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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망나니 검술 교관이 되었다-85화 (85/119)
  • 085화

    * * *

    “…안녕하세요. 헤이즐 보렌입니다.”

    마법사들은 대부분 방구석 여포였다.

    자기 공방이나 연구실, 혹은 실험실에서는 활발하고 외향적인 사람이라도 외부 활동을 할 때면 급격히 소심해졌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다곤 하나 필립과 한 조가 된 마법 학부 교관 헤이즐 보렌은 일반적인 마법사의 범주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았다.

    “예. 처음 뵙겠습니다. 교관님.”

    필립이 고개를 살짝 숙이자 헤이즐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그보다 더 깊게 고개를 숙였다.

    올해로 5년 차 교관인 헤이즐 보렌은 4학년과 5학년 수업을 보조하는 나름대로 베테랑이었으나, 신입 교관인 필립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대귀족의 일원이었고 교수인 펠리시아 오스왈드의 동생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셰릴이 크면 저런 모습일 것 같군.’

    그녀의 동그란 안경과 곱슬머리를 보며 필립은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어쨌거나 다들 이렇게 함께 행동하게 되었으니 합을 잘 맞춰 봅시다. 아무래도 왕실 기사단, 그리고 마탑에서 정식으로 요청한 사항인 만큼 우리가 먼저 그 사령술사라는 놈을 발견하면 그만한 보상이 있지 않겠습니까?”

    마지막 조원은 필립과 나쁜 인연으로 묶인 인물이었다.

    하론 베이브. 검술 학부의 고학년 교관으로 초기에 마찰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마치 이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었고, 필립은 딱히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딱히 이득 같은 게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지.’

    그 출세 지향적인 사고방식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무래도 하론은 아카데미 검술 교관보다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사령술사는 조심해야 해요. 우리는 황야를 떠도는 마법사를 찾는 게 아니라 자기 공방에 틀어박힌 마법사를 수색해야 하는 거니까요.”

    헤이즐 교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필립은 대충 그녀의 말이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뭘 열심히 찾을 생각은 없었다. 아카데미의 교직원들은 다들 어느 정도는 유능하니 몇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알아서 문제가 해결되어 있을 것 같았다.

    곧 상점가의 상점들이 모두 문을 잠갔다. 출입을 막기 위해서였고, 사령술사를 발견하기 전까지 문이 열릴 일은 없을 터였다.

    마법사인 헤이즐 보렌은 수색을 시작한 시점부터 삼십 분마다 한 번씩 좁은 범위를 대상으로 탐지 마법을 시전했다.

    “역시 쉽게 나오진 않네요. 만일 정말로 이 근처에 사령술사가 있다 하더라도 제 수준으로는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겠어요.”

    ‘그거야 그렇겠지.’

    필립 또한 동의했다. 어차피 교관들까지 이 일에 투입된 건 이 땅을 소유하고 있는 왕가에게 성의를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으니, 알아달라는 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셈.

    필립의 조가 담당할 구역은 상점가 북쪽을 포함해 숲의 초입 부분까지였다.

    이곳에 나타난 사령술사가 심각한 수준의 정신병을 앓고 있지 않은 한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지역이었다. 마법 학부 교수 중 하나이자 사령술의 천적이라는 백색 마탑 소속의 데텔로어 교수가 이 근처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 모르니 조금 꼼꼼히 살피는 게 좋겠습니다.”

    자연히 하론 베이브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꼼꼼히 말씀이신가요? 그건 저더러 탐지 마법을 더 열심히 사용하라는 말이겠죠?”

    헤이즐 교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또한 하론이 원하는 바를 알았다.

    그러나 정신력을 소모한다는 건 체력을 소모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힘든 일.

    연구에 사용되어야 할 정신력을 고작 친하지도 않은 교관 한 명의 출세욕을 위해 낭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미 많은 마법을 사용한 뒤라 벌써 피곤했다.

    “조금만 고생해 주십시오. 보렌 교관님. 이게 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방금은 왕가에서 내어놓을 이득 때문이라고 하셨잖아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정말 그런 것 때문에 교관님을 재촉하겠습니까? 저도 무리한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숲을 좀 더 자세히 살피자는 것뿐입니다.”

