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109화 (109/117)

110화 S급이 되고 싶으시다고요 (2)

검맥의 부길드장, 김영운의 하루는 바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길드인 검맥의 부길드장이 바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김영운은 너무나도 바빴다.

길드장인 천진혁이 길드 운영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길드장 대리와 부길드장의 역할까지 전부 맡아서 처리하는 김영운은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빴는데, 그 와중에 개인 수련까지 하니, 타인의 시선으로는 일에 미친 사람으로밖에 안 보였다.

아니면 혼자만 하루가 48시간이든가. 참고로 그의 부하들, 검맥의 간부들은 후자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아무튼 검맥의 헤르미온느, 김영운은 오늘도 일과를 마치고 개인 수련실에 틀어박혔다.

수련실 정중앙에 앉은 김영운은 몇 달 전의 일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피를 한 움큼 토해 내고 무릎을 꿇는 용대하. 그 앞에 선 용인.

[아무런 미학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런 철학도 느껴지지 않는다. 고찰 없는 주먹의 한계란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지… 랄하네.”

위기에 빠진 용대하를 위해 앞으로 나서는 김영운. 그리고.

[너는 더하군.]

퍽.

회상에서 벗어난 김영운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서울 브레이크 때의 일은 몇 번을 떠올려도 몸이 굳었다.

‘미학도, 철학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S급에 도달한 용대하의 주먹이 그렇다면, S급 근처도 가지 못하고 있는 나는 어떻다는 거지?

그에 대한 답을 용인이 이미 내려 주긴 했다.

너는 더하군, 이라고.

‘이게 내 한계인가.’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김영운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포기하고 멈춘다면 그것은 도태되는 길이었다.

김영운의 등급은 A급. 그것도 A급 중 상위권에 속하는 실력자였다.

어딜 가나 대우받는 강자라는 뜻이었지만, 김영운은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의 목표가 원래 높은 것도 있었지만, 그는 검맥의 부길드장이었다. 일반인은 모르는 정보를 매일같이 접한다는 뜻이다.

‘각성자들의 수준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게이트가 열리고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당연히 수많은 정보가 풀렸고, 수많은 각성자들이 생겨났다.

늘어난 인재 풀과 향상된 교육법. 그것들이 가져올 여파를 예측하긴 쉬웠다.

A급 각성자가 점점 늘어 가고, 그에 따라 자연히 A급 각성자의 지위가 내려갈 것이었다.

더는 A급 각성자가 희귀하지 않을 테니까.

이 굴레에서 탈출하는 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S급이 된다.’

물론 S급 각성자도 점점 늘 것이었다. 당연했다. 기본적인 각성자 인구수가 느니 S급 각성자도 늘 수밖에 없었다.

하나 S급 각성자는 늘어 봤자 한계가 있었다.

S급은 선택받은 자들의 경지.

아무리 교육법이 향상돼도 S급에 도달하는 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S급은 귀하게 취급될 것이고, 때문에 검맥의 부길드장으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S급이 돼야만 했다.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게이트의 위험성이 커진다.’

당장 저번 주만 해도 태국에서 S급 게이트가 발생했다.

국제적인 공조로 다행히 큰 피해 없이 막아 냈지만, 언제까지 이번처럼 막아 내는 게 가능할 리 없었다.

이번 연도에만 S급 게이트가 벌써 몇 번째인가. 이러다가 S급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이라도 한다면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었다.

국제적으로 점점 늘어나는 각성 범죄는 어떻고. 자신들이 초월자니 신인류니 하며 세상의 정점에 서려는 미치광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시대다. 아무리 생각해도 A급 정도로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게 불가능했다.

‘오버로드라고 했던가.’

그런 미치광이들의 정점이 바로 ‘오버로드’였다.

유럽에 본거지를 두고 사실상 전 세계, 특히 제3세계에서 난리를 치는 오버로드는 세계적인 골칫거리였다.

관계자들의 예측으로는 오버로드의 수장인 아더의 등급이 최소 S급이고, 어쩌면 S급을 뛰어넘었을지도 모른다던가.

김영운의 입장에선 어처구니없는 소리였다.

인류 최강인 검신 천진혁이 아직 S급에 머물고 있는데 SS급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무튼 이렇게 세상이 어지러운 만큼 더욱 성장에 집중해야 됐다.

결국 마지막에 믿을 수 있는 건 자신의 손에 들린 검밖에 없으니까.

김영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명상을 끝냈으니 수련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가볍게 검을 뽑아 든 김영운이 위에서 아래로 검을 그었다. 그 순간.

“우리 검맥의 부길드장님은 오늘도 열심히 수련하네?”

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였기에 김영운은 쳐다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용대하 님은 여기 웬일이십니까.”

“왜긴. 잘하고 있나 궁금해서 들렀지.”

“제 신경을 쓰실 때입니까? 요새 힘드신 것 같던데요.”

용대하는 서울 브레이크가 터진 그날 S급의 벽을 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근 김태식과 백한영이 S급이 될 때까지 대한민국의 S급 각성자는 3명이 끝이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S급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용대하의 힘이 안정적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하하.”

용대하는 김영운의 지적에 시원하게 웃었다.

원래는 이 말을 하면 버럭 화를 내던 양반인데, 갑자기 웃는다고?

설마?

“S급이 되신 겁니까.”

“최근 성취가 있었지.”

“축하드립니다.”

용대하의 말에 김영운은 순순히 축하해 줬다. 용대하의 S급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는 같은 A급인 김영운이 잘 알았다.

김영운의 축하에 용대하가 손을 휘저었다.

“됐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긴.”

“마음에도 없는 말이라뇨. 저도 S급을 노리는 입장에서 그동안 용대하 님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잘―.”

