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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망나니 검술 교관이 되었다-82화 (82/119)

082화

* * *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프리비아는 필립의 별장에 머물고 있었다. 교직원 기숙사보다 훨씬 편하고 안락한 환경이라서였다.

“…드래곤끼리도 몸 걱정은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인간에게 받으니 기분이 좀 이상하구나.”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운 프리비아는 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실례되는 질문이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다.”

필립은 프리비아의 넘치던 자신감이 반 이상 감소했음을 느꼈다. 아주 오랜 시간 강자로서 살아온 드래곤이라 그런지 꽤 불안한 상태인 듯했다.

“이건 정말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 지금 프리비아 님의 본체는 정확히 어떤 상태입니까? 엘릭서로 해결될 만한 상태인지 좀 확인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말에 프리비아는 굳은 표정으로 잠깐 고민했다.

‘내가 저놈을 완전히 믿어도 되는 건가?’

지금껏 지켜본 필립의 모습을 잠깐 되새겨 본 프리비아는 이내 필립을 믿을 수 없다면 세상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하는 놈을 못 믿으면 누굴 믿는단 말인가?’

남의 일로 저렇게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었다. 프리비아가 판단하기에 필립은 완전히 착해빠진 호인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선한 놈인데, 머리가 잘 돌아가기도 하지.’

그는 나이답지 않게 자신만의 분명한 선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선을 넘지 않는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넘은 사람은 가차 없이 내치는 성격.

그나마도 미숙하고 어린 사람들에게는 그 선의 범위가 한없이 넓었다. 말하자면 먼저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놈이 한번 심사가 뒤틀리면 무섭지.’

필립은 머리가 좋았다. 단지 약삭빠르게 행동하지 않을 뿐이었다. 남을 등쳐먹지 않아도 자기 이득을 챙길 만큼 충분한 능력이 있기 때문인 듯했다.

게다가 인간치고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지식을 지니고 있어 드래곤인 그녀마저도 가끔 놀랄 정도.

‘…뭐, 어차피 이대로 가다간 백 년 안에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테니.’

내적 갈등을 마친 프리비아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용언 두 번 썼다고 몸이 이 지경까지 망가졌다면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의미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일. 네가 직접 보고 판단해라.”

“네?”

“너라면 뭘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내 몸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녀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이전에 본 것처럼 선명한 포탈이 아닌, 조금 흐릿한 포탈이 생겨났다.

“끄응….”

노인처럼 신음을 흘린 프리비아가 몸을 일으켰다.

“들어가 보자꾸나.”

* * *

포탈을 넘어가자마자 필립은 이곳이 거대한 동굴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동굴 중앙에는 거대한 뭔가가 있었다.

희미한 빛을 머금은 은색 비늘과, 날렵한 몸체. 필립 정도는 한입에 삼킬 만큼 거대한 그것은 분명 실버 드래곤이었다.

“…몸이 좀 많이 상하셨는데요?”

그 드래곤의 상태는 필립이 아는 것에 비해서 조금 많이 초췌했다. 드래곤의 비늘은 순수한 마나를 잔뜩 머금었기에 본래라면 자체적으로 빛나야 했다.

원작의 묘사대로라면 ‘찬란히’라는 형용사가 붙을 만큼이어야 정상이었는데, 저 은룡의 비늘은 마치 수명이 다한 가로등처럼 희미한 빛만을 흩뿌릴 뿐이었다.

“네놈이 그걸 어찌 아느냐? 다른 드래곤을 본 적이 있느냐?”

뭔가 좀 부끄러워진 프리비아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필립을 다그쳤다. 인간으로 치면 맨몸을 그대로 내어 보이는 듯한 수치심이었다.

자신의 치아로 만들어진 현재 몸을 보이는 것과, 초췌한 본체를 보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몇 마리…가 아니라 몇 분 본 적 있습니다. 비늘 상태만 봐도 좀 그런데요. 손을 좀 대어 봐도 됩니까?”

프리비아가 흠칫 놀랐다.

