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위로!”
아트리스가 위로 손을 올리자 나디사는 몸을 뒤로 누우며 올라갔다.
그사이 요령이 생긴 나디사의 로마는 주인이 떨어지지 않을 각도와 본인이 속력을 낼 수 있는 각도의 합의점을 찾았다.
손목에 줄을 둘둘 감았다. 안장에 설치해 둔 안전장치에 발까지 넣어 두었다.
나디사는 높이 오르는 건 자신 있었다. 아트리스의 손짓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수평으로 라드의 방향을 바꾸었다.
이때부터는 빠르기 싸움이었다. 적은 양의 코피가 흘렀다.
로마와 정신 연결이 뛰어나다 보니 라드의 체력과 곤함이 그녀에게까지 넘어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덕에 속도는 배로 빨라졌다. 중심을 잡는 것과 정신을 연결하는 것. 두 가지 모두 훌륭히 해내야 원하는 속도에 도달할 수 있었다.
비행 중에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었다. 금방 지나갈 증상이겠거니 했다.
“내려와!”
가슴 통증을 누르는 데 집중하느라 아트리스의 하강 신호를 한발 늦게 봤다. 나디사는 다급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눈앞이 흐릿하다고 느낀 건 잠깐이었다. 앞이 까맣게 변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눈을 뜬 순간이었다.
별안간 비명 소리, 고함 소리가 아릿하게 들렸다.
“안 돼! 나디사!”
“멈춰! 야!”
정말 한순간이었다.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덧 땅으로 곤두박질하는 중이었다. 꺾는 각도가 나오지 않는다.
로마는 주인의 정신과 같이 의식을 잃은 모양이었다.
“아, 윽!”
땅이 너무나 가까웠다. 이대로라면 로마와 함께 땅에서 구르다가 뼈 하나가 잘못될 수 있었다.
내일이 경합이었다. 가슴 통증이 온몸으로 번졌다.
-아아아악!
그때 날아온 검은 색의 라드가 그녀에게 몸통을 날려 부딪혔다.
히아신의 라드, 디디였다. 땅으로 곤두박질치던 나디사는 그 충격으로 날아갔다.
놀란 로마가 반동하며 날갯짓을 했다.
히아신은 그에 그치지 않고 그녀에게 다시 한번 날아왔다. 디디가 로마와 꼬리를 엮었다.
한결 방향 잡기가 쉬워진 나디사는 무사히 땅에 착지할 수 있었다.
힘이 빠진 로마가 무릎을 굽혀 그녀를 내려 주는데, 그보다 먼저 달려와 그녀의 어깨를 잡은 이가 있었다.
거의 끌려가다시피 내려온 나디사는 땀범벅인 히아신의 얼굴을 보고 놀랐다.
고꾸라진 그녀보다 창백해진 히아신에게 괜찮냐고 물을 뻔했다.
그의 눈은 만지면 분노가 묻어나올 것처럼 깊었다.
“타지 못할 상태면 타지 못한다고 해야지. 라드를 탄다고 라드가 되는 건 아니잖아. 똑똑한데 왜 그래. 내가 너를 똑똑하다고 혼자 생각한 거야? 바보에 무모한 거야?”
“히아신!”
달려온 아트리스도 창백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나디사의 어깨에 올려진 히아신의 손목을 잡았다.
히아신의 눈길에서 난 산불은 아트리스 쪽으로 옮겨붙었다.
“당장 손 놔.”
“네가 이기고 싶은 걸, 왜 나디사에게 이뤄 달라고 무리를 시키는 걸까. 능력이 안 되는데 수장 자리를 꿰찼다는 걸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 마. 나 얘 죽거나 다치면 안 돼. 큰일 난다고? 어?”
나디사는 광기로 번들거리는 히아신의 눈을 보며 그의 손을 어깨에서 떨어트렸다.
요 며칠 정상 궤도를 벗어나는 그의 상태가 최고조를 찍은 것 같았다.
주인의 감정에 영향을 받아 디디도 등을 세우고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히아신의 정신 나간 눈빛은 다시 나디사에게로 돌아왔다.
연신 마른침을 삼킨 그는 그녀에게 한 마디, 한 마디 씹듯이 뱉었다.
“안 되는 걸 이뤄 보겠다고 하다가 다리 부러지고, 팔 부러지고, 남은 건 몸뚱어리밖에 없게 하고 싶은 네 마음은 잘 알겠지만 이건 아니지.”
“진정하고 나중에 얘기해.”
“네가 못하면 내가 할게.”
히아신은 화롯가 건너 무릎 부대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연이어 놀란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히아신의 행동을 보고 설마 아니겠지 하는 불신으로 바뀌어 갔다.
나디사는 달려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그를 훈련장 뒤편으로 끌고 갔다.
