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눈을 떠 봐도 각자 살길을 찾느라 누굴 도울 상황이 아니었다.
“앞으로 하라고!”
간신히 누군가 외친, 바람결에 전해진 말을 듣고 허리 힘을 썼다.
이를 악물고 바로 서려는데 고사이 자유를 맛본 라드가 고집불통이었다.
흥분한 어린 라드는 수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적합률이 높아 부작용이 없던 나디사조차 머릿골이 당겨왔다.
“하…….”
그 시원하던 바람이 사람의 숨통을 막는 도구가 됐다. 이대로 가다간 질식사할 판이라 나디사는 라드의 목줄을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꽉 당겼다.
-아아아악!
신나서 날아가던 라드가 놓으라며 칭얼거렸다. 나디사는 머릿속으로 이따위 장난은 그만치라고 수십 번을 외쳤다.
차차 말귀 열린 라드의 속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나디사의 뒤를 쫓던 아트리스는 배에 힘을 주고 소리쳤다.
“목줄 잡아!”
살고자 하는 마음에 귀를 열고 있던 이들은 양손으로 목줄을 휘감아 당겼다. 사람과 라드 간의 사투가 벌어졌다.
그사이 일어나 앉은 나디사는 아찔한 높이에 적응하랴 라드를 다루랴 쉴 틈이 없었다.
라드의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구름에 덮인 작은 개미의 성 같았다.
보이지도 않는 사람의 머리를 찾아보려고 애쓰느라 나디사의 눈이 여우처럼 가늘어졌다.
“힘을 주라고!”
“모, 못 해.”
한쪽에선 시네라 칸이 위기를 겪었다.
산발 머리가 된 발톱 부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조종하는 법을 깨우친 듯 허리를 펴고 섰다.
그들은 입김으로 언 손을 녹이며 마지막 차례인 시네라를 기다리는 차였다.
정신을 차리라고 부추기는 듯한 찬바람이 반가우면서도 싫었다.
뒤뚱뒤뚱 아슬아슬한 묘기를 펼치고 있는 시네라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가장 먼저 알아챈 건 히아신이었다.
“흐.”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언제 왔는지 모를 히아신 아스가 그녀의 옆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목줄을 단단히 틀어쥔 손과 긴장감 없는 녹색 눈이 얄미웠다.
“그렇게 웃지 마.”
그 웃음이 뭐가 그리 거슬렸는지 모를 일이었다. 난동 부리고 있는 시네라를 비웃는 것만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뱉는 순간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걸 들은 히아신은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혀를 내밀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화났어? 나한테 화가 나?”
“화가 난 건 아니야. 지금 웃을 상황이 아니니까.”
“재밌는 게 있어서 그래. 너무 재밌을 것 같아.”
“뭐가?”
뭐가, 라고 말하자마자 주위에서 비명이 난무했다.
그 차분하던 그리사 데이가 불붙은 것처럼 허둥대고 있었다.
“아아악!”
시네라의 라드가 반대로 뒤집혔다. 너무 요령 없이 잡아당기기만 해서 성이 났는지 등에 태우고 있던 시네라를 떨어트리려 했다.
“시네라!”
팔 힘이 약한 시네라는 등에서 떨어져 목줄을 잡은 채로 매달렸다.
다가가 받쳐 주려고 해도 당황한 시네라의 발이 워낙 버둥거려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갑작스레 처한 상황에 나디사는 손이 하얘질 때까지 목줄을 잡고 있었다.
“곧 떨어지겠다.”
“히아신!”
그 말만은 참아 줄 수 없었다. 여전히 저를 놀리듯 올라간 입꼬리도.
시네라가 목줄을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이 상황이 재밌을 이유가 있나.
그가 라드군에 진심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따로 바라는 목적이 있다는 것 정도도.
그러나 그것과 이건 달랐다. 생사가 오가는 와중에 남 일인 양 웃는 건 아니었다.
백번 양보해서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 터진 웃음이길 바랐다. 창공을 누비는 새처럼 자유로운 히아신은 발로 라드의 허리를 툭 건드렸다.
히이이, 괴로워하는 라드가 앞으로 날았다.
커다란 날갯짓에 머리칼이 날렸지만 나디사는 석상처럼 꼼짝 않고 굳어 있었다.
독 오른 그녀의 표정이 신기해진 히아신은 정신없이 주위를 빙빙 돌았다.
“신기해. 항상 그런 식이야?”
첫 비행치고 능숙한 히아신은 라드를 몰며 재차 물어왔다.
“화를 낼 때 여기, 코를 막 찡긋거리네.”
눈을 찡긋대는 히아신의 농담은 시네라의 비명 덕에 뒷전이 됐다.
구조원이 올 때까지 시네라의 팔 힘이 버텨 줄지가 관건이었다. 하는 수 없이 시네라의 지척에 있는 마벤이 잡으라며 손을 뻗었다.
“누가 아래에서 사람들 불러!”
높이가 너무 높았다. 올라간 사람들이 어쩌고 있는지 맨눈에 보일 거리가 아니었다.
“힘이, 손이!”
힘을 다하고 쭉 밀려 내려가는 시네라의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나디사는 고개를 돌리어 히아신에게 눈빛을 보냈다.
