 삼켜졌다.

* * *

마벤의 저택에서 만든 드레스도 훌륭한 편이었지만, 아가씨의 취향에 맞게 심플한 디자인은 활용성이 높았다.

외출용 드레스를 한 번 입어 본 적 없었던 나디사에게는 그것도 꽤 불편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발등을 덮는 하얀 파티용 드레스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은은하게 살결이 비치는 하얀 망사로 감싸인 어깨와 쇄골. 시간 들여 한껏 틀어 올린 머리는 진주 핀을 꽂아 올렸다.

왕실군의 뒤를 따라간 나디사는 끈적한 입술을 무의식중에 핥았다.

앞서 걷던 사내가 중앙 홀의 문을 잡고서 뒤돌아보았다.

“나디사 마로닌.”

“네.”

“들어가라.”

문을 열고 선 그가 에스코트하듯 손을 내밀었다.

확실히 치마가 길어서 누군가 부축해 주는 게 편하긴 했다. 하얀 장갑 위에 손을 얹은 나디사는 열린 문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뒤꿈치가 까질 듯 구두가 주는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앞에 놓인 시련에 비하면.

황금 망토의 사내가 문을 닫고 혼자 남겨진 나디사는 중앙에 있는 왕세자가 자신을 발견하기 전까지 구경꾼의 먹잇감이 됐다.

씹고, 뜯는 시선은 물리적으로도 아팠다. 살갗이 따가운 것이다.

“나디사!”

인파에 둘러싸여 있던 왕세자는 연회장 입구 계단 위에 서 있는 나디사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황금의 물결처럼 사툰 종족이 대부분인 이곳에 소수 종족들이 아주 조금 섞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야외 테라스 앞에 모여 있었다.

그에 의해 나디사는 어쩔 수 없이 발을 떼고 계단을 내려갔다. 조심히 한 발, 한 발 내려가던 그녀는 누군가의 원색적인 평을 들었다.

‘그 티사 레나이와 너무 닮지 않았어요?’

숨이 막힐 듯한 느낌이 가슴을 치고 지나갔다. 집중력이 흐트러지자마자 발끝이 계단에서 삐끗했다.

앞으로 구르겠다 싶은 순간. 단단한 팔이 그녀의 팔뚝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대답이 없는 그는 나디사의 팔뚝을 놓고 손을 잡았다. 에스코트해 준다는 의미였으리라. 나디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걸음이 신중해졌다.

이윽고 계단을 내려온 그녀는 감사의 의미로 에스코트해 준 상대를 바라봤다. 싸늘한 금안과 눈이 마주쳤다.

이곳에 아는 이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 신관이었다. 기도실 앞에서 자신에게 맹견처럼 굴던 그 신관.

나디사는 눈짓으로 손을 놓아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의무를 다하듯 그녀를 왕세자의 앞까지 데려갔다.

“나디사! 이렇게 보니 자네를 군인으로 두기 아까운걸.”

왕세자의 칭찬에도 나디사는 애매하게 웃을 뿐이었다.

이 자리, 손을 잡고 있는 사람. 전부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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