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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망나니 검술 교관이 되었다-26화 (26/119)

026화

* * *

―…주인님? 왜 저 귀여운 야옹이를 노려보시는 거예요?

필립은 머릿속에 울리는 네리아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완벽한 기회를 노렸다. 저 고양이가 완전히 경계를 푸는 그 순간 덮칠 생각이었다.

“웨에에옹.”

검은 고양이는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관절을 풀었다. 그리고는 살기와 귀찮음이 뚝뚝 흘러내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계집년 같으니. 하필이면 학장에게 몸을 의탁하다니?”

쇠를 긁는 듯한 거친 사내의 목소리에 네리아는 깜짝 놀라 필립을 불렀다.

―…주인님? 방금 주인님이 내신 목소리에요?

필립은 아주 작은 동작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러면 여기 다른 누군가가 있나요?

이번에는 한 번 더 고개를 젓는 대신 턱으로 고양이를 가리켰다.

저 까만 고양이의 정체는 ‘흑묘족’의 일원이었다.

흑묘족은 어둠과 그림자에 몸을 숨기는 능력을 타고났고, 기본적으로 유연성과 민첩성이 엘프보다도 뛰어나 종족의 구성원 대부분이 암살자로 활동하는 종족이었다.

안타깝게도 네리아의 동심은 고양이가 다시 입을 열자마자 완전히 박살이 났다.

“절대 곱게 죽이지 않을 테다. 태어난 것을 후회하도록 천고의 고통을 맛보게 해 주지….”

마치 지옥 저 밑바닥에서 기어오른 악마에게서나 들을 법한 말이었다.

―말도 안 돼…! 저건 지옥의 짐승이에요. 주인님. 빨리 죽여 없애야 해요!

네리아의 믿을 수 없다는 절규와 함께 필립은 몸을 날렸다.

‘지금!’

오러로 신체 능력을 강화하고, 고양이의 시선과 집중력이 분산된 바로 그 순간을 노린 것이었다.

마치 화살처럼 쏘아진 필립의 몸이 고양이를 덮쳤다.

제아무리 단련된 암살자라도 의표를 찌른 기습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고양이는 순식간에 필립의 손아귀에 목덜미를 붙들렸다.

“키야아아아오오옹!”

날카로운 고양이 울음소리가 시계탑을 쩌렁쩌렁 울렸다. 필립은 곧바로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소리 내면 죽인다.”

“애애옹…웨에에에옹.”

겁먹은 눈으로 필립을 바라보던 고양이의 표정이 굳었다.

‘씨팔. 날 알고 왔군. 어디서 정보가 샜지?’

“흑묘족의 케인. 내가 널 모르고 왔을 것 같으냐? 변신할 생각 같은 건 버리는 게 좋아. 네 몸이 커지려는 기색이 보이면 곧바로 목을 비틀 생각이니까.”

필립의 경고에 고양이, 흑묘족의 케인은 송곳니를 내보이며 하악질을 했다.

“개망나니 새끼야, 네놈이 진정 돌아버린 것이냐? 날 어떻게 알고 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목표는 네가 아니다. 크레센트와 척을 질 셈이 아니라면 당장 놓고 꺼져라.”

“아직 네 처지를 모르는 것 같은데.”

필립은 고양이의 목덜미를 붙잡은 채 팔을 들었다가 바닥에 힘껏 내리쳤다.

“웨애애애옹!”

인간형도 아니고 고양이의 모습으로는 이런 충격을 버텨낼 수 없었다. 흑묘족 케인은 고통에 신음하며 필립을 노려보았다.

“…원하는 게 뭐냐? 의뢰 대상이나 의뢰주에 대해선 발설할 수 없다. 그 이외의 정보라면 아낌없이 넘길 테니 일단 이것 좀 놓아라.”

살의가 넘치는 시선과는 달리 그는 꽤 순종적이었다.

흑묘족은 고양이의 모습을 가진 종족답게 충성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만일 ‘크레센트’와 맺은 마법적인 계약이 없었더라면 그는 의뢰에 대한 정보도 아낌없이 팔아치웠을 터였다.

자신의 정체와 은신처까지 파악하고 제압한 상대에게 함부로 거스를 생각은 그에겐 없었다.

