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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40화 (40/210)

40화

걸음이 막힌 라넌은 격정적인 감정에 이성을 놓았다.

“하, 그래?”

라넌은 순수하게 능력만으로 시험한다고 말했다. 바라던 바였다.

그조차 계략의 일부라는 점만 빼면은 말이다.

“뭐지? 이 형편 없는 속도는.”

“오, 젠장. 또 시간 낭비를 했군.”

체력이 약한 순서부터 쓰러졌다.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은 엿새. 고작 엿새 안에 무릎과의 경주에서 이겨야 했다.

레이스 달리기를 하늘에서 펼치겠다는 것이었다.

오늘치 훈련을 끝낸 무릎의 정예 부대는 킬킬 웃으며 훈련장을 나섰다.

불만이 나올 수 없게 훈련은 다 같이 했다. 후퇴가 곧 죽음인 발톱 부대는 그 시험에 응했지만, 일방적으로 불리한 이 시합은 쓰라린 패배를 안겨 주었다.

“나디사. 이번엔 네가…….”

“그만하자.”

열 바퀴째. 간소하게 따라잡아도 무릎은 그들을 우스워하며 금세 차이를 벌렸다.

복귀하자마자 쉬는 시간도 없이 훈련장 바닥에서 먹고, 자고를 하고 있었다.

적절한 휴식 없이 시합, 또 시합. 다음 날은 전날보다 형편없는 실력을 보였다.

마벤은 노디를 반납하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듯했다. 셔츠 단추를 푼 그녀는 기둥에 등을 대고 헉헉거렸다.

“나중에 실력을 쌓고서 다시 도전하든가.”

“그럴 기회는 없을 것 같은데요.”

그리사는 물을 마시며 다섯 배가 넘는 인원이 있는 무릎 부대를 바라봤다.

“재수 없네요.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저 표정이.”

그리사는 물통을 거칠게 내려놓고 뻐근한 손목을 돌렸다.

쓰러진 시네라는 바글바글 모여서 떠드는 무릎 부대를 무서워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난 안 된다고 봐. 차라리 몇 년 더 구른 다음에 진급을 기다리는 게 낫지.”

“그리고 진급이 몇 년이 더 걸릴 수도 있고요.”

“아, 미친…….”

어제 시작한 훈련까지 해서 총 스물다섯 번이 넘는 시합 중, 그들이 이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나마 여러 번의 시합으로 승률이 높은 계주 조합을 알아낸 게 고작이었다.

“세 번 자고 나면 저것들이 이기고 깔깔거리는 꼴을 봐야 한다니. 아, 머리 아파.”

연이은 패배로 사기가 떨어졌다. 아트리스는 내일을 위해 휴식하자고 말하려 했다.

나디사 마로닌의 손목이 정상보다 틀어져 있었다. 질문보다 몸이 먼저 나갔다.

“부상이야?”

“아니, 괜찮아.”

아트리스는 조심스레 그녀의 팔목을 감싼 군복을 벗겼다. 시퍼런 멍과 통통 붓는 증상도 있었다.

시합 때 무리한 하강을 지시한 게 떠올랐다. 아래로 치고 내려가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방식을 수용할 수 있는 건 실력이 뛰어난 나디사뿐이라고 생각했다. 무리한 부탁임을 알면서도 강행했었다.

부대를 위해서일까. 공들여 갈아 둔 발톱으로 라넌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의 무릎을 걷어차는 방식으로 말이다.

“괜찮아, 아트리스. 하룻밤 자고 나면…….”

“아!”

빠르게 다가온 손이 아트리스의 팔을 잡고 밀쳤다.

넘어질 뻔한 아트리스는 보지도 않고 히아신을 찾았다.

다른 사람한테 기웃거릴 필요 없었다. 그 체격에, 그 속도는 히아신 아스뿐이었다.

“히아신!”

“죽고 싶어?”

“뭐?”

“왜 손목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네가 조몰락거리고 있는 거야?”

아트리스는 이성이 나가기 직전의 얼굴을 했다. 그리고 그건 나디사도 마찬가지였다.

복귀하고 얼마 되지 않았지만 히아신 아스는 전과 백팔십도 달랐다.

축제 날 데이트하면서 한 판 싸우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그녀와 한마디도 섞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 눈에 실핏줄이 터질 만큼 분노하다니. 이래저래 히아신 아스답지 않았다.

“아…….”

갑자기 히아신은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중얼거렸다.

“아, 미치겠네, 미쳐, 미칠 것 같아…….”

“히아신.”

이제는 미쳤다는 말을 본인이 하고 앉았다. 나가서 약이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굴었다.

맛이 가도 한참 간 사람의 눈이었다.

나디사는 부은 손목을 잡고 히아신의 옆으로 갔다.

밤마다 무얼 하는지 잠을 통 자지 못한 얼굴이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히아신은 제 옆으로 온 나디사를 기민하게 감지했다.

팍, 돌아온 고개가 나디사에게 고정됐다.

“괜찮아?”

