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114화 (114/117)

115화 또 시작했네 (3)

바르세알은 백한영이 집필한 <백일영 빙의하다!>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우선 글 내용은 둘째 치고 제목부터가 별로였다.

제목은 소설을 소개하는 도구였다.

저런 제목으로는 이 소설이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백일영이라는 인간이 빙의하는 건 알 수 있겠지. 하나 그 이상은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었다.

백일영이 어떤 인간인지, 어디에 빙의하는지 알 수 없었다.

거기에 더해 이게 판타지인지, 무협인지, 현판인지 구별이 안 됐다.

실패한 제목이라는 뜻이다.

두 번째로는, 당연하지만 글 내용이 별로였다.

문장은 좋았다. 장르 소설을 많이 읽고 무공서를 집필하며 내공이 쌓여서 그런가. 글 자체는 술술 읽혔다.

근데 딱 그게 끝이었다.

글은 잘 읽힌다. 소설에서 이건 딱히 칭찬은 아니었다.

글이 잘 읽히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고, 중요한 건 재미였으니까.

그리고 백한영의 글에는 재미가 결여돼 있었다.

다 제쳐 놓고 프롤로그가 초등학교 시절인 것만 봐도 그랬다.

제목에 빙의가 들어가 있는데 빙의를 30화쯤에 하는 게 말이 되는 짓인가. 흥미 없는 내용을 30화나 늘어놓고도 남아 있을 독자는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30화가 지나면 확실히 재미가 보장되냐? 그것도 아니었다.

30화를 참고 본 독자에게 주어지는 건 아직 재능을 일깨우지 못해 헛짓거리를 하는 주인공이었다.

요약하자면 백한영의 소설은 대략 200화부터, 스승이 죽은 후부터 재미 포인트가 등장했는데, 유사 이래 이런 게 유행했던 시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바르세알은 고민했다. 이 소설을 어떻게 해야 살릴 수 있을까.

우선 손에 든 패를 확인해야겠다.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십니까?”

“조건? 딱히?”

“그렇다는 건 초반부를 바꿔도?”

“재미만 있다면야 뭘 하든 상관없지.”

위인전을 쓰고 싶은 것도 아니고, 재미만 있다면 백한영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백일영의 일대기를 초등학교부터 시작한 건 그게 재밌을 거라고 생각해서지, 특별한 의도가 있던 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쉽군요.”

“쉬워?”

“백한영 님의 과거는 굴곡이 많습니다.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뜻이죠.”

“사람들은 별로 안 좋아하던데?”

“시대가 따라오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때문에 살짝 변화를 줄 겁니다.”

바르세알은 어디서 가져온 건지 알 수 없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이어 말했다.

“일단 시작은 백한영 님이 빙의된 시점으로 합니다.”

“그리고?”

“백한영 님의 각성 순간을 살짝 앞당깁니다.”

백한영은 스승이 죽는 순간 재능을 각성했다.

천령(天靈)을 각성한 건 시간이 좀 많이 지난 후였지만, 기본적인 재능들은 스승이 죽는 순간 대부분 깨달았는데.

그 시기를 조금 당기는 거다.

“얼마나?”

“처음부터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걸로 하죠.”

“그래도 되나?”

“됩니다.”

각성이니 뭐니 귀찮은 건 다 집어치우고, 처음부터 그냥 천재인 걸로 하는 게 맞았다.

제목도 바꾸는 게 좋겠지.

알고 보니 무공천재로.

“조금만 기다리시면 바로 결과로 보여 주겠습니다.”

“화이팅.”

백한영의 응원에 힘입어 바르세알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바르세알은 백한영이 명령하자 하루 만에 각종 무공서와 훈련장을 만든 경력이 있었다.

바르세알은 중급 신위를 얻은 승천자. 하루 만에 무공서와 훈련장을 만드는 것쯤이야 그에겐 간단했다.

같은 맥락으로 소설을 쓰는 것 또한 그에겐 간단한 일이었다.