충분히 뿌리칠 수 있음에도 히아신은 올무에 묶인 것처럼 꼼짝 못 했다.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었다. 솔직히 나디사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은, 그가 치는 장난은 심한 몇 개를 제외하곤 당해 줄 만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와 나눈 키스가 떠오른 것이 얼마 전이었다.
나디사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의 연속이었다.
누군가 돌보다가 그만둔 화단 근처로 갔다. 사람 없는 길에 그를 던져두었다.
나디사는 누가 오는지 한 번 살폈다. 히아신은 벽에 기대어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꾸 심장 언저리를 누르며 떨어진 그녀보다 더 고통스러워하는 중이었다.
“지금 뭐 하려던 거야.”
지금 모두가 계란에 바위 치기라고 하더라도 애를 쓰고 있었다.
통증 같은 것은 자신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엊그제 시네라 같은 경우에는 등을 꿰매기까지 했다.
“그만두자고.”
“하.”
그걸 포기한다고 박수갈채라도 쏟아질 줄 알았나. 그렇다면 그녀가 히아신을 잘못 봤다는 소리였다.
히아신이 동료, 친구 같은 의미를 알아 간다고 생각했다.
“그럴 순 없어. 잠깐 정신을…….”
“잠깐인지, 아니면 또 그럴지 누가 장담해? 나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목숨 걸고 도박하는 거 엄청 좋아한다. 하하.”
“다음에는 이런 실수 없도록 할 거야.”
그러자 벽에 기대 있던 그가 위압적으로 튀어나와 그녀의 머리를 가렸다.
그가 만들어 낸 그림자의 갇힌 나디사는 희번덕희번덕한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네가 고꾸라져 땅에 처박힐 때. 내가, 아니, 내 세상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네가 죽고 말 문제면 나도 개입 안 하겠습니다. 네?”
“……이해가 안 돼.”
“이러면 너를 미워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잖아. 저절로 미움이 고개를 내미는 걸! 혹시 내 마음을 읽은 거야?”
나디사는 그의 눈을 피하고 싶었다.
열정, 증오, 애정, 모든 게 섞인 눈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히아신은 어젯밤 사람을 미워하고 싶다고 했다. 그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나디사는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네 라드의 날개를 부러뜨리고 싶지 않아. 날 그렇게까지 저질로 만들지 말아 줄래.”
섣불리 경합을 포기하려고 했던 이유가 있어 보였다.
사람이 다쳤다고 이토록 감정적으로 구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를 한 번 더 믿고 이유를 물어보려는 차였다.
우우웅
커다란 나팔 소리가 온 훈련장에 울려 퍼졌다.
-전원 기립!
히아신과 나디사의 고개도 길목 건너편 훈련장으로 눈길이 쏠렸다.
다툼은 나중으로 미뤄야 할 듯싶었다. 나디사와 히아신의 눈이 마주쳤다.
어디로 튈지 예측 불허인 히아신을 달고서 훈련장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금색의 망토를 단 군인들이 일렬로 나란히 서 있었다.
발맞추어 들어오는 그들의 군홧발 소리가 라드의 울음소리를 능가했다. 활기차던 훈련장에 뒤늦게 긴장감이 흘러넘쳤다.
“나디사.”
아트리스가 복화술에 가까운 입술로 그녀를 불렀다.
사람들 속에서 헤매던 나디사는 히아신의 손목을 잡고 그쪽으로 뛰었다.
발톱 부대 옆에는 무릎 부대가 서 있었다. 그들의 라드들은 주인의 뒤에 내려와 전원 똑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참이었다.
발톱 부대의 라드는 아직 미숙하여 일렬까지는 아니었지만 첫날에 비하면 정렬된 자세를 보였다.
몸통의 수장인 헤번이 라드를 타고 내려오는 게 보였다.
그는 다급하게 수하를 불러 무언갈 지시 중이었다.
잠시 멈췄던 나팔 소리가 다시 울리고 있었다. 지잉, 소리와 함께 금색의 망토를 입은 이들이 갈라졌다.
그 사이로 늘씬한 미남자가 달려 나와 푸른 카펫을 깔았다.
뒤이어 라넌의 라드가 뒤따라 내려왔다.
무릎, 발톱 부대의 앞까지 놓인 카펫을 밟으며 금발의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라넌!”
무릎 부대 앞에 착륙한 라넌은 평상시의 가벼운 차림이 아닌, 망토와 견장까지 제대로 갖춘 정복으로 등장했다.
“왕세자님.”
라드군의 통솔권을 가진, 왕세자가 부대에 방문하였다.
“오늘 경합이 있다고 해서 왔지?”
그 말에 라드군 연습장은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왕세자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듣고 온 라넌만이 미소로 화답했다.
“내일입니다, 왕세자님.”
“어? 내일이라고? 나 내일 일정이 있는데?”
왕세자는 라드군 발톱과 무릎을 찬찬히 훑어보곤,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여는 게 어떤가? 무리인가?”
왕세자의 말을 듣고 발톱 부대는 긴장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