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111화 (111/117)

112화 S급이 되고 싶으시다고요 (4)

천진혁을 돌려보낸 백한영은 새로운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김영운과 용대하였다.

주섬주섬 밀짚모자와 선글라스를 점검하던 백한영은 작게 중얼거렸다.

“뭐지. 요즘 왜 이렇게 손님이 많지?”

요 근래 유독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 같아 백한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김태식이 말했다.

“그야 S급이 되셨잖아요. 관심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죠.”

“누가.”

“누구냐니, 형이잖아요.”

“내가 S급이라고? 나 그거 거절했는데?”

협회에 방문해서 등급 테스트를 보라고 자꾸 재촉하길래 싹 다 거절했는데, 웬 S급.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거절했건만, 누구야. 누가 멋대로 나를 S급으로 만들었어.

“몰랐어요?”

“당연히 몰랐지. 어쩐지 이상하더라.”

“협회에서 자체적인 판단으로 승급시켰나 보네요. 형이 이세계에 가 있어서 전달이 안 된 거고요.”

“결국 주머니의 송곳니는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건가.”

후우. 협회 놈들도 옹이구멍은 아니었군. 내 실력을 눈치채다니.

그래. 태식이가 S급인데 내가 A급인 게 말이 되나. 사실 살짝 거슬리긴 했어.

“그러면 뭐야. 우리 길드는 S급 각성자만 3명이네?”

“3명이요…….”

김태식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겉으로 보면 그렇긴 하죠.

김태식이 주변을 훑어봤다.

가장 먼저 길드원과 대련 중인 호문쿨루스가 보였다. 김태식 입장에선 강아지 산책 알바를 고용한 느낌이었다.

호문쿨루스 덕분에 배예린이 더는 대련을 해 달라고 김태식을 귀찮게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하루 종일 대련을 해 주는 존재가 등장해 배예린이 기뻐 날뛰고 있는 와중, 유독 눈에 띄는 녀석이 있었다.

“…….”

멍한 표정으로 신유나와 대련 중인 백이영이 김태식의 시야에 잡혔다.

백이영은 무려 심상병기(心像兵器)를 사용했다. 김태식과 같은 경지에 올랐다는 뜻이다.

즉 각성자 등록을 안 했을 뿐, 백이영의 등급은 S였다.

‘거기에.’

김태식은 이번엔 백한영을 껌딱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여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스승님,”

“어, 왜.”

“나 검술 가르쳐 줘.”

“잘하고 있는데 뭘 가르쳐 줘.”

“나도 스승님의 검술 배우고 싶어, 마빈처럼.”

백한영의 제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의 이름은 아일라로, 무려 김태식보다 한 단계 위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었다.

김태식의 경지를 무협식으로 하면 화경(化境), 아일라는 현경(玄境)이라고 불렀다.

즉, 화경인 김태식이 S급이니 현경인 아일라는 SS등급인 것이다.

벌써 길드에 S등급과 SS등급이 하나 추가됐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백한영 님, 디저트가 준비됐습니다.”

“수고했어. 세레나도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백한영의 수행원이라는 바르세알과 세레나의 힘도 심상치 않았다.

훈련장을 개조한답시고 천지를 개벽한 바르세알의 마법은 아직도 김태식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세레나는 어떻고. 백한영이 손님 때문에 바쁘자 세레나는 백한영 대신 아일라와 대련해 줬는데, 놀랍게도 아일라에게 크게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 우위를 점한 느낌도 있었다.

SS등급인 아일라에게 우위를 점한다? 그것은 세레나도 SS등급이라는 소리였다.

요약하자면 현재 무신련 길드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S등급 말고도 S등급이 하나, SS등급이 둘, 등급 측정 불가가 하나. 이렇게 총 4명의 전력이 더 존재했다.

말하고도 어이가 없었다.

지구 방위대라도 되나. 무슨 길드 하나에 이렇게 전력이 모여 있어.

…실제로 지구 방위대가 맞긴 한가.

김태식은 지난달에 백한영이 밤새 해 줬던 얘기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지구가 위험하다고 했지.’

갑자기 지구가 위험하다니. 굉장히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김태식은 그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자가 백한영이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요즘 세상이 흉흉한 게 더 컸다.

아닌 말마따나 진짜로 지구가 위험해 보인 것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S급 게이트 발생률. 각성 범죄 등등.

세상을 위협하는 요소가 점차 늘어만 갔다. 백한영의 말대로 충분히 지구가 위험해질 수 있었지만.