순식간에 50화 분량을 써 버린 바르세알은 내용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마음만 먹으면 50화가 뭐야. 5,000화도 순식간에 쓸 수 있었지만, 바르세알은 그러지 않았다.

백한영에게 바칠 음식을 모두 수제작을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심지어 이건 더 심했다.

무려 백한영의 일대기다.

절대 허투루 다룰 수 없었다.

백한영에게 들었던 그의 일대기를 떠올리며 소설을 다듬은 바르세알은 썬피아에 50화 분량을 업로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타이밍 좋게 투데이 베스트에 들어간 <알고 보니 무공천재>는 빠르게 조회 수를 올리며 인기를 끌었다.

양질의 내용이 담긴 소설이 50화씩이나 올라온 거다.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재능을 각성하는 시기를 앞당겨 내용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사람들이 백한영의 일대기를 좋아하니 바르세알도 덩달아 신이 났다.

바르세알의 손이 춤을 췄다. 키보드가 불을 뿜었다.

하루 만에 300화 분량을 써 버린 바르세알은 고민했다.

이걸 한 번에 푸는 게 나을까, 아니면 천천히 푸는 게 나을까.

‘백한영 님의 이야기다. 최대한 빨리, 모든 사람이 읽어야 된다.’

결정을 내린 바르세알은 약 300화 정도 되는 분량을 썬피아에 투하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야, 지금 무료 1위 뭐냐? 버그냐?>

하루 만에 300화가 올라왔는데?

┗뭐야, 진짜네?

┗┗쟤 뭐임?

<알고 보니 무공천재 이거 재밌네.>

빙의물에 천재라길래 익숙한 맛인 줄 알았는데, 익숙한 맛이긴 한데 깊이가 다름. 무공 묘사가 매우 디테일 한 게 마음에 듦.

┗진짜 무림에서 살다 온 것 같은 현장감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게 느껴짐.

┗┗진짜 살다 온 것 아님? 게이트도 열렸는데 안 될 게 뭐임.

자기도 모르게 정답을 맞혀 버린 사람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바르세알은 고개를 끄덕이며 키보드를 잡았다.

이제 300화를 썼으니, 앞으로 약 700화 정도만 쓰면 1부 끝이었다.

* * *

그렇게 백한영과 바르세알, 구체적으로는 바르세알이 고생하며 무협 소설을 집필하고 있을 때.

무림에서 살다가 죽고 환생한 한국계 중국인, 주리엔은 협력 요청을 받고 미간을 찌푸렸다.

“여긴 어디야. 페루?”

페루는 어디에 있는 나라야.

23년간 살았음에도 아직 이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주리엔은 인터넷으로 페루의 위치를 검색하고는 작게 혀를 찼다.

꽤 머네. 게이트는 대체 왜 여기에 열린 거야, 사람 귀찮게.

잠깐 고민한 주리엔은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겠습니다.”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관계자와 연락을 마친 주리엔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흘긋 컴퓨터가 있는 곳을 바라본 주리엔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최근 게이트가 너무 많이 열리는군.’

얼마나 자주 열리냐면, 게임을 좋아하는 주리엔이 최근 <창천지로>에 접속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였다.

백한영 걔랑 같이 공성전 하기로 했는데, 서로 바빠서 파투가 났네.

이번 게이트를 공략하면 시간에 여유가 생길 것 같으니 다시 말해 볼까.

주리엔은 백한영과 요즘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성들을 때려 부수는 상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촤악. 창문가로 가 커튼을 걷자 고층 아파트에서 바라보는 도시 뷰가 주리엔을 반겼다.

북경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의 펜트하우스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주리엔은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화산파(華山派)의 매화검신이라고 불리던 시절의 일을.

전생에서 주리엔은 부모를 잃었다. 마적단의 짓이었다.

어마어마한 충격에 멍하니 앉아 죽기만을 기다리던 주리엔을 구해 준 건 화산파의 한 도사였다.

그래. 주리엔의 스승이었다.

스승에게 거둬진 주리엔은 이름을 받게 된다.

청진(靑眞)이라는, 주리엔에게 있어 의미가 깊은 이름을 말이다.

