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이 귀환했다-101화 (101/117)

102화 아카데미 속 엑스트라 (2)

“이걸로 아카데미에 있는 애들은 얼추 다 봤네.”

“마음에 드십니까?”

“내 마음에 들려면 내 재능 근처라도 따라와야 되는데, 그런 애들이 있겠냐.”

“확실히 그렇군요.”

“그래도 그나마 괜찮은 애들은 있어.”

백한영은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며 찾아낸 애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무술학과 수석, 아일라 펜드라.

무술학과 차석, 슈진 프라일러.

마법학과 낙제생(예정), 마빈 플리밀.

이 중 누가 가장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면, 마빈, 아일라, 슈진 순으로 마음에 들었다고 대답하겠다.

“그런데 저놈들이 백한영 님의 위대함을 알아보고 순순히 가르침을 받을까요?”

“너도 못 알아보고 건방진 놈 어쩌고 하면서 덤볐는데 그럴 리가. 아마 무슨 개소리인가 싶어서 무시할걸?”

“이런. 곤란하군요.”

“딱히 안 곤란하긴 해. 무려 이 세계의 주신에게 의뢰를 받은 건데, 방법이야 많지.”

“어떤 방법 말입니까?”

바르세알의 물음에 백한영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황제 몇 번 갈구면 방법이야 생겨.”

“과연. 이 바르세알, 탄복했습니다.”

* * *

아일라 펜드라는 자작가의 영애였다.

아일라가 비범함을 드러낸 건 그녀가 자작가의 영애로서 처음 교육을 받았을 때였다.

먼 훗날 좋은 집안과 결혼하기 위해서라도 각종 예법과 교양을 익혀야 되는 것이 귀족가의 영애.

때문에 아일라도 어렸을 적부터 예법과 교양을 배웠지만, 잘 안됐다.

첫 예법 수업부터 그녀의 재능이 주머니를 뚫고 나와 버린 탓이었다.

“아일라 양?”

“응.”

“방금 뭘 한 거죠?”

“나이프를 썼어.”

“그… 렇군요.”

테이블 매너에 대해 배우던 중, 나이프로 날아다니던 벌레를 반으로 베어 버린 것이다.

아일라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선생은 자작에게 그 일을 보고했고, 아일라는 검술 선생을 맞이했다.

그리고 검술 선생은 기겁하고 만다.

“아일라 영애는 천재입니다.”

난생처음 보는 재능에 벽을 느낀 것이다.

한 번 가르쳐 준 검술을 곧장 따라 한다.

심지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따라 한다.

그녀의 눈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그녀의 감각은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걸 느꼈다.

이런 자들을 세간에선 다음과 같이 불렀다.

‘천재’라고.

그렇게 아일라는 압도적인 재능과 집안의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다.

명망 높은 바벨 아카데미에 역대 기록을 갈아 치우며 입학할 정도로 말이다.

이른 아침, 아일라는 훈련실로 향했다.

아일라의 하루 일과는 똑같았다. 일찍 일어나 훈련을 하고, 수업을 듣고, 다시 훈련하다 지치면 잠에 든다.

다른 이가 보면 삭막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일라는 자신의 삶이 만족스러웠다.

그녀에겐 검술이 최고의 유흥이고 오락이었으니까.

검술의 세계를 걸어 나갈 때마다 흥분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이다.

“들었어? 황제 폐하께서 제국의 미래를 위해 인원을 선별해 특별 수업을 듣게 한다던데?”

“대륙 10강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나 봐.”

훈련장에 들어선 아일라는 주변인들의 말에 제자리에 멈춰 섰다.

다른 것보다 대륙 10강이라는 단어가 아일라의 관심을 자극했다.

아일라의 관심사는 두 가지였다.

하나, 검술.

둘, 정점.

세상의 정점에 서는 것. 그게 바로 아일라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표였다.

거기엔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 세계 최강자에게 부모님이 살해당했다든가, 부당한 일을 당해 복수심에 불탄다든가 하는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저 순수하게 맨 꼭대기 층의 경치를 보고 싶었다. 일종의 호기심일 지도 몰랐다. 저 위에서 바라본 경치는 어떨지 궁금한 것이다.

그런 아일라의 입장에서 대륙 10강은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언젠가 자신이 꺾어야 되는 자들이니까.

‘누구?’

대륙 10강은 다양했지만, 그중 아일라와 관련된 대륙 10강, 그러니까 무술가로 한정하면 5명 정도가 끝이었다.

검을 쓰는 사람으로만 추리면 2명이 끝이고.

‘붙어 보고 싶어.’

마음 깊은 곳에서 호승심이 올라왔다.

대륙 10강은 얼마나 강할까. 내 목표는 얼마나 높을까.

