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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45화 (45/210)

45화

하늘로 올라가고 있는 두 마리의 라드를 바라보는 지상의 사람들은 목을 뒤로 젖힌 채 침을 삼켰다.

당연히 처질 줄 알았던 발톱의 부대가 의외로 비슷한 속도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릎은 설마설마하다가, 두 주자 모두 비슷한 시점에 도착하자 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했다.

“봐주지 말고 달려!”

“이제 그만 놀아, 오스턴!”

초조한 그들과 달리 발톱 부대의 사람들은 응원도, 열광도 없었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날아가는 마벤을 지켜보는 그들은 전원 한 사람이라고 봐도 좋을 만큼 동작이 같았다.

수장인 아트리스는 전부 지켜볼 수 없었다. 마벤이 정해진 지점까지 무사히 날아가고 있다고 믿는 수밖에.

고개를 내리고 다음 주자에게로 걸어갔다.

약속된 지점마다 파란색의 공이 떠 있었다.

아마 라넌의 힘인 듯싶었다. 노디를 들고서 하늘을 지켜보는 그녀는 또 다른 심판관이었다.

“시네라.”

“어, 어.”

시네라는 호흡 곤란이 온 듯 입을 막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부터 뻘뻘 흘리는 땀을 소매로 찍어 내는 중이었다.

“뭐라도 마시는 게 좋으면 가져다주고.”

“물을, 아니, 괜찮아.”

마벤은 거의 상대와 비등하게 날고 있었다.

무릎 부대의 함성은 냅다 지르고 보는 수준이었다. 시네라는 방해 공작 때문에 더 긴장한 듯했다.

뒤편을 싸늘하게 바라본 아트리스는 시네라의 어깨를 잡았다.

“긴장하지 마.”

“내가, 잘 못해서, 지면 어떡하지. 마벤이, 저렇게, 잘해 주는데.”

긴장해 말을 더듬는 게 더 심해졌다. 톡 건들면 울 것처럼 보였다.

그때 깃발을 쥔 감시관이 하늘을 흘긋 보고는 말했다.

“다음 주자, 준비.”

무릎 부대의 주자는 덩치가 산만 한 남자였다. 시네라를 보며 히죽 웃은 그가 제 라드에 올라타고는 주먹을 들어 보였다.

바짝 깎은 금발의 남자를 보며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으, 어떡, 어떡하지.”

“시네라.”

“어, 응?”

“져도 돼.”

“하, 지만…….”

“대신 네가 맡은 지점까지는 최선을 다해 달려. 이건 단거리 시합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음 주자인 히아신이었다. 그걸 상기한 시네라의 표정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 그래. 히아신은 나보다 잘, 잘하니까.”

“부탁할게.”

“응.”

마벤이 살짝 뒤처졌다. 순간적인 속도는 좋으나 지속력이 아쉬운 게 그녀의 단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이기려는 그녀의 근성이 보였다.

아트리스는 그 근성을 보고 아까의 도둑 키스를 용서하기로 했다.

감시관의 목을 뒤로 젖힌 뒤 슬슬 팔을 올렸다.

파란 공이 있는 곳까지 도달한 마벤이 라드의 목을 내려 하강하기 시작했다.

하강이 상대보다 늦었으나 큰 차이는 아니었다. 땅으로 떨어지는 두 마리의 라드를 보며 함성은 더 거세지고 있었다.

아트리스는 잡고 있던 시네라의 어깨를 놓았다.

시네라의 캐롯은 주인처럼 순한 눈동자를 굴리며 이 시끄러운 훈련장에서 벗어나고파 했다.

“캐롯.”

시네라는 그런 캐롯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에 올라탔다.

땅으로 떨어지는 마벤이 목줄을 잡고 잡아당기는 순간 라드의 날개가 펼쳐지며 땅에 큰 바람을 일었다.

착지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매정하게 시간을 재던 감시관은 마벤의 라드가 땅에 닿자마자 깃발을 내렸다.

“시네라!”

아트리스의 목소리에 시네라는 누우며 목줄을 당겼다. 하늘로 올라가는 시네라의 캐롯은 날개를 바짝 세우고 있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무릎의 상대와 아직까진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정도 높이에 도달하고 나서였다.

겨우 상대 주자와 비슷한 시기에 하늘로 도착한 시네라가 목표 지점을 향해서 날아가려는 차였다.

상대가 위협 수준으로 시네라와 거리를 좁혀 왔다.

날개 끝끼리 맞붙는지 시네라가 옆으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그 때문에 속도는 처지고 있었다.

타다닥, 날개가 스치자 겁을 먹은 시네라는 조금 더 멀리 날아간다.

보다 못한 아트리스는 뒤돌아 라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노디의 숨결을 이용해 파란 공을 지탱하고 있던 라넌은 기척을 느꼈다. 두 명의 수장이 동시에 도착했다.

아트리스가 항의하러 가는 것을 보고 무릎의 수장도 뒤따라온 것이다.

“라넌 경!”

“경합 중에 라드를 이용하여 상대의 진로를 방해하는 것도 전술 중 하나입니다.”

아트리스는 뻔뻔한 무릎의 수장을 보며 피식 웃었다.

“우리를 이기려면 그런 비겁한 수를 쓰는 방법밖에 없습니까?”

“비겁한 게 아니라 현명한 거다. 그리고 나는 네 상관이야. 어디 맞먹으려고 들어.”