“속이 뒤틀리잖아. 네 말 그대로 돌려주마. 너랑 같이 S급을 노리던 입장에서 네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냐?”

김영운이 입을 다물었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물론 김영운에게 용대하의 성취를 축하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은 건 아니다.

그랬으면 빈말로라도 축하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축하가 정말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이라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용대하가 S급이 됐다는 얘기를 듣고 김영운이 가장 먼저 떠올린 감정은, 다름 아닌 열등감이었다.

또 누군가가 앞서갔다.

나는 제자리에 있을 때, 유망주에 불과했던 김태식이 S급이 됐을 때.

나만이 늘 A급 상위권에 머물고 있다.

누군가는 의식하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게 정답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힘들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무시하고 어떻게 자신에게 집중한단 말인가.

S급의 벽에 몇 년째 막혀 있음에도,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에게 집중한단 말인가.

불가능했다.

‘뭐가 문제지?’

김영운은 다시금 고민에 빠졌다.

김영운의 각성 능력은 바람을 제어하는 풍림화신(風臨化神).

천진혁이 그랬던 것처럼 검에 집중하기 위해 각성 능력을 등한시했는데, 그것이 문제였을까?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각성 능력에 집중해야 되나?

이제 와서? 그게 통할까?

통하지 않는다면 방법은 있나?

[아무런 미학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런 철학도 느껴지지 않는다. 고찰 없는 주먹의 한계란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너는 더하군.]

용인이 했던 말이 김영운의 머릿속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미학, 철학, 고찰.

이게 정말 내게 부족한 것이란 말인가?

저걸 채웠기에 용대하는 완벽한 S급이 된 것인가?

계속되는 의문에 김영운이 입을 열었다.

“용대하 님.”

“오냐.”

“어떻게 S급이 됐습니까.”

“잘.”

용대하스러운 답변이었지만, 김영운은 굴하지 않고 재차 물었다.

“서울 브레이크가 터진 그날, 용인은 말했습니다. 용대하 님에게 부족한 건 미학, 철학, 고찰이라고. 저는 그보다 더하다고.”

“그랬었던가.”

“그러한 지적을 받아들이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어서 S급이 되신 겁니까?”

“이봐, 김영운.”

용대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딴 뱀 대가리의 지적에 바뀔 나였으면 처음 게이트 공략을 한 그날, 팀원에게 정신병자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바뀌었어. 그리고 S급이 못 됐겠지.”

“그러면 제게 부족한 건 대체 뭐란 말입니까!”

“자기 확신이 부족한 거겠지. 말하는 꼬라지 보니까 딱 보이네. 잘하나 보러 왔더니 삽질만 하고 있었나. 그러니 언제까지고 A급인 거야.”

작게 혀를 찬 용대하는 이내 천천히 이어 말했다.

“너 자신도 스스로를 못 믿는데, 새로운 경지가 열리겠냐. 무조건 믿어야지, 세상이 너를 정신병자라고 욕할지언정.”

“무엇을 믿으란 말입니까.”

“뭐야. 그런 당연한 것도 몰라?”

용대하가 허허 웃었다. 이런 당연한 것도 모르다니. 그러니 저리 이리저리 휘둘리지.

용대하는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고 진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기가 S급이 될 수 있을 거라고 강하게 믿어야지.”

“…믿고 있습니다.”

“아니. 안 믿고 있어. 믿었으면 애초에 이렇게 흔들리지도 않아. 어차피 S급이 될 텐데 흔들릴 이유가 있나?”

맞는 말이었다.

김영운은 S급을 강하게 열망했지만, 동시에 회의적이었다.

스스로의 재능으론 S급이 되지 못할 거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게 문제였나.’

김영운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왜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고 있는지는 알았다.

하지만 알았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생기진 않았다.

애초에 믿음이 생기지 않으니 이렇게 된 건데, 자신을 믿으라고 해도 갑자기 믿을 수 있을리가.

그런 게 가능한 인간은 둘 중 하나였다.

생각이 없거나, 최면에 능하거나.

둘 중 어느 것도 아닌 김영운에게는 정답을 알았음에도 방법이 없었다.

‘방법이 없나.’

답답한 마음에 김영운이 한숨을 쉬었다.

그걸 본 용대하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정 안되면 그 사람이라도 찾아가 보든가.”

“그 사람이라면?”

“있잖아, 요즘 가장 유명한 인간. S급을 공장에서 찍어 내듯 찍어 낸다던데?”

“백한영 씨 말입니까. 공장에서 찍어 내듯 만든다는 건 과장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결론입니다.”

그나저나 백한영이라.

과연 그 인간이 자기 길드원도 아닌 내게 그러한 수고를 들여 줄까?

‘그래. 밑져야 본전이다.’

어차피 더는 잃을 것도 없었다.

이대로 영원히 벽에 막혀 있는 것보다는 안면에 철판을 깔고서라도, 무릎을 꿇어서라도 방법을 찾아보는 게 맞았다.

“감사합니다, 용대하 님.”

“감사는 무슨, 말 몇 마디 한 것 가지고. 고마우면 나도 같이 데려가. 백한영 그 인간 뭐 하는 녀석인지 궁금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김용운과 용대하가 백한영을 만나러 가기로 결정된 그 시각.

무신련의 길드원들이 훈련장으로 쓰는 강원도 던전 게이트 인근.

그곳에 누군가 도착했다.

“여기인가.”

남자는 무감정한 표정으로 던전 게이트를 바라봤다.

‘백한영.’

남자, 천진혁은 자신을 여기로 초대한 사람의 이름을 속으로 중얼거리곤 천천히 던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벽을 넘기 위해선, 백한영의 도움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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