    필립은 하론이 물러서려 하지 않자 슬슬 나설 생각이었다.

    “거기 교관들, 빨리 움직이지 않고 뭘 하냐?”

    그러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기에 필립은 행동을 멈추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펠리시아와 수석교수, 그리고 마법 학부의 이벨린 교수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너냐?”

    에밀 파노이는 필립의 얼굴을 발견하고 뭔가 팍 식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짜증을 풀 곳을 찾았다가 그 대상이 필립인 걸 확인하자마자 포기한 것이었다.

    “예. 수석교수님.”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어디 짱박혀 있을 줄 알았는데, 용케도 나왔군.”

    학생들과 관련 없는 일에 필립을 동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오랜만이군요. 필립 교관.”

    마법 학부의 이벨린 교수는 40대 중반의 여인이었다. 그녀만한 고위 마법사가 그렇듯 아직 젊은 처녀의 얼굴이었으나, 표정과 태도에서 연륜이 묻어났다.

    그녀와는 이전 실습 사건 때 얼굴을 마주한 일이 있었기에 필립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이벨린 교수님.”

    “그때 일은 정말 고마웠어요. 하마터면 내가 끔찍한 실수를 저지를 뻔했는데. 그 어린 학생들이 내 잘못 때문에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죽어갔다면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교관은 그 애들뿐 아니라 나 또한 구한 셈이에요.”

    필립은 그녀가 아직도 그 사건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의 성격상 아마 평생 잊지 못할 듯 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교수님.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요. 큰일이 일어나지 않은 건 교수님께서 그동안 훌륭히 수업을 준비하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았다면 페렉 교관이 절 부르러 오지도 않았지 않겠습니까?”

    이벨린 교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를 위로하려고 억지를 부리는군요. 교관을 더 곤란하게 할 수는 없으니 알겠다고 대답해야겠죠? 언제든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세요.”

    필립은 곤란한 듯 웃었고, 곧 하론 베이브의 시선을 느꼈다. 질투와 부러움이 담긴 시선이었다.

    “그런데 헤이즐 교관. 왜 안색이 좋지 않나요?”

    문득 이벨린 교수가 헤이즐 교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교수님. 전 괜찮습니다.”

    헤이즐 교관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누가 봐도 괜찮지 않은 표정이었다.

    “탐지 마법을 꽤 많이 사용한 모양이군요. 딱하기도 해라. 조금 쉬면서 해도 됐을 텐데.”

    이벨린 교수가 딱하다는 듯 혀를 차자 헤이즐 교관은 하론 교관의 눈치를 보더니 말을 덧붙였다.

    “조금 힘들지만 다른 교관님의 열의가 굉장하셔서 저도 모르게 무리를 한 모양이에요.”

    학생들과 교관들에게 상냥하기로 유명한 이벨린 교수의 앞에 서자 헤이즐 교관의 설움이 북받친 모양이었다.

    하론과 필립 사이의 묘한 분위기 속에서 말도 거의 하지 못한 채 탐지 마법만 주구장창 써 댔으니 그럴 수도 있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빌어먹을 사령술사 때문에 우리 시간을 언제까지 빼앗겨야겠느냐?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빠르게 찾아내는 게 맞다.”

    에밀 수석교수가 그렇게 말하자 헤이즐 교관은 억울하다는 듯 눈물을 글썽이며 이벨린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 처량한 모습에 이벨린 교수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떼었다.

    “저… 수석교수님. 아무리 그래도 탐지 마법을 시전하는 건 마법 학부의 교관인데, 그 아이들의 사정도 좀 봐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희 아이들은 검술 교관들과 달라서 체력이 좋지 않답니다.”

    “…아, 그래?”

    수석교수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 같자 이벨린 교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천성이 유약한 그녀는 에밀 파노이와 같은 사람을 당해낼 수 없었다.

