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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망나니 검술 교관이 되었다-107화 (107/119)

107화

* * *

여학생은 집중 치료를 받아 곧 회복했다.

사실 화염 화살 같은 마법의 경우, 그리 살상력이 높은 마법은 아니었다. 인간형 괴수 중 가장 약한 코볼트나 고블린조차도 한 방에 죽일 수 없을 정도였으니 신체를 단련한 검술 학부 학생에겐 그렇게까지 큰 타격은 아니었다.

다만 아무래도 화상인지라 더럽게 아플 뿐.

직격당한 왼쪽 날개뼈 아래에 화상으로 인한 수포가 일어난 모습은 여학생 본인이 목격했더라면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릴 만큼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캐슬러 교수가 건 회복 마법 덕에 파괴된 피부 조직이 빠르게 회복되며, 재생된 살갗 위로 껍질이 일어났다.

“저… 괜찮은 것 맞아요…?”

“그럼. 괜찮고말고.”

네리스라는 이름의 여학생이 묻자 필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른 교관들의 투표로 오필리아 교관과 함께 그녀의 치료를 담당했다.

그의 외모는 환자의 심리적인 안정에 특효약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야영지에 가면 주기적으로 차가운 물에 적신 수건을 환부에 대고 있어야 한다. 만일 몇 시간이 지나고도 통증이 느껴진다면 날 찾아오렴.”

“네. 교수님.”

여학생이 떠나가자 임시로 세운 천막 또한 곧 철거되었다. 학생들이 마차에 타는 것과 동시에 평원으로 향하는 여정은 계속되었다.

다행히 야영지에 다다를 때까지 다른 괴수 무리와 마주치지는 않았다.

본래 지능이 뛰어나거나 신중한 괴수들은 열 명 이상이 모인 인간 무리를 피해 다니기 마련이었다. 조금만 강한 괴수가 돌아다녀도 상인이나 근처 귀족이 현상금을 내걸었기에 관도 근처의 괴수는 씨가 말랐다고 봐도 좋았다.

물론 아까 오크 무리처럼 어딘가로 이동하는 경우는 조금 달랐지만.

* * *

프리비아 아카데미가 오래 사용해 온 야영지는 어느 좁은 협곡 근처에 자리한 분지였다.

매복할 위치가 마땅찮고, 근처에 강한 괴수도 살지 않아 야영하기에 적당했다. 물론 지금껏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라는 걸 필립은 잘 알고 있었으나, 딱히 누구에게 말할 수가 없었다.

정말, 아주 정말 운이 없으면 지하에서 거대 샌드 웜 같은 괴물인 나타나 텐트 몇 개를 집어삼킬 수도 있고, 드레이크 같은 비행형 괴수가 우연히 근처를 지나갈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었기에 필립은 적당한 경계심만 유지한 채였다.

“이제 조를 배정할 테니 모두 모이렴. 실제 작전처럼 특기와 성적을 반영해서 편성한 조이니만큼, 너희끼리 잘 화합한다면 좋은 상승작용을 보여줄 수 있을 거란다.”

야영지에 도착하자 알테어 교수가 학생들을 불러 모아 조를 배정했다.

몇몇 학생들은 친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 좋아했으나, 안타깝게도 쟈니스와 셰릴은 서로 떨어져야만 했다.

두 소녀가 함께 붙어 다니기엔 그녀들의 성적이 너무 좋았다.

쟈니스는 그나마 그리 문제가 없어 보이는 조에 배정되었으나, 셰릴은 보리안과 같은 조에 배정되어서 그런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너희는 운이 좋아. 내 아버지의 땅인 허비트 자작령은 온갖 괴수들이 날뛰는 곳이지. 내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유도 그 괴수들을 효과적으로 죽이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거든.”

보리안 허비트는 같은 조에 소속된 학생들을 향해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차냐 우제추가 살그머니 셰릴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

“어… 응. 안녕.”

덩치가 큰 소수민족 소녀가 다가오자 셰릴은 조금 겁먹었으나, 보리안보다는 덜 무서웠기에 그녀 또한 나름대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차냐 우제추라고 해. 겔오네스 숲에서 왔지. 너는 셰릴이지? 이네르에게 몇 번 들은 적이 있어.”

“이네르? 이네르 윌오슨?”

셰릴이 깜짝 놀라자 차냐는 배시시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걔랑 같은 방을 쓰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친하지는 않았어. 걔 이야기는 전혀 믿지도 않았고. 보통 걔가 욕하는 애들은 정말 좋은 애들이더라.”

그녀의 너스레에 셰릴은 입을 가리며 쿡, 하고 웃었다.

“아무튼, 다른 두 녀석은 아무래도 보리안을 꽤 믿는 모양이니까 우리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거든? 우리끼리라도 열심히 해 보자.”