그걸 확인해 보고 싶었다.

‘언제 부르지?’

황제 폐하는 제국의 미래를 위해 인원을 선별한다고 했다. 거기에 자신이 들어가지 않을 리는 없었다.

어차피 받을 특별 수업, 최대한 빨리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일라는 검을 뽑아 들었다.

사방에서 시선이 쏟아졌다.

역대 기록을 갈아 치우며 입학한 어린 천재의 검술을 견식하고 싶은 사람이 많은 것이다.

아일라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며 검을 휘둘렀다.

무술학과 수석 정도의 인재에겐 개인 훈련실이 주어지지만, 개인 훈련실은 기숙사와 멀었다. 저녁이면 모를까, 아침엔 공용 훈련장을 쓰는 아일라였다.

아일라가 검을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그었다. 깔끔하고 절제된 검로였지만, 구경꾼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대 기록을 갈아 치운 천재의 검술치고 특별한 부분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일라가 재차 검을 들어 위에서 아래로 그었고, 그걸 계속 반복했다.

반복이 한 100번쯤 됐을까. 구경꾼들 중 몇 명의 눈빛이 바뀌었다.

검의 경로가 소름 돋을 정도로 일정했던 것이다.

마치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한 듯 똑같은 검로를 똑같은 강도로 움직이는 검.

그녀가 신체를 완벽에 가깝게 제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과연 천재.”

“저 정도는 해야 역대 기록을 전부 갈아 치우는 건가.”

그렇게 구경꾼들이 아일라의 검술에 한마디씩 보탰을 때였다.

“시끄럽군.”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훈련장 안을 가로질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공작가의 영식, 슈진 프라일러가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훈련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번 무술학과 신입생 차석과 수석이 전부 모였나.’

‘보기 드문 광경이군.’

매번 개인 훈련실을 사용하는 슈진이 공용 훈련장에 온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구경꾼들의 입을 다물게 한 슈진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아일라를 흘끗 본 후 검을 뽑아 들었다.

슈진은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했다. 타인 앞에서 검술 수련이라니. 광대도 아니고 그런 걸 좋아할 사람이 있을 리가.

하지만 그럼에도 슈진은 공용 훈련장에 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아일라가 이곳에 있었으니까.

‘아일라 펜드라, 반드시 꺾는다.’

슈진 프라일러의 어린 시절 또한 비범했다.

첫 검술 수업을 받은 날. 슈진을 가르친 기사단장은 크게 감탄했다.

그의 재능이 보통을 한참 뛰어넘은 것이다.

그렇게 슈진 프라일러는 재능과 공작가의 지원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다.

명망 높은 바벨 아카데미에, 차석으로 입학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슈진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재능이 또래 중 제일인 줄 알았다. 슈진을 가르친 선생 중 감탄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다음 세대 대륙 10강의 자리는 자신의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나 현실은 달랐다. 슈진의 재능은 뛰어났지만 제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앞에 하나는 확실히 있었으니까.

슈진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검이 움직였다.

구경꾼들이 속으로 감탄했다.

공작가 출신의 무술학과 차석다운 화려한 검술이 쉬지 않고 펼쳐졌다.

어쩌면 처음 아일라에게 바랐던 검술이 저런 것일지도 몰랐다. 딱 봐도 화려하고, 어려워 보이는 검술.

하지만…….

‘아일라 쪽이 몇 수는 위군.’

‘직접 비교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아일라가 펼친 검술이 화려한 검술보다 몇 배는 어렵다.’

정작 그러한 검술을 실제로 보고 나니 아일라의 재능이 더욱 돋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걸 슈진도 아는지 그의 검이 한층 빠르게 움직였다. 수련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아일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 그녀는 슈진을 의식한 게 아니라 곧 수업이라 그런 것이었지만.

아무튼 아일라와 슈진을 필두로 훈련장이 한층 달아올랐다.

그 순간.

“아일라 펜드라, 슈진 프라일러 있나?”

훈련장에 누군가 찾아왔다.

무술학과 교수였다.

아일라와 슈진이 수련을 멈추고 교수를 바라봤다.

교수가 말했다.

“학원장님의 호출이다. 행색을 갖춰서 학원장실로 가도록.”

* * *

가볍게 씻고 제복으로 갈아입은 아일라와 슈진은 나란히 학원장실로 향했다.

물론 둘이 친해서 나란히 걷는 건 아니고, 수석과 차석에게 지급되는 개인 저택이 붙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것뿐이다.

애초에 아일라는 슈진이 누군지 잘 몰랐다. 그녀의 관심사는 위로 향해있지 밑으로 향하지 않았으니까.