“내 몸에 손을 댄다고?”

“그러면 구경만 하고 돌아갈 수는 없잖습니까?”

“…아니다. 마음대로 살피거라.”

어이가 없어진 필립이 되묻자 프리비아는 헛기침을 한 뒤 손부채질을 했다. 그녀 또한 자신이 조금 이상한 상태라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필립은 천천히 몸을 말고 누워 있는 드래곤의 동체로 다가갔다. 목 쪽 비늘에 손바닥을 대자, 미약한 반발 현상이 일어났다.

‘이게 그 유명한 무지개반사인가.’

드래곤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생물인 이유기도 했다. 수준 이하의 공격을 더 강하게 반사하는 기능. 이건 마족들도 가지지 못한 드래곤 고유의 권능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이 드래곤보다 마나와 마력에 대해서 더 잘 안다고는 자신할 수 없었으나, 드래곤이 알지 못하는 것들을 알고 있었기에 뭔가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기는 했다.

괜히 이곳저곳 건드려 보던 필립은 드래곤 하트가 자리한 목과 가슴 사이로 향했다.

이곳의 비늘은 다른 곳보다 훨씬 두꺼웠고, 빛 또한 더욱 선명했다. 그곳에 손을 대고 마나의 흐름을 느끼던 필립은 곧 드래곤 하트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었다.

인지하기 힘들 만큼 거대한 힘의 흐름.

필립이 처음 마주한 감각은 그것이었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다룰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 강력하고 압도적인 현상이 드래곤 하트의 내부에서 초당 수십에서 수백 번씩이나 일어났다.

‘까불면 안 되겠는데.’

그녀에게 진심으로 대들지 않기로 다시 한번 맹세한 필립은 온 정신력을 모두 드래곤 하트를 인지하는 데 쏟아부었다.

눈을 질끈 감은 그의 코와 귀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뭘 하는 거냐?”

깜짝 놀란 프리비아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완전히 몰입한 필립을 잠깐 살피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필립은 드래곤 하트를 정말로 ‘관찰’하고 있었다.

‘내버려 둬야 하나?’

인간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인지능력이었으나 저대로 둔다 한들 그리 큰 의미는 없었다. 적어도 프리비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상태는 그녀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고,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이렇다 할 큰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자신이 좀 쇠약해졌다고 느끼고 있을 뿐.

드래곤조차도 거의 구할 수 없는 엘릭서가 정말로 완성된다면 쇠약해진 몸 정도는 금세 정상으로 되돌아올 거란 사실도 잘 알았다.

단지 필립의 호기심을 조금 채워 줄 생각으로 내버려 둔 것이었는데, 저렇게 귀와 코에서 피를 흘린다면 멈추게 하는 것이 맞았다.

프리비아는 필립의 어깨를 붙들었고, 그 순간 필립이 눈을 번쩍 떴다.

“알았습니다.”

실핏줄이 터졌는지 빨갛게 변한 눈에서는 프리비아조차 이해하지 못할 묘한 빛이 번득였다. 아주 잠깐, 프리비아는 그 빛에 압도되어 반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뭘 말이냐?”

“프리비아 님의 심장을 좀 살폈는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심장에 흐르는 마나를 혈액이라고 가정했을 때, 혈류가 부자연스러운 곳이 조금 있었습니다. 마치 심혈관에 바늘 몇 개가 박혀서 흐름을 방해하고 있는 듯한… 그런….”

“그건 서약이니라. 나만큼 살다 보면 여러 서약을 맺게 되어 있고, 드래곤의 경우 그것들은 드래곤 하트에 남는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고, 그것이 내 몸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비록 내가 맺은 서약이 다른 드래곤보다 몇 배는 많다고 해도 마찬가지지.”

프리비아의 설명에 필립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절대 아닐 겁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건 대륙 하나를 뒤덮을 수 있는 대마법에서 어느 정도의 오차는 허용될 수 있다는 것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이가 없어진 프리비아가 도끼눈을 뜨고 필립을 노려보았다.

