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하의 하늘은 여전히 안녕하신지-26화 (26/210)

26화

아트리스는 랭키 웨던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커다란 생선을 잡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역시 수장다운 열정이었다.

성벽을 보수하는 작업은 거의 끝나 가고 있었다. 열흘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젊은 피를 갈아 넣은 결과였다.

“아트리스.”

“왜.”

“없는데?”

아트리스는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지키듯 중간중간 나디사에게 의견을 구하는 일이 잦았다.

커다란 생선을 잡으려는 것도 성의를 먼저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나디사의 의견 때문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은 좋으나 아트리스가 자기 말대로 수영과 낚시에 매진할 줄은 몰랐다.

말로 남을 부리는 사람이 된 기분에 나디사는 당번이 아님에도 나서서 설거지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위층에 식사를 전달하러 간 마벤 로사가 나간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방에 없다니까?”

“그럴 리가.”

오늘의 스튜 담당인 아트리스는 국자를 냄비에 걸어 두었다.

허튼수작 부리지 말라는 그의 눈초리가 자못 날카로웠다. 그걸 못 알아차릴 마벤이 아니었다.

“이게, 진짜. 아무리 그래도 내가 노인네를 굶기겠어?”

“랭키 웨던은 단 한 번도 식사를 거른 적이 없어.”

“난들 알까? 방에, 가 보니, 없었다고!”

마벤은 자기를 의심하는 거냐며 소리쳤다. 건조된 식기를 나르던 그리사가 끼어든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잠잠하긴 하네요.”

“거봐! 그렇지?”

랭키 웨던이 비 오는 날에 성을 떠나 휴가를 갔을 리는 없었다.

설령 어디를 갔다 온다고 하더라도 임무 중인 그들에게 언질을 줄 의무가 있는 노인이었다.

고민하던 아트리스는 걷어붙였던 옷소매를 내린 뒤 단추를 잠갔다. 직접 확인하려는 모양에 마벤은 서운함을 내비쳤다.

“가 봐도 없다고.”

“성내 다른 곳을 찾아봐야겠어. 어디서 넘어져서 기절했을 확률도 있으니까.”

“그런 거라면 같이 찾아보죠.”

그리사도 보태겠다며 움직였으나 아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식사하기 위해 이쪽으로 올 가능성도 있으니까. 금방 찾아보고 올게. 어차피 이 성은 혼자서 수색해도 될 정도로…….”

쾅, 문이 열림과 동시에 시선이 그쪽으로 쓸려갔다.

하필 천둥이 쳤다. 창문에서 번쩍, 빛이 튀자마자 열린 문으로 젖은 미역이 걸어 들어왔다.

“랭키……?”

머리엔 나뭇잎을 달고 하반신은 진흙탕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헤엄치고 나온 사람처럼 젖어 있었다.

한 번 더 천둥이 치고 나서야 발톱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흙 괴물의 정체는 랭키 웨던이었다.

“깜짝이야.”

포크로 과일을 찍어 먹던 히아신이 산통을 깨트렸다. 불안정한 랭키의 시선은 여러 얼굴을 배회했다.

“여기서 뭣들 하고 있는 거야.”

순간 나디사는 들고 있던 그릇을 놓쳤다. 손에서 미끄러진 그릇은 쨍강거리며 산산조각이 났다.

“나디사.”

빗자루를 찾으려는 찰나 아트리스의 군화가 유리 잔해를 슥 밀어 치웠다.

“나중에 같이 치워. 그리고 랭키, 무슨 말입니까. 매 끼니 식사 준비를 지시한 건 당신이었는데요.”

아트리스는 그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는 듯했다.

하지만 랭키는 쌩쌩한 걸음걸이로 들어와 아트리스의 멱살을 잡았다.

“오늘 하루 종일 로피가 보이지 않는데, 너희들은 그거 하나 신경 쓰지 못하고 뭣들 하고 있었냐고!”

로피, 라는 이름이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매일 랭키의 곁을 지키는 그 충성스러운 사냥개 얘기였다.

멱살잡이에 익숙해진 아트리스는 산뜻하게 뒤돌아서 놀란 동료들에게 명했다.

“조를 짜서 로피를 찾으러 간다. 식사 준비는 나중에 해.”

빠른 지시를 내린 아트리스는 멱살을 잡은 랭키의 손을 잡아 천천히 아래로 내렸다.

일견 당황한 얼굴을 하던 랭키는 다시금 펄펄 뛰었다.

“오늘 내로 로피를 찾도록 해. 아니면, 너희들이 임무 실패로 간주하도록 편지를 쓰겠어.”

쉬어 빠진 냄새가 나는 랭키에게 아트리스는 차가운 미소로 거리를 뒀다.

“로피 식사는 저희가 담당하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까진 있었던 겁니까?”

낮에는 바닷가에 있었고 비가 내리고부터는 성으로 돌아와 내부 보수를 했다. 고로 단독 외출이 잦은 로피의 행방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추측하건대 랭키는 제 부름에도 오지 않는 로피를 찾아 헤맨 모양이었다.

