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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망나니 검술 교관이 되었다-81화 (81/119)

081화

* * *

센도르 뷔센은 5학년 검술 학부 학생이었다.

아카데미의 수준 높은 검술 교육을 5년이나 받았다면, 아무리 진도가 처진다 하더라도 꽤 높은 수준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셰릴은 덜컥 겁이 났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들은 그녀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었다.

센도르 뷔센이든 이네르 윌오슨이든 둘 다 귀족이었고, 비록 일행인 카밀라의 신분이 비록 왕족이라지만 괜히 그녀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따라 나와.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망신당하기 싫으면.”

센도르 뷔센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딱였다.

“먼저 말하자면, 당신의 연인인 저 사람이 먼저 잘못했어요. 가만히 있던 우리에게 와서 시비를 걸었거든요. 그리고 당신은 잘못하지도 않은 소녀를 함부로 대했죠. 그게 귀족이 보일 만한 태도인가요?”

카밀라는 엄한 목소리로 센도르를 나무랐다. 센도르의 뺨을 때린 손이 조금 아팠으나,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저게 사실이야?”

센도르가 묻자 이네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지금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가요?”

“아니지. 그게 아니야. 네가 거짓말을 했을 리 없지. 너희들, 당장 따라 나와라. 스스로 따라오지 않겠다면 강제로 끌어내는 수밖에 없으니까.”

센도르는 이번엔 카밀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거친 손이 카밀라의 어깨에 닿으려던 그때 카밀라의 그림자에서 뭔가가 불쑥 솟아올랐다.

까만 머리칼의 작은 소녀였다. 가냘픈 카밀라의 품에도 폭 안길 수 있을 만큼 덩치가 작았고, 생김새 또한 매우 사랑스러웠다.

그런 소녀가 갑자기 센도르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고양이의 그것처럼 길어진 손톱으로 그의 목을 긁었을 때, 카밀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얼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죽여도 돼?”

소녀, 타니아는 고개를 돌려 카밀라를 바라보았다.

“너…너는 누구니?”

카밀라가 당황하며 물었다. 타니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며칠이나 몸을 맞대고 살았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게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타니아. 그래서 죽여?”

“안 돼!”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카밀라는 다급히 타니아를 만류했다. 일단 자신이 고개를 끄덕이면 센도르라는 이름의 저 소년은 정말로 죽고 말 것 같았다.

“…알았어.”

타니아는 카밀라의 말에 따라 센도르의 목에서 손톱을 치웠다. 그러나 센도르의 눈은 이미 돌아가 흰자만 보이고 있었고, 이미 정신을 잃은 듯했다.

“오, 오라버니? 센도르 오라버니?”

이네르가 급히 그의 상태를 살폈다. 센도르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하자 카밀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안 죽이는 거 아녔니?”

타니아는 그제야 뭐가 생각났다는 듯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눈을 깜빡였다.

“내 손톱에… 독 있는데… 까먹었어. 내버려 두면… 죽어.”

그 순간 셰릴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여기! 여기 사람 살려요!”

* * *

“대체… 이게 다 무슨 소란인지….”

마침 근처를 지나던 페렉 교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식은땀을 흘렸다. 해독 마법을 연거푸 세 번이나 시전했더니 정신력이 어느 정도 소모된 탓이었다.

교직원에게 제공되는 식사 메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외식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센도르 뷔센이라는 소년은 어린 나이에 원통하게 죽었을 터였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하세요. 지금 당장.”

때문에 그는 꽤 화가 나 있었다. 대체 무슨 사정으로 애들 다툼에 저런 치명적인 독이 사용되었는지 그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크루셀 베이커리의 지점장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여 사과한 그는 문제의 원인인 학생들은 인적이 드문 곳에 모아 놓고 사정을 청취할 생각이었다.

“…먼저 말씀드릴 게 있어요. 교관님. 저기 누워 있는 센도르 오라버니와 저는 사실 작년부터 사귀던 사이였다는 걸요.”

이네르 윌오슨이 이때다 싶어 먼저 나섰다.

“그래서요?”

학생들끼리 정분이 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페렉 교관은 그다음을 재촉했다.