    “너희 주문쟁이들은 항상 그런 식이지. 응? 앞에서 칼 맞고 마법 맞아 가며 몸을 바치는 검사들이 있으니 편한 줄도 모르고, 안 그래? 이벨린 교수, 그러면 검술 교관들은 불쌍하지도 않은가? 저놈들이야말로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감각을 모두 열어놓고 수색을 할 텐데.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아나?”

    에밀 교수가 다그치자 이벨린 교수는 시선을 피했다. 자기 때문에 그녀가 곤란해지자 헤이즐 교관의 표정도 다시 울상이 되었다.

    “…감각을 모두 연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잠자코 있던 펠리시아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필립과 눈인사를 나눈 뒤 피곤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문 채였다.

    “교수인 저도 모르는 걸 교관들이 어떻게 한다고 그래요?”

    그녀의 핀잔에 수석교수는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

    “아니, 자네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나? 내가 평소에 자네를 얼마나 아끼는데?”

    펠리시아는 고개를 홱 돌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평소에 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 꼭 이럴 때만 아낀다고 하시네요. 귀찮은 일만 생기면 다 저한테 떠넘기시고서. 휴가가 있어도 쓰지를 못하는 삶을 교수님이 알긴 아세요?”

    그녀 또한 지금까지의 설움이 북받쳐 오른 모양이었다.

    ‘나도 엘페니아 숲에 가고 싶었는데!’

    그녀는 필립이 엘페니아 숲으로 간다는 걸 알았지만, 바쁜 일정 탓에 사흘 이상 휴가를 내기 힘들었다.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놓친 그녀의 원한은 쉽게 잊힐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 그래도 다른 학부 교수가 있는데 꼭 여기서 이래야만 하나…?”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었다. 그리고 수석교수의 약점은 펠리시아였다. 그녀가 학생이던 시절부터 그녀의 재능에 반해 직접 지도하던 수석교수는 차마 그녀에게까지 모질게 대할 수는 없었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제안할 게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그 촌극을 지켜보던 필립이 끼어들었다.

    “뭐, 뭐냐?”

    “여기 하론 베이브 교관이 꼭 그 사령술사를 찾아내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고 싶다고 하니, 두 분께서 베이브 교관을 데려다 쓰시고, 베이브 교관 대신 저기 예쁜 교수님께서 저희와 행동하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펠리시아는 필립이 자신을 예쁜 교수라고 칭하자 부끄러워하며 눈을 흘겼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오스왈드 교수도 친동생과 함께 행동한다면 다 늙은 우리와 다니는 것보다는 편하겠지.”

    수석교수는 옳다거니 하고 찬성했다. 펠리시아를 더 끌고 다녀 봤자 돌아오는 건 눈총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었다.

    “이리 오게. 베이브 교관. 뒤처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걸세.”

    “예? 아… 예.”

    에밀 파노이가 자신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하론 베이브는 원망 섞인 시선을 필립에게 한번 던지고선 입술을 깨물었다.

    곧 두 교수와 하론 교관이 사라지자 필립은 누이와 헤이즐 교관을 바라보며 제안했다.

    “우린 쉬러 가죠. 헤이즐 교관님께서 좀 힘드신 것 같은데.”

    “아주 좋은 생각이야.”

    펠리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이 수색 작전에 진심은 아니었다. 사령을 잃은 사령술사를 찾는 것 말고도 그녀는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다.

    “그…그래도 되나요?”

    헤이즐 교관이 조심스레 묻자 필립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당연히 그래도 됩니다. 애초에, 사령을 소멸시킨 게 바로 저인데 이런 사후처리 정도는 다른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반쯤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사령술사까지 제가 찾아야 한다면 이 사회가 잘못된 겁니다.”

    그 당당한 말투에 헤이즐 교관은 자기도 모르게 감화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러면 좀 실례하겠습니다.”

    * * *

    카밀라는 자신의 패를 확인한 뒤 승리를 확신하며 웃었다.

    “후후. 루아. 너처럼 순수한 아이는 절대 날 이길 수 없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패배를 선언하는 게 어때?”