김태식은 의외로 마음이 편했다.

같이 지구를 구할 방위대가 굉장히 든든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백한영이 든든한 거긴 했지만.

‘한영이 형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 수련이나 하자.’

상념을 마친 김태식은 천천히 아일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부탁드립니다.”

“알겠어.”

백한영을 졸졸 따라다니다 말고 검을 뽑는 아일라와 대련을 시작한 김태식.

그런 김태식을 흘긋 바라보던 백한영은 이내 훈련장 내부를 거닐었다.

손님이 올 때까지 다른 길드원의 상태를 점검할 생각이었다.

백한영은 한 훈련장에 도착해 입을 열었다.

“동협아, 살아 있니.”

“…교관님.”

바닥에 엎어져 있던 최동협이 죽을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백한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살아 있구나. 수고해라.”

“잠깐만요, 교관님! 저도 대련으로 훈련하면 안 될까요?”

“대련? 으음.”

최동협은 그동안 눈에 띄게 바뀌었다.

지옥 훈련을 겪으며 잡생각이 사라진 덕에 권로(拳路)를 고를 때 딜레이가 생기던 문제가 많이 해결된 것이다.

확실히 이 정도로 궤도에 올랐으면 대련을 해도 됐다. 이미 안 좋은 습관은 어느 정도 고쳐진 거니까.

하지만.

“효율이 떨어져.”

“네?”

“동협아, 너는 나무 공이 어울려.”

대련을 하는 것보다 그냥 나무 공에게 두들겨 맞는 게 더 훈련 효율이 좋았다. 구체적인 수치로 따지면 한 2배 정도.

대련 같은 걸 할 이유가 없었다.

최동협이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는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되나요…….”

“적어도 현경은 되어야겠지?”

“현경이요…….”

현경의 경지에는 올라야 나무 공 훈련의 효율이 떨어지는 거지, 그 전까지는 그냥 이게 맞았다.

“알아들었으면 정진해.”

“네…….”

다시 나무 공에게 두들겨 맞기 위해 일어나는 최동협을 뒤로한 채 백한영은 이번엔 신유나에게 향했다.

콰아앙!

백이영의 심상병기와 신유나의 빛의 검이 부딪치며 땅이 울렸다.

신유나의 빛의 검이 팔괘(八卦)를 점했다.

팔괘를 점한 빛의 검이 구궁(九宮)으로 퍼졌고, 이내 팔괘로 돌아왔다.

광륜봉시진(光輪封時陣).

극한에 이르면 시간조차 붙잡을 수 있는 합격진이 성공적으로 발동된 것이다.

생로(生路)가 하나밖에 남지 않아 움직임이 제한된 백이영을 향해 신유나가 달려들었다.

분광검법(分光劍法), 1식.

일광분참(一光分斬).

분광검법은 빛을 가르는 검법이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물질인 빛을 좇는 검법인 만큼 분광검법 또한 극도로 빠른 쾌검의 성질을 띠었다.

분광검법의 창시자가 바란 것은 그 누구도 반응하지 못하는 극한의 쾌검.

때문에 신유나의 검 또한 상상을 초월하는 빠르기로 백이영을 노리고 쏘아졌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하는 속도로 쏘아지는 검을 백이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눈에 담으며 똑같이 검을 움직였다.

백이영류, 1식.

광영(光影).

그림자는 실제를 바짝 뒤쫓는 존재니.

따라서 빛의 그림자 또한, 빛과 똑같은 속도를 가지리라.

콰아앙!

분광검법을 자기만으로 해석한 백이영의 검법에 신유나의 빛의 검이 산산조각 나 버렸다.

“더 할 거야?”

모든 수단이 막혀 버린 신유나를 상대로 백이영이 말했다.

무감정한, 정말 순수하게 더 할 것인지 물어보는 말투에 신유나는 재차 빛의 검을 생성했다.

저 아무 감흥이 없는 말투를 들으니 더욱 저 녀석을 꺾어 주고 싶어졌다.

“그렇게 여유로운 것도 지금뿐이야.”

백이영과 매일같이 대련하며 신유나는 그 어느 때보다 영감을 자극받는 중이었다.

아른거렸던 심상경의 경지가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백한영은 심상경을 코앞에 둔 신유나를 구경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원이 아주 잘 육성되고 있었다.