“저기 셰릴이라는 학생이 후배인 루아와 그 이야기를 나누던 걸 제가 우연히 들었거든요? 그래서 부디 비밀로 해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는데, 비밀을 지키길 원한다면 자기가 시키는 걸 하라고 절 협박해서, 센도르 오라버니가 절 돕기 위해 왔다가 갑자기 저 까만 여자애가 센도르 오라버니를 공격했어요.”

그녀의 거짓말을 듣다 못한 셰릴이 입을 열었다.

“너, 너는 정말 염치도 양심도 없는 애야. 이네르 윌오슨.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 있어?”

“너야말로 오라버니를 이렇게 만들고 정말 뻔뻔하네. 죄책감도 없어?”

소녀들의 톤 높은 목소리를 듣고 있던 페렉 교관이 손을 휘저었다. 평소에야 시끄러운 것도 귀엽게 넘길 수 있었으나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예쁜 목소리라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유발할 뿐이었다.

“그만. 입 다무세요. 셰릴, 당신 입장을 듣기 전에 일단 루아 학생이 어디 있다는 겁니까?”

“저기 있잖아요. 교관님….”

이네르가 가리킨 곳에는 타니아를 등 뒤로 숨긴 채 몸을 조금씩 떠는 카밀라가 보였다. 페렉 교관은 그녀를 잠깐 살펴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번에 봤을 때는 키가 훨씬 작았던 것 같은데… 그리고 좀 약간 동글동글한 강아지? 그런 이미지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애들은 금방 크니까 이럴 수도 있나?’

물론 그럴 리가 없다는 건 명백했다.

“아무리 봐도 루아 학생이 아닌 것 같은데? 학생은 누굽니까?”

“저는….”

뭐라고 둘러댈 말이 없었던 카밀라는 한숨을 푹 내쉰 뒤 정체를 밝혔다. 필립의 보호 아래 들어온 지 고작 열흘도 되지 않아 폐를 끼치게 된 것이 수치스러워서 저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카밀라 벨로페르 칼라리아. 칼라리아 왕국의 7왕녀입니다. 필립 오스왈드 오라버니께선 제 의남매이시며, 6왕자 폐하이신 알레시오스 오라버니께서 제 신변을 필립 오라버니께 보호하도록 요청하셨습니다. 곧 아카데미에 입학할 예정인데, 이런 식으로 먼저 뵙게 되어 참 유감이네요. 교관님.”

“어…?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뇌에 과부하가 온 페렉 교관이 말을 버벅댔다.

‘휴가 중에 이게 무슨 봉변이냐. 갑자기 웬 공주?’

“말 그대로예요. 이 상황에서 제 신분이 그리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하겠지만, 제가 누구인지는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제가 설명하자면, 저 이네르라는 사람이 여기 셰릴 선배와 대화하고 있던 자리에 찾아와서 그녀를 먼저 모욕했고, 말싸움이 일어나자 센도르라는 선배가 나타나서 저희를 끌어내려고 했어요.”

그녀의 태도는 매우 당당했고, 눈빛 또한 정직했다. 페렉 교관은 이네르 윌오슨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걸 눈치챘다. 그 또한 교관 경력이 꽤 되었기에 이 자리에서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사건이 이만큼 커졌으니 심증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일단 필립 교관님을 불러야겠군요.”

“교관님께선 외부로 나가셔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았는데….”

셰릴이 중얼거리자 페렉 교관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쯤 돌아왔을 겁니다. 아까 마차에 타고 있던 교관님과 마주쳤거든요. 아, 저기 오시는군요.”

페렉이 한쪽 방향을 가리키자, 여행복 차림의 필립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난데없이 들린 소식에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나온 참이었다.

“교관님,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페렉 교관이 묻자 필립은 피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별장의 하인이 큰일이 났다고 해서 급히 왔습니다.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이게 그러니까….”

드러난 상황만을 간략하게 들은 필립이 사건의 주역들을 바라보았다. 셰릴과 카밀라는 차마 필립을 마주 볼 수 없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이네르 윌오슨은 일이 점점 커지자 불안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필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아카데미 내부에서 일어난 일도 아닌데, 가문끼리 해결하라고 놔두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교수님이나 교관들의 통제 아래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저희가 이 문제에 끼어들 자격이 있을까요?”