    나무로 만든 동그란 칩 수십 개가 테이블에서 그녀가 앉은 쪽에 쌓여 있었다. 이 칩 하나당 금화 열 개의 가치가 있었다.

    정확히는 그렇게 하자고 정한 것이었으나, 두 소녀에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둘 다 돈이 그리 필요하지 않은 아이들이었으니.

    루아는 카밀라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교관님이 그랬는데, 손은 눈보다 빠르댔어!”

    대놓고 기술을 쓰겠다는 말에 잠시 당황한 카밀라는 루아가 그럴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겨우 생각해 내었다.

    “…혹시 다른 말을 하진 않으셨고?”

    루아는 그제야 아차, 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아, 맞다. 결과는 결국 패를 까봐야 알 수 있다고 하셨어!”

    카밀라는 루아의 행동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새로 생긴 평민 친구는 엉뚱하고 귀여워서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그녀는 루아의 앞에 놓인 삼백 골드 값어치의 칩을 보곤 눈을 빛내며 물었다.

    “정말 이번 판에 그걸 다 걸 생각이니?”

    루아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거 다 잃으면 오늘 간식은 내 건데도 말이야?”

    “응!”

    아무래도 루아의 결심은 굳건한 듯했다.

    ‘나랑 배짱 대결을 하자는 거니, 루아? 그렇다면 넌 상대를 잘못 골랐어. 너는 잭 원페어만 되어도 큰돈을 걸잖아. 이번에도 그 정도일 거야.’

    카밀라의 패는 에이스와 9의 투페어, 이 정도만 되어도 한 판의 승리를 가져가기엔 충분한 족보였다.

    카밀라는 필립에게서 포커라는 이름의 이 게임을 배운 뒤, 루아나 다른 어른들에게서 도합 50퍼센트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타고난 계산 감각, 그리고 승부사의 감각을 지녔다는 이야기였다. 버려진 카드와 루아의 드러난 패를 봤을 때, 투페어 이상의 족보가 나올 확률은 극히 드물었다.

    “…그래, 좋아. 후회하기 없기다?”

    카밀라는 패를 오픈했다. 에이스와 숫자 9가 쓰인 카드가 한 쌍을 이루고 있었다.

    “에잇!”

    루아는 기합과 함께 자신의 패를 모두 뒤집었다. 그 결과를 확인한 카밀라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잭 포카드? 말도 안 돼! 루아 너, 기술 썼지?”

    종종 필립이 카밀라를 놀리기 위해 카드를 바꿔치기하거나 하는 기술을 보여줬으므로, 카밀라가 하는 말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었다. 루아 정도로 재빠르다면 그런 기술을 얼마든지 따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아니야! 난 그런 거 할 줄 몰라!”

    루아가 항변했으나 카밀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오픈 카드에 잭이 한 장도 없는데 손패에만 네 장이 들어올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니? 솔직히 말하면 화내지 않을게.”

    “정말 아니야!”

    “오라버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카드에 장난질을 치면 손목을 잘라야 한댔어.”

    카밀라가 짐짓 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필립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으나 루아가 필립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다는 걸 카밀라는 잘 알고 있었다.

    “…루아는 장난질 안 쳤으니까, 손목 안 잘려도 돼!”

    루아는 정말 억울한 듯했다. 카밀라는 어쩔 수 없이 의심을 풀었다. 필립까지 들먹였는데도 저러는 걸 보니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인 듯했다.

    “알았어. 인정할게. 내 패배야. 루아 너는 정말 운이 좋구나….”

    카밀라는 루아가 걸었던 칩만큼 루아의 앞에 밀어주다가 문득 문이 조금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안쪽을 지켜보다가 급히 몸을 떨어트렸다는 것 또한 느꼈다.

    “…밖에 누구세요? 혹시 오라버님?”

    그녀는 조금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붉어진 얼굴로 필립을 불렀다. 저렇게 지켜볼 만한 사람이라면 필립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필립이었으나, 뭔가 숫자가 이상했다.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보기 좋네요. 공주님?”

    어색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젊은 여인은 분명히 카밀라의 기억에도 있는 사람이었다.

    “오…오스왈드 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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