“지금은 경합 중입니다. 실전 전투가 아니라요.”

“뭐가 다르지? 실전 전투에 쓰기 위해 라드를 타는 것 아닌가? 너희 부대는 마실 나가는 용으로 라드를 타나?”

멱살을 잡기 직전까지 가자 라넌은 시선만 살며시 내려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만. 집중이 안 되니까 다른 데 가서 싸워. 비겁한 건지 아닌지, 시합이 끝나고서 결정하겠다.”

감정이 격해진 두 사람은 진행 중인 시합을 뒤늦게 확인했다. 예상대로 시네라가 눈에 띄게 뒤로 가 있는 상황이었다.

비웃을 띤 무릎의 수장은 계단을 내려가 제 부대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아트리스는 무심한 눈의 라넌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이렇게 나온다면 이쪽도 무슨 수를 쓰든 해야 한다. 아트리스도 다음 주자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뛰었다.

“히아신.”

히아신은 제 차례가 다음임에도 경합을 보고 있지 않았다.

라드를 의자처럼 깔고 앉아 멍하니 제 무릎을 보는 중이었다.

“집중 안 해?”

고개를 든 그가 그제야 경합 상황을 지켜보며 놀라는 척을 했다.

“와우, 우리 지고 있네!”

“장난하지 말고 진지하게 임해.”

“어떻게. 땅에서부터 뛰고 있기라도 할까?”

히아신과는 긴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무릎 부대가 손뼉을 마주치며 승리를 기뻐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혔다.

히아신의 다음 주자인 그리사 또한 이쪽으로 다가왔다.

“진로를 방해하는 것도 허용인가요?”

“끝나고 판단한다는데. 이미 지고 나서 항의하는 건 소용없지.”

“그럼 저희도 방해하죠. 어차피 공정한 경합이 될 거라고 생각 안 했습니다.”

그리사는 흥미가 없어 보이는 히아신을 보며 한숨 쉬었다.

“히아신.”

“응.”

“잘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쪽은 꼭 이겨야지 내가 화가 안 날 것 같거든요.”

히아신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리사의 등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리고 히죽 웃고선 해괴한 말을 했다.

“쟤 나 좋아하나 봐.”

“하……. 일어나. 준비해.”

“넵.”

히아신을 엎드린 디디를 일으키며 등에 올라탔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의 의욕 없음과 열광하는 무릎의 부대가 적나라하게 비교되었다.

그때 드물게 화가 난 나디사의 목소리가 이쪽까지 넘어왔다.

“히아신 아스!”

자는 듯 감기던 히아신의 눈이 동그래져서 나디사 쪽으로 향했다.

마지막 주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디사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찔렀다.

“집중해!”

그전까지 될 대로 되라는 듯이 아무렇게나 앉아 있더니만. 히아신은 약점 잡힌 사람처럼 곧장 자세를 바로 했다.

보고 있는 아트리스의 얼굴에 짜증이 섞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나도 그리사와 똑같아.”

뾰로통하던 히아신이 너는 뭐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넌 진짜 제대로 안 하면 땅으로 내려올 생각 마.”

아트리스의 협박을 들은 히아신은 혀를 내밀며 씨익 웃었다.

“하늘에서 죽는 것도 낭만적이지. 다녀올게.”

감시관이 와서 깃발을 내릴 준비를 했다.

땅으로 떨어지는 라드 두 마리중, 시네라의 캐롯은 불안정한 몸짓을 보였다.

몸싸움을 당한 후유증일 거다. 제 주인처럼 순한 캐롯의 집중력이 흐려진 모양이었다.

“시네라! 정신 놓지 마!”

그 말이 닿지 않았나 보다. 추락하듯 내려오던 시네라는 뒤늦게 목줄을 조정했다.

이미 무릎의 부대는 다음 주자가 출발한 상태였다.

쿵, 불안정한 착지였다. 시네라는 눈물 젖은 얼굴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안 봐도 미안하다는 소리일 거다.

감시관은 시네라가 땅에 착지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깃발을 내렸다.

히아신은 여유롭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미 상공에 도착하여 날고 있는 상대. 뒤늦게 비상하는 자신의 동료. 의욕 없어 보이던 히아신의 모습을 떠올리자 목이 탔다.

아트리스는 골 아픈 머리를 손으로 지압하며 그리사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사.”

“준비하고 있어요.”

냉정하게 말한 그리사는 찬물로 입을 헹구고 있었다. 마시지는 않고 입 안을 적시는 용도로 썼다.

그리사는 젖은 입술을 단정하게 엄지로 닦았다.

“몸싸움을 하고 싶어도 따라잡는 게 관건이죠. 우리 중에 약해 보이는 시네라를 공격해서 거리를 벌린 것도 다 계획적이겠지만요.”

“마벤이 예상보다 잘 날아서 당황한 면도 없지 않을 거야.”

“그건…….”

그리사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헛웃음 지었다.

설령 지더라도 히아신 아스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죽을 만큼 싫어하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히아신은 이로써 증명됐다.

“미친놈.”

앉지 않고서 일어나 상체를 든 히아신. 그리고 그의 디디가 상대의 꼬리를 물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꼬리에 신경을 쓰느라 옆으로 상대가 비켜 갔다. 역전의 기회가 있음에도 히아신은 상대를 따라서 비켜 날았다.

“미친놈.”

그 말 밖에 나올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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