필립은 망설임 없이 미리 허리에 매어 둔 로프로 그를 묶기 시작했다.

발톱을 꺼내지 못하도록 앞발을 배에 붙여서 묶는 그의 솜씨에 흑묘족의 케인은 저항을 완전히 포기했다. 필립은 흑묘족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저항하지 않을 테니 원하는 걸 말하라니까!”

“내가 원하는 것?”

필립은 싸늘한 표정으로 묶인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크레센트의 본거지와 경계 수준. 그리고 수장의 위치를 원한다. 네가 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라고? 이거 완전히 미친 새끼 아니… 키야오오옹!”

그를 바닥에 한 번 더 처박은 필립이 입을 열었다.

“모르겠으면 죽어야지, 어쩌겠어? 네 암살 대상인 리즈리엘 유세프는 내 사람이고, 나는 내 주변인을 건드리는 놈들을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 없거든. 다시 묻겠다. 크레센트의 본거지를 알고 있나? 그 경계 수준과 크레센트의 수장, 네펜의 위치를 알고 있나?”

‘…수장의 이름을 안다고?’

만약 케인이 현재 인간 형태였다면 분명히 얼굴이 하얗게 질렸을 터였다.

그는 자신이 단단히 잘못 걸렸음을 자각했다.

“나, 나는 모른다. 하지만 흑묘족의 대모님이신 스텔라 님께서는 알고 계실 것이다. 내가 그분께 너를 안내하겠다.”

필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잘 묶은 고양이를 미리 준비해 둔 자루에 집어넣었다.

―주인님, 네리아는…… 네리아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본 네리아가 충격과 공포가 가득한 목소리로 필립을 불렀다.

“명심하렴. 세상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다.”

필립은 그녀를 달랜 뒤 흑묘족 암살자가 담긴 자루를 들고 시계탑을 내려갔다.

* * *

다음으로 필립이 향한 곳은 교직원 기숙사였다.

―뭐 두고 오신 거라도 있으세요?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네리아가 묻자 필립은 고개를 저었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온 거야. 해가 뜨기 전까지 크레센트를 처리하려면 강력한 아군이 필요하니까.”

―강력한… 아군이요? 그 대현자라는 할아버지랑, 웃긴 아저씨를 말하는 거예요?

네리아가 말하는 웃긴 아저씨란 에밀 파노이 수석교수를 의미했다.

“학장님은 그런 부탁을 할 만큼 가깝지도 않고, 지금 찾아가는 사람이 거부한다면 아마 수석교수님께 찾아가지 않을까 싶은데.”

―…?

필립은 교직원 기숙사의 계단을 올라 여성 교직원들이 사용하는 층으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 어느 문 앞에 멈춘 그는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다행히 그 방의 주인은 아직 잠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아암… 누구세요?”

“나야. 필립. 잠깐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해서.”

“응? 아아, 잠깐만, 금방 나갈게!”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마법 학부의 교관 프리실라였다. 그녀는 잠옷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채로 필립을 맞으러 나왔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야? 등에 멘 건 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녀의 뺨은 꽤 붉었다.

필립은 그녀에게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할 말이 있어서.”

“할… 말이라니?”

“사실 나는 지금부터 오래된 암살 조직을 상대하러 혼자 갈 건데, 어쩌면 크게 다치거나 죽을지도 모를 것 같아서. 너는 내 친구니까 미리 알려 주는…… 흡.”

곧 프리실라의 손이 필립의 입을 막았다.

“…건방지게 나를 불러 내려 수를 쓰다니. 내 손에 죽고 싶은 게냐?”

필립은 프리실라가 이 아카데미의 수호룡에게 몸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저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볼 때마다 신기하군요. 대체 무슨 원리입니까? 그녀의 몸에 빙의하기라도 하는 겁니까?”

“그걸 내가 네놈에게 말해 줄 이유가 있나? 내버려 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 날 찾아온 이유가 무어냐?”

드래곤 프리비아는 미간을 좁히며 필립을 노려보았다. 기분이 꽤 좋지 않은 듯 보였으나 필립은 개의치 않았다.