히아신이라면, 힘을 가진 그라면 도울 수 있을 듯했다.
그 기대는 오만하게 틀어진 입술과 빌어 보라는 듯이 까닥거리는 긴 다리로 부서트렸지만.
그 순간 짧게 끊어진 비명을 끝으로 시네라의 손이 목줄에서 미끄러졌다.
“아, 악!”
“잡았어!”
의식의 부작용이 남아 있음에도 마벤은 몸을 일으켜 떨어지는 시네라의 손을 잡아챘다.
간신히 붙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휘청하며 아래로 끌려갔다.
“아!”
“마벤 로사!”
한 바퀴 돌고 내려와야 할 발톱의 부대가 꽤 오래 돌아오지 않고 있음에도 아래서는 소식이 없었다.
소식이 끊긴 걸까. 소식을 끊은 걸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처사였다.
정식으로 시험을 보고 들어온 그들이 땅에서 머리 깨져 죽을 정도로 잘못한 게 무어란 말인가.
라드의 다리를 안고 안간힘을 쓰는 마벤은 제 안위를 위해 시네라를 버리지 않았다.
콧김을 내뿜는 어린 라드의 심장은 나디사와 뜻을 같이했다.
“가려고?”
미세한 그녀의 움직임을 포착한 눈이 우아하게 휘어졌다.
“나도 있는데?”
결심을 굳힌 나디사는 목줄을 쥔 손을 비틀듯이 꺾었다.
“진짜 가네.”
그의 목소리는 밑으로 떠난 나디사를 따라잡지 못했다. 올라가는 것보다 더한 저항의 바람이 그녀의 귀를 막았다.
위에 선 히아신의 눈은 흡사 자살 행위처럼 보이는 이를 쫓았다.
달라지는 바람의 방향을 뒤늦게 알아챈 그리사와 아트리스, 두 남자는 떨어지는 나디사를 보며 얼굴이 해쓱해졌다.
“나디사 마로닌! 가만히 있어, 너까지…….”
“아, 이제, 아!”
마벤의 팔이 더는 버티지 못했을 때 시네라는 그만 기절해 버렸다.
한편 저들보다 빨리 날아가야 한다는 명을 전해 받은 나디사의 라드는 아직 어려 조급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흥분하여 아래로, 더 먼 아래로 갈 뿐이었다.
“나디사!”
아트리스의 절박한 부름은 세 사람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시네라와 마벤은 결국 바람에 밀려 잡은 손을 놓쳤다.
“나디사! 돌아와!”
작정하고 추락 중인데도 나디사의 눈은 망토에 싸인 채 떨어지는 두 명에게 있었다.
나디사는 필사적으로 손에 감은 목줄을 풀었다.
목줄을 잡고 버텨 봤자 속도만 늦춘다. 자유로워진 라드의 목으로 슬금슬금 손을 옮겼다.
꽉 끌어안아 바람에 뜨는 몸을 지탱했다.
그즈음 아래서 위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추락하는 두 명을 발견했다. 분주해진 사람들의 발소리가 전염병처럼 번져 갔다.
주인의 부름을 받은 라드 수십 마리가 창공을 가로지를 즈음 나디사는 방향을 바꾸었다.
추락하던 고개가 위로 들렸다. 붉은 동공이 탄력을 받은 것처럼 커졌다가 작아지고 있었다.
완벽한 동화였다. 위기의 순간에 발휘된 동화는 결속이 강했다.
나디사의 피가 라드에게로 흘러가고, 다시 라드의 피가 그녀에게로 돌아온다.
그 경이로운 감각은 그녀의 두 다리를 날개로 만들었다.
“하…….”
짧은 숨을 토해 낸 나디사는 라드의 눈을 빌려 아래를 살폈다. 의식을 잃고 빙그르르 도는 두 사람을 발견한 뒤 날개를 폈다.
검은 날개가 양팔을 벌리듯 펼쳐져 그들보다 아래로 내려갔다. 날개는 순항하듯 바람을 타고서 날아가 두 사람의 받침이 됐다.
나디사는 어느덧 손을 풀고서 머리 위로 지는 그림자를 받아 냈다.
쿵, 소리와 함께 라드는 하늘이 찢어지도록 비명을 질렀다.
신속히 본거지에서부터 달려오는 칠흑의 라드 무리는 장관을 이뤘다.
그러나 그보다 주목받는 건 라드를 모는 초짜의 라이딩 실력이었다.
사람이 둘이나 추락하는 것을 보고, 아뿔싸, 이건 대형 사고다 싶었다. 본보기가 필요하다지만 이번 건은 수장인 라넌 샤스가 똑똑하지 못했다.
라드를 주는 것은 전적으로 윗사람들의 권한이었다.
하급 중의 하급 부대가 찾아와 심장의 수장인 그녀에게 따져 물은 것은 엄연한 하극상이었다.
더욱이 수비교의 신관이 개입해 주라, 마라 한 것이 소문이 나서 라드의 머리까지 말이 들어갔다고 한다.
근래에 일어난 사고 중 이만한 대형 사고도 없었다.
분명 수장으로서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처음 라드를 모는 이들에게 하늘을 날아 보라고 하는 것은, 칼만 안 들었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예견한 대로 사고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