반대로 슈진은 아일라에게 관심이 많았지만. 이른바 엇갈림 통신이라는 거다. 특수한 진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학원장실에 도착한 슈진은 문을 두들긴 후 안으로 들어갔다.

‘저자는?’

슈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여기에 있어선 안 될 인간이 보였다.

슈진은 학원장실에 소심하게 앉아 있는 마빈을 보며 얼마 전의 일을 떠올렸다.

‘분명 며칠 전 가상현실 훈련장에서 봤던 놈이군.’

별 볼 일 없어 보였는데, 저자가 대체 여길 왜?

슈진의 의문은 타당했다.

맥락상 학원장이 슈진과 아일라를 호출한 건 특별 교육을 위해서가 분명했다.

즉 이곳에 온 사람은 제국의 미래를 위해 선별된 특별한 이들이라는 뜻이었는데, 거기에 저놈이 포함돼 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보기와 다르게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가?’

슈진은 학원장실에 먼저 와 있던 신입생, 마빈의 평가를 한 단계 높인 후 정면을 바라봤다.

“왔네?”

학원장의 자리에 학원장은 없고 웬 이상한 남자가 건들거리며 서 있었다.

저자는 누구지?

슈진은 공작가의 영식이다. 당연하게도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대륙 10강에 대한 정보도 포함돼 있었는데, 슈진이 기억하기로 대륙 10강에 저러한 자는 없었다.

‘하긴, 대륙 10강 정도의 강자가 아카데미에 와서 수업을 할 리가 없나.’

대륙 10강이 누구 집 애 이름도 아니고. 황제가 오라 가라 한다고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소문은 소문이었군. 괜히 기대했어.

살짝 실망한 슈진이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나를 가르칠 선생인가?”

“맞아.”

“실례가 안 된다면 어느 수준의 실력자인지 말해 줄 수 있나?”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가르칠 사람이다. 당연히 수준 정도는 알아 두고 싶었지만.

“내가 왜.”

상대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귀찮게 그런 짓을 왜 해,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말을 듣게 할 수 있는데.

상대, 백한영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입을 열었다.

“황제의 명령이다. 곧 마왕이 부활한다. 따라서 인류를 구할 용사를 육성한다. 너희는 거기에 선발된 용사 후보 1, 2, 3이다. 이상.”

“무슨 말도 안 되는.”

너무나도 황당한 얘기에 슈진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말은 안 했지만 아일라와 마빈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백한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심드렁히 말했다.

“나를 믿고 교육을 받고 싶은 사람만 남아. 아니면 나가고.”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못 믿겠으면 나가라고 하고 싶지만, 원래 이런 건 잘 안 해 주는데. 에이, 서비스다.”

백한영이 허리춤에 있는 검을 뽑았다. 그러자.

우우웅―!

신성(神聖)한 기운이 학원장실을 가득 채웠다.

“성검.”

“바로 맞혔습니다. 용사가 되신 행운의 당첨자분에겐 이 성검을 서비르로 드립니다. 이제 좀 믿기시나요?”

“마왕이 부활한다고?”

슈진이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왕이 부활한다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슈진에게 백한영이 덧붙이듯 말했다.

“아. 방금 말해 준 건 황제와 성당의 최고위 인물만 알고 있는 톱 시크릿이니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가족에게도.”

“정말 우리가 용사 후보라는 건가?”

“그렇다니까, 왜 사람 말을 안 믿어.”

슈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자신이 인류의 희망이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저기―.”

심각해진 방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마빈 플리밀이었다.

“어… 마빈이라고 했나? 질문 있니?”

“용사를 뽑는 중요한 자리에 제가 왜 있는 거죠?”

“아주 중요한 질문이야. 너도 용사 후보거든.”

“제가요?”

“저번에 말해 줬던 것 같은데, 눈치가 없는 것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안 좋다니. 앞이 깜깜하구나.”

나직이 한숨을 내쉰 백한영이 손벽을 짝 치고 이어 말했다.

“자.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교육을 시작할 거니 준비들 해 놔.”

“준비라면?”

“연락이 끊겨도 안심하라고 주변에 말해 두라는 뜻이야. 그럼 이만 해산!”

* * *

그렇게 용사 후보들과 만난 백한영은 황궁의 별궁으로 돌아왔다가, 눈을 깜빡였다.

이 세상 외모가 아닌 미녀가 별궁 안을 청소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바르세알과 눈을 마주친 백한영은 ‘저도 누군지 모르겠습니다’라는 표정을 짓는 바르세알을 확인하곤 고개를 원래대로 했다.

백한영이 말했다.

“누구세요.”

“얘기 들으셨을 겁니다. 앞으로 백한영 님을 모실 세레나라고 합니다.”

“진짜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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