“응… 잘 부탁해.”

차냐 우제추는 특이하게도 등에 긴 장창을 매달고 있었다. 마법이라도 걸린 물건인지 앉을 때는 길이가 저절로 줄어들었는데, 셰릴이 그것을 바라보자 차냐는 피식 웃으며 설명했다.

“이건 우리 아빠가 내게 주신 창이야. 아무리 휘어져도 절대 안 부러지고, 던져도 가끔은 되돌아오더라. 구경해 볼래?”

“아, 괜찮아. 중요한 물건 같은데 내가 만져서 이상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해?”

그런 살벌한 물건을 굳이 만지고 싶지는 않았기에 셰릴은 사양했다.

“역시 너는 좋은 애구나. 앞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을 것 같아.”

셰릴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다. 차냐 우제추는 활발하면서도 상냥한 면이 있었다.

곧 학생들은 조마다 배정된 구역에 천막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해가 질 시간이라 조금은 서둘러야 했고, 검술 학부 학생들이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동안 마법 학부 학생들은 촉매를 이용해 외곽 지역에 알람 마법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한편 필립은 교관들과 함께 저 높은 협곡 위에 올라 주변 환경을 조사했다. 혹시라도 강한 괴수의 흔적을 발견할 경우 미리 처리하거나 혹은 교수에게 알려야 했다.

‘…별 건 없군.’

필립이 수색하는 구역 근처에는 딱히 특별한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

“여긴 별것 없습니다만, 교관님들께선 뭐 발견한 게 있으십니까?”

필립이 조금 목소리를 높여 묻자 여기저기서 대답이 들려왔다.

“여기도 뭐 없습니다.”

“이상 없습니다.”

그때 조금 멀리 나가 있던 오필리아 교관이 조금 곤란한 듯한 목소리로 이상을 알렸다.

“다들 잠깐 여기 와 보실래요? 뭘 발견하기는 했는데, 이게 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요.”

그녀가 담당한 수색 구역은 협곡 위의 수풀이었다. 덤불이나 덩굴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눈썰미가 제법 좋아야 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 이걸 좀 보세요.”

오필리아 교관은 검으로 잘라낸 덤불 아래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맹수의 발자국으로 보이는 흔적이 보였는데, 아무래도 늑대나 이리, 혹은 코요테의 그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그 크기가 매우 남다르다는 것이었다. 보통 늑대의 발자국보다 두 배 이상 컸다.

“이건… 아무래도 웨어울프의 흔적 같습니다만.”

가장 고참인 테오도르 교관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웨어울프는 늑대 계열 괴수 중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괴수였다.

이야기 속에서는 보통 인간이 늑대의 형상으로 변하는 것을 다뤘지만, 웨어울프라는 종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웨어울프라는 개체 자체가 마법이나 혹은 전염으로 인해 생겨나는 인위적인 존재였다. 트롤이 웨어울프로 변할 수도 있고, 오크가 웨어울프로 변할 수도 있었다. 두 발로 걷고 머리가 위에 달린 종족이라면 그 누구든 웨어울프가 될 수 있었다.

“이 정도 크기라면 적어도 오크 웨어울프 정도는 되겠군요. 운이 없다면 트롤 웨어울프일 수도….”

검술 학부의 스완든 교관 또한 테오도르 교관의 판단에 동의했다. 스완든 교관은 오래전 용병 생활을 한 적이 있었고, 웨어울프를 꽤 많이 목격한 인물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발자국인데?’

한편 필립은 발자국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다른 이들은 깨닫지 못했지만, 이건 한 개체의 발자국이 아니었다. 웨어울프의 것임이 분명한 발자국과, 다른 늑대 발자국이 함께 찍혀 있었다.

그는 비교적 최근 이런 발자국을 보았다. 아니, 비교적이 아니라 그의 별장 뒷마당에도 이런 발자국이 꽤 찍혀 있을 터였다.

‘설마… 아니겠지. 동족 찾겠다고 떠난 게 벌써 며칠 전인데 고작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

필립은 식은땀을 한 방울 흘렸다.

“어머, 왜 그러세요. 교관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필리아 교관이 묻자 필릭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일단 교수님들께 보고합시다. 어차피 판단은 그분들께서 하실 테니까요.”

테오도르 교관의 제안에 다른 교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웨어울프 한 마리 정도야 학생들만으로도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오우거 베이스의 웨어울프만 아니라면 그랬다.

곧 알테어 교수와 캐슬러 교수가 불려왔다. 한참이나 흔적을 살핀 캐슬러 교수는 몇 가지 탐지 마법을 시전한 뒤 불편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아무래도 근처에 꽤 강한 짐승형 괴수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 일대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듯한데, 이 시간에 야영지를 옮길 수는 없으니 미리 쫓아내거나 죽여야 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무르엘라 교수님.”

