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116화 (116/117)

117화 페루에서 생긴 일 (2)

던전 게이트에 진입한 윤한은 달려드는 몬스터의 골통을 부수며 중얼거렸다.

“파충류 계열의 몬스터가 서식하는 곳인가.”

도마뱀을 닮은 이족 보행 몬스터의 사체를 발로 툭 민 윤한은 손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주변을 훑어봤다.

수많은 각성자들의 각성 능력에 의해 몬스터가 쓸려 나가는 장면이 보였다.

순조로웠다. 하긴, S급 각성자만 4명이고 A급 각성자가 수십 명인데 순조롭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현재 윤한이 속한 공략대의 전력은 명백히 과했다. 아무리 S급 게이트라도 S급 각성자가 4명이나 모이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보통은 많아 봐야 2명 정도가 끝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또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그도 그럴 게, 윤한부터가 평소였다면 이번 공략에 참가하지 않았을 테니까.

윤한은 S급 각성자치고 상대적으로 협조적인 편이었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었다.

2주 전에 이미 S급 게이트를 공략했는데 여기서 또 S급 게이트 공략에 참여한다?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짓이었지만.

윤한은 기꺼이 이번 공략에 참가했다.

흉흉한 세상 분위기를 읽고 S급 게이트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아마 다른 S급 각성자들도 똑같을 것이다. 윤한과 마찬가지로 흉흉한 분위기를 읽고…….

“뭘 그렇게 찡그리고 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근심 걱정 없어 보이는 엔도 이츠키의 말에 윤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쟤는 그냥 참가한 것 같네. 하긴 생각이 깊어 보이는 녀석은 아니긴 해.

윤한이 고개를 들었다. 주리엔이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한 후 입을 여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전진한다.’”

영어로 명령을 내리는 주리엔.

그 말에 모든 각성자가 무기를 점검하고 던전 게이트 내부를 걷기 시작했다.

윤한의 예상이 맞았는지 던전 게이트에선 파충류를 닮은 몬스터가 끝없이 쏟아졌다.

가볍게 몬스터를 처치한 윤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많이 적네?’

일반 몬스터들이 평범한 S급 던전 게이트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걸 확인한 윤한은 작게 혀를 찼다.

던전 게이트는 똑같지 않았다. 던전마다 차이점이 있었고, 보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첫 번째, 일반 몬스터, 흔히 잡몹이라고 부르는 녀석들이 강하거나 많은 경우.

두 번째, 수호 몬스터, 흔히 보스 몬스터라고 부르는 녀석이 강한 경우.

보통 첫 번째의 경우 수호 몬스터가 약했고, 두 번째의 경우 일반 몬스터가 약한 경향을 띠었는데, 이번에 공략하는 던전은 후자인 모양이었다.

“귀찮아지겠네.”

던전의 수호 몬스터는 보통 해당 등급보다 약간이나마 강한 경우가 많았다.

그 와중에 더욱 강해지다니. 상당히 귀찮아질 게 분명했다.

뭐, S급 각성자가 4명이나 있는 만큼 절망적이거나 공략이 불가능해지지는 않았다. 말한 그대로 귀찮아지는 정도가 끝이었다.

그래도 주리엔이 있잖아. 적당히 귀찮아지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윤한은 앞으로 나아갔고, 곧 커다란 공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터에 들어선 윤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건 뭐지. 알?’

거대한 알이 공터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윤한이 살짝 당황했다.

거의 8년 동안 각성자 일을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수호자의 방에 몬스터는 없고 알만 있다니. 이게 무슨 일이지.

설마 저게 수호자라는 건가?

윤한은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리엔도 처음 보는 광경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윤한은 이번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엔도 이츠키를 바라봤다.

“몬스터의 알이잖아. 저런 건 처음 보는군. 무슨 맛일까?”

헛소리를 하는 엔도 이츠키를 무시한 윤한은 고개를 바로 한 후 턱을 쓰다듬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당황했지만, 그거랑 별개로 딱히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반드시 처지해야 될 수호자가 약하면 환영할 일이지 기분 나빠할 일이 아닌 것이다.