‘최동협도 순조롭게 본능과 생각이 일체화되는 중이고, 신유나도 심상경이 코앞이고. 이러면 일단 1단계 목표는 전부 달성했네.’

길드원 전부를 S급으로 만든다는 계획이 성공한 것을 기뻐하며 백한영은 이번엔 신입 길드원들을 살피러 이동했다.

백일영, 백삼영과 치고받는 중인 청진호와 배예린.

최근 A급에 오른 두 사람이었지만, S급, 그러니까 화경에 오르려면 아직 멀어 보였다.

그런데 당연했다. 쟤네가 벌써 S급이 되는 건 말도 안 되지. 무공을 본격적으로 배운 지 얼마나 됐다고.

누구는 절정에서 화경이 되자마자 현경이 되었고, 누구는 검을 잡은 지 한 달 만에 화경이 되지 않았냐고?

재능의 차이가 다르잖아.

아일라와 마빈은 굳이 비유하면 이쪽의 천진혁과 비슷한 수준의 재능인데, 청진호와 배예린이 천진혁과 비슷한 수준은 아니잖아.

‘그래도 빠르게 S급이 되겠다. 특히 배예린.’

배예린은 다른 것보다 무공을 대하는 자세가 굉장히 이상적이었다.

뱨예린은 싸움광이었다. 하루 종일 대련을 하고 싶어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평화로운 현대에서 저런 기질을 가진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였다.

물론 싸움광이 평범한 기질보다 무공을 배우기 유리한 건 맞았지만 반드시 나은 건 아니었는데, 배예린은 싸움광 성질이 좋게 작용하는 케이스였다.

싸움을 통해 강해지고 싶어 했으니까.

상승 욕구가 강하다는 뜻이다.

더 강한 녀석과 싸우고 싶은 게 이유긴 했지만, 아무튼 싸움광 성질이 좋게 작용하는 배예린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청진호는 배예린처럼 싸움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이쪽도 나쁘지 않았다.

‘얘는 그냥 지길 싫어하네.’

배예린이 빠르게 성장하니 그에 자극받아 강해진 경우였다.

마빈을 보고 자극받은 슈진과 비슷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신입 길드원들도 순조롭게 성장 중인 걸 확인한 백한영은 고생하라는 말을 남긴 후 던전 게이트 중앙으로 향했다.

던전 게이트 중앙. 혹시나 누가 접근하지 못하게 이런저런 장치를 도배해 놓은 곳에 도착한 백한영은 턱을 쓰다듬었다.

백한영의 눈앞에는 검은 원이 둥둥 떠 있었는데,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허공에 구멍이 뚫려 있는 듯한 모양새였으니 말이다.

‘금성화도 잘하고 있네.’

시공간이 괴리된 장소에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수련을 해야 되는 거다.

보통이라면 정신이 나가겠지만, 놀랍게도 금성화는 괜찮게 수련을 이어 가고 있었다.

물론 아예 멀쩡하진 않고 가끔 괴성을 지르고 있긴 했지만, 저 정도면 괜찮은 거였다.

주화입마에 걸리진 않았으니까.

‘태허진을공(太虛眞乙功)을 일반적인 심법보다 약간 느린 속도로 연공할 수 있는데, 저 정도면 양호한 거지.’

태허진을공(太虛眞乙功). 그것은 도가 중의 도가인 전진교의 무공으로, 백한영이 알고 있는 무공 중 가장 느린 무공이었다.

하지만 태허진을공이 느린 이유가 어려워서 혹은 하자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태허진을공은 전 우주에 있는 가장 순수한 기운을 모으는 심법이다.

생명의 원천이라는 선천지기(先天眞氣)보다 더 순수한, 우주의 근원과도 같은 기운을 모으는 심법.

그런 기운이 흔할 리 없었고, 때문에 태허진을공은 대기 중의 기운을 흡수해도 많은 내공을 얻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연공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태허진을공은 전진교에서 사장됐지만, 백한영은 태허진을공을 다르게 생각했다.

기운을 모으는 게 힘들어서 사장된 무공이라면, 기운을 모으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백한영은 실천했다.

검을 휘둘러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기운, 태허진을력이 모인 장소를 만들고 그 안에 금성화를 집어넣은 것이다.

으아아악!

아무런 감각이 안 느껴지는 장소에 한 달을 넘게 갇혀 있던 탓에 정신이 살짝 나가 버린 금성화의 목소리를 들으며 백한영은 몸을 돌렸다.

전부 멀쩡한 것 같으니, 슬슬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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