알테어 교수 또한 동의했다. 이 문제를 내버려 두었다간 밤중에 습격을 받게 될 수도 있었다.

“테오도르 교관, 셀베스 교관. 두 교관은 캠프로 돌아가 학생들이 야영지를 이탈하지 않도록 지도해 주세요. 나머지 교관들은 저희와 함께 흔적을 추적합니다.”

“예. 교수님.”

이렇게 프리비아 아카데미 토벌대가 급히 결성되었다. 필립은 교수들의 뒤를 따르면서도 혹시나 하는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진짜 아니겠지?’

―…맞는 것 같은데요, 주인님? 그 월랑족 멍멍이들 발자국이랑 똑같이 생겼던데.

네리아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필립은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세상에 월랑족이 그렇게 많을 리가 없잖아.”

―그건 그렇긴 해요.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 리 없죠.

* * *

흔적은 협곡 밖까지 이어졌다. 인접한 숲까지 이동한 일행은 곧 묘한 분위기가 숲을 지배하는 것을 느꼈고, 누가 말하지 않아도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여기서 흔적이 끝납니다. 다들 전투를 준비하세요.”

캐슬러 교수의 말에 교관들은 전투를 준비했으나, 알테어 교수는 아직 검을 뽑지 않았다. 오러 마스터인 그녀는 울창한 수풀에 둘러싸여서도 감각을 개방하면 주변 상황을 느낄 수 있었다.

“잠깐. 뭔가 이상해요. 이건… 아무래도….”

그녀의 시선이 필립을 향했다. 의식적으로 필립을 모른 척 외면하던 그녀는 필립 또한 자신과 같은 것을 느꼈는지 궁금했다.

알테어 교수의 예측대로, 필립 또한 숲에서 벌어지는 기세 싸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건 일반적인 괴수의 기세가 아니었다.

“페렉 교관, 오스왈드 교관, 오필리아 교관을 제외한 나머지는 지금 돌아가세요. 기세가 심상치 않으니, 캠프에 대기하는 교관들과 함께 경계 태세를 유지하는 게 좋겠네요.”

알테어 교수는 세 명의 교관을 제외한 나머지를 즉시 돌려보냈다. 이런 거대한 기세 속에서 제몫을 해낼 수 있는 교관은 현재로선 이 셋뿐이었다.

교관들이 자리를 벗어나자, 그들은 숲 깊은 곳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건방진 자식이! 갈 길이 바빠 죽이고 싶은 걸 겨우 참았더니 감히 내게 이빨을 들이대? 오늘은 네 피로 목을 축이고 네 고기로 배를 채우겠다!”

사내의 거친 목소리가 온 숲을 울렸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마력만으로도 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알테어 교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 목소리의 주인은 오러마스터인 그녀로서도 강한 압박을 느낄 만한 수준이었다.

필립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인상을 팍 찌푸렸다.

‘저 새끼가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건데?’

동족을 찾는다며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난 월랑족 전사, 라포의 목소리였다.

“크르르릉! 으르릉….”

곧 소름이 돋을 만큼 위협적인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잘못 걸린 것 같군요. 이건 아무래도 한 지역의 패주를 결정짓는 싸움인 것 같습니다. 저 괴물들끼리 결판을 내도록 두고 승리한 쪽을 노려야…….”

캐슬러 교수가 제안했고, 알테어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쉬워 보이지는 않아요. 차라리 지금 물러나는 게 나아 보이는데요.”

“그랬다간 오히려 저희를 노릴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아직은 저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으니….”

그때였다.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진 것을 느낀 건.

그 불편한 고요는 아주 잠시 이어졌고, 거대한 존재감이 주변을 가득 메웠다. 두 괴수와 일행 사이에 자라 있던 나무들이 마치 썩은 장작처럼 쪼개지고 터져 나갔다.

“흡!”

캐슬러 교수가 급히 마법의 방벽을 구축했다. 그의 마법은 교수와 교관 모두를 흙먼지와 잔해로부터 지켜내었다.

필립은 흙먼지 사이로 두 마리 거대한 늑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는 은빛 털을 지녔고, 다른 하나는 검은 털가죽을 지녔다.

“…하! 네놈이 말하던 불청객이 이놈들인가? 이 쥐새끼 같은 인간들이 감히 내 싸움을 방해하려 들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오기라도 한 건가? 내 주인님의 얼굴을 봐서 죽이지는 않겠다만 몸 성히 돌아갈 생각은 버리….”

은색 늑대가 주둥이를 벌려 말하다가 필립과 눈이 마주쳤다.

“응?”

“….”

필립은 말없이 월랑족 전사 라포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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