다른 일이었다면 그녀를 찾아올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만, 크레센트를 상대하는 일이라면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프리실라에게 했던 말 그대로입니다. 저는 지금부터 암살 조직 ‘크레센트’를 와해시키기 위해 움직일 겁니다.”

“…그래서, 네놈이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나더러 도우라는 말이냐?”

분노를 억누르는 그녀를 보며 필립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게 아닙니다. 크레센트의 수장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내가 그걸 알아야 하나?”

프리비아의 질문에 필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크레센트의 수장 네펜이 마족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프리비아는 필립의 옷깃을 붙들고 곧바로 포탈을 열었다.

“…어?”

필립은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한 채 그녀를 따라 포탈을 통과해야만 했다.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었다. 필립은 자신이 아카데미 뒷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곤 경악했다.

“네놈, 그 말을 책임질 수 있느냐? 만일 거짓일 경우 네놈이 월광검의 계승자이든, 그렇지 않든 나를 기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드래곤 프리비아는 서늘한 표정으로 필립을 다그쳤다. 평정심을 되찾은 필립이 부드럽게 웃었다.

“제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건 이미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의 말대로 프리비아는 이미 필립이 진실을 말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필립의 얕은 수작에 그냥 넘어가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너는 네 재능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네가 만약 월광검의 계승자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네게 끔찍한 저주를 걸고야 말았을 테니.”

필립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어떤 저주 말씀입니까?”

“발기부전.”

짧고 굵은 대답이었다. 필립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체 월광검의 창시자인 마스터 오템과 무슨 약속을 한 거지?’

그는 이 사실에 대해서도 깊게 파고들 필요를 느꼈다.

“…네놈의 말대로 그 크레센트라는 집단의 수장이 마족이라면 내가 나서야 함이 옳다. 이는 마족과 드래곤 사이의 협약에 정면으로 반하는 일이니.”

‘그렇지!’

필립은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다음 순간 프리비아의 드래곤 아이가 그를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도록 옭아맸다.

마치 시선 그 자체에 힘이 있어 그의 몸을 붙들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괘씸하구나. 감히 인간이 드래곤을 의도대로 부려먹으려 들다니? 네놈은 그 대가를 어떻게 치를 셈이냐?”

―주…주인님…? 저 언니 정말 드래곤이에요?

네리아의 겁먹은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그때 프리비아의 시선이 필립의 허리에 매달린 네리아에게로 향했다.

“…그건?”

그녀가 손을 뻗자 필립의 허리에 묶여 있던 네리아가 저절로 뽑혀 그녀의 손에 붙잡혔다.

“그 애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경악한 필립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러나 프리비아는 그의 목소리를 가볍게 무시한 뒤 뭐라고 중얼거렸다.

아마도 네리아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겠으니 울지 마라. 아니, 그만 울라니까? 하아, 대체 어쩌다가….”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관자놀이를 누르며 네리아를 필립에게 돌려주었다.

필립은 몸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걸 확인하자마자 네리아를 손에 쥐었다.

―뿌에에에엥! 흐에에에엥!

네리아의 겁먹은 울음소리가 두개골을 울렸다. 필립은 그녀를 달래기 위해 혈조와 폼멜을 쓰다듬었다.

프리비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휘적였다.

“…빌어먹을. 이번 한 번은 속아주마.”

“예?”

“네놈의 수작에 한 번은 넘어가 준다는 말이다. 이렇게 뒷맛이 쓴 채여서야 앞으로 수백 년은 찝찝할 테니.”

갑자기 바뀐 그녀의 태도에 놀란 필립이 네리아에게 속삭였다.

“너 뭐라고 말한 거니?”

―훌쩍…그냥 주인님 괴롭히지 말라고 했는…훌쩍…데요?

필립의 손길에 울음을 그치기 시작한 네리아가 대답했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결과가 좋았다. 필립은 그녀에게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마도 이번 한 번이 끝일 테지만, 그는 드래곤의 등에 업혀 사건을 해결하게 되었다. 그는 앞으로 만나게 될 크레센트 소속 암살자들의 명복을 미리 빌었다.

그들은 아마 높은 확률로 죽거나, 혹은 사망하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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