천진혁 같은 미친놈이면 상대가 약해진 걸 보고 김이 샜다며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상식인을 자처하는 윤한은 그럴 일이 없었다.

“‘이거, 일이 쉽게 풀리겠군.’”

브라질 출신의 S급 각성자가 씨익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뚜벅뚜벅 걸어가 수호자로 추정되는 거대한 알과 약간 떨어진 곳에 선 브라질의 S급 각성자가 오른발을 뒤로 젖혔다.

동시에 그의 발 앞에 둥그런 뇌전의 구가 생겨났다.

파지지직!

발에 마나를 모은 브라질의 S급 각성자는 그대로 축구공 모양의 뇌전을 향해 발을 휘둘렀다.

마치 축구에서 프리킥을 차는 것처럼.

퍼어엉!

뇌전의 공과 브라질의 S급 각성자의 발이 만난 순간, 거대한 폭음과 함께 뇌전의 공이 앞으로 쏘아졌다.

거친 소음이 공동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 녀석들, 이게 뭔지 알고.’”

허공에서 들린 거친 남자의 목소리가 윤한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콰아아앙!

허공에서 떨어진 남자의 주먹에 뇌전의 공이 박살 났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브라질의 S급 각성자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이 녀석, 대체 누구―.’”

“‘시끄러워.’”

펑!

마치 풍선이 터지는 것 같은 가벼운 소리가 공동에 퍼져 나갔다. 촤아악―! 피의 비가 쏟아졌다.

털썩. 머리가 사라진 브라질의 S급 각성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브라질의 S급 각성자를 손쉽게 해치운 붉은 머리의 남자가 피 묻은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보스, 이 녀석들 어떻게 할까.’”

“‘처리해라.’”

“‘들었지, 오스카?’”

어느새 나타난 아더와 오스카의 등장에 윤한을 비롯한 공략대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이게 대체?’

강렬한 압박감에 윤한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게 보면 익숙한 느낌이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해가 안 됐다.

윤한에게 이런 압박감을 줄 수 있는 건 여태까지 천진혁밖에 없었으니까.

‘저 녀석들이 천진혁과 동급이라고?’

아니. 천진혁이 주는 압박감은 압도적인 재능으로 생긴 특유의 분위기 탓인 걸 생각하면 천진혁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을지도 몰랐다.

저 녀석들이 천진혁보다 강자라고?

그게, 그게 말이 돼?

윤한이 충격이 빠졌다. 윤한이 알고 있는 최강자는 여태까지도, 앞으로도 천진혁 하나였다.

천진혁은 백한영이 진정한 괴물이라고 했지만, 윤한은 자신이 본 것만 믿었다. 아직 백한영의 진정한 힘을 본 적 없는 윤한에겐 천진혁만이 유일한 최강이었건만.

그 상식이, 지금 부서졌다.

붉은 머리의 권사, 루이스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귀찮으니까 전부 한꺼번에 덤벼.’”

오만한 말투였지만 그 누구도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 만한 실력자였다.

“‘재미있는 녀석이군.’”

아니. 딱 한 명.

루이스를 지적할 사람이 있긴 했다.

스릉. 검을 뽑아 든 주리엔이 천천히 루이스에게 다가갔다.

우웅―! 처음부터 검강(劍罡)을 뽑아내는 주리엔과 그에 맞춰 권강(拳罡)을 주먹에 씌우는 루이스.

콰아아앙!

주리엔과 루이스가 맞부딪치며 공동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걸 멍하니 지켜보던 윤한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정면을 바라봤다.

푸른 머리의 검사, 오스카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채 정면에 서 있었다.

압도적인 기세에 침음성을 삼킨 윤한이 두 주먹을 들었다.

윤한이 엔도 이츠키에게 물었다.

“큰 것 하나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려.”

“1분.”

“길기도 하다.”

엔도 이츠키의 말에 윤한은 작게 한숨을 내쉬곤 오스카와 눈을 마주쳤다.