히아신은 거짓말처럼 발작 같은 행동을 그만뒀다.

“히아신.”

그는 가까스로 몸을 돌려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위태롭게 떠나는 그의 등을 보며 마벤이 단 한마디로 이 개판을 정리했다.

“망했군.”

이건 전부 그날부터 시작됐다. 나디사는 문제의 시발점이 된 데이트를 기억해 내려고 애먹는 중이었다.

“나디사.”

“응.”

“치료받고 와. 지금 그 상태론 안 돼.”

버티는 게 오히려 우스울 듯싶었다. 나디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훈련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부디 히아신이 예전처럼 돌아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 * *

그날, 그 데이트 날. 히아신과 어깨동무를 하고, 아니, 그녀는 그의 허리를 안고 있었지만, 무척 행복한 얼굴로 축제 거리를 쏘다녔다.

히아신은 식당에서 본인의 비밀을 종교에 빗대어 가르쳐 줬다.

하지만 그걸 이야기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꺼낸 당사자가 피해 다닌다, 라.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는 수세에 몰린 것처럼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도대체 왜.

“라드군은 출입 금지입니다.”

냉정한 말이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조용한 본거지 성내의 복도를 거니는 중이었다. 감시관은 앞으로 쭉 가기만 하면 의무실이라고 그랬다.

“그쪽이 아니에요.”

냉정한 목소리의 주인은 상급 신관이었다.

과시하듯 교리 책을 끼고 다니고 나이는 그녀의 또래처럼 보이며, 한눈에 인정할 정도로 미남이었다.

선한 인상의 신관은 강림하듯 그녀에게 왔다.

“이 길로 가면 신관들의 기도실이 있습니다. 안에는 높은 분들이 들어가 계시구요.”

“아, 의무실로 가는 길을 잘못 들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죠. 의무실로 가는 길, 아니셨나요?”

남자는 발에 끌리는 하얀 신관복을 살포시 쥐고서 걸었다.

그는 의무실이 이곳과 정 반대편이라고 했다.

“한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이곳에 출입했다는 걸, 어쨌든 보고는 해야 해서요. 걱정 마세요. 피해는 없을 겁니다.”

“네, 나디사 마로닌입니다.”

그녀의 이름을 들은 신관은 더욱 환하게 웃었다.

“아, 마로닌. 당신이었군요.”

“……저를 아십니까?”

“그럼요. 두 번째 신관님이 제 아버지 같은 분이거든요.”

그는 햇볕이 드는 복도 한가운데에 서서 악수를 청했다.

“란입니다.”

“……네.”

내키지 않지만 마땅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나디사는 손을 마주 잡고 가벼운 악수를 나눴다. 그러나 란은 악수를 악수로 끝내지 않았다.

곱상한 인상에 가려진 악력이 나디사를 눌러 왔다. 나디사는 팔을 뒤로 빼며 흔들었다.

달라붙은 그의 악력은 무서울 정도로 강했다. 샛노란 눈동자에 떠오른 감정은 악의 아니면 증오였다.

“두 번째 신관님하고 어떤 사이지?”

“무슨 소리십니까.”

“기도 시간인 것을 알고 일부러 찾아온 것처럼 보여서. 내 착각이라면 좋겠지만.”

“하.”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리가 그 때문에 터질 것 같았다.

이번 생의 운을 축제에서 모두 쓰고 온 것인지, 걸핏하면 이상한 일에 휘말리고 있었다.

정 안 되면 라드를 부르려는 순간이었다. 재킷 주머니 속에 있는 노디를 움켜쥐었다.

“란!”

란은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무기력해졌다. 죄를 덮으려는 것처럼 나디사의 손을 던지듯 놓았다.

“이 무슨 짓이냐.”

중후한 목소리는 그리 호락호락 속을 기세가 아니었다.

“아버지…….”

축복을 내려 주려고 친히 납시었던 신관. 그리고 랭키 웨던이 친모와의 단서로 알려준 신관.

평생 온실 속 화초로 자라온 듯한 신관은 그녀에게 사죄부터 꺼냈다.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나디사는 부은 손목을 숨기려고 했으나 그보다는 그의 시선이 더 빨랐다.

“혹시…….”

“네.”

“잠시 시간이 괜찮으신가요?”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란은 얼굴이 파래졌다.

“아버지, 아니, 록. 왜 당신이 이 하찮은 라드군에게 경어를 쓰십니까.”

“아직도 안 갔니.”

“록!”

“네 이야기는 나중에 듣겠다. 내일 오후에 처소에서 보자.”

냉정한 눈빛으로 쏘아본 록이 그녀에겐 손을 내밀었다.

“이쪽으로.”

뒤에서 신관복을 입은 맹견이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피신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겠다.

나디사는 록을 따라나섰다.

기회가 되면 록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맹견이 자리를 만들어 줄 줄이야.

금색의 시선이 나디사를 쭉 따라다녔다.

란. 기억하고 싶지 않으나 그 이름은 나디사의 머릿속에 둥지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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