청진을 거둔 스승은 화산파 내에서 인망이 깊은 사람이었다.

비록 무공이 고강하진 않았지만, 인품이 뛰어나고 무공에 대한 지식이 많아 사람들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때문에 청진은 노력했다.

자신을 거둬 준 스승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몸을 단련했다. 그 결과 청진은, 10대의 나이에 검에서 매화(梅花)를 꽃피우는 데 성공했다.

그 뒤로는 뭐, 일사천리였다.

용봉지회(龍鳳支會)에서 우승했다. 이미 검에서 매화 향이 나는 매화검수를 이길 후기지수는 많지 않았다.

수십 년 전 이름을 떨치고 은둔한 마두를 때려잡았다.

이때 청진은 자신의 심상에 매화나무가 한 그루 있는 걸 발견했다.

무림일통을 선언한 마교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이때 청진은 화산파의 매화검수로서 전쟁에 참여했다.

기나긴 싸움이 시작됐다. 후에 무림사에서 10년 전쟁이라 기록될, 기나긴 싸움이.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수많은 피가 흘렀다.

독왕이 죽었다.

검후가 죽었다.

검왕이 죽었다.

검마 죽었다.

권마가 죽었다.

혈창이 죽었다.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고수가 죽었고, 기어코 정파의 희망인 무림맹의 맹주, 태극검존이 죽은 그날 사람들은 절망에 빠졌다.

천마를 이길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적의 수장을 쓰러트린 천마가 무림을 일통하기 직전.

청진은 조용히 검을 들었다.

스승의 유지를, 화산파를 지키기 위해선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청진은 검을 휘둘렀다. 계속해서, 쉬지 않고. 계속.

그리고.

기어코 현경, 천마와 동등한 경지에 오른 청진은 천마를 베어 넘겼다.

무림을 마교로부터 구해 냈다.

세상이 청진의 이름을 칭송했다.

매화검신(梅花劍神)이라는 별호는 이때 만들어졌다.

기나긴 전쟁이 끝나자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청진을 칭송했다.

하지만 그러한 현실을 청진은 오래 즐기지 못했다.

천마와의 싸움에서 얻은 내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내 사망한 것이다.

여기까지가 청진의, 전생의 얘기라면.

이다음부터는 주리엔의, 현생의 얘기가 시작됐다.

주리엔은 유복하게 태어났다. 청진과는 반대였다.

주리엔이 펜트하우스에서 살고 있는 건 그의 능력이 뛰어난 덕이었지만, 설사 백수였어도 여기에서 살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유복한 가정에서 주리엔은 환생했다.

환생한 세계는 참으로 재미없는 곳이었다.

우선 이 세상엔 기(氣)가 없었다.

주리엔의 전생의 삶 또한 무협지라는, 가상의 세계로 취급됐다.

그것이 주리엔을 참 공허하게 만들었다.

그토록 치열했던 삶이 픽션 취급 당하다니.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주리엔이 무협 게임을 찾아 굳이 매화검수에 집착한 건 그러한 심리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주리엔은 수많은 게임 속에서, 픽션 속에서 전생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나 실패했다. 게임과 픽션은 어디까지나 가짜일 뿐. 진짜였던 전생의 삶을 대신해 주지 못했다.

나이를 먹어 가며 주리엔은 타협했다.

전생의 삶은 잊고, 매화검수의 삶은 잊고 현재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주리엔은 놓고 있던 펜을 잡고 대학이라는, 지극히 이 세계의 사람 다운 목표를 향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게이트가 열렸다.

거의 15년 만에 느껴 보는 기(氣)의 존재에 주리엔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의 본질은 언제까지나 매화검수였다.

그것은 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주리엔은 게이트가 열린 그날 검을 잡고 거리로 나가 몬스터를 베어 넘겼고, 검제라는 별호를 얻었다.

여기까지가 주리엔의, 23년간 인생을 요약한 얘기라고 할 수 있었다.

중국의 S급 헌터 주리엔은 커튼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채비를 갖췄다.

페루에 열린 S급 게이트를 공략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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