윤한의 머릿속에 몇 달 전의 일이 떠올랐다.

제주도 게이트를 공략했을 때의, 리치 로드의 마법 한 번에 나가떨어졌을 때의 일을.

속이 쓰린 기억이었지만, 괜찮았다.

덕분에 그때보다 더욱 강해질 수 있었으니까.

윤한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윤한의 정신이 끝을 모르고 하강했다.

현실 세계에서, 내면의, 심상 세계로.

윤한이 눈을 떴다. 그러자.

눈앞에 폐허가 나타났다.

윤한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공간이었다.

윤한뿐만 아니라 김해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거리일 것이다.

이곳은 김해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사거리였지만, 명성에 맞지 않게 개미 새끼 보이지 않았다.

윤한의 심상 세계라서? 그것도 맞았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이 당시, 이 거리라면.

설사 현실 세계였어도 지금과 똑같은 풍경일 수밖에 없었다.

윤한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박살 난 도시. 흩뿌려진 피. 그리고 그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구멍, 게이트.

8년 전 인류는 크나큰 위기를 맞이했다.

게이트라는, 여태까지 없던 위기를.

수많은 피가 흘렀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윤한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가족을 잃었다. 순식간이었다. 피난을 하던 와중 하늘에서 떨어진 몬스터 탓이었다.

다행히 그로 인해 각성한 윤한은 무사했지만, 어떤 각성 능력도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윤한은 게이트가 증오스러웠다.

이 세상에서 게이트를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심상 또한 이런 식으로 변해 버렸다.

게이트에 다가간 윤한은 두 주먹을 쥐고 그대로 내질렀다.

쨍그랑. 게이트가 박살 났다. 동시에 심상 세계 또한 박살 났다.

박살 나는 세상 한가운데 우뚝 선 윤한은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우웅―!

윤한의 심상병기(心像兵器), 용린갑(龍鱗鉀)이 그의 두 주먹을 덮었다.

땅을 박찬 윤한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용린권법(龍鱗拳法)은 먼 옛날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목격한 무림인이 만든 무공이다.

예로부터 용은 신수라 불리며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날씨를 다스리며, 구름 위를 거니는 신수가 바로 용.

그리고 용린권법은, 그런 용이 가진 ‘힘’에 초점을 두고 만든 무공이었다.

하늘 위에, 만물 위에 군림하는 생물체가 바로 용.

자연히 그런 용을 본떠 만든 용린권법 또한 그러한 형질을 가지게 됐다.

모든 생명체를, 발아래 꿇리려는 형질을.

용린권법(龍鱗拳法), 진오의.

뇌룡파천(雷龍破天).

하늘의 분노를 머금은 용의 포효가, 오스카에게 떨어졌다.

파지지지직!

거대한 뇌전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사람의 시야를 빼앗는 거센 뇌전의 빛이 사그라들고, 윤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의 주먹이 오스카의 검에 막혔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 이렇게 쉽게 막힌다고?

이를 악문 윤한이 재차 주먹을 휘둘렀다.

뇌룡이 으르렁거렸다. 마치 누군가가 역린을 건드린 것처럼.

용린갑에서 시작된 뇌전이 공간을 일그러트렸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 윤한의 주먹에 담겼다.

뇌룡의 분노가 오스카를 덮쳤다.

콰아아앙!

성공적으로 일격이 들어갔음에도, 윤한은 표정을 굳혔다.

“‘끝났나?’”

오스카의 표정이 여유롭다 못해 지루해 보일 정도였기 때문이다.

오스카가 말했다.

“‘S급인가. 한창 자기가 세상의 꼭대기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 경지군.’”

마치 상대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말투.

윤한의 몸이 굳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S급인 자신을 밑으로 깔아 보다니. 그게 가능하려면 상대는―.

“‘보여 주마, S급 위에 무엇이 있는지.’”

챙! 윤한을 밀친 오스카가 자세를 잡았다.

윤한이 표정을 굳혔다.

느낌이, 굉장히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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