그의 말에 페렉 교관은 깨달음을 얻은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가 아니라, 그래도 됩니까?”

“안 될 건 뭡니까? 누가 잘못했든, 사람 목숨이 걸린 일에 거짓말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죠. 어차피 누군가는 이 애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테니 곧 밝혀질 일입니다.”

그렇게 말한 필립은 아이들 쪽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 중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꼭 지금 말하렴. 이 이후로 거짓말이 드러난다면 단단히 책임을 져야 할 거다. 딱 말할게. 오직 지금만이 기회다. 어리고 미숙하다는 이유로 봐줄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뿐이야. 지금 자백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에 대해선 나는 결코 개입하지 않을 거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고, 누군가 손을 들거나 입을 여는 일은 없었다. 필립은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카밀라에게 물었다.

“카밀라. 네게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면 폐하께서 직접 왕림하시려나?”

농담이 섞인 질문에 카밀라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피식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바마마께서 절 한 번 찾아오신다고 하셨어요. 오라버니도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셨고요.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방문하실 것 같은데, 미리 준비하셔야 할걸요.”

그 말을 들은 필립의 얼굴이 순식간에 한 시간 정도 더 늙어졌다.

“갑자기 더 피곤해지는데.”

“그, 저 학생께선… 정말 공주님이십니까?”

페렉 교관이 아까부터 궁금하던 것을 질문했다. 필립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이 애 오빠인 알레시오스 왕자님께서 저와 의형제의 연을 맺으셨고, 그 인연으로 제가 이렇게 돌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는데? 너 어떻게 하냐?’

페렉 교관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네르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이들을 꽤 좋아했으나, 지금 이 자리에서 이네르를 도와 왕가에 밉보일 만큼은 좋아하지 않았다.

‘고집 좀 그만 부리고 사실대로 털어놓는 게 좋을 텐데.’

이네르는 사색이 된 채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닫고 있었다. 필립은 셰릴과 카밀라에게도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왕족인 카밀라가 필립의 손짓 한 번에 바로 그에게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페렉 교관은 헛웃음을 뱉었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마법이 아니었군. 저게 진짜 마법이지. 마탑의 마스터들은 저렇게 공주를 무슨 강아지 부르는 것처럼 부를 수 있을까?’

* * *

페렉 교관과 센도르 뷔센에게 세계수의 열매 하나씩을 선물한 필립은 아이들을 데리고 별장으로 돌아왔다.

“…저, 교관님. 정말 죄송해요. 나가 계신 동안에 이런 일을 일으켜서… 제가 좀만 더 참으면 됐었는데.”

셰릴이 필립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과했다. 필립은 그녀의 곱슬머리를 조금 세게 쓰다듬으며 그녀를 달랬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잖니? 뭐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 네가 나쁜 게 아니다. 그나저나 그 이네르라는 아이는 어떻게 할 셈이니?”

그 질문에는 카밀라가 대답했다.

“괘씸하지만 용서해야죠. 저 아이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트린다고 해서 기쁠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 어른스러운 대답에 필립은 조금 감탄했다.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작은 교훈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직접 모욕당하지는 않았지만, 루아와 오라버니를 조금 심하게 모욕했거든요.”

“나와 루아를? 어떻게?”

“그게 그러니까….”

카밀라는 이네르가 내뱉은 말 몇 개를 아주 많이 순화해서 전달했다. 그것들을 들은 필립은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아까 꿀밤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올 걸 그랬군.’

“…내가 해결해 줄 수도 있겠지만, 이런 일은 너희끼리 해결하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다. 나는 관여하지 않고 지켜만 볼 테니 너희끼리 해결해 보렴.”

필립은 셰릴과 카밀라를 믿었다. 이 애들이라면 이네르라는 아이에게 그리 가혹하게 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필립은 알 수 없었다.

이네르에게 가혹해질 수 있는 사람은, 본인 스스로를 포함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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