“저기! 랭피 씨. 로키를 찾으려면 같이 가 줘야겠는데?”

“뭐?”

“그 개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당신이니까. 알아야 찾지. 모르는 걸 어떻게 찾아?”

과즙 묻은 입술을 한 히아신이 명쾌한 말솜씨로 랭키를 팼다. 노인 학대에 동참하고 싶지 않은 아트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틀렸어, 히아신 아스. 랭키 씨, 그리고 로피야.”

“나 그렇게 말했지 않았어?”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니 하는 소리야.”

아트리스는 짧은 신경전을 끝내고 랭키에게 다소 강압적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일리 있는 말입니다. 저희는 아는 게 없으니까요. 같이 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랭키는 깍듯함과 시건방짐이 공존하는 아트리스의 말에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가는가 싶었지만 이 깐깐한 노인은 포기를 몰랐다.

“채비하고 오겠어. 먼저 내려가 기다려.”

마지못해 의견을 수용한 그가 떠나고 스튜 끓는 소리만 요란한 식당. 식탁에 엎드린 히아신의 목소리가 대미를 장식했다.

“저 할아버지 재수 없어.”

모두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것을 히아신이 말로써 정리해 줬다.

“완전히 내 취향.”

그럼 그렇지. 발톱 부대는 눈빛만으로도 생각이 공유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는 중이었다.

* * *

비가 빗금 치듯 주룩주룩 내렸다. 빗속에서 하는 비행은 시야 확보가 우선시돼야 했다.

젖어 가는 후드는 목과 시야에 무리를 줬다. 나디사는 육류를 섭취하지 못해 다른 때보다 비실거리는 로마를 보며 걱정이 앞섰다.

아트리스의 뒤에 탄 랭키 웨던은 아침부터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새벽에 식사를 가져다줄 때까지만 해도 멀쩡히 있던 놈이, 오후에 산책을 가고 싶어 찾으니 없었다고. 혼자 산책을 나갈 녀석이 아니야. 분명 이 근방에 누군가가 데려간 거라고.’

혈통이 좋은 개라서 눈독 들이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 근방에 사는 거지 떼들이 가끔 개를 훔쳐 야시장에 팔아먹곤 한단다. 이미 시장에 팔렸으면 찾을 방도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랭키 웨던은 시장으로 통하는 길은 어차피 하나뿐이라며 빨리 날라고 재촉했다.

“내가 안내는 할 테니, 일단 높이 날아서 근방을 수색해 보자고.”

수장인 아트리스가 먼저 목줄을 당겨 위로 날았다.

그가 일으킨 바람을 눈치챈 사람부터 따라가기 시작하는데 웨던은 그 질서 없는 비행을 기막혀했다.

“너희들은 구호도 따로 없나. 같이 위로 날거나 아래로 하강할 때! 구호가 있어야 할 것 아니야!”

고함을 지르는 수준인 그의 목소리 덕분에 이 빗속에서도 아트리스를 찾을 수 있었다. 아트리스의 고막이 걱정이지만 말이다.

아트리스는 뒷자리에 탄 랭키가 난동을 피워도 침착하게 손으로 지시하며 내려갔다. 너무 높이 올라왔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지시를 받고 도미노처럼 아래로 내려가는 이들을 발견한 랭키가 마구 가슴을 쳤다.

이번엔 고함 지르는 방향을 뒤로 바꿨다.

“신호에 맞춰서 움직여야지! 앞에 있는 사람이 그렇다고 다 따라서 움직여?”

“이봐요! 정신없으니까 조금 조용히 해 줘요!”

“고작 이 정도 날씨에 정신이 없다고? 이래서 전쟁 같은 데서는 어떻게 날려고? 어?”

평화의 시대가 곧 개개인의 실력 하락을 불렀다고 믿는 랭키의 눈에는 한심한 비행일 뿐이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마벤은 분하여 다리를 굴렸다. 비늘이 비교적 빨간 그녀의 로즈는 주인을 닮아 목소리가 컸다.

“로마.”

미로 같은 비행 속에서 나디사는 속도가 점점 처지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에 비행이라는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로마는 다른 이들보다 느리게 날고 있었다.

차츰차츰 뒤로 빠지는 나디사를 피해 뒷자리 고정인 시네라도 밀리는 판이었다. 나디사가 속도를 더 내라는 뜻으로 목줄을 느슨하게 감아올렸다.

하지만 로마는 그 뜻을 알고도 반발하듯 세모난 비늘을 세웠다.

주인보다 더 주인의 마음을 잘 알던 로마의 반항은 이례적이었다. 남들보다 빨리 치고 나가기를 좋아하는 로마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이봐!”

그때 랭키 웨던이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집중력이 아래로 꽂혔다.

숲을 채운 침엽수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랭키는 손가락으로 정확히 한 지점을 가리켰다.

망설임은 짧았다.

“하강해!”

여섯 라드의 머리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꽃잎처럼 떨어지는 라드의 그림자 위로 폭풍이 불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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