“네가 나보다 드래곤 하트에 대해서 더 잘 아느냐?”

“방금 프리비아 님께서 하신 말로 미루어 보건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순간 화가 치민 프리비아가 필립을 한 대 쥐어박기 위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저번처럼 냅다 마법을 꽂을 생각이 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나, 나비효과라는 말을 아십니까?”

필립이 다급히 말했다.

“그건 또 무어냐?”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여러 과정을 거쳐 결국 태풍으로 변화는 과정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아주 미세한 변화나 작은 차이가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큰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럴싸한 이론에 침착해진 프리비아가 뭔가 느낀 점이 있는지 주먹을 슬쩍 내렸다.

“…어쩌면 네놈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내 본체는 이곳에 잠든 지 오백 년이 지났지. 내가 본체로 활동했다면 거대한 흐름 속에 묻혔을 변수들이 용아병의 몸으로 활동하는 동안 문제를 일으켰다는 건가.”

“역시 현명하십니다. 딱 제가 생각한 그대로입니다.”

필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게 아니라, 거의 그렇겠군. 저게 정말 인간이긴 한 건가?’

진심으로 감탄한 프리비아가 필립을 빤히 바라보았다. 드래곤인 그녀와 마나에 관련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인간의 수준은 한참 초월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그녀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맹점까지 짚어낼 정도라면 더 할 말이 없었다.

“그건 네가 엘릭서를 제조하는 데 성공한다면, 적어도 몇백 년 동안은 멀쩡할 수 있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꼭 보답하도록 하마.”

필립에게 건네는 목소리가 훨씬 부드러워졌다는 걸 프리비아는 깨닫지 못했다.

“제게 해주신 게 얼만데 제가 보상을 바라겠습니까? 그리고 이번 일로 제가 얻은 게 있습니다.”

필립은 그렇게 말하며 손날을 세워 프리비아의 눈앞에 들어 보였다. 곧 정신을 집중하자 완전한 형태를 지닌 오러의 칼날이 이글거리며 솟아올랐다.

“…검강?”

그게 인간이 말하는 검강이라는 걸 프리비아는 알고 있었다. 검강은 채 십 초를 견디지 못하고 사그라졌지만, 그게 존재했었다는 사실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드래곤 하트를 살피다 보니, 마나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더군요. 이게 다 프리비아 님 덕분입니다. 제게 몸을 관찰하도록 해주셨으니까요.”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프리비아는 약간의 수치심을 느끼며 뺨을 살짝 붉혔다.

* * *

다시 돌아온 필립은 곧바로 엘릭서의 제작에 착수하기 위해 별장 한쪽 구석에 필요한 설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말씀하신 재료들은 수도에 위치한 창고에만 재고가 있어요. 하나같이 저조차도 기가 질릴 만큼 비싼 것들인데… 이 ‘뇌주’라는 물건만 해도 금화 이천 개는 넘는 물건이라고요.”

‘뇌주’는 자연 그대로의 번개를 구슬 같은 용기에 담은 물건을 말했다. 만들어질 확률이 벼락에 직접 맞을 확률보다 몇 배는 더 낮았기에,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황색 마탑 같은 곳에서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물건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불려온 리즈리엘은 필립이 요구한 재료들의 목록을 보며 안색이 창백해졌다.

“천천히 구해도 상관없으니, 일단 다른 누군가에게 팔리지 않도록 신경만 써 줘.”

“…그러면 다행이구요. 아, 그보다 아버님께서 이곳을 곧 방문하신다고 연락하셨어요. 황금 인장의 주인이 나타났다고 알리자마자 곧바로요.”

필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러나 리즈리엘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신데. 직접 체결하셔야 할 계약 몇 개를 내버려 두고, 이렇게 빨리 움직일 분이 아니신데….”

그 말을 들은 필립이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상회주는 이 인장에 얽힌 또 다른 비밀을 알고 있는 건가?’

그걸 알고 있다면 저렇게 서두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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